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6화
“저, 정말이요?”
“응.”
애당초 ‘진희’의 몸도 헌터로 타고난 몸은 아니었다. 바제트의 영혼이 깨어나 그 적성과 사용 방법을 깨달았을 뿐이다.
마나 감응이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오로지 재능에 의존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물론 재능의 한계가 명확한 편이지만, 적어도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성취는 이룰 수 있었다.
그걸 증명하는 것이 바로 ‘기사(Knight)’였다. 호흡법, 수련법만 통달한다면 노력을 통해 범재도 미약하나마 마나를 다룰 수 있었다.
진희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이 아이들은 이미 마력뿐 아니라 이능력이라는 희귀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전투에 사용할 수 없는 능력도 있겠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대단한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방법으로 헌터가 된다면 나와 함께 일해야 해.”
“……부하로 말인가요?”
이번엔 여학생 곁에 있던 통통한 남학생이 물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 부하보단…… 스콰이어(수습 기사)라고 부르고 싶긴 한데.”
이 아이들에게 ‘기사단’이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아직 이르겠지.
“난 파티가 필요하거든. 같이 던전에 들어갈 사람도 필요하고, 관리나 보조해 줄 인원도 필요해.”
기업에선 헌터 파티 하나에 수십 명의 보조 인력이 달라붙는다. 높은 등급의 헌터라면 개인 매니저를 두는 경우도 흔했다. 무기의 수리부터 소모품 관리, 컨디션 케어까지 온갖 도움을 주는 인력이다.
헌터가 벌어들이는 돈은 그만큼 무지막지하다. D급 헌터만 된다고 해도 중상위 계층은 우습게 볼 정도의 돈을 벌 수 있고, C급부터는 명백한 기득권 취급을 받는다.
B급은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이며, A급에 이르러선 돈이 아닌 권력마저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진희가 B급 행세를 하고 다닌다 해도 그녀를 도와줄 보조 인력은 필요했다.
“물론 거절해도 좋아. 자신의 이능력이 헌터나 보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나가면 돼. 후원은 계속해 줄 테니까, 적어도 너희가 성인이 되어 이곳을 나갈 때까진 아무런 걱정 없도록 지원해 줄게. 하지만.”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나를 돕겠단 사람이 있다면, 이곳에 남아. 분명 돈은 많이 벌 거야. 피눈물 나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헌터도 될 수 있겠지. 그걸 감안해도 위험한 일인 것도 맞아.”
미성년자인 아이들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미 세상은 변질된 지 오래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더뎠던 게이트 발생 이전 시대가 오히려 지금보다 생존권이 더 우수했던 시대일 것이다.
괜히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마나 감응력 평가를 실시하는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헌터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전 세계가 동일했다.
“……당신은 강한가요?”
아까의 여학생이다. 그녀의 눈엔 적개심과 함께 열정이 느껴졌다. 진희는 웃는 낯을 가리지 않으며 말했다.
“글쎄, 이렇게 막 사는데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져본 적 없단 이야기겠지?”
“까마귀파의 보스는 정말 당신이 죽였나요?”
“응.”
“……간부도, 모두?”
“맞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보육원에 쳐들어오는 조폭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진희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여학생은 한참을 고민하다, 이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이름은?”
“장소라. 능력은 염파력(Sonokinesis)이에요. 고등학교 3학년이고요.”
“……저, 저도요!”
여학생, 소라가 앞으로 나오자 다른 학생들도 줄줄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민하가 납치되었을 때 자신의 무력감을 통감했다.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했던 이능력들은 진짜 헌터들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속수무책으로 가족을 빼앗겼다. 특별함, 희귀함 따위는 무력 앞에선 조금의 가치도 없었다.
피가 통하는 가족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 폐허 같은 보육원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온 가족보다 더한 인연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진희의 존재란 마치 동화 속의 용사와도 같았다.
우리도 강해질 수 있다. 우리도 헌터가 되어, 가족을 도와줄 수 있다. 그 말에 결심을 한 아이들이 하나둘씩 파티에 자원했다.
그 모습을 은정은 서글픈 듯, 자랑스러운 듯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제발 저 아이들의 장래가 지금보다 행복하길 바라면서.
“……그건 그렇고, 최연소 기사단이겠네.”
어느새 곁에 다가와 하나둘 이름을 적어주는 청하를 보며 진희는 중얼거렸다.
기사단이라기보단 병아리 유치원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괜찮습니다. 아이라도 훈련하면 전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느새 다가온 카온이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너희 종족 방식으로 훈련하면 애들이 곤죽이 될 테니까 너한테 맡길 건 아니고. 진희는 덩치만 커서 시야 가리니까 비키라며 카온을 쭉 밀어냈다.
아이들 스무 명 중 열다섯 명이 헌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나머지 다섯 명의 아이는 아직 갈피를 못 잡는 중이었으며, 실전에 응용할 만한 능력을 가진 아이는 열다섯 명 중 열 명.
이능력의 이름들을 모르는 진희를 위해 청하가 곁에서 한 명 한 명 특징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다 기억 못 해서 ‘네가 알아서 외워라’고 말했다.
“고등학생은…… 세 명 모두 참가네.”
사실 중학생, 초등학생 아이들은 훈련을 해봤자 당장 전력이 될 수 없었다. 그저 장래를 위한 투자일 뿐이지, 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었다. 현대에선 15세만 되면 헌터 면허를 딸 수 있었지만, 진희는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들은 되도록 데리고 다니지 않으려 했다.
반면 고등학생 세 명은 모두 또래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두 명. 여학생은 진희가 말하고 있을 때 계속 그녀를 노려보았던 학생이었고, 남은 두 남학생은 상고머리의 무표정한 남학생, 그리고 조금 통통하고 동글동글한 인상을 가진 남학생이었다.
“이름은 장소라, 김민혁, 정종혁이네.”
장소라, 진동을 조절하는 염파력을 사용한다.
김민혁, 불을 조종하는 염화력(파이로키네시스)을 사용한다.
정종혁, 텔레파시를 사용한다.
소라와 민혁의 능력은 이름만 보면 강력해 보였지만, 그 크기는 기대에 못 미쳤다. 소라는 땅바닥에 손을 얹어 주변의 발소리를 감지한다거나, 주변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수준에 그쳤고, 민혁은 주먹만 한 불꽃을 만드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진희는 초조해하지 않았다. 이능력이란 감정에 따라 성장이 이뤄지는 능력이다. 아이들이 성숙해지고, 감정을 마모하는 것이 아닌 다스릴 줄 아는 성인이 된다면 능력 또한 성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민하가 필요했다.
‘그리고 정종혁.’
통통한 아이가 바로 종혁이었다. 인상이 다소 사나운 소라와 무뚝뚝한 민혁과 달리, 살가운 인상의 종혁은 아이들이 가장 의지하는 원생이라고 했다. 보육원 선생인 은정을 도와서 일을 하는 학생으로, 헌터가 된다고 나설 때도 은정의 눈치를 몇 번 보던 게 기억났다.
지금 이 안의 원생 중 활용도가 높은 원생을 뽑자면 단연코 종혁이었다.
텔레파시. 자신을 중심으로 특정한 사람들끼리 생각을 공유할 수 있으며, 그 범위는 사방 10㎞가량. 서로 허락하지 않은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날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특정한 상대끼리는 동시적 텔레파시가 가능하단 게 큰 장점이었다.
말하자면 머릿속으로 하는 단체 톡(채팅)이었다.
“요즘은 다들 폰을 들고 다니니까, 사실 쓸모는 없지만요.”
종혁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야 동시 통화가 가능한 현대에 있어선 쓸모없는 능력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진희가 생각하기엔 아니었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동시 생각 공유란 엄청난 어드밴티지다. 말을 할 필요도 없이 머릿속 생각이 서로에게 오간다면, 팀원들이 함께 싸울 때 움직임 하나하나가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그 1초의 경합에서 목숨이 날아가는 전쟁에선 이만큼 활용도가 좋은 능력이 없었다.
물론 그 정도 수준까지 아이들이 성장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우선 진희는 고등학생 3인방과 청하만 놔두고, 아이들에게 다시 방으로 돌아가라고 일렀다.
“자기소개…… 같은 건 필요 없겠지. 너희는 서로 잘 알 테고, 내 이야기도 들었을 테니까.”
강당엔 진희와 카온, 청하와 고등학생 3인방만이 남았다. 은정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돌아갔다. 진희는 가만히 아이들의 얼굴을 훑었다. 청하는 묘하게 들뜬 얼굴이었지만, 소라와 민혁은 아까처럼 무표정했다. 종혁만이 어색한 얼굴이었다.
“너희에게 마나 호흡법을 알려줄게. 그걸 아이들에게 교육해줘.”
“마나 호흡법이요?”
종혁이 되물었다.
“응, 뭐, 사실 호흡법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건 없어. 애당초 마나를 느끼지 못하면 그냥 특이한 숨쉬기나 다름없으니까.”
마나 호흡법의 진수는 체내의 마력을 신체 곳곳에 나르는 점에 있다. 마치 산소가 신체 각 기관에 옮겨가듯이, 마력을 산소처럼 의식하여 체내에 끊임없이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마력 신경(회로)은 쓸수록 탄탄해지고 허용량이 늘어난다.
진희가 아직 전성기 때의 자신만큼 못하다 여기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현재의 그녀조차도 마력 회로가 아직 모두 단련되지 않아, 마력을 뽑아 쓰는 능력이 전성기보다 훨씬 못했다.
“마나는 어떻게 느껴요?”
곁에 있던 청하가 가장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건 재능이야. 내가 뭐라고 해도, 직접 느끼는 수밖에 없어. 도움은 줄 수 있지만.”
마나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면 저 바깥에서 성행하는 ‘헌터 각성 학원’이란 사이비들이 모두 대박을 터뜨리고 있었겠지.
마나 감응은 진희로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만 들인다면 확실하게 마나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해결 방법은 게이트에 들어가는 거야.”
“……게이트요?”
모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게이트에 들어간다고 마력이 생긴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였다.
“하지만 일반인은 던전 속에 들어가면 마나 중독에 걸리잖아요.”
“맞아, 인체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포화 수준의 마나를 접하면, 마나 중독이나 탈진에 걸려 죽게 되지.”
“……지금 말장난하나요?”
소라가 고운 인상을 미미하게 찌푸렸다. 일반인이 게이트에 들어간다는 건 곧 자살하겠다고 공언하는 것과 같았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교육하고 있었고, 해마다 갑자기 생긴 게이트에 휘말려 마나 중독으로 사망한 사례도 꾸준히 존재했다.
“그래서 ‘정도’를 조절하는 거야.”
“정도요?”
“응, 주변 마나의 흐름을 일반인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만드는 거지. 이쪽(지구)보다는 높지만, 저쪽(던전)의 생태보다는 낮게 설정해야 해.”
진희의 전생, 바제트가 있던 시절엔 ‘영맥’이라고 하는 곳에서 수련을 진행했다. 농밀한 마나가 주변을 가득 채운 파워 스팟으로, 그 지역은 가문에서 독점하기 위해 숨기거나 아카데미를 설치하여 운영하는 등, 특별 지역 취급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파워 스팟을 찾을 필요가 없다. 던전 안은 그만큼 마나가 가득 차 있었으니까. 대신 그 정도가 지나쳐, 일반인에겐 독일 수준이었지만.
“그걸 어떻게 하는데요?”
“내가 하면 돼. 정확히는 카온이랑 같이하면 되지.”
“……저 말씀이십니까?”
“응. 걱정 마, 하는 방법은 알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