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12화
“그래.”
두목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위에 있는 자네의 조직을 나와서 내 조직과 계약하게. 자네가 받았던 금액의 무조건 두 배를 보장하지. 다시 요정을 잡아들이고, 조직원으로서 내 아래 간부가 되면 돼.”
“……두 배라고? 돈이 아주 많은가 본데?”
“물론 자네 정도의 헌터라면 많은 금액을 받고 있겠지만……. 자네가 보는 게 다가 아니야. ‘위’는 더 대단하거든.”
위가 있다, 라. 진희는 순간 성급하게 질문할 뻔한 자신을 억눌렀다.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말할 것이다. 저 두목이란 자의 성격은 파악이 끝났다. 그녀의 예상대로 두목은 알아서 말을 이었다.
“거기까진 모르는 것 같군. 하긴, 결국 자네도 끄나풀일 테니까. ……까마귀파는 어디까지나 하부 조직일 뿐이야. 나는, 우리는 더욱 커질 거야.”
“……거기가 어디지?”
“그건 알려줄 수 없지. 이야기는 여기까지일세. 자네가 조직원이 된다면 모든 걸 알려주지. 우리도 능력 있는 헌터는 언제나 환영이니까.”
더 이상 알려줄 것 같진 않았다. 진희는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이 사람의 위에 있다는 그 조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 자신이 궁금한 건 이 조직의 정체나 하는 일 따위가 아니었다.
“그럼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뭐지?”
“……그 요정이랑 옆방에 있던 남자. 걔들은 대체 어디서 온 거야? 그런 종족 태어나서 본 적이 없는데.”
“흐음. 그건 우연일세.”
“……우연?”
“그래. 가람 보육원을 인수한 건 원래의 계획이긴 했지만, 왜 인간이었던 아이가 요정이 되었는지는 우리도 몰라. 그저 위의 지시가 있었으니 보육원에 접근한 거지. 그 남자의 경우라면…… 그렇군, 게이트에서 발견되었지.”
“게이트라고? 신림에 있는?”
“신림의 게이트 출신인 건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야영하고 있던 걸 우리 조직원이 발견했다지. 피부가 파충류처럼 변하는 인간 괴물이라길래 내가 직접 잡아들였어. 간부들로는 힘들었거든.”
“그럼 결국 저 둘의 출생지는 모른단 거네.”
“아쉽지만 그렇지. 자네가 있는 조직도 그걸 모르고 있었군? 하기야, 최초 발견자인 나도 모르는데 알 리가 없나.”
두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모두 우연이란 뜻인가. 민하가 있다는 걸 알아챈 조직이 보육원을 인수하려 했지만, 민하가 왜 요정이 되었는지, 요정의 출생지가 어딘지는 아직 모르는 듯했다. 용인 또한 마찬가지.
그래, 그렇다면 여기에 더 이상 용건은 없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마음을 정했나?”
“응.”
진희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이지, 자기 실력을 과신해서 자신만만하게 떠벌리는 상대 덕에 일이 쉽게 풀렸다. 상대를 고문할 필요도 없으니 괜한 손을 덜었다.
진희는 의자 곁에 꽂혀 있던 검을 다시 꺼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답은 아닌 것 같군.”
“당연하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섭섭하잖아.”
“하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두목이 다시금 마력을 해방했다. 또다시 흔들리는 지면과 방 안을 가득 채운 마력, 그러나 이번엔 연기할 필요가 없던 진희도 웃으며 맞섰다.
“……!”
단숨에 방 안이 반전한다.
두목의 마력이 가득 찼던 방 안에, 진희의 마력이 전세를 역전하여 사방을 휘감았다.
마나, 마력이란 오묘하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알아볼 수 있지만, 마력의 수준이 동일하거나 비슷한 수준이 되면 서로의 수준을 알아볼 수 없다. 그리고 약한 자는, 결코 강한 자의 힘을 어림잡을 수 없다.
그녀는 두목의 수준을 마력 수준을 진작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반대로 두목은 진희의 마력을 ‘자신보다 아래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진희가 일부러 마력을 드러내지 않았단 사실을 꿈에도 몰랐겠지.
그러고 보니 힘을 숨기고 있던 강자란 표현은 나도 좀 좋아하는 것 같네. 진희가 보란 듯이 웃으며 두목을 바라보았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연기 하는 것도 슬슬 지겨웠거든.”
까마귀 퇴치는 이제 막바지다. 엄습하는 살기와 마력에 두목이 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진희의 검이 사정없이 그를 향했다.
마법사와 기사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리다. 기사의 검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마력을 쓴다고 해도 5m를 넘길 수 없으며, 반대로 마법사는 시야에 들어온 모든 적을 요격할 수 있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기사는 마법사의 후방을 노리거나 같은 마법사로 대항하지 않는 이상, 거리가 있는 경우 물러나는 것이 옳았다.
물론 근거리로 싸움이 전개된다면 기사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마법사가 짠 마법진은 외부 마력 침입에 매우 취약하며, 그렇다고 방어 마법진을 펼치는 순간 공격 마법을 못 쓰게 되어 마법사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그렇기에 까마귀파 두목과 전투는 지극히 진희에게 유리한 전투였다.
“이 계집이……!”
이미 신사의 태도는 집어치운 두목이 손을 휘두르자, 벽에서 튀어나온 돌이 창이 되어 날아들었다.
물과 땅의 마법은 상성이 좋다. 물로서 주변 땅을 다지고 반죽하여 적은 마력으로도 갖가지 공격을 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이 한정되어 있는 땅의 마법이었지만, 물의 마법을 쓸 수 있다면 그 스펙트럼은 한없이 증가한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주변의 토지를 사용하는 마법이란, 다르게 말하면 공격의 내구도 또한 주변 토지와 마찬가지란 이야기였다.
“A급치곤 시시한데.”
“닥쳐라!”
그녀가 시큰둥한 얼굴로 검을 휘두르자, 수많은 돌의 창들이 단숨에 박살이 났다.
아무리 공격을 해봐도 결국 돌이다. 그 힘과 날카로움은 철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물량은 많지만 어지러울 뿐 효과는 없었다.
물론 더 복잡한 마법을 사용한다면 이런 투박한 공격이 아닌 제대로 된 공격 마법을 펼칠 수 있겠지만, 진희는 그렇게 두지 않았다.
“입이 걸걸한 건 당신 같아.”
“카학!”
돌창을 날림과 동시에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려던 두목이 진희의 발차기에 맞고 뒤로 날아갔다. 벽에 부딪히며 기침을 내뱉자 내장이 망가졌는지 핏방울이 섞여 나왔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그러게. 실력 차이가 말도 안 돼. 난 또 워메이지 타입인 줄 알았더니, 전혀 아니잖아?”
대체 왜 마력까지 내뿜으며 강한 척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두목은 딱 봐도 전형적인 마법사(Wizard) 타입이었다. 보진 못했지만 그 마력량만 보면 물론 마법 실력 자체는 뛰어나겠지.
하지만 마법은 엄연히 캐스팅 시간이 존재하고, 이는 초 단위로 목숨이 오가는 기사들의 전투에선 우스울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길래 접근전도 가능한 워메이지인가 싶었지만, 전혀 아닌 듯싶다.
“당신 싸움 경험도 별로 없지?”
“……!”
사용하는 마법 방식을 보니 뻔했다. 두목의 전투방식은 굳이 따지자면 포병이었다. 사위가 안전한 곳에서 막대한 공격력의 마법을 퍼붓는 방식.
근접 전투를 해본 적 없으니 전투에 대한 자신감만 있을 테고, 자신의 파괴력을 알고 있어 상대를 얕잡아보는 버릇만 늘었다.
진희로서도 많이 접해본 사람이긴 했다. 기사를 눈앞에서 상대해 보지 않은 마법사들은 전장의 위험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헌터도 마찬가지겠지. 오히려 전쟁보다도 포지션이 정형화되어 있는 현대의 헌터들이니까.
“별것도 없는 사람들이 꼭 말이 길더라.”
“그 주둥이를……!”
“뭐, 어쩌려고?”
“……!”
다시 쌍욕을 내뱉으려던 두목의 눈앞에 그녀가 다가왔다. 모든 마법을 검으로 파훼시키며 단숨에 코앞으로 다가온 진희의 얼굴에 두목이 말을 삼켰다. 그의 두 눈에 공포가 감도는 게 보였다.
무력감, 절망, 그리고…….
“자, 잠깐만! 돈이라면 얼마든지……!”
비굴함.
“아니, 괜찮아.”
“그……!”
진희의 검이 순식간에 두목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온갖 방호가 걸려 있던 그의 정장 상의는 종잇장처럼 뚫렸고, 가슴팍에 있던 검은 단숨에 그를 꿰뚫고 나갔다.
“…….”
털썩, A급 헌터이며 근방을 호령하던 까마귀파의 두목치곤 허무한 죽음이었다.
뭐라 말을 하려 했는지 피가 어린 입가가 부르르 떨렸지만, 이내 움직임이 멎었다.
진희는 사체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이내 검의 피를 털어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동 삼아 왔던 곳인데 새삼 많은 일이 얽혔다.
* * *
그녀가 방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주변을 뒤지는 것이었다. 중요해 보이는 서류도 좀 챙기고, 금고로 보이는 방의 문을 검을 휘둘러 부숴버린 후 들어갔다.
물론 두목이 챙겨주려고 했던 마정석 또한 모조리 챙겼다. 아까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만났던 도적들의 짐가방은 모조리 버렸다. 이것들을 보니 굳이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역시 현금은 없구나.”
눈에 보이는 대부분이 현물이었다. 금고 안엔 영화에서나 봤었던 금궤나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를 아티팩트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전부 들고 나갈 순 없는 노릇이라, 방구석에 있던 두 개의 서류 가방에 적당히 비싸 보이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이것저것 고르고 있던 도중에, 마침 진열되어 있던 검 한 자루를 발견했다.
마법사란 작자가 검까지 수집했나.
꺼내 보자, 형태는 아밍 소드(Arming Sword)에 가까웠다. 장식이 거의 없는 대신 곧은 검신과 투박한 손잡이가 특징인 이 검은, 기사들의 검으로 애용되는 군용 검이었다.
‘이걸 왜 장식하려고 했지?’
아밍 소드는 실전용 검이지 결코 장식용, 의례용 검이 아니었다. 그간 그녀가 써왔던 검처럼 기성품에 가까운 검이기 때문이다.
“어?”
아밍 소드를 손에 쥐자, 묘한 마력이 손잡이 부분을 겉돌고 있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해서 진희가 직접 마력을 집어넣자 검신에 담긴 마력이 진희의 기운과 반응했다.
“아하.”
몇 번 휘둘러보니 그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변신 되는 거구나, 이거.”
처음 이 검이 뽑힐 대 그 생김새가 아밍 소드였던 것은 진희가 본래 아밍 소드를 자주 사용하던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른 검을 쥐고 싶다고 생각하자, 검은 그 형태를 바꿔 양손검이나 단검, 레이피어까지 갖은 모습으로 변화했다.
마력을 이용해 변신하는 검이라, 확실히 사용은 못 해도 가지고 싶을 만큼 희귀한 검이긴 했다.
“잘 됐다. 쓰던 검도 슬슬 바꾸려고 했는데.”
허리춤에 차던 검을 버리고 새로운 검을 허리에 찼다. 크기는 숏소드 크기로 변신시켰다. 오브(Orb) 형태로 변하게 만들 수 있도록 나중에 주문서를 사야지. 진희는 가장 큰 수확이라 생각하며 바깥으로 나섰다.
복도는 조용했다. 까마귀파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복도엔 진희가 남겨놓은 혈흔만이 자욱했다.
“응?”
일단 가람 보육원이란 곳을 찾아가 볼까. 휴대폰을 꺼내 지도 검색을 하려던 도중, 그녀는 계단 위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마력을 펼쳐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감지에 걸리지 않았다.
계단의 위, 팔짱을 끼고 있던 사내는 바깥 조명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큰 키와 정장을 입고 있다는 특징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