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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2화 (32/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2화

청하가 들었으면 고개를 세차게 저었을 말을 중얼거리던 소라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우린 가져가기만 하면 된대.”

“그냥 처음부터 메시지에 예약했으니까 가져오라고 말씀하심 되지 않았을까?”

“……그러게.”

왠지 상상이 간다. 괜히 내가 어디 케이크집에 예약했고 그건 케이크 3개니까 가져오면 된다, 돈은 이미 냈다 같은 긴 글을 적다가 귀찮아서 폰을 꺼버린 진희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리고 챙겨주면서 내색하고 싶지 않아 하는 진희의 성격 또한 새삼 느껴졌다.

진짜 착한 사람이야. 묘하게 얼굴이 붉어진 소라와 민혁을 바라보며 종혁이 중얼거렸다.

* * *

“……이게 뭐지?”

“고깔모자요.”

장비를 챙겨서 보육원을 찾아온 서한은 진희가 내미는 알록달록한 고깔모자를 보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는 진희가 곧바로 던전을 향할 줄 알고, 갖가지 오브를 챙겨 온 참이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어디 던전이라도 들어갈 것 같은 차림새의 서한에게 고깔모자를 건넨 진희가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놀러 온 게 아니야.”

“그냥 병풍처럼 서 계시면 돼요.”

“내가 왜?”

“싫음 가시든가.”

서한의 눈치를 보던 시영은 곁에 있던 종혁에게 고깔모자를 받았다.

“생일 파티해?”

“해?”

“……해요?”

시영의 습관적인 반말에 진희가 말꼬리를 흐리자 곧장 말투를 고친 시영이 고개를 내밀어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온갖 음식들과 커다란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딱 봐도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응, 원래 오늘은 던전 한번 가보려고 했는데, 예정이 하나 생겨서.”

“누…… 나 생일이에요?”

“아니, 쟤들 생일이야.”

진희가 가리킨 곳엔 마침 노란빛의 아기자기한 고깔모자를 쓴 아이들이 식탁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 달에 태어난, 혹은 이곳으로 오게 된 아이는 총 세 명이었다. 아이들은 커다란 생일 케이크를 보며 즐거운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안 들어올 거예요?”

“…….”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싫다는 이야기를 하겠어, 라는 듯 손짓하는 진희를 보며 서한은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그렇지만 대화의 주도권은 진희에게 있는 기분이었다.

“이 모자는 안 써.”

“그럼 폭죽이나 터뜨려요, 노래 끝나면.”

“…….”

평생 누군가의 생일을 위해 폭죽을 터뜨려본 적 없는 그는 묘한 표정으로 폭죽을 받아들었다.

“……평소에 이런 것도 준비해?”

“기분 내키면 하죠.”

진희의 입장은 후원자일 뿐, 행사 하나하나에 준비를 도와야 할 의무는 없었다. 그저 그럴 기분이 들었으니까 참가한 것뿐이다. 진희는 그렇게 말했지만, 뒤에서 음식을 옮기고 있던 민혁과 소라는 서로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괜히 해서 진희의 핀잔을 듣고 싶진 않았다.

“넌 몇 살이야?”

“주, 중학교 2학년…… 이요.”

서한은 방의 구석, 벽을 기대고 섰고 시영은 종혁이 대신 안내해주었다.

“중학생이구나~ 우리 청하보다 형이네. 같이 앉을래?”

종혁은 아이들을 다루는 게 능숙했다. 괜히 보육원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니었다. 서한 때문에 눈치를 보느라 침울해져 있던 시영을 어르고 달래서 청하의 옆자리로 안내했다.

“와 요즘 중학생은 정말 크네. 키 어느 정도야? 170?”

“네……. 171이에요.”

“부럽다, 형은 중3 때 멈췄거든.”

그리고 어색하지 않게 옆자리에 앉았다. 딱 서한의 시선을 막아서는 위치에 앉았기에 시영은 자연스럽게 종혁과 대화할 수 있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는데 저렇게 알아서 시영을 배려해 줄 줄이야, 텔레파시 말고 속마음을 읽는 능력이라도 있는 거 아냐? 진희가 작게 감탄하며 종혁을 바라보았다.

“오셨군요.”

“……너도냐.”

“아니, 뭐. 파티를 싫어하지 않아서요. 잘 어울리죠?”

현성이 웃으면서 서한에게 다가갔다. 현성의 얼굴엔 캐리커처화 된 귀여운 여우 가면이 걸려 있었다. 마치 동물 농장 만화에나 나올 법한 가면을 보며 서한이 헛웃음을 지었다.

저 모습을 금강의 늙은이들에게 보여준다면 어떤 반응일까. 비웃을까, 아니면 너무 놀라서 굳어버릴까. 무조건 후자일 것이라 생각한 서한은, 문득 현성의 뒤편에서 아이들을 안내하고 있는 사내를 보며 헉하고 숨을 삼켰다.

“카온 형! 나 목마! 목마!”

“천장 때문에 위험해.”

“오빠아아아아! 콜라아아아아아!”

“한 명당 두 컵이라고 했다.”

“이거 봐라! 이 종아리 닭다리랑 똑같이 생겼어!”

“맞는다.”

“아하하하하!”

가장 거대한 덩치인 카온이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언뜻 보면 훈훈한 장면이었으나, 카온이 입고 있는 옷에 서한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카온은 귀여운 고릴라 인형 탈을 입고 있었다.

문제는 인형 탈이 몸 전체를 가리는 게 아니라, 팔뚝과 배에 풍선 같은 근육이 주렁주렁 달린 우스꽝스러운 인형 탈이었다는 점이었다. 카온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떼어내고, 자리에 억지로 앉혔다. 그의 볼엔 오랑우탄의 검은 털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카온은 문득 서한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서한과 눈을 마주치자, 순간 적을 보는 것처럼 눈을 부라리더니 이내 혀를 차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음식을 들고 오기 위해 걸어가는 그의(노란색 근육탈이 붙어 있는) 등을 보며 서한이 중얼거렸다.

“……저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세상사는 거, 참 힘들어요, 그죠?”

현성은 아이가 준 사탕 막대를 입에 물며 태연하게 상석에 앉은 진희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어른 중 평상복을 입은 건 그녀뿐이었다.

“아, 그런데 윤수는 어디 갔습니까?”

“네가 맡겼다는 물건 감정하러 갔다.”

“맞다, 그랬죠. 그럼 내일까지 오려나.”

그때 진희가 상석 안쪽에 생일인 아이들을 앉히고는 현성에게 손짓했다. 이제 그만 자리에 앉으란 그녀의 말에 ‘갑니다~’ 하며 한숨을 내쉰 현성이 아이들 사이에 앉았다.

“여우 아저씨다!”

“……응, 그래. 아저씨야.”

어느새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한 현성을 보며 홀로 남겨진 서한이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에도 종이로 만들어진 알록달록한 끈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그럼에도 단호하게 나갈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묘하게 슬펐다. 이미 뱉은 말도 있는 상황이었다.

“저 아저씨는 왜 혼자 저래? 무슨 외로운 늑대야?”

“야, 적당히 모르는 척해줘. 눈치가 있어야지.”

“아, 그렇네.”

벽에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는 서한은 귀를 막고 싶은 기분이었다. 신체 능력이 쓸데없이 좋은 그의 귀는 중학생 아이들의 날이 선 말을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 이제 와서 팔을 풀고 자리에 앉는 것도 우스웠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짐하던 그는 20분 후,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폭죽을 터뜨리게 된다. 물론 노래도 따라 불렀다.

* * *

“2급 던전 도전할 거예요.”

“뭐?”

파티가 끝나고, 진희는 일행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모인 건 시영과 서한, 진희와 현성, 마지막으로 카온이었다.

“윤수 씨는 감정하러 갔다고 했죠?”

“네.”

“내일이면 오나요?”

“빠르면 그렇겠죠?”

진희는 테러범을 만났던 던전에서 얻은 정체불명의 수정구를 현성에게 맡겼었다. 근방의 감정가들에게 감정을 맡겼으나 당최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단 대답만 돌아와, 결국 현성에게 맡기게 된 것이다.

현성의 후배이자 시영을 보호하고 있던 나윤수는, 서한과 시영이 보육원에 도착하자마자 감정을 위해 본부로 돌아갔다.

무면허 감정가들보다야 정부 소속의 사람들이 믿을 만하겠지. 하나하나 의심하기 귀찮은 진희는 걱정을 접기로 했다.

진희가 책상 위에 앉은 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우선 서한과 현성이 진희의 힘과 비슷하다고 본다면, 이 파티엔 A급 이상의 헌터가 셋 있는 셈이다. 또한 카온의 무력도 서한과 현성에 비해 크게 달리는 수준은 아니었다.

여기에 B급 나윤수, C급 마법사 시영을 포함한다면, 2급 던전에 도전할 만한 전력이라고 볼 수 있었다. 2급 던전의 평균 도전자들 등급은 B급 상위부터 A급 하위였으니까.

하지만 이론상 그렇단 이야기지, 2급 던전이 만만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너 2급 던전 가본 적 있어?”

“아뇨, 없어요.”

“…….”

서한이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2급 던전부터는 던전의 성격이 아예 뒤바뀐다. 점령전, 대장전, 미궁 등, 온갖 공략법이 혼재하다 보니 어지간한 중견 파티도 대대적인 조사를 한 다음 입장해야 하는 등급이다.

그런데 이곳엔 초행인 헌터가 무려 3명이다. 진희야 그렇다 해도, 서한의 입장에선 카온과 시영을 전력으로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건 현성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도 괜찮아요. 눈여겨본 미등록 2급 던전이 있거든요.”

“……신림에 2급 던전이 있다고요? 그것도 미등록?”

정부 소속인 현성이 입을 떡 벌렸다. 2급 던전이면 클리어 소식만으로도 인터넷 기사가 뜨는 수준의 던전이다. 그런데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2급 던전이 이런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니, 그로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네,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해 봤어요.”

수정구를 감정받기 위해 신림 골목을 뒤지던 때였다. 진희가 한참 어디 던전을 탐험해 볼까 찾던 중, 카온이 까마귀파에게 습격당했던 던전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덕택이다.

“혼자서요? 괜찮았습니까?”

“네.”

현성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진희는 걱정 말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곳의 맵은 단순했어요. 거대한 광장이 하나, 그리고 출구가 하나. 몬스터는 단 한 마리. 잠자고 있어서 바로 나오긴 했지만, 그 던전의 종류는 유추할 수 있었어요. ‘레이드’형 던전이었어요.”

진희가 흘끔 카온을 바라보았다. 카온은 두 눈을 감고 가만히 문가에 기대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레이드형? 그럼 보스는 어떤 놈이지?”

“몬스터 네임은 날개를 잃은 드래곤.”

카온이 용의 냄새를 맡아 도움을 요청하러 들어갔으나, 오히려 반격당해 빈사 상태가 되어버렸다던 상대.

카온은 그곳에 적힌 용언을 해석할 줄 알았다.

[타락한 드래곤을 정복한 자, 보물을 얻게 될 것이다.]

“이번 첫 원정의 목표는 바로 드래곤 사냥입니다.”

진희는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 웃었다.

“전 반대입니다.”

현성은 반대했고.

“그건 할 만하군.”

서한은 동의했다.

“한 마리뿐이었어?”

“네. 날개는 찢어져서 못 날아요.”

“흠.”

날개 유무는 중요하다. 날개가 달렸을 땐 마법사 혹은 궁수들의 필요도가 올라가니까.

하지만 날개가 찢어진 드래곤이고, 싸우는 장소가 거대한 공터라면 전위가 많은 현 파티도 승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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