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43화 (43/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43화

지중해식 레스토랑의 유행이 지난 지도 제법 된 탓인지, 점심시간임에도 식당 안은 한적했다. 2층 창가의 구석 자리, 도로가 보이는 시원한 창가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은 호밀이 섞인 빵을 뜯어 먹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응?”

그러던 중, 그녀의 주머니에 있던 폰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고서 이마를 찌푸린 그녀가 물로 입을 헹구고 나서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내 사랑하는…….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잔인한 자매님, 인사도 제대로 못 하게 하네.

햐햐햐, 하고 바람 샌 웃음소리가 들리자 그녀가 귀에서 폰을 살며시 뗐다.

-다른 게 아니라, 제이미. 혹시 오늘 오후에 시간 있어?

“시간? 왜?”

이 아이가 전화를 걸 땐 언제나 귀찮은 일이 동반된다. 제이미라 불린 여성이 싫은 티를 내며 말하자, 건너편의 상대가 싹싹한 태도로 말했다.

-나 목숨이 좀 위험해서, 이히히.

“……뭐?”

이게 무슨 소린가 이해가 되지 않던 제이미는, 이내 통화하고 있던 이가 미약하게나마 예지를 할 수 있다는 걸 떠올렸다.

“미래를 본 거야?”

-그 정돈 아닌데, 하늘을 봤더니 엄청난 용의 별이 떨어지고 있더라고. 대비 안 하면 내 목이 날아가게 생겼어.

‘캬하~ 용의 별이라니 표현 참 좋아’라며 해괴한 소리를 지껄이는 상대를 놔두고, 제이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 종업원이 메인 메뉴를 들고 오는 게 보였지만, 손을 휘저어 거절을 표했다.

“도망치면 되잖아.”

-안 돼. 걔들이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걸 가지고 있거든. 그걸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돌아온 목소리는 진지했다. 한번 마음먹으면 결심을 되돌리지 않는 인물이란 걸 잘 알고 있기에, 제이미는 ‘그럼 그렇지’ 하고 말을 이었다.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역시 우리 자매님이야. 날 도와주는 건 제이미밖에…….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랬어.”

-음흠, 그냥 호위만 좀 해주면 돼. 그 별은 아무래도 수틀리면 날 납치까지 할 정도로 과격한 인물로 보이거든. 제이미가 곁에만 있어도 억제는 될 거야.

하늘을 본다는 이야기는 점성술의 이야기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하늘을 보았더니’ 웬 거대한 별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뉴욕을 향하고 있었다.

-설마 날 찾아오나 했는데, 아무래도 인연의 실이 나랑 아주 짙더라. 내가 지구 끝에 있어도 끝까지 따라올 정도야.

목소리가 끅끅, 웃음을 참고 있었다.

얘는 대체 왜 위험한 상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단 이야기에 이렇게 흥분하는 걸까, 당최 이해할 수 없다며 제이미는 혀를 찼다.

“네가 보고 싶은 물건이란 게 뭔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모른다고?”

-응.

제이미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신체에 무리가 갈 수 있으나, 시야에 담는 것만으로도 객체의 역사를 모조리 알아내는 능력을 가진 그가 모른다는 말을 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잠시간 말이 없던 제이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나도 그 용의 별이란 사람을 보고 싶어졌어. 언제 만날래?”

삼라만상의 편린을 볼 수 있는 괴짜, 니케 레만마저도 대비를 해야 하는 상대가 누구일까.

제이미의 푸른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빛났다.

* * *

헌터 전용 호텔이란 곳은 호화의 극치를 달리는 곳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부터 짐을 픽업해가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호텔 리무진이 일행을 태웠다.

그리고 아무런 확인 절차도 없이, 각자의 방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정확히는 방이 아니라 한 층 전체였다. 가운데 커다란 거실을 두고 4개 정도의 방이 얽혀 있는 층은 3명이 쓰기엔 과하게 컸다. 맨해튼 거리가 보이는 투명한 벽의 수영장, 욕실과 사우나, 작은 바(bar)와 어김없이 존재하는 마정석 등등.

‘사람들이 왜 모든 헌터가 부자라고 생각하는지 알겠네.’

이런 호텔이 헌터 전용 호텔이라고 광고를 하고 있으니, 일반인으로서 오래 살아온 그녀가 보기엔 이해가 되는 일이었다.

비행기에 내렸을 땐 이미 해가 질 무렵이라, 셋은 저녁부터 먹었다. 호텔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내일까지 쉬기로 했다. 몸이 피곤한 건 아니었지만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온 터라, 시차 적응 겸 휴식이 필요했다.

샤워를 한 후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운 진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꿈을 꿨었지…….’

비행기 위에서 꾸었던 악몽은 ‘바제트’와 ‘진희’가 함께한 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목이 답답하다. 끝없는 죄악감과 저주가 시종일관 귀를 괴롭히는 건 결코 꿈이라고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말뿐인데도 아팠고 겪는 것만으로 슬펐다.

‘바제트는 그런 인생을 살아왔단 거지.’

진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바제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손아귀와 상처 하나 없는 목덜미가 느껴졌다.

그 악몽은 너의 악몽일까, 아니면 나의 죄책감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진희의 숨이 천천히 늘어지기 시작했다.

* * *

아침, 호텔에서 주는 룸서비스로 대충 식사를 마친 진희와 현성은 호텔을 나섰다. 서한은 예정되어 있던 볼일을 보러 간다고 빠졌다.

“근데 현성 씨는 영어 잘해요?”

“서툴지 않게는 해요. 워낙 출장이 잦아서요. 진희 씨는요?”

“……어 리틀 빗(A little bit)?”

“……그렇군요.”

더 묻지 않은 현성이 현명했다.

이스트 할렘까지는 호텔에서 잡아준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출근 시간을 빗겨 간 덕분인지 길은 막히지 않았고, 반 시간이 좀 지나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맨해튼은 되게 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좁네요.”

“넓은 지역은 아니긴 하죠.”

이름과 달리 할렘가는 매우 평범한 거리였다. 도로 폭이 한국에 비해 훨씬 넓다는 것 말고는 오히려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다. 노후화된 건물도 군데군데 보이지만 나름 깔끔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다들 일반인들이었다.

“표지판이랑 들려오는 말소리가 아니면 해외 온 것 같지도 않겠어요.”

“하하, 이 근방은 관광지로 오기엔 심심하긴 하죠. 더 들어가면 라틴 계열의 벽화나 댄스홀 같은 곳도 있다고 하네요.”

하지만 놀러 온 것이 아니기에 현성도 짧은 권유에 그쳤다. 진희는 현성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 깊숙한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점, 대로변과는 다른 양상의 거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개는 건물이나 사람 때문이 아닌, 게이트 때문에 생긴 폐허들이었다. 이곳에 오면서도 게이트를 몇 개 보곤 했지만, 할렘가의 골목길은 게이트의 빈도수가 제법 높았다.

각각의 게이트마다 일련번호와 함께 주의사항이 표지판으로 안내되어 있었다.

신림처럼 특별 관리형의 던전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눈에 띄게 많은 숫자긴 했다.

“이렇게 게이트가 많으니까 당연히 헌터도 많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보이네요.”

골목을 걸어 다니는 건 진희와 현성뿐이었다. 신림의 시장통을 떠올리며 진희가 묻자, 현성이 음- 하고 말을 골랐다.

“그건 다른 게 아니라…….”

그때, 그들의 앞길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응?”

“Hey, guys.”

진희가 처음 생각했었던, 힙한 갱스터 의상을 입은 무리였다. 그들은 두 눈을 끔뻑이는 진희의 앞을 가로막더니, 비틀린 웃음을 짓고는 턱짓으로 곁에 있는 골목길을 가리켰다.

따라오란 의미가 명백한 움직임에 진희가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me?”

물어보니 맞단다. 진희가 멍한 얼굴로 현성을 바라보자, 현성도 하하 하고 난처하단 웃음을 지었다.

“얘들 무슨 자신감일까요?”

“글쎄요.”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건 진희와 현성도 같은 생각이었다. 어깨를 밀치는 갱스터들에게 밀리면서, 그들은 어두운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갱스터들은 오래간만에 수익이 생겼다고 낄낄거리며 골목길을 막았다. 그 골목길이 퇴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 *

그리고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히이익!”

“진희 씨, 죽이면 큰일 나요.”

“안 죽여요. 절 뭘로 보는 거예요?”

“…….”

현성은 차마 대답할 수 없어서 진희의 시선을 회피했다.

갱스터 무리는 8명 정도로, 딱 봐도 십 대 후반과 이십 대를 오가는 청년들이었다. 버젓한 피스톨 건도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당황하며 총을 쏴버린 게 진희의 화를 불러일으켰다.

“아, 따가워.”

총알을 이마에 맞은 그녀는 살짝 부풀어 오른 이마를 매만지며 짜증을 부렸다.

마력의 보호를 받고 있는 헌터들은 현대의 화기로는 좀처럼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근거리에서 맞은 총알마저도 따끔할 수준이었기에, 큰 위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마에 맞았다는 점에서 짜증이 확 밀려온 그녀는, 피스톨을 사용한 갱스터를 골목의 벽에 그야말로 처박았다.

도망가려던 이들도 모조리 한 대씩 맞아 팔이 부러지거나, 이가 나가 바닥에 뒹굴었다.

벽돌 사이에 박혀 기절해버린 갱스터에게서 피스톨을 빼앗아, 그대로 몸체를 힘으로 부러뜨린 그녀가 현성에게 다가갔다.

마침 현성은 갱스터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음, 라틴 계열 갱스터인 것 같네요.”

“보면 알아요?”

“아뇨, 몇 대 때리니까 알아서 말하던데요.”

“…….”

가만 보면 현성은 범법자에 한해서 매우 무자비했다. 공무원 마인드는 다 저런가? 진희는 멍이 든 입술로 히익히익 소리를 지르고 있는 갱스터를 내려다보았다.

“이봐, 이 근처 타이완 커뮤니티에서 일 터진 적 없어?”

“타, 타이완?”

“그래, 웬 사기꾼이 나타났다든가.”

갱스터는 한참을 눈알을 굴리며 생각을 하다, 이내 번뜩 떠올랐는지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이, 있어! 3, 3번가 쪽 술집 거리에서 난동이 있었어! 타이완 커뮤니티가 경찰에 신고당했다면서 범인을 찾으러 다녔어!”

오호라, 진희가 땡잡았단 얼굴로 현성을 바라보았다. 회화는 서툴러도 이 정도 대화는 이해할 수 있었던 진희가 현성에게 물었다.

“그 사기꾼에 대한 것도 물어봐요.”

“사기꾼의 거처는 알고 있는 게 있나?”

“그, 그건 모르지만……. 아! 사건을 수습했던 여자는 알아!”

“그게 누군데?”

“이, 이름은 잘……. 회색 단발 머리카락에, 돈이 많았는데…….”

현성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특징을 가진 사람은 거리에 나가면 수없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제대로 된 단서를 내뱉어보라며 현성이 슬그머니 멱살을 강하게 쥐자, 갱스터가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나도 더는 모른다고! 애당초 난 커뮤니티 소속도……!”

“그쯤 해도 돼.”

그때, 누군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시끄럽게 떠들던 갱스터의 말을 단숨에 파고들 만큼 날카로웠다.

반대편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