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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5화 (35/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5화

인간은 따라 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다. 호흡 집중 상태가 깨지거나, 움직임이 생기면 안개처럼 모여 있던 보호막이 사라지고 말겠지만, 잠이 들 때 방비론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

서한이 진희에게 눈짓했다. 진희는 대검을 높이 들고 앞으로 나섰다.

단단한 방어막이 있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높은 등급의 마법사가 있다면 시작부터 강력한 마법을 때려 박는 방법이 좋겠지만, 공격 마법엔 소질이 덜한 현성과 전위에 치중된 파티에선 불가능한 방법이다.

결국 가장 공격력이 강한 자가 강한 타격을 입히고 전투를 시작하잔 계획으로 귀결되었다.

“후우.”

간만에 전력을 뽐내는 기회다. 진희의 몸으로 뿜어낼 수 있는 마력의 허용량은 많지 않았지만, 모든 마력을 예리하게 변화시켜 그 힘을 단숨에 폭발시키려 했다.

진희는 허공에 든 대검을 꽉 쥐었다. 대검의 파괴력은 세로 방향으로 내리찍을 때 나온다. 근력, 중력, 그리고 체중을 더한 강력한 한 방이 대검의 존재의의다. 진희도 그 정론에 부정하지 않았다.

대검의 손잡이를 잡고, 어깨 위로 들어 올린다. 마력은 오로지 검에 집중한다. 굳이 마력을 구현할 필요 없이, 검 안에 파괴력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도록.

호흡을 멈추고 집중을 위해 눈을 감은 진희가 현재 운용할 수 있는 마력을 모두 검에 압축시켰다.

“……와.”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영이 입을 벌렸다. 압도적인 마력이었다. 드래곤의 마나 방어벽에 밀리지 않는 힘에, 시영의 눈엔 경외심이 담겼다. 그건 곁에서 보던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전위의 전사들은 차분했다. 서한은 잠시 눈꼬리를 움찔 떨었지만, 이내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다.

진희가 드래곤을 깨울 것은 자명한 사실. 메인 오더이자 탱커인 자신이 할 일 또한 명백하다.

“으�X아아아아아아!”

콰앙!

눈을 뜬 진희가 단숨에 검을 내리찍었다. 요동치는 마력과, 동시에 휘몰아치는 바람에 커다란 소음까지 함께한다. 검을 휘두른 게 아니라 태풍이 떨어진 것 같은 파괴력에 드래곤의 보호막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카아……!]

검의 목적지는 드래곤의 목덜미. 거침없이 보호막을 뚫고 들어간 진희의 검이 드래곤의 목을 내리찍었다.

‘얕아!’

하지만 검은 박히지 않는다. 보호막을 뚫으면서 파괴력이 반절이 된 검이 드래곤의 비늘에 닿아 생채기만을 남겼다.

검이 닿은 비늘 태반이 박살이 나고 안의 살점이 흩날렸지만, 검을 손에 쥐고 있던 진희만은 공격이 치명타가 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탱커!”

그러나 아쉬워할 시간은 없다. 진희가 다시 검을 들고 뒤로 도약했고, 그 자리를 서한과 카온이 메꿨다. 첫 타격은 유효타였으니, 이제 탱커들의 시간이었다.

[카아앗!]

고통에 몸부림치며 드래곤이 고개를 들었다. 그 육중한 체격으로 발을 구르며 고개를 들자, 드래곤의 턱 끝이 까마득한 위치까지 닿았다.

카온과 서한이 앞에 있다 하더라도 드래곤은 그 둘이 아닌, 자신을 공격한 인물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높은 시야 때문에 어그로를 끌기가 어렵다.

시야 앞을 방패나 몸으로 막아서는 일반 몬스터들과 달리 대형 몬스터는 체격이 크기에 시야가 높아, 어그로가 딜러에게 쉽게 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파티엔, 공격적인 마법엔 소질이 없어도 온갖 주술에 능한 현성이 있었다.

“지산국의 안개는 서귀(西歸)를 지나 하이얀(白) 하늘 아래 일(日)과 월(月)을 가려 명백(明白)을 모르리라.”

그의 주술이 끝나자마자, 진희의 모습은 안개와 함께 사라졌다. 공격을 맞거나 움직임이 크면 효과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은신 주술이지만, 이지를 상실한 적에겐 이만큼 좋은 은폐가 방법이 없다.

드래곤은 자신을 공격한 자를 찾지 못해 분하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고, 자신의 눈앞의 적들을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흡!”

카온의 방패가 그 앞을 막아섰다.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탱커 오더인 서한은 분명 ‘말하기 전까진 모든 공격을 앞에서 막아야 한다’고 했다.

방패 주변에 마력을 둘려 피격 범위가 넓어진 카온이 발톱을 막아냈다.

공격은 무겁지만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드래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발을 밀어 넣으려 했으나.

“한 번 더!”

서한의 외침에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속임수다. 창을 들고 자리에서 도약하여 자신의 얼굴을 향해 찔러오는 서한을 드래곤이 기다란 목을 이용해 받아쳐 버렸지만, 그 때문에 안개에서 다시 나타난 진희를 시야에 담지 못했다.

[카아아악!]

진희가 이번에 노린 것은 카온을 밀고 있던 앞발이었다. 마나 보호막이 사라진 이때, 진희의 검은 공격력은 떨어져도 명백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비늘이 떨어져 나가며 앞발의 발목에 피가 낭자했다. 드래곤은 본능적으로 이들 중 한 명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산개애!”

드래곤은 몸을 회전시켜 꼬리로 주변을 모조리 밀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적까지 모두 공격할 셈이었다. 마력이 담긴 비늘과 무게로 인한 공격력은 아무리 전위의 전사라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카온은 방패에 마력을 방출시켜 마치 부스터를 단 것처럼 뒤로 도약했고, 공격 후 뒤로 빠져 있던 진희와 현성 또한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다. 오로지 메인 오더인 서한만이 창을 지렛대 삼아 허공으로 도약했다.

“다시 집중!”

한 번 꼬리를 휘두르고 나면 다시 빈틈이 생긴다. 드래곤의 머리가 앞으로 향하려 할 때, 그의 눈을 향해 도약했던 서한의 창끝이 쇄도한다.

“쳇!”

하지만 빗나갔다. 곧바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드래곤 덕에, 서한은 창을 잡고 낙법을 취한 후 뒤로 굴렀다. 공격이 실패하면 미련 없이 돌아서야 했다.

그리고 진영을 잡는다. 역시나 전방의 카온, 측방에 현성과 서한. 기회를 노리며 은폐한 진희.

드래곤의 눈동자엔 명백한 분노가 차올랐다. 그러나 이들은 아주 침착하게, 다시 한번 드래곤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다.

* * *

“거참 무시무시하네.”

살 떨리는 대치였다. 그들과 50m 이상은 벌어진 위치에서 싸움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압도적인 마력의 충돌에 이가 떨릴 수준이었다. 하물며 B급 헌터인 윤수도 이러는 판국에 C급인 시영은 안색이 새파래질 정도다.

이게 A급들의 싸움이구나 하는 감탄을 중얼거리던 윤수는, 문득 시영을 내려다보았다.

시영에게도 역할이 있었다. 싸움 중간중간에 드래곤의 시야를 흐리게 하기 위해 바람 마법을 사용한단 이야기를 들었다.

“마법 안 써도 돼?”

“……어디다 써야 하는데?”

“어…….”

윤수는 시영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전장을 확인했다. 그가 보기에도 혼란스러웠다. 서한은 뛰다 구르다 도약하고, 현성은 진희가 공격을 한 번 할 때마다 주술을 걸며 뛰어다닌다. 진희에 이르러선 은폐 때문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의 발에 맞춰 드래곤도 움직임이 격렬했다.

저 한복판에 시야를 흐리기 위한 정밀한 마법을 쓰라니, C급 마법사에겐 과한 요구였다. 윤수도 그제야 그걸 깨닫고 머쓱한 표정으로 사과했다.

“쏘리.”

“……됐어.”

결국 시영은 눈 뜨고 레이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서한의 대단한 무력을 앞에 두고서 그저 병풍처럼 서 있기만 해야 하다니. 서한의 말이 옳았다. 이 파티는 결국 전위들이 다 해야 하는 파티였다. C급 마법사인 자신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자신도 돕고 싶었다.

정확히는, 자신도 헌터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시영은 체념 어린 눈빛 속에도 끓어오르는 욕망을 드러내며 싸움을 지켜보았다.

‘알았지?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문득 진희가 말했던 ‘재밌는 계획’이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 *

“진짜 무진장 단단하네!”

“입조심 좀 해요!”

진희가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은 아픔에 혀를 찼다. 그녀가 불평을 내뱉자, 그녀의 은폐를 지키고 있던 현성이 한소리 했다. 네네, 진희가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몸을 뺐다.

승기는 착실히 파티에게 향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몸엔 잔상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고, 진희의 파티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져 갔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던 파티 플레이의 진영이 점점 구색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 가장 손발이 잘 맞는 건 현성과 진희였다.

현성은 전투 중 단 한 번도 유효적인 공격을 하지 않았다. 송곳이 박힌 건틀릿을 착용하고 있지만, 공격 범위가 지나치게 짧은 그가 드래곤에게 다가가 공격하기엔 위험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주력은 신체를 이용한 체술과 뛰어난 주술. 그는 오로지 메인 딜러인 진희를 돕고, 가끔 주술로 드래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에 열중했다.

현성의 헌신적인 서포팅 덕에 현성과 진희의 호흡이 점점 맞아갔다.

“지금!”

“네!”

공격 오더는 진희가 내린다. 서한과 카온이 만들어 낸 틈을 진희가 꿰뚫어 버리면, 곧장 곁에 있던 현성이 주술을 시동하고 드래곤을 향해 방해물을 던진다.

독, 안개, 무형의 창이나 검 등등, 마력 저항력이 높은 드래곤에겐 유효타로 작용되진 않지만 시선을 돌리는 데엔 확실했다.

그녀가 드래곤의 뒤 발톱을 모조리 날려버리자마자 반대편에 있던 현성 또한 주술을 사용하고 뒤로 도약한다.

드래곤이 꼬리를 마구 흔들어 주위 바닥을 파헤치지만, 이미 진희는 다시 전위가 있는 진영 사이로 스며들었다.

카온 또한 단단하게 버텨주고 있었다. 그에게 다가오는 공격을 단 한 번도 흘리지 않고 받아쳤다. 이미 그가 들고 있는 실드는 예전 깔끔한 모습을 찾기 힘들었지만, 카온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굳건히 버텼다.

전사인 그도 탱커 역할을 맡은 게 이번이 처음일 텐데, 그 누구보다 작전을 잘 이해하고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다른 이들에게 공격이 가게 해선 안 된다는 법칙을 완벽히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약 1시간이 지났다. 슬슬 가장 움직임이 많았던 서한의 입에서도 단내가 풍기고, 드래곤이 피가 섞인 가래를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서한은 눈을 빛냈다. 드래곤의 체력은 대단했지만, 파티의 단단함은 그것을 웃돌았다.

진희는 마력이 부족해 검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서한이 보기엔 충분한 공격력이었다. 금강에 있는 어떤 검사를 데려와도 진희처럼 깔끔한 일격을 먹이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상위 몬스터들에겐 언제나 비장의 한 수가 감춰져 있으니까.

[카아아아악!]

그리고 서한의 판단은 정확했다.

“드래곤 피어어어어어!”

궁지에 몰린 드래곤이, 드디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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