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44화
“저, 저 여자야! 저 여자가 사기꾼과……!”
“현성 씨.”
진희의 말에 현성이 갱스터의 멱살을 풀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갱스터는 잠시 진희와 현성의 눈치를 살피다, 황급히 땅을 박차고 달아났다.
회색의 긴 보브컷을 한 여성이 느긋한 걸음으로 진희의 앞에 당도했다.
“당신들이 괴짜를 찾는 사람들이야?”
“맞긴 한데, 누구시죠?”
한국말이었다. 서양인이 분명한 푸른 눈동자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건 여성이 빙긋 웃었다.
“괴짜의 친구, 제이미라고 해. 안녕?”
제이미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 * *
“괴짜는 너희가 오는 걸 알고 있었어.”
제이미는 그들을 한 상점으로 안내했다. 이런저런 잡다한 술이 진열되어 있는 허름한 상점의 문을 익숙한 듯 연 제이미가 진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네 얘기도 했지.”
“저요?”
“존대는 안 해도 돼. 친구처럼 지내고 싶으니까.”
제이미는 웃는 낯으로 말했지만 진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같이 있던 현성이 당황할 정도로 얼어붙은 표정으로 진희가 대답했다.
“그래. 그래서 내 얘기를 뭐라고 했는데?”
“으음, 용의 별이라고 했어.”
“용?”
드래곤 할 때 그 용? 진희가 되묻자 제이미가 두 손을 들어 머리에 붙이며 뿔처럼 흉내 냈다. 검지를 들어 마치 용의 뿔인 듯 붙이고, 와악, 하고 입을 벌렸다.
“맞아, 그 용이야. 불 내뿜는 용.”
“…….”
현성은 우리가 2급 던전을 공략한 이야기를 벌써 전해 들은 건가 의심했지만, 진희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인상을 굳혔다. 드래곤과 별이라. 바제트의 가문의 문양이기도 했다.
‘삼라만상이라는 거창한 호칭을 쓸 정도의 눈은 가졌나 보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특징을, 어떻게 이리도 잘 잡아낼 수 있는 걸까.
“너는?”
“응?”
가게 안쪽의 전등을 켜던 제이미가 돌아보았다.
제이미의 옷차림새는 평범했다. 하얀 면바지와 검은색 폴라 티를 입은 그녀는, 괴짜와 연관된 사람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일반인다웠다.
물론 겉모습만.
진희는 아무런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인간을 처음 봤다. 어떤 인간이라도 미약하게나마 마력을 지니게 마련인데, 제이미는 신체 그 어느 곳에도 마력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영상을 보는 듯했다.
진희는 태어나서 이런 인간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는 뭐 하는 사람이야?”
“나? 나는…….”
제이미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이내 푸른 눈동자로 진희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똑바로 바라보고 있음에도, 진희 또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완벽한 눈동자구나.’
제이미는 생각했다.
일면식 없는 사람의 안내에 따르면서도 조금의 두려움, 망설임도 없는 눈이다. 아까부터 알게 모르게 주변을 경계하는 현성과는 달랐다. 어떤 위험이 닥쳐오든 상관없다는 당당한 태도와, 너의 대답을 듣고 말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돋보이는 눈동자다.
어려 보였지만, 제이미는 그녀의 인상을 백전노장과 같다고 정의했다.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이야.”
“이야기?”
“그래, 세상 모든 말과 언어, 이야기를 수집하는 사람. 그래서 너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좋아.”
그런 사람들이 있다. 태어나서부터 이야기를 주도하고, 휘말리며, 주변을 어지럽히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괴짜가 그러했듯, 진희도 분명 그런 사람일 테지.
말하고 싶던 뒷이야기를 참은 제이미가 손을 뻗어 가게 안의 뒷문을 열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자, 이곳으로 들어가.”
제이미는 뒷문 안쪽,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마치 광대가 서커스로 안내하는 듯한 과장된 움직임이었다.
10. 괴짜와 약속
괴짜에 얽힌 일화는 많다. 특히 아티팩트를 유통하는 업자나, 위법에 손을 대본 상위 등급의 헌터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괴짜는 선과 악을 따지지 않고 재미를 위한 의뢰를 받는 탐정이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선 국가 기밀 급의 정보도 유출해 주는 정보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괴짜를 찾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그가 벌려놓은 수많은 사건 때문이다.
아이돌 콘서트가 보고 싶다고 한 국가에 찾아가려 했을 때, 국가보안을 위한다며 입국을 거절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국가가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던 노다지 던전의 정보를 모조리 까발려서, 몰래 잠입한 타국의 헌터들이 해당 던전을 모조리 털어갔던 일이 있었다.
타국의 헌터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현장 콘서트 한정 굿즈를 사다 줬다던가.
한 마피아 조직이 마약 유통 경로를 확장하고 싶다며 세간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접견 장소를 요청했고, 괴짜는 그들에게 A급 헌터가 애용하는 비밀기지가 있던 바(Bar)를 추천했다. 그 어떤 경찰도 만나지 않았지만, 초인들의 한복판에서 마약을 거래하던 그 마피아는 그 자리에서 모두 일망타진당하게 된다.
물론 자신들만의 비밀기지를 괴짜가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챈 A급들의 원한도 같이 샀다.
그 밖에도 만병통치약이라면서 탈모를 일으키는 근육 증강제를 팔지 않나, 비밀스러운 호위를 바라는 사람에게 전 연인인 헌터를 소개해 주는 등, 당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벌이고 다녔다.
덕분에 괴짜를 노리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지만, 단 한 번도 그를 잡은 적이 없었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듯, 그 어떤 함정과 기습에도 완벽히 도망 다녔기 때문이다.
A급 헌터가 포함된 병력을 이끌고 잡으러 갔을 때는 갑자기 나타난 2급 특별 관리형 게이트로 인해 시도가 무산된 적도 있어, 세간에선 엄청난 행운까지 따라주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오늘날 괴짜는 유별난 현상금이 책정된 국제적 범죄자로 등록이 되었다. 그럼에도 입국과 출국이 자유롭고, 사건이 벌어지지만 꾸준한 고객이 있다는 점에서 그 유명세는 줄어들 낌새가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한과 현성에게 들은 진희는 괴짜의 모습이 괴팍한 중년이나,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진희와 현성을 반긴 괴짜의 모습은 예상외였다.
“어서 와!”
술집의 지하, 창고인 듯 여기저기에 수납함이 있는 방. 커다란 소파에 널브러진 사람이 진희를 반겼다.
산발이 된 빛바랜 금발의 사람이 웃고 있었다. 짧은 반바지와 운동화, 그리고 형광 후드티를 입고 있으며, 성별을 종잡을 수 없는 괴짜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슴푸레한 방 안에서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났다.
“찾아오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
여기도 한국말을 쓰네. 하지만 굳이 반응하고 싶지 않았던 진희가 말없이 다가가 괴짜의 건너편 소파에 앉았다. 현성도 그녀의 곁에 앉았다.
“앉지 그래?”
“…….”
소파에 앉은 다음 등을 쭉 펴고 몸을 눕힌 진희가 제이미를 향해 턱짓했다. 마치 자기 소파인 양 말하는 폼에 제이미가 작게 웃고는, 곁에 있는 소파에 가 앉았다.
“뭐야, 뭐야, 제이미랑 친해졌어?”
“이름만 아는 사이야.”
“그래? 그럼 나랑도 이름 아는 사이 정돈 될 수 있겠네!”
괴짜가 척 하고 팔을 내밀었다. 괴짜의 오른팔은 해괴한 타투로 가득했다.
“내 이름은 니케. 괴짜라고 불러도 되고, 마음대로 불러!”
“서진희야.”
진희가 손을 맞잡았다. 괴짜, 니케의 시선이 현성에게도 향했다. 말없이 주변을 살피던 현성은 의례적인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신현성입니다.”
“진희와 현성인가.”
으흠흠, 이상한 헛기침을 한 니케가 소파 앞 테이블에 있던 잔 두 개를 건넸다.
“목마르지? 한잔할래?”
“술이네요.”
풍겨오는 냄새에 현성이 거절을 표했다. 투명한 잔 안에는 독할 것 같은 술이 들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진희도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네.”
“응, 맞아. 하늘을 봤거든.”
하늘? 이해 못 할 이야기였지만, 대충 듣고 넘긴 진희가 말을 이었다.
“그럼 왜 온 건지도 알고 있겠지?”
“무슨 물건을 들고 온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어!”
니케가 정확히 현성의 서류 가방을 가리켰다. 현성이 꺼내 보냐는 눈빛을 하자, 진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대체 어떻게 자신들의 행적을 알았는지, 괴짜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눈치다.
“오호라, 이거구나.”
마른 두 손으로 현성에게 수정구를 받아든 니케가 눈을 크게 떴다. 수정구는 두 개. 조건부 던전에서 나온 것과 드래곤을 공략한 후 얻은 것이었다.
생김새는 동일했다. 투명한 수정구 안에 검은색의 빛이 고슴도치처럼 반짝이고 있었는데, 각도에 따라 빛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흥흐응.”
여전히 괴상한 감탄사를 내뱉으며 수정구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니케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둘 다 다른 던전에서 찾은 거지?”
“맞아.”
“그렇구먼, 설계한 사람도 고민이 많겠네.”
“설계?”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던 진희에게 니케가 두 수정구를 서로 부딪치며 말했다.
“응. 이렇게 뻔한 ‘제작품’을 보물찾기처럼 숨겨놓은 거잖아? 당연히 던전 만드는 것도 심사숙고하지 했겠지.”
“이 수정구가 나온 던전은, 특정 누군가가 만들었단 말씀이군요?”
“그야 당연하지.”
현성의 말에 니케가 이제야 알았냐는 듯 비웃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나오는 답 아냐? 어떻게 공략하는 사람 편의만 좋을 던전이 저절로 생겨났겠어? 누가 만든 게 당연하지.”
“…….”
누구나 생각은 했지만 확답할 수 없었던 문제를 니케는 단숨에 요약했다.
“그리고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은 그 정도 능력은 되는 것 같네.”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어. 워터마크라도 박아 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진지는 보이네. 잘 봐, 이 안의 검은색 빛 말이야.”
니케가 수정구를 진희와 현성의 눈앞에 각각 들이밀었다.
“이거 안에 던전이 들어 있어.”
“뭐?”
“네?”
“이 수정구는 뚜껑이야. 안의 던전에서 마력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봉입해 둔 거지. 밀봉 식품이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 상하지 않도록 단단히 가둬서, 바깥에서 아무런 냄새를 못 맡게 만든 제품이야.”
이런 완벽한 제품은 또 오랜만이라며, 다시 수정구를 회수하여 안경처럼 자신의 눈앞에 끼운 니케가 웃었다.
“이걸 만든 사람은, 이 조그마한 유리구슬 안에 던전 하나를 통째로 집어넣고 밀봉할 정도의 실력자란 이야기지. 와, 진짜 신이 아닐까?”
혹은 반신(Demi god)이나.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음에도, 니케는 뒷말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니케의 나쁜 습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