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4화
까마귀파를 털면서 나온 재화들은 이미 이 금액에 수십, 수백 배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 쏘는 거야 일도 아니지, 진희는 가벼운 마음에 돈을 카온에게 건넸다.
팔다리에 마력은 통하지 않았지만, 용인의 괴물 같은 회복력은 그의 몸이 일상생활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 회복시켰다.
태양 빛을 받을수록 회복이 빠른 게 불의 용인의 특징이었다.
카온은 정중하게 그 돈을 받았다.
“……편의점이란 곳에서 식량을 약탈하면 됩니까?”
“……응?”
이게 무슨 소리야. 은정과 진희, 청하가 동시에 카온을 돌아보았다. 키는 멀대같이 커서 모두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갔다 오겠습니다.”
적장의 목을 따 오겠습니다, 같이 들리는 건 착각일까.
“……청하야.”
“……나, 나랑 같이 가요, 형.”
청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아직 몸도 아프잖아요? 제가 같이 들게요.”
“……난 괜찮다.”
아니야, 듣는 내가 안 괜찮아. 괜히 혼자 보냈다가 190㎝ 거한이 편의점을 습격했다 따위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싶진 않다. 진희가 부탁한다며 청하와 함께 카온을 내보냈다.
“하, 하하……. 재밌는 분이시네요.”
“…….”
카온은 현대에 대한 상식이 없는 듯했다. 저 고지식한 종족에게 복잡한 현대 상식을 가르칠 생각을 하니 벌써 머리가 아파 왔다. 진희가 애써 카온에 대해서 잊고 나서, 다시 은정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상황 덕에 긴장이 풀린 듯 한결 편한 표정으로 그녀가 사정을 설명했다.
“……사실 우리 보육원은 법인이 망했을 때, 다른 법인이 대신 맡기로 결정되어 있었어요. 그게 바뀐 건, 민하의 등에 날개가 돋던 때부터였죠.”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게 아니었나요?”
“네. 민하의 등에 날개가 돋은 건 여섯 살 때예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이네요.”
민하는 보육원에 들어올 때부터 조숙한 아이였다고 한다. 어리지만 침착했으며, 때때로 자신의 오빠보다도 어른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보육원 선생님들 모두 민하를 예뻐했고, 다른 원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 가족 같은 행복이 깨진 건 민하가 여섯 살, 청하가 일곱 살 때였다.
민하의 등에서 날개가 돋으며 주변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처음엔 헌터가 아닐까 생각했죠. 여자아이의 경우 마나를 느끼는 나이가 빠르다고 하니까, 여섯 살에 마력을 쓰는 사람이 있다고도 들었으니까요. 이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정식 헌터 인증을 받을 수 있으니, 그때 확인해 보자고 생각했는데…… 민하의 소문이 신림역까지 퍼지게 되었어요.”
당시 까마귀파는 신림역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던 조직이었다. A급 헌터인 두목을 필두로 한 간부진이 순식간에 주변 조폭들을 제압하였고, 어마어마한 자금력으로 4대 조직 중 하나에 이름을 올렸다.
까마귀파는 민하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멋대로 보육원을 점령, 민하의 모습을 살피더니 곧이어 보육원을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본래라면 해체되어 원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다른 법인이 보육원의 존속을 시켜줘야 할 판국이었으나, 어째서인지 까마귀파의 힘으로 보육원은 유지되었다.
은정은 그것이 신림 쪽 공무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게이트가 출몰한 후 한국의 관청들은 별별 말이 나올 정도로 부패 혹은 쇠퇴해가고 있었다.
당장 신림의 블랙마켓이 성행함에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고 있는 게 현 상황이었다. 공권력은 힘이 없고, 돈과 무력을 가진 자들이 득세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는 그녀도 아는 이야기였다. 까마귀파가 다른 직원들을 모두 내쫓고 원생들을 직접 다루기 시작했으며, 작금에 와서는 민하를 억지로 납치하기까지 이른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야기를 듣던 중, 진희는 청하의 첫 만남 때부터 궁금했던 사실을 물었다.
“까마귀파는 왜 민하를 바로 납치해 가지 않고 지금껏 기다렸죠? 처음 보육원을 장악했을 때 데려갔으면 됐을 텐데.”
까마귀파는 범법조직이다. 아이들 하나둘 납치하는 건 일도 아닐 정도로 강력한 조직. 당장 지하 감옥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 수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더럽고 잔인한 일을 하는 무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굳이 지금껏 민하를 납치하지 않고 있었던 걸까? 그들이 보육원을 후원하는 이유야 뻔한데도 불구하고.
“……그건.”
은정은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진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희의 인상은 좋게 표현한다 해도 믿음직하지는 않았다. 대충 묶어서 뒤로 넘긴 검은색 머리카락과 나른한 눈매, 감정을 알 수 없는 메마른 눈동자. 객관적으로 미인이었지만, 그럼에도 살가운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청하와 민하를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은정은 지금껏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입에 담았다.
“……사실 청하와 민하만이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럼?”
“……이 보육원은 원생 모두가 이능력자랍니다.”
은정은 두 눈을 꾹 감고,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가람 보육원은 특별한 곳이었다. 원생이 적지만 활기찼던 이 보육원엔 남모를 비밀이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원생들 모두가 이능력자란 사실이었다.
원장과 몇 선생님만이 알고 있는 이 사실은, 보고조차 되지 않은 원내에서의 비밀이었다.
“한창 게이트가 생겨나고 나서, 헌터들의 무분별한 무력 사용으로 떠들썩하던 때였어요. 원장님은 아이들에게 주변의 이목이 쏠리는 걸 막고자 비밀로 하자고 결정하셨죠.”
게이트가 생겨난 것은 약 20년 전. 그리고 이능력자 원생이 생겨난 것은 약 10년 전이었다. 그땐 헌터 제도가 생겨난 지 5년가량이 흐른 때로, 한참 정책적으로 과도기에 돌입하던 시대였다.
무력을 가진 헌터들의 범죄, 범법자들의 헌터 인증, 국가 전복을 꾀하는 무리의 등장 등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이 시끄럽던 시기였다.
지금의 전과자를 헌터로 인증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도 그때 발의된 것이었다.
근래엔 헌터가 연예인이나 영웅으로 통하지만, 당시의 헌터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그만큼 과학이 통용되지 않는 힘이란 두려운 것이었다. 가람 보육원의 원장은 이를 깨달아 이능력자 아이들의 능력을 숨기기로 작정했다.
이능력이란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되면서 서서히 약해진다는 게 알려진 통설이었다. 마나와 마력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은 이능력의 활용 방식이 마나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 개개인의 재능과 감정에 조절된다는 것을 알아내고, 성인이 되면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이 힘을 잃는다고 정의했다.
초등학생 때 절정에 다다르는 이능력은 고등학생 때 즈음 거의 사라지고 만다.
그렇기에 원장은 시간이 지나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보육원을 나가게 되면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람 보육원엔 계속해서 이능력자 아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유는 모른다. 우연이 겹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의도한 것인지. 누군가 버리고 간 아이들이 모두 이능력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한 은정은 이것이 신의 뜻 혹은 악마의 간계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우리 보육원 아이들은 모두…… 능력을 잃어가지 않았어요. 오히려 점점 강해졌죠.”
청하는 능력을 깨달았을 때 고작 숟가락이나 들 법한 힘이, 지금에 와서는 자물쇠를 조작하거나 아령을 들 정도로 강해졌다. 미약한 차이지만, 사춘기에 들어서서 최고점을 찍고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는 이능력에 있어선 괴이한 일이었다.
“까마귀파는 우리 보육원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 거예요.”
“……까마귀파가 어떻게 보육원에 이능력자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거예요? 민하만 알아본 거 아니었어요?”
“……이곳에서 일하던 분이…… 말했거든요. 그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각성해서, 신림역 쪽에서 헌터 일을 하게 되었죠.”
진희가 다소 싱겁게 지나쳐온 곳이었지만 신림역은 헌터들에게 있어선 위험한 구역이었다. 온갖 범법자, 불법 체류자가 거리를 활보하고, 특별관리형의 위험한 게이트도 즐비한 곳이다. 신입 헌터면서 배짱을 부리던 그는 이윽고 진희가 그랬던 것처럼 질이 안 좋은 무리에게 사로잡혔고, ‘노예’가 되었다.
그제야 진희는 노예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어디로 팔려 가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그게 게이트 안의 던전이란 건 들었어요.”
까마귀파와 그 하수인인 광부 조직을 제외한 두 조직 중 하나가 일꾼으로서 노예를 쓴단 이야기였다. 그야 그렇겠지, 노예를 잡으려 하는 녀석들이 있다는 건 그걸 소요하는 무리 또한 존재한다는 이야기니까.
하여간 노예가 된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 보육원에 대한 정보를 까마귀파에게 이르고 말았다. 어린 나이인 데다 원생들과 친했던 그는 원장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비밀을 남몰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까마귀파는 이 특별한 보육원에 집착하게 되었고, 긴 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민하가 그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맙소사.”
그제야 퍼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진희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입을 가렸다.
그래, 일리가 있었다.
요정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진정시켜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바제트 때에 그녀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괜히 귀족들이 요정을 자제의 놀이 친구로 삼는 게 아니다. 감정을 다독이고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는 힘을 가진 요정들은 아이들의 좋은 친구이자.
‘사춘기를 잘 넘기게 해주는 역할이었지.’
그땐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감정에 의해 조절되는 이능력’이란 소재에 이만큼 알맞은 능력이 없었다.
민하는 가람 보육원 태생이었다. 날개가 나타나기 전부터 요정의 재능을 가진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따뜻하게 다독이는 능력이 있었고, 이는 이능력자들의 능력을 보존하고 성장시켜 주는 특별한 원동력이 되었다.
감정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는 사춘기의 특성을 억제하고, 성인이 되어가며 마모되어 가는 감정을 보듬어주는 소녀의 힘이, 곧 이능력의 발전이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까마귀파는 최근 와서야 그 사실을 눈치채고 민하를 납치하였다.
‘억만금을 줄 거란 이야기가 바로 이거였구나.’
까마귀파의 두목은 요정족의 부산물로 돈을 벌 셈이 아니라, 이 ‘이능력을 성장시키는 힘’에 투자하려고 했던 것이다.
‘……죽이길 잘했다.’
새삼 드는 생각이었다. 만약 진희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는 민하를 이용해 죄 없는 아이들을 이능력자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웠겠지. 힘이 강한 부하는 언제나 환영이라고 했던가. 그건 아이들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청하를 그들의 부하로 취급했던 것만 봐도, 그들의 생각이 어떤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있어요?”
“없다고 생각해요. 까마귀파도 그걸 눈치챈 즉시 민하를 데려간 거라서요.”
“까마귀파가 아닌 사람 중에도 없어요?”
“저와…… 이미 돌아가신 원장님 정도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