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41화
9. 괴짜와 만남
“들어가시면 됩니다.”
“예.”
오래간만에 입는 정복은 답답했다. 현성은 넥타이를 여미며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회의실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얼굴엔 태연한 가면이 씌워졌다.
언제나처럼 감정을 알 수 없는 웃는 인상으로 회의실의 전자 탁자 앞에 선 그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눈을 마주했다.
헌터관측방위대(The hunter observation defence force)의 간부들과 행정처 소속의 간부들이 그처럼 정복을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실무는 모르고 시대도 따라가지 못하는 고위 간부들. 현성과 윤수가 곧잘 말하는 ‘늙은이’들의 대표 주자였다.
“충성, 방위대 대위 신현성,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게.”
방위대 대장이 손을 털듯이 경례를 받자, 동시에 천장에 있던 프로젝터가 가동했다.
오늘은 분기별 보고를 하는 날이었다. 3개월 동안 있었던 사건들과 그 대응, 앞으로의 계획 등을 설명하는 말 그대로 보여주기식 보고였으나, 오늘은 참가하는 사람이 과하게 많았다.
평소라면 반도 채워지지 않을 좌석들이 모두 채워진 걸 보며, 현성은 내심 쓰게 웃었다.
그들도 예감한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우선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여 보고드립니다.”
가장 큰 골치는 역시나 테러리스트다. 온갖 유력자들을 테러한 후 자취를 감춘 그들을 병력을 총동원하여 조사하는 중이었지만, 그간 유의미한 단서를 찾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 보고에선 제법 괜찮은 보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찾고 있던 오브형 아티팩트입니다.”
바로 진희가 현성에게 맡겼던 수정구였다.
현성은 차분하게 이 수정구에 대해 보고했다. 이 수정구가 어디에서 나왔고, 노리고 있던 자의 특징은 어땠는지를 상세히 말했다.
물론 보고 중에 진희의 정보를 아예 감출 수는 없었다. 은연히 드러난 ‘테러리스트를 상대했던 검사’란 이야기에서, 많은 간부가 미심쩍은 눈초리를 했다.
“신 대위.”
“예.”
“왜 이 검사의 정보는 이토록 적지?”
그녀의 경력은 너무나도 지리멸렬했다. 테러리스트에게서 수정구를 빼앗은 검사. 2급 던전의 레이드를 공략한 검사. 그러나 경력은 고작 1년도 되지 않은 C급 헌터. 어떻게 읽어도 정보가 누락된 것 같은 보고서다.
그도 그럴 게 약초밭에선 박준이 테러리스트를 상대한 사람으로 올라가 있었으니, 서진희의 정보는 그들로선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진희의 헌터 경력은 정말 짧기도 했고.
“……그간 일부러 업적을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차피 조사하면 다 나오는 판국에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숨기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숨겨야 했지만, 진희는 자신의 업적을 밝히리라 말했다. 현성은 차분하게 진희의 정보를 화면에 올렸다.
일부러 C급 헌터로 등록했지만, 그 힘은 최소 B급 이상, A급과 비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헌터.
이마저도 그녀의 무력을 생각하면 과소평가한 것이지만, 보고 있는 간부들 사이에선 감탄마저 흘러나왔다.
헌터가 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A급 수준의 헌터라니, 이런 강력한 신입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당장 대기업 ‘브리온’에서 자랑하며 국내에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두 신인이 B급인 걸 생각해 보면, 진희의 수준은 언론사에서 대서특필이 나와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현성은 감탄 어린 눈빛 속에 섞인 의심을 읽어냈다.
‘그래, 당신들처럼 속 깊은 양반들이 의심 안 할 리 없겠지.’
어느 집단에서 키워낸 헌터가 아닌가, 사실 기업소속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서진희 씨는 저희에게 우호적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지?”
“그녀는 현재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이 수정구를 ‘직접’ 조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진희로선 시비를 걸었던, 그리고 자신을 짜증 나게 한 테러리스트들에게 엿 한 번 먹여보자 했던 일이지만, 현성은 그것을 마치 공익을 위한 행동인 듯 위장했다.
그녀는 무분별한 테러행위를 일삼는 범죄자들을 직접 찾아내기 위하여, 그들의 단서가 될 법한 수정구를 조사하고자 한다.
그녀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라면 조금도 믿지 않을 거짓말을 웃는 낯으로 내뱉은 현성이 주변 간부들의 표정을 돌아보았다.
반은 믿어서 감격하고 있고, 나머지 반은 의심하고 있지만 반박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현성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고로 회의에서 공공의 이익, 국가헌신 같은 소재만큼 잘 먹혀들어 가는 소재가 없었다.
“하지만 해당 물건의 감정은 불가능했습니다. 국내 최고의 감정가들마저도 무슨 물건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서진희 씨는 ‘괴짜’의 정보를 요구했습니다.”
“괴짜라니…….”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사본을 가진 인물 말인가?”
간부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이쪽 방면의 녹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물이었다.
괴짜. 삼라만상의 총서를 가진 이.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음에도, 그 어떤 것 하나 쉽게 말해 주지 않는 인간.
괴짜가 지금껏 팔아온 정보는 항상 누군가, 혹은 단체를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이었기에, 괴짜를 ‘민폐의 악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을 귀찮게 했던 조직이 숨겨놓고 있던 알짜배기 던전의 정보를 인터넷에 까발리기도 하고, 괴짜가 사상 최악의 병기라고 말했던, 한 국가에서 수백억에 낙찰된 아티팩트가 사실 화려한 파티용 소품이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괴짜를 만나본 사람은 드물지만, 대부분은 괴짜의 성격을 그 별명만큼 특이하리라 짐작했다.
“못 내어줄 건 없다만…….”
정보부 간부가 앓는 소리를 냈다. 괴짜의 정보야 조금만 돈을 투자하면 알 수 있다. 괴짜가 걸어 다니는 곳엔 사건이 끊이질 않으니까.
문제는 그 괴짜를 만나는 게 과연 옳은 판단인가 하는 것이다.
만물을 꿰뚫어 보는 괴짜라면 저 정체불명 수정구의 정체를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로 인해서 뭔가 사건이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일반 C급 헌터에게 소개해 주는 게 아닌, 미래가 창창한 A급 수준의 헌터에게 맡기기엔 리스크가 큰일이었다.
“……뭐, 본인이 맡겠다고 한다면…….”
간부가 의견을 묻기 위해 방위대 대장에게 시선을 옮겼지만, 대장은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내면을 알아보기 위한 진중한 시선이었지만, 현성의 얼굴엔 여전한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자네도 따라갈 예정인가?”
“네.”
“그렇군.”
대장은 인쇄물로 나눠준 자료를 가리켰다. 거기엔 신현성이 제출한 ‘출장 신청서’와, 서진희의 출국을 도울 ‘괴짜 정보 알람 신청서’, 그리고 ‘서진희 정보 알람 신청서’가 차례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왜, 서진희라는 인물의 정보를 ‘적’들에게 알리려 하는 거지?”
서진희 정보 알람 신청서엔, ‘서진희가 수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흘리겠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현성의 호를 그린 눈꼬리를 보며 대장이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이 헌터는 순식간에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된다. ‘수정구’란 이야기에 반응할 녀석들은 테러리스트들밖에 없으니까.”
“……그걸 노리는 겁니다. 대장님.”
“뭐라고?”
삑, 프로젝트 화면이 꺼졌다. 더 이상 브리핑할 건 없었다. 현성은 느긋한 걸음으로 회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이 정보는 일반 기업들에겐 ‘C급 헌터가 감정 불가의 아티팩트를 얻었더라’ 정도로 취급될 것입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에겐 다릅니다. 검사이며, 정체불명의 수정구 아티팩트를 가졌고, 2급 던전을 공략할 정도의 실력자……. 이 정도 정보의 집합이라면, 테러리스트들은 단숨에 서진희 씨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지, 이런 정보의 난발은 그래서……. 잠깐, 자네 설마.”
대장의 두 눈동자가 현성을 향했다. 설마, 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현성이 다시 빙글 웃었다.
“맞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테러리스트들을 포획할 기회입니다. 서진희 씨가 괴짜를 만나기 위해 해외로 출국하면, 그들도 정보를 따라서 서진희 씨를 노리려 출국할 겁니다. 저는 그때를 노리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미끼다.
지금껏 보호의 명목으로 서진희의 곁을 지켰지만, 이번엔 좀 더 노골적으로 서진희를 적들의 앞에 노출할 계획이다.
재료(수정구)가 모였는데 굳이 암행을 고집할 필요는 없지.
웃고 있으나 이 자리의 누구보다 냉철한 눈동자로, 현성이 말했다.
“대장님, 질서를 어지럽히는 테러리스트들의 덜미를 쥘 절호의 기회입니다.”
* * *
“……그런 이유로, 다음 주에 미국 갈 거야.”
“…….”
진희가 호기롭게 여권을 책상 위로 던지며 말했다. 3인방과 청하, 서한과 카온을 앞에 두고 진희는 미국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감정 불가의 수정구를 감정받기 위해, 미국에 있는 괴짜라는 사람을 찾아간단 짧은 설명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카온이 물었다.
“……저도 갈 수 있습니까?”
“넌 못 가지. 너 신분증도 없잖아.”
“…….”
“아니, 노려봐도 소용없대도…….”
카온의 신분은 진희도 노력해서 만들어주려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우선 서한에게도 부탁해 봤지만, 헌터 면허가 어지간히 체계적이라 쉽지 않단 대답만 돌아왔다.
나중에 더 알아봐야지 싶어 미루던 게, 결국 해외 출국 때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표정이지만 불만이 가득한 눈빛을 뒤로하고, 진희는 자신을 초롱초롱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애들도 탈락.”
“으앙.”
청하가 책상에 털썩 고개를 박았다. 진희가 해외에 가는 게 놀러 가기 위해서가 아님을 알다 보니, 아이들도 예상은 했는지 별다른 불평을 하진 않았다.
“다음에 가자, 다음에.”
진희가 표현은 안 하지만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3인방을 보며 작게 웃었다.
최근 아이들의 능력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이능력뿐 아니라 마력도 제법 다룰 줄 알아, 어디 가서 D급 헌터 행세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력의 총량만 늘어나면 머지않아 C급도 노려볼 수 있겠지.
하지만 이번 일에 데려가는 건 무리였다.
“되도록 나랑 현성 씨만 가려고 했는데…….”
“나도 예정이 있어서 같이 가.”
크흠, 하고 서한이 끼어들었다. 듣자 하니 그도 미국에 뭔 행사가 있어서 같이 가야 한다던가. 진희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가만히 서한을 바라보고 있자, 서한은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저번 주부터 말했잖아.”
“……뭐, 그렇긴 한데요.”
따지고 보면 서한이 먼저 출장 가야 한단 소식을 전하긴 했었다.
네가 가면 가지 왜 나한테 말하고 그래? 라는 얼굴로 진희가 무시하긴 했지만, 당시 해외에 일이 있어 한동안 못 올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타이밍이 참 얄궂게도 진희가 ‘괴짜’의 행방을 짐작한 다음 출국하려던 예정이, 서한의 일정과 겹치게 되었다.
금붕어 똥이야 뭐야, 진희의 중얼거림에 서한이 순간 반박하려다 이내 참았다.
‘그래, 내가 더 어른이지, 어른이야’ 하고 아무도 듣지 않을 말을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