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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6화 (36/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6화

“적이 드래곤이라면 분명 이 기술을 쓸 거다.”

서한은 브리핑 때 확신한다는 듯 말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금강 기업의 수많은 레이드 기록이 말해주는, 설득력 있는 이론이었다.

“말을 할 줄 알았다면 언령(용언)이나 마법을 사용했겠지만, 둘 다 불가능하다 했으니. 남은 수는 단 두 개야.”

드래곤 피어(Dragon Fear).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

가장 뻔하지만, 드래곤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두 가지의 비장의 수.

“드래곤 피어도, 브레스도 함부로 난사하지는 못해. 둘 다 압도적인 마력으로 주변을 공격한다는 특성 때문에, 아무리 드래곤이라도 몇 번씩은 못 쓸 기술이지.”

그렇기에 필살기다.

자신의 마력을 하나로 모아 방출하는 행위란, 곧 자신을 약화시킬 수도 있는 악수가 될 수 있었다.

“분명 궁지에 몰리면 피어와 브레스를 쓰려고 들 거야.”

서한은 장담했다. 대부분의 상위 보스 몬스터가 작은 인간을 업신여기는 특성을 가진 이상, 보자마자 필살기를 사용할 리 만무하다.

그들이 필살기를 사용한다는 건 곧 궁지에 몰렸다는 증거다.

“그러니까, 피어와 브레스를 사용하려 할 때가 곧 최고의 기회다.”

마력을 모두 사용한 드래곤이란 그저 거대한 파충류나 다름없다. 드래곤 브레스를 피하거나, 막아냈다면 그때부터 그들의 반격 시간이 시작된다.

긴 시간 동안 서한과 진희, 현성은 브레스를 막아낼 방법을 구상했고, 이내 완벽에 가까운 답들을 찾아냈다.

* * *

“주술!”

“네!”

드래곤 피어의 기운이 느껴지자마자 서한은 현성을 불렀다. 마침 주문을 미리 끝내놓은 현성은, 피어가 발동되기 직전에 주술을 완료할 수 있었다.

“문전신과 굴왕신의 벽 시기에 문 나갈 일 모르니.”

[카아아아아아……!]

“동틀 찰나, 문 닫히고 벽은 사라지리라!”

그가 행한 주문은 일종의 각성 마법(Disenchant).

드래곤 피어의 효과인 ‘강제적 정신충격’을 일순간 막아내는 방어 주술이었다. 긴 철갑의 대문이 카온을 중심으로 펼쳐져 파티를 일순간 보호했다.

동시에 퍼져나가는 드래곤의 마력. 적을 혼란시키기 위하여 비명에 온갖 저주가 담겨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피어는 커다란 문에 막혀 일행을 괴롭히지 못했다.

“윽!”

물론 완벽한 방어는 아니었다. 진희가 사용하는 목소리 속에 마력을 담는 기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귀에 파고들어 뇌를 흔들며 신체까지 무너뜨리는 피어는 문을 뚫고서 파티원들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러나 쓰러질 수준은 아니다.

그들은 아주 잠시 비틀거렸을 뿐, 곧장 일어날 채비를 했다.

[……카앗!]

피어를 씀과 동시에 드래곤은 뒤로 도약했다. 지금껏 한 번도 뒤로 물러난 적 없던 드래곤의 도약에, 서한이 눈을 빛냈다.

단숨에 수십 미터를 멀어져간 드래곤이 그들을 향해 주둥이를 내밀었다.

“브, 레스!”

피어로 경직시키고, 브레스로 마무리한다. 이지가 없는 드래곤치고는 제법 날카로운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엔 이미 대비를 해뒀다.

많고 많은 브레스의 대응 방법 중, 진희가 가장 먼저 말했던 방법이었으니까.

“카오오온!”

“으아아아아!”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서한을 대신해서 진희가 뒤에서 소리 질렀다. 아직 다리가 덜 풀렸지만, 용인 특유의 마력 저항력으로 피어를 이겨낸 카온이 앞으로 돌진했다.

목표는 드래곤의 아가리 바로 아래.

진희의 비명과 같은 소리와 동시에, 드래곤의 입에서 비늘의 색과 같은 노란 불꽃이 일렁인다.

저 압도적인 마력의 브레스는 탱커의 방패든 뭐든 상관없이 모든 걸 녹여내겠지. A급 헌터들도 목숨을 보존할 수 없는, 자연재해와도 같은 파괴력의 재현이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다.

피부가 녹아들어 갈 것만 같은 불꽃의 뜨거움을 느끼며, 카온이 아가리 아래까지 도달했다.

어째서인지 아까 자리보다 훨씬 멀어진 진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려 쳐어어어어어!”

“……!”

카온이 들고 있는 카이트 실드엔 두 가지 기능이 있었다. 마력 보호막을 만드는 능력과.

“하아아앗!”

사용자의 마력을 사용하여, 충격파를 쏘아내는 방출(넉백) 기능.

퍼어엉!

카온은 자신의 마력 회로가 불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지금껏 모아놨던 모든 마력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방패는 카온의 붉은빛 마력에 응하여, 거대한 충격파를 쏘아 올렸다.

바로, 용의 턱 아래에.

[카아아아아아!]

지금 당장에라도 브레스를 내뿜을 것 같던 드래곤의 아가리가, 아래에서 올려친 충격파의 힘으로 인해 천장을 향했다. 턱을 후려 맞은 충격으로 잠시간 경직이 걸리며, 드래곤의 브레스가 허망하게 천장을 향했다.

‘좋아, 이제……!’

서한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전위가 모두 드래곤의 후방을 향해 돌아서서, 다시 고개를 내린 드래곤의 브레스가 자신들을 향하지 못하게 몸을 피하면 그만이었다.

아무리 목이 긴 드래곤이라고 한들 자신의 뒤통수를 향해 브레스를 뱉을 순 없으니까. 그리고 마력을 사용한 드래곤을 지금처럼 압박해 사냥하면 된다.

앞으로는 소모전으로 인한 확실한 승리만이 남았다.

여기까진 모두 계획대로다.

다시금 오더를 내리기 위해 입을 열려던 서한은, 문득 진희가 저 멀리, 드래곤의 반대편으로 달려나가고 있는 것을 보며 잉? 하고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냈다.

“야, 야! 뭐 해! 야!”

“시영아아아아!”

아직도 커다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어느새 시영의 근처까지 달려가고 있는 진희가, 드래곤 피어 때문에 넋이 나가 있던 시영을 불렀다. 거리가 제법 있기에 피어에 크게 당하지 않았던 시영은, 진희의 얼굴을 보며 그제야 ‘제안’에 대해 떠올렸다.

“지, 진짜로?”

“간다!”

“으, 으아아아!”

시영은 저도 모르게 준비해 뒀던 마법을 눈앞에 펼쳤다.

시영이 지금껏 혹시나 모르는 마음에 준비했던 마법은, 다름 아닌 ‘바람 지뢰’.

허공에 발판을 만들어, 그 위에 스프링처럼 엮은 바람 마력의 폭탄을 장착한다. 그 위에 올라간 사람은 튕겨 나감과 동시에 그 충격으로 발목을 잃는다는 흉악한 마법이었다.

마법사가 자신에게 다가서는 적을 멀리 튕겨내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그러나 진희는 그 마법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길 바랐다.

“으�X!”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진희는 곧바로 점프하여, 시영이 만들어뒀던 바람 지뢰에 두 발을 나란히 얹었다.

“나, 나도 몰라! 간다아아!”

카온이 방패에 마력을 올인했던 것처럼, 시영도 자신의 모든 마력을 지뢰에 퍼붓는다. 바람의 스프링이 미친 듯이 공명한다. 어지간한 몬스터도 사지 하나 날아갈 법한 위력의 지뢰에 진희가 다리를 맡겼다.

‘걱정 마, 절대 안 다치니까.’

진희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의 마법에 다칠 일 없으니까, 그저 전력을 다하라고.

전력을 다해서, 날 ‘앞’으로 도약시키라고.

퍼어어엉!

폭발은 추진력이 된다. 카온이 마력을 방출했을 때보다 소리만은 더 거대한 폭발이, 진희의 발아래서 일어났다.

진희는 바람의 마법사가 만들어 낸 최고의 점프대에 올랐다.

마력을 둘둘 두른 발목이 시큰거린다. 그녀의 마력 저항마저도 휘청할 만큼의 위력이었다.

고통은 잠시. 폭발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속도는 급증한다.

“……!”

마치 미사일처럼, 화살처럼 진희의 신체가 앞으로 날아갔다.

한 손엔 대검 츠바이핸더를 들고, 시야가 흔들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마력만을 얼굴에 감싸며, 속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몸을 세워 날아간다.

단숨에 가까워지는 드래곤. 하늘로 올라갔던 드래곤의 아가리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고작 몇 초를 경과하면, 저 아가리 속 브레스에 몸을 처박는 셈이 된다. 추진력이고 뭐고 진희는 그 자리에서 산화하여 죽음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내가 더 빨라.’

진희는 확신한다. 저 드래곤의 아가리가 나한테 내려오기 전에. 노란 불꽃이 담긴 브레스가 자신의 몸을 불태우기 전에.

‘내가 먼저 네 목을 딴다.’

“으라차차아아아!”

드래곤의 목 지척에 다다르자, 진희가 자세를 잡는다.

발판이 없는 허공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쯤이야, 전장에서 등자가 사라진 말을 타는 것보다 쉽다.

비늘이 상처 입어 속살이 보이는 드래곤의 목을 따는 것쯤이야, 전장에서 삼백 명의 기사들을 베어버린 것보다 쉽다!

[카아아아아악!]

“아가리 다물어!”

진희의 대검이 허리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다. 대각선의 선. 빛과 같은 마력을 머금고, 빛과 같은 속도로 쇄도한 검이 단숨에 드래곤의 목으로 향한다.

목표는 정해져 있다. 그녀가 처음 드래곤에게 상처 입혔던 바로 그 지점.

피가 뚝뚝 흐르는, 역린보다도 더한 약점.

[……?]

그리고 기사단장의 검은 용의 목을 쳤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서. 완벽하게 벼려진 마력을 품은 그녀의 검날은, 용의 목을 베어 갈랐다.

그야말로 일섬. 군더더기 없는, 몇십 년을 갈고 닦아 만들어진 완벽한 올려 베기가 수백 년을 살아온 드래곤의 목을 베어냈다.

양분된 드래곤의 목이 떨어진다. 아직 불꽃을 머금고 있던 입은 허망하게 마력을 잃었고, 목구멍에서 치솟아 오르던 마력도 순식간에 흩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쾅!

바닥에 거대한 머리가 떨어질 때까지, 드래곤의 눈엔 아직도 죽음이 실감되지 않았다. 그저 충격에 휩싸인 파충류의 가느다란 동공만이 바닥을 구르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돌린 그곳엔.

“…….”

착지 후, 검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는 진희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지를 상실당했던, 타락할 수밖에 없던 드래곤의 머릿속이 마지막 사고를 끝마쳤다.

저것이, 저자가 바로…….

꺼져가는 드래곤의 눈엔 가죽 갑옷을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진희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회색빛 머리카락의 적색 갑옷을 입은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 * *

“후아! 죽겠다!”

오래간만에 전력을 다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목숨을 위태롭게 한 위기였기도 했다. 얼마만의 식은땀인지, 진희가 검을 허리춤에 꽂고 기지개를 켰다.

무진장 기분 좋았다. 간만에 목숨을 건 사투란 걸 해본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듯한 각성의 기분을 누리며, 진희가 마침 자신에게 다가오는 서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고생했…….”

“야!”

“우업.”

서한이 진희의 양 뺨을 붙잡고 크게 소리쳤다. 드래곤 피어만큼은 아니지만 귀를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진희가 순간 두 눈을 감았다.

“뭐 하는 짓이야, 이게! 어! 계획은 밥 말아 먹었냐!”

“이겨자나요.”

서한이 뺨을 붙잡고 있는 바람에 발음이 잘 안 된다. 진희가 ‘에이,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란 얼굴로 말하자 서한이 더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위험하잖아! 너 지금 브레스에 머리카락 탄 거 안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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