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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8화 (38/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8화

용의 날개는 퇴화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당한 게 분명한 상처를 입고 있었다.

카온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너무나도 편의성이 짙은 던전, 입구도 출구도 없는 동굴에서 대체 왜 상처 입은 드래곤이 잠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는 왜 저런 문장을 적은 것인지, 그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불현듯 언어를 깨우친 그때처럼, 불가사의한 힘이 모든 걸 조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개연성을 누군가가 억지로 비틀고 있다. 던전, 게이트라는 마법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을 통해서.

“카온, 잠깐 이리 와봐~”

“……네.”

진희가 자신을 부르자 카온은 미련 없이 드래곤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현대(지구)에 사는 인간 중 이런 편의적인 던전에 대해 깊은 의심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 이미 던전과 게이트가 출몰한 지 20년이 지났으며, 이것들이 주는 혜택은 어마어마했으니 자연스럽게 이목이 흐려진 것이겠지.

마치 선물을 주는 것처럼 던전의 뚜렷한 ‘보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왜 던전에서 지구의 문자가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대체, 이 던전 속 몬스터와 주민들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밝혀낼 수 없으니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

20년이란 긴 시간은 망각을 불러왔고, 망각을 틈타 부와 명예를 노린 인간들의 짧은 안목 덕택에, 결국 이 던전의 의문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카온은 이 모든 의문점과 의심을 진희에게 말하거나 상담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되면, 진희의 전생(前生)이자 카온이 있던 세계의 말로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으니까.

주인을 위해서 거짓말을 품고, 카온은 드래곤을 뒤로했다.

8. 각자의 사정

“진짜 어쩌지?”

“아, 시끄럽네. 적당히 좀 해라.”

한적한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앉은 여성은 뭐가 그리 불안한지 연신 다리를 떨었다. 그 모습에 짜증이 일던 소년은 자리를 한 칸 옮겼다. 안 그래도 좁은 곳에서 다리를 떨어대니 같이 몸이 들썩였다.

후드티를 입은 소년을 흘겨본 여성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너라면 걱정 안 되겠어? 임무도 실패하고, 물건도 뺏기고. 아아아, 짜증 나. 또 반성문 쓰는 거 아닌지 몰라.”

“누가 실수하래?”

“……자기는 임무 성공한 것처럼 말한다?”

“나, 난 어쩔 수 없었다고! 게다가 임무 종류도 달랐잖아!”

여성이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받아치자 소년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단숨에 카페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윽…….”

소년은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허리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코웃음 치며 바라본 여성이,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을 열었다. 떨리는 손으로 차분히 노트북을 열자, 마침 음성 통화 알람이 떠올라 있었다.

대상자 이름은 ‘부단장님’이었다.

“야, 야야. 넌 저번에 실패했을 때 뭐라고 변명했어?”

“……변명 안 했어.”

“거짓말하이 말고. 손목까지 날아간 채로 와 놓고 혼 안 났어?”

“…….”

여성의 말에 소년이 눈을 부릅뜨며 노려봤지만, 고작 그런 것에 기죽을 그녀가 아니었기에 계속해서 대답을 재촉했다.

마음 같아선 이곳을 쑥대밭을 만드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혼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소년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내 임무는 어차피 경고였으니까. 그 정도면 됐다고 하셨어.”

“으으, 나도 그런 임무 받고 싶었는데. 왜 나 혼자 탐색이나 발굴을 맡는 거야.”

“그야 네가 문을 열 수 있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너희한테도 문 여는 아이템 만들어 줬잖아~”

나도 편한 임무 맡고 싶다고~ 다시 다리를 떨며 한탄하는 그녀를 보며 소년이 혀를 찼다.

이런 녀석이 단체의 중요 인물이라니. 호위를 포기하고 다시 본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언제까지고 연락을 미룰 순 없었다. 그녀는 노트북을 조작하여, 전화를 연결했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이어폰을 한쪽은 소년에게 주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귀에 끼웠다.

“아, 여보세요?”

-……네, 들립니다. 오랜만이네요, 두 분 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에요.

“헤헤, 부단장님두요.”

조금 전까지 짜증을 냈던 얼굴은 어디 가고,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소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나요? 일주일 전엔 연락 주실 줄 알았는데.

“아……. 그게요.”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상황을 설명했다. 자신의 입맛대로 사건을 각색해서 실패해야만 했던 이유를 장황히 풀어놓았지만, 전화를 받은 상대는 거두절미하게 이야기를 요약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에게 방해를 당해서 주구(呪具)를 빼앗겼단 말씀이시죠?

“네, 네, 맞아요.”

-그리고 그 사람이 아무래도……. 레인 군을 공격했던 그 검사와 같은 사람인 것 같고요?

“네.”

검사란 단어가 나오자 소년, 레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의식중에 흘러나오는 그의 마력에, 한참 대답을 하던 그녀가 팔꿈치로 레인의 허리를 가격했다.

레인이 윽 하는 소리와 함께 기운을 갈무리했다.

-……신기한 일이네요. 특별한 인연이란 게 정말 있나 보군요.

노트북 너머의 부단장은 감탄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임무 실패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뻤던 여성이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다.

“맞아요, 정말 강하더라고요. 제 문도 거의 깨지기 일보 직전…….”

-근데 왜 바로 도망치지 않으셨어요?

“네, 네?”

-당신에게 전사로서의 기능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연신 말씀드렸는데, 왜 싸우려고 했나요?

“……그, 그게……. 목격자는 없어야 할 것 같아서…….”

-어차피 당신이 맨얼굴로 돌아다닐 일은 없으니, 정체가 들통나도 언제나 도주를 우선시하라고 하지 않았나요?

“……네.”

변명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부단장의 앞에서 그녀는 한없이 고개를 숙였다.

-실망이에요, 마야 씨.

“죄송합니다…….”

-지금 총서(叢書)를 가진 사람은 당신뿐이란 걸 명심하세요. 당신이 이렇게 무리하면, 저희도 다음 사서를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

다음 사서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지금 자신의 능력을 회수해가겠단 말이었다. 그녀, 마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아, 저도 죄송합니다. 이렇게까지 말할 일은 아닌데……. 마야 씨가 다치기까지 했다니 잠깐 화가 난 것 같아요.

“……아니에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마야 씨의 안전은 저희에게도 정말 중요하니까.

부단장의 이야기는 일단락이 되었다. 부단장은 마야에게 반성문 열 장을 지시하고, 레인에겐 이런저런 부가적인 임무를 맡겨주었다. 어려운 일들이 아니라 듣고 대답하던 도중, 레인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혹시, 주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 가져간 주구요?

“네, 되찾아 와야 하지 않나요?”

-그건 괜찮아요.

부단장은 레인의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사용 못 할 겁니다.

“혹시라도 제대로 된 감정이라도 받는 날엔…….”

-받아도 소용없어요. 그건 복사할 수 있는 물건도, 이용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니까.

총서가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 부단장은 단언했다.

-그리고 사용해 준다면 저희야말로 고맙죠. 저희 작전을 방해했던 그 검사란 분이, 굳이 자살하기 위해 지옥문을 여는 셈이니까.

“……그렇게 위험한 건가요?”

그 물건의 정체를 몰랐던 마야가 물어보자 부단장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주 많이요. 반신이 뿌려놓은 악질적인 함정이거든요. 저희가 회수했다면 총서를 이용해서 안을 들여다봤겠지만, 총서가 없는 이들에겐 여는 것만으로도 대참사가 일어날 거예요.

“반신…….”

이름만 들었던 그 흉악한 단어에 마야가 침을 꿀꺽 삼켰다.

-오히려 사용해 줬으면 하네요. 얼마나 큰 참사가 일어날지 제가 다 궁금하니까요.

그래도 설마 생각 없이 그걸 사용해 보는 무식한 사람은 없겠죠.

부단장은 농담 삼아 말하며 쾌활하게 웃었다.

* * *

던전에서 취득한 보물들을 정산하고 보육원으로 돌아왔다. 던전 공략을 성공했다는 업적 등록을 할 거냐는 현성의 물음에, 진희는 태연하게 등록해 달라 전했다.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게 아닐까 싶어 현성이 우려를 드러냈지만, 진희가 지나가듯이 ‘맨날 숨어다닐 수도 없으니까요’라고 말을 하자, 그녀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구나 싶어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언제나 가벼운 태도로 일관하는 진희였지만, 속내까지 그렇진 않다는 건 줄곧 느끼던 바였다.

짐을 정리하는 것에만 반나절이 걸렸다. 서한이 가져온 차량에 금화와 보물들을 옮기고,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각자 치료를 받았다.

그 과정들은 일반인에겐 생소한 장면들이다 보니, 원생들 모두가 와서 구경하게 되었다. 그중 3인방과 청하는 두 눈을 빛냈다.

자신도 언젠가 저런 원정에 참여할 수 있겠지, 기대와 선망이 담긴 눈빛으로 둘러보던 청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구경이라도 가고 싶었는데.”

“아서라, 괜히 다치기만 해.”

민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청하를 나무랐지만, 청하의 눈은 진희와 현성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정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둘은 흙과 잔 상처로 깨끗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모습이 마치 영웅들의 담소처럼 보였다.

선망을 넘어 존경까지 보이는 청하를 지켜보던 종혁이 말했다.

“그럼 어떤 전투였는지 물어볼까?”

“……누님께?”

“그래도 되고, 아니면 다른 사람한테라도 물어보면 되지.”

진희에게 물어보면 분명 대답은 해주겠지만, 히히 웃으며 놀릴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청하는 동행을 넌지시 이야기했다가 병아리는 집 지키라며 놀림당했던 게 떠올랐다.

게다가 딱 봐도 가장 힘들어 보이는 네 명(진희, 서한, 현성, 카온)을 귀찮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민혁의 의아한 눈빛에 종혁이 시영을 가리켰다. 시영은 공원 구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영이도 참가는 했으니까, 어땠을지는 알 거 아니야.”

“……너 쟤한테 잘도 말 건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소라가 새삼 대단하다는 듯 말했다. 소라도 남의 눈치를 살피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금강 기업의 막내에다, ‘그’ 서한의 동생이란 소리에 시영에게 알은체하긴 힘들었다.

게다가 진희를 제외하곤 묘하게 까칠한 대답을 하는 시영은 생일 파티에서도 종혁 말곤 말을 거는 아이가 없었다.

“그래? 그렇게 까다로운 아이는 아닌데.”

종혁이 으차차,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냥 평범한 중학생이야.”

“……C급 헌터인데?”

C급 헌터에 금강 기업 아들이 평범해? 소라가 아리송하단 얼굴로 되묻자 종혁이 허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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