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40화
일을 마무리하기 전에, 진희는 집으로 향했다.
사실 보육원의 방이 이미 반쯤 자취방처럼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끔 생존을 알리기 위해 집에 갈 필요가 있었다.
그녀의 집은 신림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서울시 외곽에 위치했다. 진희는 그녀와 그녀의 아빠 둘이 살던 작은 단독 주택에 도착했다.
“또 문 안 잠갔네.”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름진 냄새가 확 그녀를 덮쳐왔다. 진희는 드물게 사색이 된 얼굴로 주방 쪽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아빠.”
“왔어?”
오래간만에 본 부녀였지만 인사는 짧았다. 마침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었는지, 그녀의 아빠는 식탁 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오늘 온다고 말한 적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식탁엔 2인분의 수저가 놓여 있었다. 언제나 이랬다. 아빠는 귀신같이 그녀가 찾아올 시간을 계산하고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손 씻고 앉아, 밥 먹게.”
“안 먹는다는 선택지는 없을까?”
“아빠를 못 믿는구먼. 이번에야말로 맛있다니까!”
어깨를 활짝 펴며 말하는 아빠의 모습에 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당연하지만 그의 요리가 맛있었던 적은 백 번 중 한두 번에 손꼽힌다. 그 한두 번은 모두 기성품을 사용한 편의점 음식에 한해서였다. 맛있는 수제 요리란 단어는 그의 요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이번엔 무슨 요리인데?”
“고추장 삼겹살 볶음이야.”
“……진짜?”
“응.”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이름의 요리를 하고 있다고? 조금도 믿지 못하는 얼굴로 진희가 손을 씻은 후 식탁에 앉았다.
요리에 대한 불평을 하더라도 차려준 음식은 거절한 적이 없는 건 그녀의 습관이었다.
자리에 앉은 후,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주방과 거실을 둘러보던 진희는 문득 식사를 준비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집에 들어오는 날이 없다시피 했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진희에게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헌터로서의 일이 어떤지, 왜 신림이란 곳에서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 만도 했지만 그는 진희가 알려준 사실 이외엔 크게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간 같이 살아온 진희가 보기에, 그의 교육 방식은 좋게 말하면 자유로웠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자식에게 관심이 없었다.
헌터가 되겠다고 나갈 때도 ‘그럼 이제 연말 정산 분가해서 해야 하냐?’ 하고 진지하게 묻던 부모였다.
진희 또한 그런 교육 방식에 불평을 내보인 적은 없었다. 어려서부터 태평했던 그녀는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편했고, 실제로도 이십여 년간 별 사고 없이 잘 지내왔으니까.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는 진희가 봐도 명백히 수상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전생에 대해서 말해도 아빠라면 바로 믿어주겠지, 라고 생각될 정도로 태평한 성격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진희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아마 진희로서의 기억과 바제트로서의 기억이 서로 충돌했다면, 그녀는 끝까지 비밀을 숨기려 했었겠지. 그럼에도 밝히게 된 건 그가 의심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주리란 확신이 진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고추장 삼겹살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붉은 덩어리를 접시에 옮겨 담는 아빠의 옆모습이 보였다.
50대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젊은 외모의 그는 항상 ‘헌터가 아니냐’는 의심을 들을 정도로 외모의 변화가 없었다.
진희는 태어나서 줄곧 보아온 얼굴이었으니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진희의 아빠인 ‘서혁’은 명백히 수상했다.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진희의 오감이 그를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하하, 이번에야말로 내 솜씨를 보여줄 시간이군.”
“…….”
저런 바보 같은 면만 없다면 의심이라도 해봤을 텐데. 진희가 작게 웃었다.
서혁이 가져온 음식은 역시나 평범하지 않았다. 고추장 양념을 한 삼겹살은 롤의 형태로, 안에는 고사리와 명태살, 팽이버섯, 다진 양상추 등등이 섞여 있었다.
당연히 고기는 덜 익었고, 명태살은 찰흙처럼 반죽되어 고기를 썰자마자 비린내가 터져 나왔다.
이쯤 되면 그간 번 돈으로 집에 요리사라도 상주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진희는 애써 음식에 시선을 피했다.
“아빠.”
“응? 아니, 일단 먹어보라니까. 이 아빠가 그래도 제법 연구…….”
“아빠가 작가라는 거 거짓말이지?”
“…….”
진희는 신나게 말을 하려던 서혁의 말을 잘랐다.
서혁은 그간 진희에게 그의 직업이 작가라고 말했었다. 어떤 출판물도 그녀에게 보여준 적 없었지만, 서혁이 진희를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진희도 그 사실을 의심한 적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물음은 진희가 처음으로 그의 말을 부정한 셈이 된다.
서혁은 물끄러미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와 똑같은 나른한 눈매의 그가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작가는 맞지만, 그렇지, 진희가 생각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
“무슨 글을 쓰는데?”
“음, 좋지 않은 일을 조사한다거나, 사건의 범인을 찾는다거나, 그런 글.”
“탐정이야?”
“비슷해.”
서혁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정보를 사고판다는 점에선 탐정보다는 흥신소 같은 느낌이겠네.”
“그럼 가장 최근에 판 글이 뭔데?”
“금강 기업의 회장이 언제 죽을지 예상해 달라고 하던 글이려나.”
생각보다 거대한 소재에 진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제 죽는데?”
“돈 낼래? 우리 딸이니까 30퍼센트 할인해 줄게.”
됐어, 진희가 작게 웃으며 거절했다.
“이렇게 대답해 줄 줄 알았다면 빨리 물어볼 걸 그랬네.”
“그래? 아빠는 진희가 물어보면 언제든 대답해 줄 생각이었는데.”
서혁은 진심이었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말해줄 수도 있었잖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모르고 사는 게 제일인 세계거든.”
가볍게 대답했지만 나름 서혁의 마음이 담긴 대답이었다.
“많이 위험한 세계인가 보네.”
“맞아, 진희가 있는 곳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오니까.”
“내 정보가 팔려?”
“원하는 사람은 있지만, 안 팔아. 아무렴 딸 이야기를 남한테 떠벌릴 정도로 철부지는 아니야.”
서혁은 그 말을 끝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식기 전에 얼른 먹자는 그의 말에 진희는 ‘식어도 별반 다르진 않을걸’ 하고 투덜거렸다.
* * *
“헌터들의 개인 정보란 건 굉장히 비싼 편이긴 하지.”
어찌어찌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마무리한 진희에게 서혁이 말을 꺼냈다.
“하물며 요즘 말이 많은 테러리스트와 관련된 헌터라면 더욱.”
서혁은 약초밭에서의 사태를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온갖 기업과 정체불명의 의뢰자들도 당시 ‘상처 없이 테러를 막아낸’ 박준과 진희에 대한 정보를 찾았다.
금강 기업에서 재빨리 조치를 취했지만, 그들도 시영과 박준에 대한 정보를 가릴 뿐 D급 헌터였던 당시 파티장과, C급인 진희를 신경 써주진 않았다.
그때 서혁이 나섰다.
진희의 정보를 C급 헌터 아무개 등으로 소문을 퍼뜨린다던가, 실은 금강 기업의 호위 헌터가 둘이었다 같은 연막용 정보를 뿌렸다. 진희의 본가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시선이 몰리지 않은 이유는 온전히 서혁의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빠도 더 막아줄 수는 없어.”
“알아.”
진희가 2급 던전을 공략했단 사실은 빠르게 보고되었다. 당장 비공식 2급 던전이 존재했다는 사실만 해도 이슈가 크게 일었을 텐데, 그걸 공략까지 했다니.
그녀가 이전에 조건부 던전에서 파티원들이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보고보다, 배는 빠르게 유력자들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서혁이라고 해도 공식적으로 보고된 사실까지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서혁의 말에 진희가 알고 있다며 긍정했다.
“그러려고 한 거니까.”
현성도 그 점을 우려해서 진희에게 충고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희도 슬슬 깨닫고 있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신현성, 이서한과 같은 자들과 활동을 같이했을 때부터 예상하던 바였다.
게다가 어쩌면 2급 던전보다 더 큰 이슈를 낳을지도 모르는 가람 보육원에 대한 존재까지 끼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계속 피하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누군가가 나설 필요가 있었다. 혹시나 가람 보육원에 쏠릴 수 있는 세간의 시선을 돌리고, 아이들의 온전한 기둥이 되어줄 인물이 필요했다.
그 정도는 감수한 바였다. 병아리 기사단, 기사단장이란 우스운 이름을 내건 순간 각오했던 일이었다.
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딸이 엄청 커서 아빠는 참 서글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네.”
“좀 더 칭찬해 봐.”
“우쭈쭈, 과자라도 줄까?”
서혁의 농담에 진희가 손을 휘저었다.
“수제 과자라면 버리고 밖에서 사 온 거라면 먹을게.”
“…….”
은근히 자존심을 긁는 말에 서혁이 혀를 찼다.
“……하여간 몸조심해. 세상에 믿을 만한 사람 얼마 없으니까. 진희는 알아서 잘할 것 같지만, 이제부터 더 위험해질 거야.”
“현성 씨랑 서한 씨는 어때?”
“글쎄, 아빠가 보기엔 도긴개긴이네. 그래도 사사롭게 사람 해치는 인물들은 아니지. 굳이 따지자면 신현성 쪽이 더 위험하려나.”
“……그건 의외네.”
당연히 서한 쪽이 더 경계해야 할 인물이 아닌가 싶었다. 전생의 인연 때문인지, 그녀는 아직도 서한의 일방적인 호의가 익숙하지 않았다. 진희의 물음에 서혁이 음, 하고 말을 골랐다.
“신현성 쪽이 원한이 많다고 해야 하나. 의외로 이서한은 뒤는 켕길 게 별로 없거든.”
“……원한에 대해선 말해줄 수 있어?”
“아는 것만으로도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는데, 알려줘?”
“그럼 됐어.”
진희가 짧게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의 이야기는 본인에게 직접 듣는 걸 좋아하는 진희로서는 더 이상의 대화가 괜한 사건을 불러일으키리라 생각했다.
“가려고?”
“응. 옷 좀 가지러 온 거라서, 바로 나가야 돼.”
“집 좀 자주 들러.”
서혁의 말에 진희가 작게 웃으며 거실을 떠났다.
“다음엔 우리 애들도 좀 데려올게.”
“그럼 그땐 힘내서 더 맛있는 걸 준비해 줄게.”
“그, 그러든가.”
진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방문을 나섰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이내 대문이 열리는 소리도 이어졌다.
서혁은 한참을 거실에서 앉아 있었다. 진희가 나간 문과 허공을 번갈아 보던 그는, 이내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약초밭에서 테러범과 싸우던 검사. 여성. 실력은 A급 이상. 조건부 던전을 공략했으나, 보고된 바는 없음. 최근 2급 던전, 드래곤 공략함. 해당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바람. 보수는 협의 후 결정.
-noname]
“……자아, 너희의 정체는 뭘까?”
서혁조차 알 수 없는 인물에게서 온 의뢰였다. 제법 정확하게 진희의 행보를 추측하고 있었다. 보고된 바가 없는 던전의 출입까지도 알고 있으며,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은 2급 던전 공략에 대한 정보까지 아주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존재라.
너희는 어느 쪽일까.
“진희 편이냐, 아니면 나쁜 아이들이냐.”
서혁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딱, 진희가 나쁜 계획을 떠올렸을 때의 비틀린 웃음이다.
“이만큼 관심이 깊은 아이가 누군지, 한번 파헤쳐 볼까.”
이러니까 이 나이에 첩보원 된 느낌이네. 서혁은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답장을 작성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