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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7화 (37/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7화

“어?”

그제야 진희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브레스의 열기에 탔는지, 어느새 끝이 타서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와, 진짜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났겠네.’

그녀가 생각하기엔 나름 안전한 공격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녀가 목을 베기 직전에 드래곤의 고개가 아래까지 내려왔던 것 같았다.

“머리 자라야게다.”

“머리가 문제냐!”

머리는 중요하죠, 뇌가 들어 있으니까. 진희는 그렇게 받아치려다, 이내 발음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서한의 팔을 풀고 뺨을 만졌다. 그리고 다시 농담을 해서 서한을 놀리려고 했지만, 서한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넌 진짜 어떻게 된 게……!”

서한이 욕지거리라도 내뱉을 것 같은 얼굴로 말을 흐렸다.

그녀가 드래곤의 아가리 속으로 달려가던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브레스의 각도와 그녀의 속도를 보고 직감적으로 그녀의 시도가 성공했음을 눈치챘지만, 서한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무작정 달리고 있었다.

자신의 무기마저 버리고 달려온 서한답지 않은 당황한 모습에 오히려 진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농담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서한의 표정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던 탓이다.

진희는 슬쩍 서한의 시선을 피해, 다른 일행이 달려오는 것을 어깨 너머로 확인했다.

‘아차.’

그리고 카온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며 다시 눈동자를 다른 쪽으로 굴렸다. 눈빛만으로도 혼나는 기분이다.

눈을 둘 곳이 없었다. 서한은 심각하고 카온은 무섭다. 결국 반대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마침 다른 쪽에서 시영이가 상기된 얼굴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아, 고생했어. 시영아.”

“……!”

서한이 화를 참지 못하던 중 고개를 팩 돌리자, 달려오던 시영이 그의 눈길을 받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상기된 얼굴은 감출 수 없었다.

진희가 예-! 하며 손바닥을 내밀자, 시영은 저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로 받아쳤다.

“……둘이 계획한 거냐, 설마?”

“아뇨? 제가 시킨 건데요?”

괜히 시영에게 불똥이 튈까 진희가 시영을 뒤로 가리며 방긋 웃었다.

만족스러운 싸움을 한 뒤라서 그런지, 진희의 얼굴엔 사심 하나 없는 밝은 미소가 달려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또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아, 서한이 입술을 달싹였다.

“완벽한 콤보였죠?”

“말이라고 지금…….”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이 있는 줄 알았으면, 당신도 시도했을 거 아니에요?”

“그…….”

사실 그건 그랬다. 서한은 계획이 뒤틀리고, 진희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는 게 짜증이 날 뿐이지, 진희의 마지막 타격에 대해선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완벽한 타이밍, 그리고 그에 걸맞은 엄청난 위력이었다. 혹시나 모를 확률의 변수가 있긴 했지만, 진희가 시도한 공격은 과감한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처음부터 말했으면, 더 완벽한 기회를 마련했을 거야.”

브레스를 빗나가게 할 때 드래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뭔가를 더 시도했겠지. 진작 계획을 말해줬다면, 지금처럼 그녀가 목숨을 걸고 공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좀 더 안전한 환경을 마련했겠지.

서한의 말에 진희가 단호하게 반박했다.

“아뇨, 당신은 계획을 듣지도, 수긍하지도 않았을걸요.”

“뭐?”

“당신 시영이 못 믿잖아요?”

“…….”

“믿지도 못하는데, 역할을 나눠줄 리 없지.”

그것 또한 지당한 말이었다. 차마 뭐라고 더 말할 수 없었던 서한은, 진희의 어깨 너머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시영과 눈이 마주쳤다.

“…….”

“…….”

불편한 침묵이었다.

“다음엔 당신 동생 좀 믿어봐요. 제법 유능하던데.”

진희는 시영의 팔을 잡아끌며 서한에게 말했다. ‘보물 찾으러 가자!’ 하며 시영과 카온을 이끄는 진희의 뒷모습을 보며, 서한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진희는 카온과 서한의 불타는 눈길을 피해서, 보물이 있는 방으로 여겨지는 광장의 구석 문으로 향했다. 드래곤이 죽자마자 생긴 그 문은 화려한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시영과 함께 호쾌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진희를 바라보며 윤수가 중얼거렸다.

그는 마침 땅바닥에 주저앉은 현성에게 다가가던 참이었다.

“와, 진짜 C급은 일부러 속여서 딴 거였네요. 저분 곧 A급 업적 올리겠어요.”

“……글쎄, 본인은 급수에 욕심 없는 것 같더라고.”

간만에 주술을 연달아 썼더니 입이 다 아프다. 현성은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급수가 올라간다 해서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건 크게 없었다. 장비 임대를 더 할 수 있다든가 파티 모집의 자유도가 올라간다거나, 신용 등급이 초월한다 등등의 장점은 있지만, 그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단점이 컸다.

상급 헌터가 될수록 내야 하는 세금의 액수는 무시무시할 정도다. B급, A급 헌터들이 간혹 탈세로 구설에 오르는 이유가 있었다.

진희가 그걸 다 감수하면서 승급을 노릴 것 같진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할 이유가 생겼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근데 수정구 감정은 어떻게 됐어?”

“으음, 영감도 잘 모르겠다고 하시던데요.”

“뭐? 영감이?”

영감이란 현성이 자주 물건의 매매나 감정을 맡기는 상인으로, 상위 등급 헌터들에겐 나름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감정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껏 들은 적 없던 현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윤수가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네, 정 안 되겠으면 ‘괴짜’한테라도 가 보라던데요.”

“괴짜?”

“그 있잖아요, 미국에 있다던……. 뭐더라, 삼라만상(森羅萬象) 유물 사용자.”

“아……. 그 사람 말이지.”

온갖 국가에서 수배령이 내려졌음에도 떳떳하게 장사하는 괴짜 상인이 떠올랐다. 현성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듣자 하니 신기한 물건엔 사족을 못 쓰는 성격이라고 하던가.

“뭐, 그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봐서 결정하기로 하자.”

영감이 감정을 못 했다는 이야기는 국내에선 더 이상 해결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진희에게 수정구를 전해주고, 더 확인하고 싶다면 직접 방법을 찾겠지.

“……근데 선배.”

“응?”

이제 슬슬 일어나서 보물이 뭐가 나왔나 확인 좀 해볼까 싶어 일어나던 현성에게 윤수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늙은이들이 알면 가만 안 둘걸요.”

“…….”

누구를 지칭하는 이야기인지는 자명했다.

방위대는 언제나 인력 부족이다. 헌터들의 범죄가 사상 최악 수준이었던 15년 전에 비하면 평화로운 시대였지만, 그럼에도 질서를 지키는 정부 소속 헌터는 부족할 따름이었다.

지금처럼 온갖 헌터 기업이 대성하는 시기에, 언제까지 현성이란 존재가 억제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방위대의 영관들, 상부 측의 인사들은 강한 힘을 가진 신입 헌터를 키우거나 영입하기 위해 꾸준히 애를 썼다.

‘그게 정말 정의를 위해서라면 상관없지만…….’

의도가 순수한 영입 활동이라면 떳떳했겠으나, 현성이 보기에도 그의 상관들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면에는 정부 아래에 무력 조직을 갖추고 싶다는 열망 또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질이 지겨워 실무로 뛰어든 현성에겐 윤수가 말하는 ‘늙은이’란 경멸의 상징과도 같았다.

“진희 씨 정보가 올라가 있어?”

“아직 모를 거예요. 뭐, 늙은이들이 보고한다고 해서 후딱 읽는 타입도 아니고……. 하지만 이번 던전 등록하고 공략했다 하면, 눈길이 모이긴 할걸요?”

“…….”

현성과 서한이 같이 던전을 공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온갖 조직에서 이슈가 될 수준이었다. 그 파티의 일원이자, 중심이었던 진희에게 이목이 쏠리는 건 예상된 바였다.

진희는 어떻게 대응할까. 다시 자신을 은폐해서 이 생활을 이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우선 보고하지 말아봐. 본인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넵.”

나름 같이 있다 보니 정이라도 든 것 같았다. 현성은 한숨을 쉬며 진희가 들어간 방을 향해 걸어갔다.

* * *

거대한 광장 한가운데에 자고 있는 드래곤이란 상황도 뻔한 클리셰이긴 했지만, 드래곤을 죽이고 발견한 보물의 방도 클리셰이긴 마찬가지였다.

방에 들어서자, 서너 평 남짓한 방에 금화와 온갖 장비가 가득 찬 게 보였다.

하지만 조폭들의 보물을 한 번 팔아본 경험이 있던 진희로서는, 저런 불순물 섞인 금화보다는 아티팩트들이 훨씬 고가로 거래된다는 걸 알기에 시큰둥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없었다. 단 하나의 제대로 된 아티팩트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한 거 아냐?”

같이 들어온 시영은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을 살피고 있었지만. 진희는 한눈에 들어오는 아티팩트가 없어 짧게 혀를 찼다.

아무리 살펴봐도 마력을 뿜어내는 물건은 없어 보였다. 혹시 그녀가 들고 있는 검처럼 마력을 집어넣으면 반응하는 물건이 있나 싶었지만, 일부러 마력을 뿜어내도 감지에 걸리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무려 2급 던전의 보상이 고작 금화와 골동품뿐이라니. 진희의 얼굴에 실망감이 어리려 할 때, 보물 상자를 뒤지던 시영이 뭔가를 꺼내 들었다.

“어? 이건 뭐지?”

“……?”

시영은 그것을 들고 진희에게 다가왔다. 작은 보자기로 묶여 있던 그것은, 다름 아닌 수정구였다.

안의 내부가 검은색의 빛으로 뒤덮인,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묵직한 수정구.

진희는 이것을 본 적이 있었다.

“……괜찮은 게 나왔네.”

진희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났다.

조건부 던전, 게이트를 사용하던 테러범이 노렸던 바로 그 수정구가 이곳에서도 발견되었다.

* * *

“…….”

다른 사람들도 보물 방으로 향한 그때, 카온만이 드래곤의 시체 앞에 섰다. 단숨에 목이 잘린 드래곤은 차가운 시체가 되어, 더 이상 피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크게 감흥은 없었다. 용족은 동족애가 뛰어나기보단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했다. 만약 진희가 이 던전을 오지 않겠다 했다면, 타락한 동족의 안식을 위해 카온 혼자서라도 공략하려고 마음먹었을 테지. 그들에게 있어서 동족이란 생사를 몰라도 명예 정도는 지켜주는,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그가 시체를 물끄러미 관찰하고 있는 건 동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인위적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문자를 적었지?’

‘타락한 드래곤을 정복한 자,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라는 문구는 게이트 입구에 적혀 있었다. 헌터들에겐 뻔한 표어지만, 문제는 그 문자가 ‘용언’으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용언을 모르는 사람은 읽을 수 없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걸 적은 이는 용언을 사용할 줄 알던 용족이란 뜻이다.

이곳에 용족은 단 한 마리뿐이다. 지금 눈앞에 죽어 있는 바로 이 ‘타락한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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