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28화
“수련 더 안 해도 돼요?”
“응?”
땀을 닦은 소라가 다가왔다. 마침 명상을 하고 있던 진희가 눈을 떴다.
보육원의 3인방, 그리고 청하의 훈련은 평일 하루 딱 3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2시간 체력 단련 후 1시간 동안 마나 호흡을 통해 마력을 사용하는 법을 익힌다. 체력 단련 때는 카온이 도와주고, 마력 사용법은 진희가 가르쳤다. 당장 오늘부터는 현성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수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에겐 이능력이나, 헌터로 각성하게 된 계기 같은 건 말해주지 않았다. 민하가 요정이란 사실은 결국 들켰지만, 다른 아이들의 능력에 대해선 입단속을 시켜놓은 참이었다. 현성은 민하의 날개를 보고 일종의 태생적 마법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소라는 현성의 눈치를 보며 조심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정도면 그냥 운동이잖아요. 더 수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소라는 줄곧 그들의 훈련 방식에 의문을 품어 왔었다. 진희는 아이들에게 결코 필요 이상의 수련을 시키지 않았다. 체력 단련은 최대 2~3시간, 마력 훈련도 무조건 1시간 내로 끝낸다. 마나 호흡을 계속하는 건 권장했지만, 자신이 없을 때 섣불리 마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도 했다.
소라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력을 느낀 지 제법 지났음에도, 헌터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손에 잡아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 매일 학교도 가잖아.”
“그게 어때서요?”
“더 훈련하은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럼 너희 일상생활이 아예 사라질걸?”
진희는 다리를 꼬며 하품을 했다. 그녀 나름대로 다음날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로 훈련을 시켰다.
“학교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소라는 부족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그녀는 더 빠르게 강해지길 원했다. 힘에 대한 열망이 있는 고3이라니, 진희는 시큰둥한 눈으로 소라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소라는 훈련 참여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마력 훈련은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졌지만, 그걸 보충하기 위해서인지 어디서 구해온 아령 같은 걸 가지고 틈나는 대로 근력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진희가 정해진 시간 이상의 훈련을 금지하겠다 권고한 것이다.
“아니, 중요해.”
“헌터가 될 수 있다면서요! 그럼 학교는…….”
“말이 많네, 싫으면 그대로 여기서 나가서 혼자 해. 더 토를 달면 훈련이고 뭐고 시킬 생각 없으니까.”
“……!”
소라가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몸을 홱 돌려 강당의 훈련장으로 걸어가는 소라의 뒷모습을 보며, 곁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현성이 중얼거렸다.
“……저 아이들은 이곳이 어떤 환경인지 잘 모르나 봅니다.”
“괜히 말하고 다니지 마요. 별거 아니니까.”
“글쎄요.”
현성은 쓰게 웃었다. 아직 마나 감응력이 떨어지는 그들은, 이 강당이 얼마나 좋은 수련장인지 모르고 있는 듯했다.
현성도 처음에 체력 단련을 2시간, 마력 훈련을 1시간만 한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 아카데미에 가면 하루 반나절을 하는 게 체력 단련, 마력 훈련이다.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게, 성장에 방해되지 않게 수련을 하는 방법은 현대에선 이미 정립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강당을 목격하고서야 진희의 결정을 납득했다.
이곳은 외부와 다르게 마나가 가득했다. 던전 수준은 아니지만, 아카데미나 그가 일하는 방위대 본부의 수련원을 압도할 정도로 마나가 유동적이었다. 주변에 흐르는 마나가 많다는 이야기는 곧 헌터가 수련하기 최적의 환경이란 뜻이었다. 게다가 진희가 그들에게 알려줬다는 정체불명의 호흡법은, 마나를 마력으로 치환하는데 효율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마나 농도가 높은 곳에서의 활동은 피로를 유발한다. 온종일 뛰어도 체력에 걱정 없는 헌터도 던전에선 스태미나가 떨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헌터는 마나가 많은 곳(던전)에선 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지속성이 떨어지는 특징이 있었다.
이것은 근육의 피로가 아닌, 체내에 있는 마력회로(신경)의 피로 때문이다.
마력회로는 마나가 짙은 곳에서 사용해야 단련이 된다. 회로가 점점 단단해지면서 많은 마력을 유통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마나홀과 연계되어 더 큰 위력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마력회로는 과도한 마나 주입에 의해 손상을 입을 염려도 있다. D급 헌터들이 던전에서 장기간 투숙을 못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아차 하는 사이 신경이 마모되거나 터져나가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진희는 아이들의 최우선 과제가 마력회로의 단련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체력은 꾸준히, 조금씩 늘려가고 대신 마력회로를 최우선으로 단련시킨다.
D급 이하의 실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있어선 ‘가장 빨리 강해지는 법’이라고 볼 수 있겠지. 길게는 일 년, 이 년을 바라보는 체력 단련과 달리 마력량 상승은 한두 달이면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라는 자신들의 성장이 느리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성은 오히려 아이들이 최단기간 루트로 강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여길 나가서도 체력 단련을 더 한다면야 장기간으로 봤을 때 효과는 더 좋겠지만, 진희는 아이들의 일상생활도 배려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안 그래도 마력 회로가 피로한데 신체까지 피로하게 된다면, 훈련은 극기 훈련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었다. 일상생활과 헌터로의 생활은 철저히 분리하는 게 이로웠다.
‘애들한테 그걸 설명 안 하는 이유는…….’
현성은 흘끔, 다시금 명상에 빠지는 진희를 내려다보았다. 언뜻 진희는 훈련을 지켜보며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현성은 진희가 이들 중 가장 바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강당 안을 가득 채운 마나는 바로 진희의 몸에서 나오는 마력이 치환된 것이었다.
그녀는 3시간 내내 끊임없이 마력을 방출했다. 아무런 형태 없이 방출된 마력은 공기 중에 퍼져나갔고, 이내 자연계의 마나가 되어 강당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강당은 아예 밀폐된 공간이 아니기에, 강당 안의 마나는 바깥으로 계속 흘러나간다. 진희는 강당의 마나 농도를 일정하게 지키기 위해, 3시간 내내 꾸준히 마력을 방출하고 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인간 마나 생성기의 역할을 진희가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본래라면 마정석을 이용하여 만들어 낼 인공적인 수련원이 진희의 마나홀에 의해 조립된 것이다.
그런 걸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소라에게도 별말을 하지 않았던 거겠지.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대응에 보고 있던 현성이 놀랐다.
아마 아이들이 마나 감응력 조금만 더 수준이 높았다면, 이 강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호흡할 때와 지금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의외로 단장답긴 하시네요.”
“뭐가요?”
“애들 학교생활까지 걱정해 줄 줄은 몰랐거든요. 하긴 중요하죠,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사회생활과 인간관계는 익혀야…….”
“짜증 나잖아요. 누군 고등학교 3학년 때 수시니 정시니, 힘들게 대학 가려고 뒹굴었는데, 자기들은 훈련 좀 한다고 학교 빼먹는다니. 배 아파서 그렇게 못하지.”
너희도 고생해 봐라. 흥.
“…….”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현성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진희를 바라보았다. 명상을 끝낸 진희가 진짜로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젊은 꼰대야, 아니면 농담으로 하는 소리야? 당최 무슨 캐릭터인지 짐작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진희의 입장에선 농담이었다. 하지만 아직 진희의 농담을 알아챌 정도로 현성은 노련하지 못했다.
* * *
“근데 아저씨는 얼마나 강해요?”
수련이 끝나가던 무렵, 청하를 응원하기 위해서 민하가 찾아왔다. 한동안 납치의 후유증으로 요양하던 민하는 최근 들어 기운을 차려, 훈련을 구경하기 위해 종종 강당에 찾아오곤 했다. 이제 슬슬 요정의 특징인 날개를 집어넣는 요령을 익힌 민하가 총총 걸어와 진희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훈련을 지켜보던 현성을 보고 말했다.
“나 말이니?”
근데 아저씨는 아닌데, 길게 찢어진 눈매가 순간 움찔했지만 입에 담진 않았다. 자신의 얼굴 인상이 동안으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다은 것은 옛적부터 알고 있었다.
“음, 너희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단다.”
“와아.”
민하는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올려다보았다. 요정이라 그런지 그녀의 말엔 악의나 거짓이 조금도 없었다. 그렇기에 서슴없이 민감한 질문을 건넸다.
“그럼 진희 언니보다 더 세요?”
“그건…….”
현성이 흘끔 진희를 내려다보았다. 진희는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그건 모르지? 강하단 건 간단히 판단할 게…….”
“아니긴 하죠.”
딱 타이밍 맞게 진희가 입을 열었다. 자고 있던 게 아니었나? 진희는 기지개를 켜며 민하가 가져온 음료를 마셨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흡사 맥주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하게 원샷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3시간이 지났다. 뿜어내던 마력을 갈무리하고서 그녀가 말했다.
“저도 몸 좀 풀어보려는데, 대련이나 하실래요?”
“네?”
현성이 진희의 손을 가리켰다. 왼손은 아직 다 낫지 않아 붕대를 풀지 않고 있었다.
“팔 괜찮으십니까?”
“오른팔만 쓰면 되죠.”
“…….”
“아, 현성 씨 실력을 무시한 거 아니에요. 몸 좀 풀어보고 싶어서 그래요. ‘이 몸’은 영 근육이 안 붙어서, 가끔 관절이라도 풀어줘야 하거든요.”
마치 자기 몸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진희가 어깨를 풀더니, 휴식에 들어선 아이들 사이로 걸어갔다.
“안 해요?”
“……위험할 텐데요.”
“그럼 우리 마력은 쓰지 말고 하죠.”
“그건 당연한 거고……. 근데 진짜 하시게요?”
현성이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웃었다. 그녀의 마나홀은 3시간 내리 마력을 뿜은 덕분에 상태가 좋지 않을 게 뻔했다. 하지만 오직 신체 능력으로 싸우자니, 그것도 어려운 일임은 뻔했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반생을 단련해온 현성의 몸과 진희의 몸은 출력 자체가 달랐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이었던 진희와는 뼈대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희는 넘어갈 생각이 없는지, 검을 꺼내 변화시켰다.
나타난 형태는 톤파. 비록 왼손은 못 쓰기에 한쪽 팔에만 장착하게 되었지만, 생각한 대로 변형하는 특성답게 손에 착 달라붙었다.
톤파는 그녀라도 지금껏 사용해본 적 없었지만, 체술에 있어선 나름대로 사용 방법이 다양해서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무기였다.
“진짜 할 건데요?”
“……하아.”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앞으로 나섰다. 진희의 무력을 무시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컨디션도 좋지 않은 사람과 대련하는 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현성 씨는 무기 필요 없어요?”
“네. 전 원래 무기 사용 안 합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강당 중앙을 비워주었다.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희는 톤파를 장착한 오른팔을 앞으로 당기고 자세를 낮췄으며, 현성은 양 주먹을 가슴팍 앞에 각각 가깝게, 멀리 두었다.
‘중국 권법인가?’
헌터 교육을 받았을 때 교본에서 봤던 듯도 싶었다. 그녀로서도 동양의 권법은 문외한이기에, 공격은 신중하게 해야 했다.
신중하게 전투에 임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리고 진희의 전투 스타일은 정석을 따르지 않는다.
“……!”
그녀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시합 시작을 알리는 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둘의 자세가 잡히는 순간부터 대련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