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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46화 (46/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46화

“모르지, 하지만 감정을 한 감정사들이 그 정도 수준의 신비(神?)와 마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어. 그 안에 든 역사 수준만큼은 진짜야.”

게이트가 열리고 마력이 생겨나면서 고대의 유물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영웅의 검이 마력을 받자 명검으로 재탄생한다거나, 알 수 없는 글자로 가득했던 양피지 묶음이 마도서가 되는 일이 종종 벌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유물에 그런 힘이 깃드는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이름난 유물은 어지간한 상위 아티팩트보다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곤 했다.

그런데 그리스 시대의 벽화나 신혈(神血)이 묻은 물건이 실존한다니, 오히려 이런 물건이 경매로 유통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보안을 위해 발 벗고 나섰지. 그리스 신화의 유물은 인지도만큼이나 각별한 힘을 가진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그 경매에 괴짜가 나간다고 했단 말이지. 그것도 입장권을 들고 있는 정식 바이어로.

서한이 턱을 괴고 한참을 고심했다. 진희는 현성에게 그 팸플릿을 받아 쓱 읽었다.

“서한 씨, 경매장에…….”

“경비 병력을 늘려 놓을게.”

진희가 무슨 말을 할지 눈치챈 서한이 바로 폰을 들어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철통같은 경비를 세워놓긴 했지만, 괴짜가 출몰한다고 하니 이 정도 준비로는 모자랄지도 몰랐다.

기업에 입장에서 괴짜는 걸어 다니는 재앙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엮여서 좋을 일이 없단 뜻이다.

“이 유물들을 낙찰하신 생각입니까?”

“시도는 해보겠지만. 굳이 집착하고 싶진 않아.”

아무리 서한이 돈이 많다 하더라도 신대의 유물을 섣불리 살 정도로 여유자금이 많진 않았다. 본부에서도 구매하겠단 의사가 보이지 않으니, 서한은 딱 스폰서로서의 역할만 하고 빠질 생각이었다.

“예감이 안 좋은데.”

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은 서한이 앓는 소리를 냈다. 안 그래도 경매 때문에 이래저래 바빴는데, 괴짜가 나타난단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욱 피로해졌다. 차라리 던전에 가서 드래곤을 때려잡는 게 낫지, 서한이 한탄했다.

예감이 안 좋다고 생각하는 건 서한뿐만이 아니었다.

‘그 꼬맹이도 수작을 부리긴 할 텐데.’

테러범이 이간질 한 번 하자고 따라온 건 아닐 것이다. 뭔가 목적이 있긴 하겠지.

‘그리고 누가 범인이려나.’

자신의 정보를 테러범의 귀에 들어가게 유도한 사람이 있다. 이유는 뻔했다, ‘테러범을 잡기 위해서’이겠지.

진희는 턱을 괸 채 현성을 바라보다, 이내 서한을 지켜보았다. 피곤하다는 듯 넥타이를 벗고 있던 서한은 진희의 시선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뭘 봐?”

“아뇨, 거 얼굴 참 잘 생겼다 싶어서요.”

“…….”

오, 낼모레 서른인 후계자가 볼을 붉힌다.

카온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반응에 진희가 작게 웃었다.

* * *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단장은 레인에게 말했다. 서진희에 대한 정보가 그들에게 들어왔을 때, 부단장은 이게 함정이라고 단언했었다.

타이밍이 너무나 공교로웠다. 최근 감시가 심해진 한국을 벗어난 서진희와, 그녀가 가져갔다던 수정구에 대한 정보.

정보의 출처까진 알 수 없었으나, 부단장은 서진희의 곁에 있던 신현성이나 이서한이 설계한 함정이라고 짐작했다. 테러범을 잡고 싶어 하는 두 단체에게 서진희는 제법 괜찮은 미끼였으니까.

처음엔 무시할까 생각했지만, 소식을 듣고 미행을 하던 레인의 보고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경매라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부단장은 전화 너머의 레인에게 차근차근 계획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경매에 대한 정보는 모르고 있던 레인은 부단장의 지시를 들으며 되물었다.

“……안 들킬까요?”

-안 들킬 겁니다. 아마 경비는 전보다 단단해졌겠지만, 계획의 성패는 그와 상관없으니까요.

부단장의 계획은 과격했고, 들어가는 자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서진희 한 명을 상대하는 데 그만큼의 수고를 들여야 하는가 싶었던 레인의 질문에 부단장이 천천히 설명했다.

-저희는 이미 두 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그녀가 저희를 방해할 운명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를 알아내야 해요.

“그럼 계획이 성공한다면…….”

-그녀는 그저 우연적 존재였다는 게 증명되겠죠. 하지만 이만큼의 투자로도 그녀를 제압할 수 없다면, 그녀가 저희의 대척점에 선 존재란 걸 인정해야 해요.

부단장이 곧잘 이야기했던 운명이란 단어에 레인의 인상이 굳었다.

물론 그 또한 서진희가 끔찍이도 싫었다. 서진희를 제압하겠다는 이번 계획도 내심 마음에 들었지만, 만약 서진희가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인 것이 확실시된다면…….

“……정말 그럴까요?”

서진희는 위험하지만,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영상을 통해 만났을 때 느꼈던 그 살의는 선인(善人)의 것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위험했다.

레인은 만약 자신들과 대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위선을 가장한 용사와 같은 인물일 것이라 생각해왔다.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나타나는 영웅들, 부단장이 말했던 이야기의 주인공과 서진희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오히려 서진희는 자신들처럼 세상을 등지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그걸 이번 기회에 확인해 봅시다.

부단장은 언제나 영웅의 탄생을 경계했다.

이야기에서 영웅은 모든 법칙을 초월한다. 무력, 지혜, 상식을 벗어난 영웅들은 기어코 그들의 정의를 달성할 것이다. 단원 중에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부단장은 언젠가 그런 영웅이 나타나 자신들을 방해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세계와 운명, 성벽과 게이트, 악과 선. 부단장이 언제나 입에 담던 말들이었다.

-마야 씨를 통해 곧장 물건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진 잘 숨어 계세요. 아티팩트를 사용한 후엔 곧장 도망치시고요.

“네.”

-이번에 또 멋대로 그녀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정말 화낼 겁니다.

“……네.”

레인의 침울한 대답에 부단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할 순 있었다. 자신의 힘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한 레인이 그토록 무참히 패배한 건 태어나서 처음일 테니까. 어떻게든 설욕을 하거나, 그녀를 괴롭히고 싶었겠지.

하지만 또다시 서진희와 맞붙게 된다면, 현재의 레인에겐 승산이 없었다.

그의 힘은 조종과 물량 전술이지, 일대일의 백병전이 아니었다. 진희와 같은 A급 이상의 헌터와 얼굴을 마주하는 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언제나 몸조심하세요, 레인 군. 저희에겐 이 계획보다 당신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요.

“……감사합니다.”

부단장의 상냥한 말에 레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이 빤히 예상된다는 듯 부단장이 전화 너머로 작게 웃었다.

-이번 계획이 끝나면 곧장 돌아오세요. 당신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뒀으니까요.

“네.”

-그럼 이만.

전화가 끊겼다. 레인은 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돌렸다.

레인이 서 있는 곳은 마천루처럼 거대한 빌딩의 옥상이다. 해가 지기 시작해 지평선에 붉은 노을이 걸쳐졌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경매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신화의 괴물이 그곳에서 탄생하겠지.

과연 너는 그 괴물에 맞서는 영웅이 될까, 아니면 한낱 제물이 될까.

그 얄궂은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증오와 함께 공포가 몸을 지배했다. 아직도 팔 부근에선 미약한 고통이 느껴졌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던 그 검을 잊을 수 없었다.

죽어버려라. 경매가 열릴 예정인 호텔 쪽을 바라보며, 레인이 저주가 섞인 욕을 내뱉었다.

11. 영웅과 악당

이윽고 저녁이 된 후, 진희와 현성, 그리고 서한은 경매장에 입장했다.

서한은 스폰서였기에 아예 다른 좌석으로 안내되었고, 진희와 현성은 니케와 함께 입장했다.

진희는 서한이 준비해 준 정장을 입고 나왔다. 스프라이트 정장과 라운드 티는 다소 캐주얼해 보이긴 했으나, 니케의 입장권이 나름대로 효력이 있었는지 잔소리 없이 입장시켜 주었다.

“서한 씨 말처럼 드레스 코드가 있네요.”

진희가 경매장의 사람들을 둘러보던 중, 곁에 앉은 현성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서한은 진희에게 정장을 추천할 때 드레스를 서너 벌 정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희는 모조리 거절했고, 현성이 추천한 바지 정장을 선택했다.

모든 추천을 무시당한 서한이 정색하며 드레스 코드에 대해 설명했지만, 진희는 귀를 막으며 도망쳤다.

‘이게 규칙이다’라고 외치는 서한에게 진희는 ‘기득권은 자유를 보장하라!’라며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처음엔 진희가 선택한 정장을 마음에 안 들어 하던 서한도 이내 제법 맵시 있는 차림새에 짜증을 내며 수긍했다.

둘의 싸움을 지켜보고 마지막에서야 방을 나서던 현성은 옷을 치우려다 드레스에 적힌 가격을 보고 보지 못한 셈 치자 생각했다.

현성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희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들이 트렌드를 모르네요.”

그리고 버젓이 다리를 꼬며 당당하게 턱을 괴는 진희를 보며 현성이 작게 웃었다.

“으으, 내가 준비한 것도 입어보면 좋을 텐데. 나도 멋진 정장 준비했단 말이야.”

“니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니케가 연신 한탄을 하자 제이미가 낮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형광 후드티를 입고 있었던 니케는 셔츠와 얇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입장했다. 어지간히도 준비했던 옷을 진희에게 입히고 싶었는지, 연신 진희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서한의 제안마저 단칼에 거절한 그녀였다. 진희는 니케가 만나자마자 들이미는 옷들을 모두 곱게 접어 돌려주었다.

경매장은 호텔의 지하에서 진행되었다. 거대한 연회장엔 수십 개의 테이블이 있었고, 그 사이를 금실이 수 놓인 장지문으로 구역을 나누었다. 연회장의 정중앙엔 2m가량의 높은 단상이 있어, 모든 좌석에서 그 단상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아마 저 단상에서 경매 물품을 보여주는 거겠지.

일행은 가장 화려한 테이블 쪽으로 안내받았다.

‘서한 씨는 2층이네.’

아무래도 스폰서들은 2층의 특별석이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쪽을 흘끔 내려다보는 서한과 눈이 마주친 진희가 슬쩍 손을 흔들었다.

“뭘 사기 위해 참가한 거야?”

슬슬 좌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의 인기척을 느끼며, 진희가 니케에게 물었다. 테이블 위의 경매 참가 버튼을 신기하다는 듯 살피고 있던 니케가 고개를 들었다.

“응?”

“경매에 온 건, 사고 싶은 물건이 있는 거 아냐?”

이를테면 경매의 마지막 순번에 있는 신화의 유물이라든가. 진희의 물음에 으음, 하고 니케가 입을 우물거렸다.

“글쎄, 호프 다이아몬드의 마정석 복제품이나, 에르텔로 만든 와이어 같은 건 갖고 싶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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