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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25화 (25/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25화

진희는 그 테러범보다 자신이 강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게이트를 만드는 능력은 진희와 같은 전위에게 있어선 상성이 나빴다. 아직 다 해방하지 못한 힘의 전력을 쏟아부어야만 돌파가 가능했으니까.

테러범이 둘 이상이었다면 이런 무리도 하지 않고 안전하게 싸웠겠지만, 그럼에도 적들이 도망치는 건 막을 수 없었겠지. 유효타조차 먹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진희는 붕대가 묶인 손으로 다시금 물을 한 잔 마셨다. 피를 좀 흘려서 그런지 목이 탔다.

카온의 기분도 이해는 갔다. 용인이란, 기사란 족속은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기사에게 있어 자신보다 주인이 먼저 다치고, 죽는다는 사실은 모욕이나 다름없다. 평생 씻지 못할 상처로 남겠지. 만난 지 한 달이 넘지 않았더라도 카온에게 진희는 주인이다.

주인이 다칠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하겠지. 그걸 무시할 만큼 무신경한 주인(기사단장)은 아니다.

“근데 삐진 거 맞네.”

“…….”

물론 놀리는 건 빼먹지 않았다.

진희가 비실비실 웃으며 말하자, 카온이 다시금 얼굴을 굳혔다.

“……식사 가져오겠습니다.”

“나 라면 해줄래?”

“고기를 드셔야 합니다.”

“속 부대끼는데.”

진희의 말을 무시하고 카온이 걸어 나갔다. 그리고 나가기 직전, 고개를 돌려 다시 진희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적은 누굽니까?”

“나도 몰라. 알면 바로 알려줄게.”

“……빠른 시일 내로 알려주시길.”

“응~”

진희는 손을 흔들며 빨리 밥이나 가져오라며 재촉했다.

‘어우, 살벌해라.’

자제하지 못한 카온의 살기에 진희의 등골이 순간 서늘했다. 용인의 복수심이라니, 맨정신으로 볼 만한 건 아니었다.

* * *

“그, 진희 누나. 손님이 왔는데요.”

“응?”

식사를 다 끝내고 약을 먹은 후 안정을 취하던 진희에게 청하가 찾아왔다.

“누군데?”

“신현성 씨라고, 말하면 알 거래요.”

“아~”

알긴 안다. 경찰서에서 자신을 심문했던 그 사람이다.

‘왜 찾아온 거지?’

진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청하에게 들어오게 하라고 말했다.

‘그때 박준 씨가 뭐라고 했더라.’

‘……신현성 씨의 소속은 본인이 밝히기 전엔 말할 수 없습니다만…….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나쁜 사람도…… 아마 아니고요.’

‘그저 우리 기업과 부딪힌 경우가 많아서요. 독하고 약지만 나쁜 짓을 하는 성격은 아닙니다.’

진희가 자신을 심문한 신현성에 대해 묻자 박준이 쓰게 웃으며 말해준 대답이었다. 박준과 신현성은 이미 안면이 있는 것 같았다.

박준이 발이 넓은 걸까, 아니면 신현성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문이 열리고 신현성이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여우와 같은 인상이다. 웃지 않았는데도 웃는 얼굴의 그는 들어오다 문득 진희의 상태를 보고 문가에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응? 다치셨습니까?”

조금요, 진희는 그렇게 말한 다음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현성은 그 자리에 앉으며 조금 미안하단 얼굴로 말했다.

“괜할 때 온 게 아닌가 싶군요.”

“그럼 다음에 오실래요?”

“이왕 온 거니 이야기는 하고 갑시다.”

한마디도 안 지시네, 진희가 피식 웃었다.

“근데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뒷조사?”

“위험인물이라면 뒷조사도 한다지만, 이번엔 그런 일은 안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요?”

“……헌터는 후원하면 목록 뜨는 거 모르십니까?”

“예?”

진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현성이 자신의 폰을 들어 진희에게 들이밀었다. 그곳엔 ‘헌터 후원자 명단’이란 표가 그려져 있었다. ‘C급 헌터 서진희 후원액’이란 항목을 읽은 진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것도 있어요?”

“헌터 대부분이 어마어마한 소득자니까요. 무기명 후원 같은 건 아예 불가능합니다. 소득공제 신청 때 편의점 껌 하나 산 것까지 확인하는걸요? 현금 거래도 일정 이상이면 반드시 신고해야 합니다.”

그건 또 몰랐다. 게다가 후원액에 적힌 금액이 생각보다 대단히 커서, 이미 낸 돈인데도 괜히 배가 아팠다. 현물로 바꾸라고 준 마정석들이 그렇게 비쌌던 건가. 진희가 애써 눈을 돌리고 폰을 현성에게 돌려주었다.

“그래서 이거 보고 오신 거예요?”

“그렇죠. 없어도 연락처나 남기고 가려고 했습니다.”

“흐음, 왜 찾으려고 하신 건데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집니다만.”

“시간 많아요.”

진희가 움직이지 못하는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한동안 나갈 생각도 없었다.

“전 사실 정부소속, 헌터관측방위대(The hunter observation defence force)의 일원입니다.”

“네? 지구방위대요?”

파워레인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진희에게 현성이 이를 악물며 웃었다.

“적당히 합시다.”

“넵.”

진지한 이야기인가 보다. 진희는 쏘리! 하며 손짓으로 대답했다.

“대충 말하자면 헌터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미리 관측하고 예방하는 부대입니다. 혹은 사건이 벌어진 다음 경찰과 함께 투입되어서 수습하기도 하고요.”

“아~ 들어본 적 있던 것 같아요.”

헌터 교육 때 나왔던 말이다. 소속 이름이 나오진 않았지만, 경찰 소속의 헌터는 유일하게 국민에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직종이라고 했던가. 마치 ‘인간에게 칼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직업, 의과의’ 같은 뉘앙스로 소개되었던 것 같았다.

범법을 저지른 헌터를 구속할 때 출동된다고 들었다.

“실전 부대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같은 계통인 건 맞죠.”

“그렇군요.”

“전 그곳의 대위입니다.”

“높은 건가요?”

“실력은 최고지만 짬이 낮아서 지위는 낮고, 궂은일 하는 직책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자기 실력 좋다고 대놓고 말하네. 진희도 혀를 내두를 뻔뻔함에 조금 질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해가 가긴 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현성의 마력 수준이나 술법을 다루는 섬세함은 대단해 보였으니까. 그 정도라면 실력에 자신 있어도 좋지.

“그럼 그…… 방위대에서 일하시는 분이 왜 왔는데요?”

“그게 본론입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왔습니다.”

“도움이요?”

현성은 과거 약초밭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이야기가 지나갔지만, 요컨대 국가에서는 그 테러범들의 덜미를 잡지 못했단 결말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실력자들이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신체조건, 능력 수준, 연령대, 성별 모든 걸 대조해 봐도 국내에 그런 능력자들은 몇 없었다.

그마저도 조사했을 때 먼지 하나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그렇다면 주둔지라도 찾아내고 싶었지만, 게이트를 사용해 도망친 그들의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 외국인 아니에요?”

“그렇게 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외국에서 테러를 자행했단 이야기니까요.”

외국의 헌터가 한국에 들어와 테러를 일으켰다. 듣기만 해도 대내외 언론에 헤드라인이 될 것 같긴 했다.

“우선 국내의 소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고 싶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하여튼,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던 저희는 결국 잠행을 선택했습니다.”

“잠행이요?”

“예. 사건에 관계가 있던 사람 중, ‘피해를 입지 않은’ 인물을 계속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테러를 일으켰다면, 반드시 실패한 대상에게 다시 나타나리라 생각하고 있거든요.”

다소 개연성이 부족한 논리긴 했지만, 인력이 부족한 방위대로선 최선의 방법이었다. 국가 단체들과 기업들이 나서도 단서 하나 나오지 않는 판국이니, 있는 인원을 데리고 땅이라도 파보자는 심정으로 만든 전략이었다.

“피해가 전무했던 곳은 딱 두 곳입니다. 하나는 ‘브리온’사(社)의 파티였으며, 다른 하나는 당신이 있던 곳 약초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중상을 입거나 사람이 죽는 등, 나름대로 피해가 발생했지만 피해가 아예 없던 곳은 단 두 곳이라고 한다.

금강 기업과 대척점을 이루는 브리온 기업이 그중 하나였다.

“브리온에도 동료가 가 있습니다. 아마 저도 금강의 이시영 군에게 배정되겠죠. 그리고 당신에게도 제 후배가 찾아올 겁니다.”

“아, 설마 저도 해당되나요?”

“예.”

현성이 뭘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시 약초밭의 다른 파티원들은 아예 숙소를 우리 방위대 쪽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이시영 군은 그런 권유를 들어줄 것 같지…….”

“싫어요.”

“……않으니까,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다. 저희 직원이 잠행하고 있으면 그저 못 본 척 지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나 테러범이 다시 나타나면, 잠행하고 있던 인원을 포함해서 대기하던 방위대 헌터들이 지켜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를 미끼로 만드는 몰상식한 전략이긴 했지만, 오히려 그 공격을 쉽게 막아낸 강자들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다.

이 정도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렵진 않았다. 정중하게 부탁해 오기도 했고, 진희도 그 테러범들의 끄나풀을 잡고 싶었으니까. 게다가 진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아니니, 서로 윈윈인 제안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상처를 치료하고 쉬느라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걸 깜빡했다.

“저 그 테러범 중 하나랑 어제 만났는데요.”

“……뭐요?”

“게이트를 만드는 마법을 쓰더라고요. 아마 테러범들이 쓰는 게이트 마법 아티팩트를 만든 녀석 아닐까요?”

그걸 왜 지금 말해? 현성이 그 얇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자, 잠깐만요. 왜요? 어떻게요? 어디서요?”

“어제 신림역 던전에서, 초보 파티랑 공략하다가, 변장 마스크를 벗더니 싸움을 걸어서 싸웠어요. 닉네임은 곰돌이였고요.”

“고, 곰……? 모, 몸은 괜찮습니까?”

“보다시피 전 손을 다쳤는데, 걔 어깨에 칼 박아주긴 했어요.”

“…….”

이게 뭔 소리래. 현성은 도저히 상황 파악이 안 된다는 얼굴로 한참을 진희를 바라보다,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테러범은…….”

“도망갔어요. 저번처럼 또 게이트 써서 휙 도망가더라고요.”

“…….”

왜 그 말을 진작 하지 않았냐고 독촉하려다, 그녀도 상처를 입고 요양하는 중이란 걸 깨달은 현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게다가 그녀도 현성의 연락처를 모르던 판국이었다. 왜 보고 안 했냐는 말을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현성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폰을 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윤수야, 나다. 어, 네가 금강으로 가라. 내가 여기 있어야겠다. 사정이 좀 있어. 응, 나중에 연락할게.”

“잉?”

전화 내용을 대충 들은 진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이 여기 있게요?”

“……해야죠, 지금 이시영 군보다 더 테러범들이 이를 갈 사람이 여기 있는데…….”

당신 테러범 팔에 원수 있습니까? 벌써 팔 두 개나 날렸네요. 현성이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넋 나간 어조로 말하자, 진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목을 쳐야 하는데 요즘 실수한단 말이야. 예전에 비해 시야가 낮아져서 그런가. 훈련 좀 더 해야겠어요.”

“…….”

말을 말자. 현성은 끄아- 하고 소리가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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