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29화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진희의 신체는 일반인 수준이다. 근력 또한 대단치 않았고, 빠르기는 비할 바가 아니다. 현성이 진희의 움직임을 모조리 감지하고 있음에도 거침없이 현성에게 파고들었다.
‘가슴.’
왼팔을 쓰지 않는 진희의 오른 주먹이 그대로 현성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온다. 그는 차분하게 왼팔로 그녀의 오른팔을 쳐내고, 목을 잡기 위해 오른손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진희는 오른팔이 튕겨 나가자 그 힘으로 온몸을 비틀며, 그대로 뒤돌려 차기를 날렸다. 마치 현성의 힘을 동력 삼아 말끔하게 받아친 발차기에, 현성은 바로 오른쪽 다리를 접어 들어 종아리로 공격을 막았다.
‘……단단하네.’
확실히 마력을 안 쓰니 위력이 안 나온다. 마치 철근처럼 단단한 현성의 종아리를 느끼며 그녀가 혀를 차며 뒤로 물러섰다. 공방의 교환은 수지가 맞지 않았다. 하려면 영격을 노려야 했다.
진희의 공격 실패로 결국 턴은 넘어갔다. 공격 후 빈틈이 보인 진희를 향해 이번엔 현성이 다가왔다. 현성과 진희의 압도적인 신장 차이는 곧 팔 길이의 차이로 나타난다. 진희가 한 걸음 뒷걸음질 치더라도, 현성의 손아귀 영역엔 벗어나지 못한다.
또다시 목을 향해 덮쳐오는 현성의 손아귀에 그녀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이것이 악수라는 걸 깨달았다.
현성은 양손을 모두 다룰 줄 알았다.
허리를 숙이자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반대편 주먹이 아래서부터 찔러온다.
확실히 특이한 체술이다. 허리에 축을 뒀다면 양손 동시 공격은 그 위력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인데, 현성은 한쪽 다리를 바닥에 굳건히 지탱하여, 신체를 짐승처럼 몸을 앞으로 쏘아냈다.
이건 못 피하겠는데? 인정사정없이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보며 진희가 순간 몸을 뒤틀었다.
“……!”
용병들에게 배운 기습기, 하늘 뒤집기.
‘뭐야!’
현성은 진희의 기행에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허리를 숙여 첫 번째 공격을 피하려던 진희에게 유효타를 먹일 찬스였다. 그래서 바로 준비해 뒀던 왼 주먹을 날렸던 것인데, 진희는 곧장 바닥을 박차며 몸을 가로로 회전시켰다.
마치 고양이가 낙법을 취하듯, 온몸을 비틀며 땅을 박찬 그녀의 몸은 바닥에 닿기 직전이다.
회피는 곧 공격으로 이어진다.
팽이처럼 몸을 비튼 그녀가 또다시 그 회전력을 이용해 공격해 온다. 이번엔 주먹이 아닌, 오른쪽 팔꿈치를 이용한 엘보 어택.
그러나 진희와 현성의 신장 차이는 압도적이다. 그녀가 팔꿈치를 들어봤자 현성의 상체엔 닿지 않는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몸을 비틀며 그녀는 사용하지 않던 왼팔을 현성의 팔에 휘감았다.
마침 정권을 내지르기 위해 낮은 자세에서 찔러왔던 주먹이, 그대로 그녀의 품 안에 빨려 들어간다. 나무늘보가 나뭇가지를 품듯, 그 이상한 자세는 단숨에 현성의 자세를 무너뜨렸다.
진희가 바닥에서 팔을 당기며 몸을 비튼 덕택에 현성의 상체가 균형을 잃고 아래로 끌려온다. 양손을 동시에 사용하기 위해서 다리를 축으로 삼았기에 당겨지는 힘엔 속수무책으로 끌려왔다.
근력 차이가 나니까 관성과 무게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진희의 체중을 더한 잡기가 그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동시에 팔에 장착된 톤파가 그 길이를 이용해 턱을 후려갈겼다.
“큭!”
한 대 맞은 현성이 왼팔을 빼며 반격을 하기 전에, 진희는 그대로 바닥을 굴러 뒤로 물러섰다.
모든 공격과 반격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은 신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수 초 만에 공격과 반격이 번갈아 일어남에 현성의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조금만 더 정타로 들어왔으면 턱을 맞아 단숨에 기절할 뻔했다. 현성은 삐걱거리는 턱을 매만지며 진희를 노려보았고, 진희는 간만에 얼굴에 주먹 맞을 뻔했다며 빙긋 웃었다.
“제법이시군요.”
“현성 씨도요.”
아무리 마력을 못 쓰는 일반인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대련에서 그녀가 먼저 기술을 사용하게 될 줄이야. 자신의 기술이 퇴화된 건지, 아니면 그만큼 현성이 강한 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짐작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현성의 체술이 탁월했단 뜻이다.
“왼팔 안 쓴다면서요?”
“제가요? 그랬나요?”
“네, 그 거짓말 덕택에 한 대 맞았군요.”
“왼팔 안 썼으면 이겼을 거란 태도네요?”
“말해 뭐합니까?”
“양팔 다 쓰는 사람이 쪼잔하게 그러지 말아요.”
“단장님이란 사람이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게 더 문제인 것 같군요.”
하여간 입으로는 안 진다니까.
진희와 현성은 웃음을 머금은 채 대화를 건넸고, 서로의 말이 없어짐과 동시에.
“핫!”
곧장 대련이 다시 시작되었다.
* * *
진희와 현성의 대련은 결국 무승부로 마무리 지었다. 정확히는 현성이 조금 봐준 감이 없지 않았다. 서로 유효타를 두 대씩 먹이는 순간 승부를 마무리 짓기로 결정되었지만, 시비를 따지자면 보다 치명적인 부위를 당한 진희가 판정패를 당한 게 맞았다.
진희가 자기가 졌다고 얘기하려는 순간, 현성은 ‘왼손 못 쓰고 검 안 든 검사한테 판정승했다는 게 자랑입니까?’라며 이를 갈고 퇴장했다.
아깝다, 자기가 이겼다고 자랑했다면 검 들고 한 판 더 하자고 놀렸을 텐데.
대련이 끝나고 나서 현성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노려)보는 카온을 돌려보내고, 진희는 씻기 위해 샤워실로 향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대련을 하니 몸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내일이면 시영과 서한도 슬슬 찾아올 텐데, 그 싸가지 없는 양반도 대련해서 몇 대 때려 놓는 게 좋지 않을까.
과거 상관의 얼굴을 한 사람을 놀린다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을 것 같았다.
현성에게 맞은 어깨와 명치를 번갈아 쓰다듬으며 걸어가던 진희는, 문득 복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짧은 상고머리를 한 청년, 고등학생 3인방 중 하나인 김민혁이었다. 민혁은 복도에서 등을 기대고 서 있다가 이내 진희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응? 어.”
진희는 민혁과 사사로운 대화를 나눠본 적이 거의 없었다. 다른 3인방 중 사교성이 좋은 종혁과는 곧잘 대화를 했지만, 훈련에 열중하는 소라나 평소에 말이 없는 민혁과는 두세 마디 이상 말을 나눈 적이 드물었다. 대부분이 의무적이거나 훈련에 관련된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뜬금없이 기다리던 민혁을 보며 진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딱 봐도 뭔가 할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 가던 길을 멈추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무슨 말 하려고 기다린 거야?”
“…….”
민혁은 무언가를 말하려고 연신 우물쭈물했다. 말솜씨가 좋지 않은 그는 어떻게 말해야 정중하게 들릴지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민혁의 사과에 진희가 되물었다.
“……소라 때문에요.”
“아~”
“헌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훈련까지 봐주시는데 소라가 실수로 버릇없게 얘기한 것 같습니다. 소라도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진희가 가만히 민혁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성인도 안 된 아이 입에서 정중한 사과가 나온 것도 좀 놀라웠지만, 굳이 이렇게 찾아와 소라의 입장을 대변하는 민혁도 새삼스러웠다.
“일단 고개 들어.”
“…….”
“그렇게 화나진 않았어. 치기야 그 나이대는 충분히 부릴 수 있는 거고.”
수많은 스콰이어를 부려본 그녀의 입장에선 애교나 다름없었다. 선임 기사만 없으면 자기가 진급할 수 있다고 믿은 5년 차 스콰이어가 선임 발목을 분질러 버리는 사건도 종종 있던 세계였다. 소라의 짜증 정도야 듣고 넘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과거의 진희였다면 명령 불복종이나 하극상 비슷한 죄로 연병장 열 바퀴를 오리걸음으로 뛰라고 시켰겠지만. 지금은 현대였고, 그간 보육원에서 무시당하며 커온 아이들의 열망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근데 말 나온 김에 좀 물어보자. 소라 걔 무슨 생각이야?”
“어떤……?”
“걔 누구 죽일 작정이야?”
“……!”
민혁의 표정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그래, 그럼 그렇지.’
아무리 말투가 어른스러워도 표정 갈무리하는 건 애나 다름없다. 진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희는 소라의 눈에서 계속해서 적개심, 그리고 증오를 느꼈다. 처음엔 이방인인 자신을 향한 것인가 싶었는데, 이윽고 그게 보육원엔 없는 타인을 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소라는 진희에게 경계심이 있을망정, 그녀의 말에 거부감을 표한 적은 없었다. 당장 방금 수련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거절당하자 화는 났지만,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소라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선’을 넘은 적이 없었다. 만약 넘었다면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하려는 진희가 쓴소리를 더 했겠지.
평소 말이 날카로워서 그렇지, 수련에 대해선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다. 야밤중에 ‘아령을 드는 게 근력이 강해지나요, 아니면 펀치를 많이 해야 효율이 좋나요’ 같은 걸 진지하게 물으러 올 정도였으니까.
계속되는 훈련의 양상을 보며, 진희는 소라에게 ‘강해지겠다’는 목표 이외의 다른 게 있으리라 짐작했다. 구체적으론, 눈에 보이는 증오심을 바탕으로 누굴 해하겠다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우선 보육원 내의 인물은 당연히 아니었다. 소라는 군기반장이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언니였고, 선생님인 은정 앞에선 사랑스러운 자식과도 같았으니까.
이윽고 진희는 저 강해지려는 이유가 나 자신을 인정받겠다, 보육원의 모두를 지키겠다 같은 목표뿐 아니라 다른 게 섞여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방금 민혁의 얼굴을 보고 확실시되었다.
“…….”
민혁은 소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는 얼굴이었다.
진희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히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는 무상으로 자신들을 구해준 (과장 좀 보태서) 구원자나 다름없었고, 지금에 이르러선 스승의 입장이었다.
그녀라면 알 자격이 있지 않을까? 소라가 지금껏 감춰왔던 진실을? 민혁이 결국 다짐을 하며 입을 열려고 할 때, 진희가 입가에 검지를 올렸다.
“아냐, 그냥 안 들을래.”
“……예?”
“대충 보니까 되게 민감한 내용인가 봐. 말하는 게 그렇게 꺼려지는 걸 보니까.”
진희는 자신의 위치, 신분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사단장으로서 강제적인 명령을 내릴 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게 반복되어 만들어진 마모된 충성은 전장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간의 역할을 나누는 건 필요하지만, 단장이 부하를 신뢰하듯 부하도 단장을 의지해야 한다. 고전적인 말이지만 검을 휘두르는 전장의 백정들을 기사로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민혁은 지금 진희를 믿고 있어서 털어놓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진희의 위치에 눌려 억지로 말을 쏟아 내려 할 뿐이었다. 물론 ‘진희가 대신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겠지.
그런 의도라면 진희는 조금도 달갑지 않았다.
후원자라고 아이들의 비밀을 알아야 하는 권리는 없다. 동시에 그녀는 부탁받지 않은 일을 먼저 처리해 줄 정도로 호인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