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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18화 (18/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18화

한순간의 실수와 방심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그 위험성에 대해 인지한 카온은 긴장된 표정으로 영역을 전개했다. 아무리 전체적인 케어를 진희가 해준다고 하더라도, 카온 또한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게이트에 들어가자마자 펼치면 돼. 걸어 다니면서 쓸 수 있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선 전투가 힘듭니다.”

아무리 카온이 용인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해본 영역 작업과 전투를 동시에 할 순 없었다. 카온의 말에 진희는 걱정 말라는 듯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집을 툭툭 건드렸다.

“혹시 있을 전투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알겠습니다.”

종자인 자신을 놔두고 주인이 나선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카온의 눈가가 굳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음에 이내 수긍했다.

“그럼 애들 불러. 출발하자.”

“예.”

그렇게 가람 보육원 첫 게이트 탐사가 시작되었다.

* * *

“여, 여기 너무 어둡지 않아요?”

“아니, 딱 좋아. 조용할수록 수련하기 괜찮거든.”

“조용한 게 아니라 무서운데…….”

종혁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감추며 말했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선두를 유지하며 걸어왔다.

진희의 파티가 찾아온 곳은 보육원의 길 너머, 사람들이 자주 찾는 장소는 아닌 듯 한산한 던전이었다. 게이트에 들어서자마자 나온 장소는 좁은 동굴이었다. 습한 공기와 함께 사람 둘이나 지나다닐 법한 좁은 통로에 초보자 4명은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진희의 손목의 스마트 워치와 종혁이 들고 있는 손전등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순서는 맨 앞이 진희, 그 뒤에 종혁, 민혁, 소라, 청하와 카온 순서였다. 민혁이 종혁 대신에 앞으로 나오려고 했지만, 진희가 장난삼아 종혁을 앞에 세워 걸어가기 시작해 순서가 이렇게 짜였다.

말은 무섭다고 해도 줄을 바꿔 달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나름의 강단은 있는가 싶었다.

진희와 카온만이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평생 게이트 안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4인방은 혹시라도 몬스터가 나타날까 시종일관 긴장된 얼굴이었다.

“걱정 마. 아까 잠깐 봤는데, 여긴 일직선형 던전이더라고. 뒤에서 몬스터가 등장하진 않았어.”

“무슨 몬스터가 나오는데요?”

청하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희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씨익 하고 모두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악마가 나오더라.”

“…….”

“…….”

제발 거짓말이길 빈다. 청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여기서 할까? 바닥에 담요라도 깔고 앉아볼래?”

10분쯤 걸어 들어온 후, 진희는 조금 넓어진 지점에서 멈춰 섰다. 소라와 청하는 자신의 겉옷을 깔고 앉았고, 민혁과 종혁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묘하게 습한 동굴 벽은 손을 대기 꺼림칙했는지, 벽이 아니라 중앙에 앉았다.

진희는 스마트 워치를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물이 담긴 페트병을 세웠다. 그러자 스마트 워치의 빛이 마치 조명처럼 주변을 은은하게 밝혔다.

“자, 이제부터 명상을 할 거야. 내 목소리에 집중하고 천천히 마나를 느끼면 돼.”

“그게 끝이에요?”

“그렇게 끝나면 좋겠지? 안 되면, 뭐 밤을 새우거나, 더 농밀해진 마나 때문에 잠깐 생사를 넘나들기도 하고?”

“……농담이죠?”

“그을쎄.”

또 저 웃음이다. 진희가 아까 아이들을 놀렸던 것처럼 똑같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아이들은 우선 시키는 대로 두 눈을 감고, 각자 편한 자세로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태어나서 명상이라곤 해본 적 없는 아이들은 그저 눈만 감고 귀를 열어놓은 척할 뿐이었지만, 진희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말했다.

“이제부터 카온이 미약하게 마나 농도를 증가시킬 거야. 그럼 괜히 숨이 막히고, 배가 압박되는 기분이 들 수 있어. 머리가 아플지도 모르지만 참아. 잠깐 깊은 바닷속에 빠졌다고 생각하면서.”

“…….”

말로 표현하니까 더욱 긴장이 되는 듯싶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아이들이 숨을 참으려 하자 진희가 작게 웃었다.

이윽고 카온에게 눈짓했다. 카온이 서서히 마나를 영역 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마나가 느껴지고, 그 마나가 체내에 들어오면서 가슴팍에 모여들기 시작하면 눈을 떠도 돼. 다른 사람이 집중하고 있으니까 말은 하지 말고.”

팔짱을 낀 진희가 영역에 차오르는 마나를 느끼며 말을 이었다.

“마나는 공기처럼 하염없이 흐르는 게 아니야. 의도적으로 머금고 품는다고 생각해야만 움직여. 가만있으면 몸을 압박할 뿐이니까, 몸 근처에 흐르는 마나를 호흡법으로 빨아들인다고 생각해. 입과 코에서 목, 가슴, 폐, 심장, 어깨와 팔꿈치, 손가락 끝, 허벅지와 무릎, 발가락까지, 다시 올라와 가슴팍으로. 그리고 내뱉지 말고, 가슴 안에서 빙그르르 돌려.”

어두운 동굴 안, 평이한 어조로 말하는 진희의 말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잠이 드는 게 아닌, 묘하게 집중을 하게 하는 목소리다.

물론 이것도 진희가 의도한 바였다. 그녀가 가진 잔재주 중 하나인, 목소리에 마력을 품어 이목을 끌게 하는 이 능력은 이처럼 명상이나 수련 때 큰 효과를 발휘했다. 본래라면 목소리를 높여 전장의 병사, 기사들을 향해 소리칠 때 사용했던 재주였다.

“……마스터.”

“쉿.”

아이들이 명상에 들어섰다. 다행인 점은 넷 모두 나름의 재능이 있단 점이었다. 명상에 잘 빠지지 못하는 경우엔 서너 시간을 헤매기도 하는데, 이 아이들은 마치 익숙한 듯 단숨에 명상 상태에 접어들었다.

아마 요정인 민하와 같이 지낸 탓이겠지. 감정을 날카롭게 다스리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아이들은 그만큼 집중도 깔끔하게 해냈다.

‘오히려 소라가 조금 헤매고 있네.’

가장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소라의 경우, 갈피를 못 잡은 듯 호흡이 뒤틀리는 게 보였다. 피부에 달라붙은 마나는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떨리고 있었고, 가슴팍 안으로 들어가 마나홀을 자극해야 할 마력이 계속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명상 상태엔 접어들었는데 마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했다.

반면, 마나를 받아들이는 가장 탁월한 형태는 청하였다.

청하는 마치 구름처럼 마나를 형태화시켜 입으로 숨 쉬듯이 받아들이고, 체내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아직 마력 회로의 형태를 다잡지는 못해 어중간한 모양새였지만, 단숨에 마나를 깨닫는 과정은 진희가 보기에도 놀라웠다. 재능 있는 스콰이어들이 보여주는 마나 호흡법을 보는 듯했다.

‘……천재였어?’

외모도 잘생긴 놈이, 재능까지 천재라니. 보아하니 청하는 이런 수련법을 거치지 않더라도 알아서 헌터로 각성했을 듯싶었다.

진희는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눈을 감은 청하를 바라보았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 입술이 트고 이마엔 멍 자국이 뚜렷했지만, 그걸 차치하고도 청하는 미소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목구비가 화려했다.

짙은 남빛의 머리카락과 크고 동그란 눈동자, 젖살이 빠지지 않아 귀여운 볼이나 앙다문 입술은 저번에 약초밭 던전에서 봤던 이시영 못지않게 귀여웠다.

이시영이 다소 도련님스러운 당돌한 생김새였다면, 청하는 미청년이 될 떡잎이 보였다.

세상은 불공평하군, 외모도 잘난 놈이 재능까지 갖추게 된다니.

“물론 나 포함해서.”

“마스터.”

“알아, 안다니까, 조용히 좀 해봐.”

아까부터 계속 진희를 불러대는 카온을 손으로 진정시키며, 그녀가 뒤를 돌았다. 실없는 소리를 하던 도중에, 어느새 몬스터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의 기척을 눈치챈 카온이 계속 그녀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전등이 비추지 않는 어둠 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카온이 자신이 도와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진희가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었다. 변화되는 검의 형태는 에스터크(Estoc). 찌르기에 특화된 얇고 기다란 송곳과도 같은 검이었다. 이 좁은 동굴에서 베기 위한 검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에스터크 같은 찌르기 전용 검은 제대로 연습해 본 적이 없지만, 오히려 운동 삼아 휘두르기엔 제법 좋다고 생각했다. 진희는 자세를 낮추고 다리를 벌려, 왼손은 뒤로한 채로 검을 앞을 향해 겨눴다.

길이는 롱소드보다 조금 긴 수준으로, 그녀가 평소에 쓰는 검보다도 긴 편이었지만, 오래간만에 쓰는 검이 손에 착 달라붙자 나름 흥이 났다.

“아이들 집중 깨지 않게 조용히 처리할 테니까, 영역 조절 잘해.”

“예.”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둠 속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왔다.

그래, 이렇게 나와야지. 간만에 손을 풀 수 있단 생각에 진희가 검을 쥐고 수문장 역할을 자처했다.

* * *

청하는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걸 느끼며 눈을 떴다. 온몸을 사로잡던 무게감도 사라졌다. 체내에 있는 마력을 움직이는 건 아직 서툴렀지만, 그래도 진희가 말한 마나와의 동화가 어떤 상태인지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몸 상태가 묘하게 쾌활했다. 아까만 하더라도 동굴의 스산한 공기에 닭살이 돋던 피부는 어느새 안정되었다. 동굴 안의 마나가 청하의 몸 구석구석을 누비는 게 느껴졌다.

이게 헌터들이 느끼는 마나란 거구나. D급 헌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약한 감응력이었지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마나에 가슴이 뛰었다.

‘응?’

눈을 떠도 다른 사람을 위해 조용히 하란 진희의 말이 떠올라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던 청하는, 문득 세찬 바람 소리에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누나?’

그곳엔 진희가 어둠을 앞에 두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잘 보이지도 않는 빠른 움직임으로 수없이 허공을 향해서 검을 찔러 넣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피로 보이는 검푸른 액체가 터져 나왔다.

격한 움직임에도 바람 소리 말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진희는 숨을 헐떡이는 일도 없이 자연스럽게 길목을 장악하여,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몬스터는 진희가 악마라고 했던 게 과장이 아닌 듯 끔찍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몬스터는 거대한 눈알과 박쥐 날개가 달린 비홀더로, 그 거대한 눈동자로 정체불명의 빔을 날려 왔다.

그러나 모든 공격은 진희의 검 앞에서 무효화되었다. 마력을 휘감은 그녀의 검은 마치 빔이 어디서 날아올지 알고 있는 듯 그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가 서 있는 경계선 너머로는 어떤 공격도 통과되지 못했다.

‘굉장하다…….’

청하는 진희의 강함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했을 때의 전투였다. 다수의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모습은 청하에게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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