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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9화 (19/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9화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으나, 인간 같지 않았다.

화려한 움직임은 결코 아니었다. 마치 펜싱을 보는 것처럼 낮춘 자세에서 수없이 찌르는 자세를 반복하는 광경은, 평소에 생각하던 헌터의 전투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모든 공격이 실용적임은 틀림없었다.

찌르고, 당기다, 다시 찌르며, 막는다. 기계적인 움직임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수한 기술과 숙련도는 감히 청하가 예단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 청하는 멍하니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신기함과 경악에 물들어 있던 눈동자는 이내 존경과 부러움으로 물들어갔다.

나도 저런 힘이 있었다면 민하를 지킬 수 있었을까. 자신의 무력함은 어른의 손아귀에 흔들리며 이미 통감했던 일이다.

강해지고 싶다. 동생을, 가족을 위해 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아직 다른 일행이 눈을 뜨지 않던 도중, 청하는 계속해서 진희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 단순하지만 날카로운 수백 번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았다.

청하는 모르고 있었으나 진희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집중 상태에 들어가, 신체의 마력이 점점 형태화되고 있었다.

저것처럼 빠르게. 강하게. 날카로운 움직임을 할 수 있도록. 마력의 사용은 최소한으로, 그러나 한 번의 공격이 한 번의 치명상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동선을 지켜야 한다. 검술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 움직임에 대한 정보는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도 저렇게 검과 마력을 쓸 수 있다면.

주먹을 쥐고 있던 청하의 손이 꿈틀거렸다.

“……?”

그때 시선을 느낀 진희가 고개를 돌렸다.

검푸른 색 피로 더럽혀진 진희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청하와 눈을 마주했다.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던 청하를 보며 진희가 피식 웃었다. 핏방울이 묻어 있는 그녀의 붉은 입술이 예쁘게 호를 그렸다.

‘잘 봐.’

그녀는 입술 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청하는 자기도 모르게 볼을 붉혔다. 진희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어째선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4. 기사의 소양

마나 감응력을 만드는 훈련은 하루 만에 끝나는 훈련이 아니었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한들, 진희는 아이들을 데리고 일주일가량 매일 던전에 드나들었다.

청하와 종혁은 진희에게 수고를 끼쳐 죄송하단 사과를 건넸지만 사실 진희에겐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헌터가 된 후 제대로 된 사냥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기회에 진득하니 한 자리에 붙어 사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고, 마음껏 검을 휘두르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육원에서 알찬 시간을 보내던 중, 박준에게서 연락이 왔다. 후원 관련하여 계약 체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단 말을 했다.

만나는 장소는 고즈넉한 한식당이었다. ‘저 요즘 돈 많이 써서 돈 없는데요’라고 말하자 박준은 ‘은인에게 밥 얻어먹을 정도로 무뢰한은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다. 공짜 밥이로구나, 진희는 카온에게 아이들 마력 수련을 도우라 명령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쪽입니다.”

이름을 말도 안 했는데 자연스럽게 안내해 주는 종업원을 따라 들어가자,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방에 입장했다.

장지문을 열자, 마침 차를 마시고 있던 박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희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네요.”

자리 준비는 총 네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박준은 자신의 맞은편에 진희를 안내했다.

“근데 후원 건이 복잡한가 봐요? 전 이름만 후원자라서 할 게 없는 줄 알았는데.”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국화꽃이 인상적인 찻잔을 들던 진희가 묻자, 박준이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진희 씨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분’이요?”

누구길래 존칭까지 쓰는 거야? 진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련님.”

“……알아, 숨어 있던 거 아냐.”

그때 입구 반대편, 옷을 넣는 옷장 쪽의 장지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약초밭에서 만났던 금강 기업의 회장 넷째 아들, 이시영이었다. 시영은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보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

근데 왜 내 옆에 앉지? 시영은 박준의 옆자리가 아니라 진희의 옆자리에 앉았다.

“날 보고 싶다고 한 게 너야?”

“아니, 내가 아니야. 물론 나도 널 만나고 싶긴 했지만…….”

시영이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골랐다.

“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부탁?”

진희가 찻잔을 내려두고 박준을 바라보았다. 박준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시영 대신 말을 받았다.

“혹시 지금 던전 파티에 들어가 계십니까?”

“그건 왜요?”

“……도련님이 들어갈 만한 파티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믿음직한 전위가 있는 파티가요.”

시영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고, 박준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강에서 도련님의 위치는 좋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금강 기업 회장에겐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다. 시영은 그중 막내로서, 위 남매들과 나이 차가 매우 큰, 말하자면 막둥이다. 본래 화약과 선박 사업으로 크게 번창하던 금강 기업은 게이트가 출몰한 이후, 한국에서 헌터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대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당시의 회장은 기업가 중에서 드물게도 헌터였고, 휘하에 헌터 파티를 여럿 모집하여 국내의 온갖 대형 던전을 정복한다. 거기서 얻은 아티팩트, 자원들로 헌터 시장을 개척하며 이윽고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을 이룩하는데 이른다.

그렇기에 금강 기업의 광고를 보면 헌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또한 회장의 자식 중 무려 2명이 헌터였다. 유력한 후계자로 손꼽히는 첫째와 해외 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가 각각 S(등급 외)급 헌터이며, 최근 시영이 새로운 헌터로 각성하며 제법 가십이 돌았었다.

“하지만 저번 테러 사건이 터져 버렸죠.”

테러 집단은 그 이후 어떤 요구도, 입장 표명도 없이 잠수했다. 그들의 행적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찾을 수 없었으며, 테러에 당한 대다수 인물이 중요인사다 보니 경찰이나 헌터 기업들도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런 것치곤 뉴스에 안 나오던데요.”

“일부러 발표를 안 하는 겁니다. 물론 새어 나가는 이야기는 있지만, 그 모든 사건이 한 집단에 의해 일어났다고 생각하긴 쉽지 않죠.”

그러다 보니 금강 기업의 회장은 시영의 던전 출입을 금지시했다. 본래라면 기업 내 파티에 들어가 마법사로서 역량을 키울 예정이었지만, 금강 기업의 모든 파티는 시영을 거절했고 결국 시영은 헌터 면허를 땄음에도 지금껏 던전 하나 들어가질 못했다.

진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테러범들의 생각을 감도 못 잡는 이 상황에서, 대상으로 지목당했던 시영이 태연하게 던전에 들어가는 게 더 우스운 일이었다. 회장은 이를 알고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시영의 장기적인 구류를 명령했다.

‘게다가 걔들은 게이트를 여는 능력도 있었고.’

그 능력이 있으면 언제 어디서 녀석들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괜히 바깥에 돌아다니지 않는 게 더 현명했다. 진희야 테러범들의 목적도 아니고(물론 원한은 샀지만), 덤빈다 해도 물러서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시영은 처지가 달랐다.

박준도 진희의 생각에 동감하는 듯, 시영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도 적어도 올해 정도는 계속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난 결국 내쫓기고 말 거야.”

“내쫓겨?”

시영이 작게 중얼거린 말에 진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도 대답한 건 박준이었다.

“……이는 언론엔 발표되지 않은 사실입니다만. 회장님의 자식 중,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는 자식은 그 어떤 계열사도, 주식도 물려받지 못합니다. 당장 헌터가 아니시며, 성인이 되도록 특별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신 셋째 도련님은 출가하여 혼자 살고 계세요. 자립할 정도의 자금만 주고, 아무런 추가 지원도 허락되지 않습니다.”

“……무슨 콩가루래요?”

“회장님이 좀, 유별나게 능력주의자이시다 보니……. 회장님 당신께서도 헌터 사업으로 금강을 키우신 장본이시기도 하고요.”

박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시영 도련님은 C급 헌터가 되셨으니 가문에 남을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또한 C급 중에서도 감응력이 높으셔서 그 위 등급으로 승급하실 수도 있겠죠. A급만 되더라도 ‘후계자’로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흐응.”

이 작은 꼬맹이가 그런 정치 드라마의 주인공 중 하나란 말이지. 약초밭에서 덜덜 떨며 박준 뒤에 숨어 있던 귀여운 모습밖에 모르던 그녀가 새삼 신기하단 얼굴로 시영을 곁눈질했다.

“후계자까지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시영은 우물쭈물 말을 더듬었다.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아.”

금강 기업의 회장의 아내는 언론에 알려진 건 그다지 없지만, 박준의 말을 따르면 자식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셋째가 집에서 내쫓길 때까지만 해도 큰 슬픔에 잠겨 계셨고, 이윽고 막내인 시영이 헌터로 각성했단 사실을 알고 난 후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막둥이는 계속 엄마 곁에 있어줄 거지?’

엄마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시영이 울음이 날 것 같은 눈을 억지로 꾹 감았다.

“하지만 헌터 각성은 한 거잖아? 그럼 내쫓기지 않는 거 아냐?”

“……진희 씨도 언론 기사를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회장님의 연세가 많이 연로하십니다.”

“아, 벌써 100세가 넘었죠?”

“예.”

헌터의 수명은 길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평균 수명은 아직 과학적으로 측정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회장은 이미 늙은 나이에 헌터로 각성한 편이었고, 마력의 수혜를 크게 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선 공공연히 회장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따위를 논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100세에 중딩 아들을 가진 거야? 그것도 참 대단하네.’

듣자 하니 게이트가 출몰하기 전에 회장은 독신으로 죽을 생각이었다던가. 헌터로 각성하면서 신체가 활력이 도니, 그제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거란 루머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회장님이 돌아가시면, 분명 남매 두 분 중 한 분이 회장이 되실 겁니다.”

국내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첫째와, 해외에서 잘 나가고 있는 둘째.

“문제는…… 두 분 다 시영 도련님을 좋아하진 않으십니다.”

“……아하. 그래서 헌터로 빨리 업적을 세워놓지 않으면, 후계자 계승 후에 내쫓기게 된다?”

“맞습니다. 적어도 괜찮은 업적이라도 있다면 내쫓기지 않을 명분을 손에 넣게 되지만, 그게 아니라면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이건 일종의 ‘관례’니까요. ‘가문에 도움이 되는 자만이 가문에 남는다’가 곧 회장님 말씀이십니다. 헌터 면허로 1차 통과를 했다면, 최종 통과점은 헌터로서의 업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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