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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31화 (31/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31화

“…….”

소라는 어처구니가 없단 표정이었지만 진희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냐고? 내가 더 묻고 싶은데. 소라 넌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훈련하던 것 아니었어?”

“…….”

진희가 한 발자국 다가갔다. 전등의 아래에서 한 발자국 멀어질수록, 소라가 있는 어두운 바닥으로 다가가게 된다.

“모를 수가 없지. 누가 팔굽혀펴기하는데 그렇게 살벌한 얼굴을 해? 그리고 사람을 단숨에 죽일 수 있는 무기를 연구하고 있겠어?”

“……다, 알고 계셨나요?”

“아니, 아무것도 몰라. 네가 강해지고 싶은 이유만 추측하는 정도지.”

“……저는 복수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럴 것 같아. 그래서 기회를 주는 거야. 그 복수를 잘 끝낼 수 있게. 이렇게 친절한 스승님이 어디 있어? 날 한번 찔러보라니까?”

진희는 양팔을 벌리며 말했고, 소라는 걷잡을 수 없는 식은땀을 닦을 생각조차 못 했다.

공기가 조여 들어간다. 차갑고 따가운 공기와 어둠이 소라의 목을 조르는 듯했다. 진희의 기세인지, 혹은 마력인지 소라는 알 수 없었다. 이 불가사의한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 소라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진희가 한 걸음 더 걸어왔다. 전등을 등지기 시작해 진희의 얼굴엔 짙은 음영이 졌다.

“전…….”

“무섭니?”

“…….”

덜그럭거리며 소라의 손이 어깨 위로 올라갔다. 진희가 알려준 역수 잡이이다.

“그 사람이 싫지?”

“…….”

“죽이고 싶고, 눈앞에서 꺼졌으면 좋겠고, 날 상처 입힌 걸 되돌려 주고 싶어?”

“이…….”

주변이 암전했다. 진희의 농밀한 마력은 순식간에 공원을 뒤덮었다. 초승달과 전등의 빛은 분명 존재하는데, 진희의 음영 진 얼굴에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

마력을 품은 진희의 목소리가 귀에 틀어박혔다.

“단 한 번만 휘두르면, 그 모든 고통이 끝나겠지?”

“기억이 사라졌으면 좋겠니?”

“그 사람만 없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네가 죽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너를 죽인다면 다 해결될 거야.”

천천히 소라의 팔이 내려갔다.

진희의 말대로. 배운 그대로.

오른손 손아귀에 단검을 역수로 쥐고, 왼손은 오른손에 힘을 더해주며, 체중을 실으면서 내려친다. 목표는 심장, 비스듬한 방향으로.

단검은 범위가 짧으니까 단숨에 찔러야 한다. 실패하면 도망쳐야 한다. 죽이려면 한 번에 죽이자.

“그래서.”

그 남자의 목은 유독 가늘었다. 심장이 왼쪽 가슴께에 있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단검의 형태는 송곳이기에, 갈비뼈 사이에 찔러 넣는 게 중요했다. 한 번만 찌르면 모든 일이 끝난다.

그간 길었던 악몽과 죄책감도 한순간에 씻겨나가길 바란다.

“많이 무섭지?”

짜악-!

“……하악!”

한순간에 모든 어둠이 걷혔다.

소라의 검은 진희의 가슴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진희는 그 검을 막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크게 손뼉을 쳤다. 어느새 붕대를 벗었는지, 양 손바닥에서 나온 맑은 소리가 소라를 제정신으로 되돌렸다.

소라는 울고 있었다.

“어때? 처음 검을 써보니까. 어떤 기분이야?”

“저, 전…….”

소라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단검을 떨어뜨렸다. 어찌나 강하게 쥐었는지 손아귀는 새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긴장으로 인해 쓰러질 것 같았던 소라의 양팔을 진희가 붙잡았다.

“무섭지?”

“…….”

“사람을 죽인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진희는 웃으며 말했으나, 소라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진희의 말과 마력, 살기에 의해 소라는 잠시나마 그 남자와 단둘이 있는 환상을 보았다.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최면처럼 소라를 옥죄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복수를 바랐던 자신은 사람을 죽이겠단 결심이 조금도 서지 않았단 사실을.

소라를 반듯이 세운 진희가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다시 들었다. 그것을 검집이 매달려 있던 허리춤으로 회수했다.

“소라야, 네가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알겠어.”

진희는 소라가 아예 검조차 못 들 줄 알았다. 소라가 보통의 학생처럼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면, 누군가에게 진검을 들이민다는 상황이 부담스러워 진작 검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라는 진희의 말과 마력을 뚫고 검을 들었다.

이 아이가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조금은 예상이 되었다. 싸움이라곤 모르던 고등학생이 사람을 죽이고 싶어 검을 들었고, 부담과 죄책감을 자극시키는 환경을 뚫고 사람을 찌를 뻔했다.

진희도, 바제트도 그럴 때가 있었다. 이성을 잃고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검을 들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바제트는 ‘과하게’ 재능이 많았으니까. 말려주거나 충고를 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녀는 너무 빠르게 강해졌고, 그 덕택에 누구보다 많은 업적을 쌓았다.

피로 물든 손을 걱정할 겨를도 없었고 후회로 밤을 지새울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전쟁은 아이를 빠르게 전사로 만들었고, 전사는 감투를 쓰고 기사단장이 되었다.

과했고, 급했다.

진희는 그 과정을 소라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소라에게 준비되지 않은 복수의 후유증을 말해 줘봤자, 소라는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실전이 때론 확실한 법이다.

“그 사람을 죽이고 싶다면 도와줄게.”

복수를 하겠다고 사람을 해쳐선 안 돼, 그런 선한 사람의 말은 해줄 수 없었다. 그런 말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선인이겠지. 산산이 조각난 접시를 고칠 수 없듯, 복수를 꿈꿀 만큼 상처 입은 사람의 심정을 되돌릴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준비도 안 된 네가 앞서 나가는 건 반대야.”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 단검은 내가 가지고 있을게.”

진희는 허리춤을 가리켰다.

“네가 정말 준비가 되고, 마음이 정리되면 말해. 그땐 이 단검을 돌려줄게.”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도요?”

“난 착한 사람은 전혀 아니거든.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인생보다 소라가 더 중요해.”

소라의 눈가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치 민혁에게 했던 것처럼 장난스럽게 손바닥을 문댔다. 하여간 귀여운 것들. 자신이 정말 진희를 향해 검을 들었단 사실에 죄책감이 어리기 시작한 소라의 눈을 억지로 감게 만들었다.

소라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진희는 조금은 눈치챘다.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지, 죄책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어렸다. 복수라는 큰 감정을 혼자 감내하기엔 너무나 어리고 미숙했다. 그 무거운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바제트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바랐던 것처럼.

“도움이 필요하면 직접 와서 말해.”

“……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시도하지 마. 더 다칠 수도 있으니까.”

“…….”

“그리고 네 친구들 좀 믿어봐. 민혁이도 종혁이도 걱정하더라.”

“……으.”

소라가 진희의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눈물 좀 그만 흘리라고 닦아줬더니 또 울면 어쩌니.”

피식 웃던 진희가 으이구 하며 타박 어린 말을 내뱉었다.

7. 기사와 용

진희는 곧잘 김민혁, 정종혁, 장소라를 ‘3인방’이라고 말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내 아이들도 그게 진희 나름의 친근한 표현이란 걸 깨달았다.

3인방은 같은 학교에 다녔다. 덕분에 하교를 같이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한참 보육원이 힘들 때는 서로가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같이하지 못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지금은 자연스럽게 하교 후 합류했다.

평소의 대화는 종혁이 이끌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던 민혁과 소라에 비해서 종혁은 매일 다른 이야깃거리를 들고 왔다. 어느 선생님 숙제가 어렵다거나, 오늘 저녁에 반찬이 뭐가 나온다든가, 동생 중 누가 사고를 쳤다 등등, 종혁이 말을 하면 소라와 민혁이 짧게 대답하는 방식의 대화가 잦았다.

그런데 오늘은 드물게 소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희 언니는 왜 승급을 안 하시려는 걸까?”

“응?”

소라의 말에 종혁이 고개를 기울였다. 팔짱을 낀 소라는 진지한 얼굴로 종혁에게 말했다.

“그렇잖아. C급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언니는 더 강하잖아?”

“그, 글쎄?”

“역시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거겠지?”

“그럴까?”

소라의 말에 종혁이 진희가 낮잠 자던 모습을 떠올렸다. 진희와 자주 대화를 해봤던 종혁이 생각하기에, 그녀가 C급에서 멈춰 있는 이유는 귀찮음 말고는 없을 듯했다. 현성에게 듣자 하니 등급 상승을 위해선 마나 감응력 측정이나 업적 공개 등등의 조건이 필요했다.

그리고 진희는 그런 일을 위해서 돌아다닐 만큼 꾸준한 성격은 결코 아니었다.

종혁은 아직도 3인방의 첫 던전 입장을 위해 ‘헌터 면허증 어디서 훔쳐서 쓰면 안 되나’ 하고 중얼거리던 진희를 잊지 못했다.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또 어물쩍 넘기실 거 같아.”

“……그건 그렇지.”

진희는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질문에 대해선 철저히 벽을 쳤다. 진희가 농담으로 대답한다고,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진희는 대화 중의 작은 화제를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민혁은 알고 있었다.

“아, 누님이 케이크 가져오래.”

“응? 왜?”

“오늘 생일 파티하잖아.”

민혁이 핸드폰 액정화면을 소라와 종혁에게 보여주었다. 진희가 보낸 문자 메시지엔 케이크 3개를 가져오라는 글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보육원에선 매달 말일, 그 달에 생일을 맞이한 아이들을 위해 생일 파티를 연다. 그간엔 자금 사정이나 분위기 때문에 열지 못했던 것을 이번 달부터 개시하기로 했는데, 진희에게도 지나가듯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신경 정말 많이 써주시네.”

안 그런 척하면서 챙길 건 다 챙긴다. 진희에게 직접 생일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어, 선생님께 전화다.”

마침 은정에게 전화가 온 소라가 발걸음을 멈췄다. 근처 프랜차이즈 케이크점으로 갈까? 종혁과 민혁이 길을 돌아서려 하자, 소라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네, 선생님.”

-응, 소라야. 거기 문방구 옆에 개인 빵집 있잖아. 거기 케이크 예약해 뒀으니까 찾아올래? 오늘 파티하잖아.

“아, 진희 언니가 사 오라고 해서 케이크 사 가려고 했는데, 그걸로 살까요?”

-어머, 너한테도 얘기가 갔니? 사려고 하신 케이크가 개인 빵집에 주문되어 있대.

“……네?”

민혁의 폰으로 갔던 메시지는 ‘케이크 가져와. 3호 3개’ 였다.

“……설마 예약해 두신 거야?”

‘뭐지 이 언니, 천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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