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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24화 (24/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24화

“……어라, 언니 혹시 우리 알아?”

“그래, 알아. 그 기생충인지 인형인지 부리는 꼬맹이 팔은 잘 붙었어?”

그 소리를 듣고서야 곰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긴장이 어렸다.

“……아, 뭐야, 설마 그때 실패한 게…….”

“그래, 나 때문이야.”

진희는 다시 한번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

이번엔 무기조차 없음에도, 진희는 주먹을 들고 곰에게 덤볐다. 설마 다시 공격해올 줄은 몰랐던 곰은 아까보다 더욱 거대한 게이트를 펼쳤다. 역시나 이번에도 막히는 진희의 주먹, 그 빈틈을 타 곰이 검을 찔러 넣었다.

“넌 마법사 타입이네.”

“윽!”

마력을 잔뜩 머금은 그녀의 검을 진희는 맨손으로 잡아챘다. 검의 날을 대놓고 손아귀에 쥐어버리자, 검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맨손으로 검을 잡은 진희의 손아귀에서은 베인 상처 때문에 피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마력으로 감쌌다고 한들, 무기의 날을 온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터, 터프하네?”

“검을 휘두르는 건 빠른데, 반응이 완벽하진 않아. 게이트를 쓰는 게 네 주력 마법인가 봐?”

“…….”

정확했다. 앞서서 방패병으로 역할을 했던 곰도, C급 중에선 나름 몸놀림이 좋다 수준이지 결코 그 위를 바라볼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마스크를 푼 상태여도 그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마력이 상승한 것일 뿐, 검을 다루는 능력은 명백히 수준 이하였다.

진희가 곰의 상황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한 목을 노렸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언니, 지금 상황 파악 안 되나 본데…….”

곰이 부들부들 떨리는 검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말했다.

“……그따위로 공격해 왔으니까, 언니 이제 못 도망가거든?”

아까 창이 막혔을 때와 동일했다. 게이트에 막힌 그녀의 주먹은 누군가가 쥐어짜기라도 하는 듯,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창이라면 버리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주먹은 사정이 달랐다.

과연 언제까지 그렇게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곰이 진희의 상태를 비웃으며 깊게 검을 찔러 넣으려 했다.

하지만 진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온몸을 두르는 마력의 출력을 올렸다.

“……!”

순식간에 주변을 압도하는 마력에 곰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고 느낄 지경이다. 진희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주변을 아우를 정도로 거대해진다.

‘이게 사람의 마력이라고?’

게이트로 완벽한 방어를 했다고 생각하는 곰마저도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살기.

마스크 위에서 보이는 진희의 메마른 눈동자에서, 곰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잘됐네. 너희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윽……! 저리 가!”

“널 여기서 죽이면, 좋은 경고가 되겠어.”

너의 시체 정도라면, 작작 나대라는 훌륭한 경고장이 될 수 있다.

진희의 몸이 점점 앞으로 쏠렸다. 게이트로 인해 완벽히 가로막힌 벽이지만, 그 벽에 얼굴을 비빌 듯이 몸을 전진시켰다. 그녀의 왼 손아귀는 이미 너덜너덜할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곰의 마력이 집중적으로 들어간 검이 계속해서 손아귀를 파고들고 있다. 고통스러울 텐데도 진희의 표정엔 미동조차 없다.

그리고 오른 주먹은.

“……마, 말도 안 돼!”

점점, 천천히 게이트를 뚫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미친 마력이다. 그 주먹 하나에 자연재해를 담은 것 같다. 이치와 논리를 초월한 힘이 주먹 안에 들어 있다. 너무 큰 마력을, 단련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몸에서 쓰려 하니 주먹의 표피가 감자껍질처럼 벗겨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진한다.

“미, 미친 거 아냐? 언니 팔 안 보여, 지금!”

“괜찮아, 난 네 얼굴만 보여.”

진희는 씨익 웃었다. 분명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그 소름 끼치는 광기와 즐거움이 진희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진짜 미친년 아니야, 이거.’

자신도 어디서 빠지진 않지만, 이 사람은 수준이 달랐다.

왼손이 찢어지고 있다. 오른손은 무슨 불에 불타오르듯 피부가 벗겨지고 있는데도 전진한다. 그것도 웃으면서.

“이, 이익!”

곰 또한 어떻게든 발버둥 치려 마력을 더욱 끌어냈다. 하지만 게이트는 강화할 수 없다. 이건 ‘마법’이라기보단 ‘사상 병기’에 가깝다. 그저 꺼내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을 다하는 병기.

‘단절’하고 ‘연결’한다는 섭리를 가진 병기가, 무대포 마력 죽빵에 날아가게 생겼다.

이럴 리 없다. 이런 상황을 본 적도 없다.

단독으로 사용된다면 S급 마법사의 마법마저도 파훼하는 병기는, 고작 주먹에 무너지려 한다.

“다 왔어.”

정말 근처까지 다가왔다. 깨지기 일보 직전.

‘차라리 뒤로 도망칠까?’

그러나 게이트를 발동한 상황에선 움직일 수 없다는 제한이 있었다. 괜히 움직였다가 연산이 일그러지면 본인이 게이트에 빨려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덮쳐오고 있다. 키 차이는 별로 나지도 않는데, 진희의 몸이 곰을 덮는 수준 직전까지 다가왔다.

‘이렇게 되면 모 아니면 도다.’

곰은 바로 영창을 읊었다.

“총서 8. 이것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고, 모든 것의 아래와 위에 있는 힘을 받는다. 헤르메스의 방위(方位) 7E423, 연속 이동, 관문(GATE) 증식.”

영창되는 마법은 가속, 점멸, 그리고 즉발.

진희를 막고 있는 게이트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게이트를 꺼내 들다 보니, 순식간에 게이트의 내구도가 감소했다.

‘깨진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노리고 돌진하는 진희의 주먹을 피해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맞는 순간 머리가 터져나갈 것이다. 저 어마어마한 마력을 버틸 정도로 그녀의 내구도는 뛰어나지 않았다.

파괴되었던 게이트는 그저 궤도를 비트는 수준에 그쳤다.

“아악!”

하지만 그 주먹의 풍압만으로 고개가 비틀릴 수준이다. 머리카락이 뜯겨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곰은 자신의 발아래에 게이트를 출몰시켰다.

‘됐다!’

“아니, 안 됐어.”

“허억!”

그 게이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 검을 빼앗은 진희가 왼팔을 곰 쪽으로 내려쳤다. 공의 어깨에 검이 박혔다.

“……!”

그리고 그녀의 등에 있던 가방끈이 검에 잘리고 말았다. 황급히 가방을 챙기려 했던 곰이지만, 그보다 게이트가 점멸하여 그녀를 빨아들이는 게 빨랐다.

결국 가방을 잡지도, 진희를 막지도 못한 그녀가 분노에 찬 얼굴로 진희를 올려다보았다.

“…….”

그리고 보고 말았다.

진희는 무표정한 눈동자로, 그리고 마스크에 가려진 입술로 말하고 있었다. 텔레포트에 의해 시야가 점멸되는 사이에서, 마스크로 가려졌음에도 진희의 입술 모양은 뚜렷하게 읽혔다.

‘너 얼굴 봤다.’

이윽고 사색이 된 곰은, 게이트로 사라졌다.

* * *

카온이 보육원에 정착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의 생활은 마치 군인처럼 절도 있게 흘렀다. 새벽에 일어나 훈련을 하고 아침 식사 만드는 것을 도와준 후, 점심 동안 훈련과 보육원의 시설 공사를 돕는다. 그리고 식사 후 다시 훈련, 학생들이 돌아올 오후쯤엔 은정과 저녁 식사 준비를 같이 한다.

이쯤 되면 원생들이 저 사람이 직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을 돕고 있는 것이지만,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정도의 일로는 부족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기사단의 막내, 혹은 스콰이어들은 훈련보다 잡일이 많을 정도로 바쁜 직책이었고, 카온은 자신이 진희의 부하로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진희는 사령관이자 지켜야 할 주인이다. 그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녀와 함께, 혹은 앞에서 싸워야 하는 운명이며, 주인의 상처는 자신의 목숨보다 무겁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가만히 넘어갈 수 없었다.

“자, 이 정도면 됐구먼요.”

“고마워요.”

“오른손이야 뭐 화상 정도이긴 한데, 왼손은 주의하셔요. 뼈를 안 건드렸을 뿐이지 좀 호되게 찢어졌어. 손바닥을 너무 펴거나 꽉 쥐면 다시 터져요.”

“네네.”

진희는 의자에 앉은 채 수술이 끝난 의사를 돌려보냈다. 처음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까 싶었지만, 이미 출혈이 제법 나오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바로 곁에 있던 보육원에서 치료하기로 했다.

그녀의 모습을 본 청하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의사를 데려왔고, 진희는 가만히 앉아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육십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노년으로, 그녀의 상처를 보고도 놀란 기색도 없이 착착 치료를 해 나갔다.

“……카온?”

양손이 다 아프다 보니 컵을 쥐기가 어려웠다. 양손으로 조심히 컵을 쥐어서 물을 한 잔 마시고, 의자를 최대한 뒤로 눕혀 앉아 있던 진희가 카온을 불렀다.

카온은 묵묵히 피가 묻은 거즈와 붕대를 치우고 있었다. 왠지 화난 것 같아 진희는 삐질 식은땀이 흘렀다.

“예.”

“혹시 화났어?”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 보이지 않는데. 진희가 흘끔 카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수려한 얼굴은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바제트 때, 전장을 다녀온 뒤 부관이 딱 저런 얼굴이었는데 말이지.

카온이 의식적으로 진희를 보지 않으며 주변을 정리하는 게 느껴졌다. 마침 신발을 벗고 맨발이던 진희는 발로 카온의 허벅지를 툭툭 건드렸다.

“화난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럼 삐졌냐?”

“아닙니다.”

“맞아, 여긴 안이야. 밖은 저기고.”

“…….”

아차, 이건 좀 선을 넘었나. 습관처럼 장난을 치려던 진희는 홱 고개를 돌린 카온을 보고 고개를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계속 발로 쿡쿡 카온의 다리를 건드리자, 카온이 대놓고 한숨을 내쉬며 진희의 발을 잡았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슬리퍼를 그 발에 끼워준 뒤, 꾹 눌러 의자 아래로 향하게 만들었다.

“인간이었습니까?”

“응?”

“어떤 적과 싸우셨습니까?”

“그건 왜?”

“알아둬야 대비를 합니다.”

카온이 진희의 왼손을 잡았다. 붕대가 감긴 왼손은 중상은 아니지만, 제법 고통스러운 상처임은 틀림없었다. 피부의 움직임이 가장 많은 부위일수록 아픔이 크게 마련이다.

카온은 진희의 상처를 보자마자 검에 의한 상처란 걸 눈치챘다. 마력의 열상, 날카로운 자국만 봐도 추측하긴 어렵지 않았다.

“…….”

카온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복수하겠다며 나갈 것 같은 그의 얼굴에 진희가 오른손으로 카온의 손을 툭툭 쳤다.

“걱정 마. 다음에 싸울 땐 데려갈 거니까. 나도 좀 방심하긴 했어.”

그야 하급 던전에서 테러범을 만날 줄 누가 알았겠냐마는.

만약 그 게이트를 쓰는 테러범 말고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진희도 위험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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