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9화
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지만 탈탈 털어서 대충 눌러쓴 그녀가 중얼거렸다.
“맞아요. 준비는 많이 했죠. ……그 빌어먹을 자식에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빌어먹을 자식이란 아까 패놨던 그 간부를 말하는 것일까. 지금쯤 기절한 상태로 전봇대에 매달려 있을 그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들어갈 때 뭐 더 준비할 거 있어?”
“원래는 여기 드나드는 광부인 척, 일행을 찾아서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있어서 필요 없어요.”
청하는 자신도 마스크를 쓰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배지를 꺼내 들었다. 까마귀로 장식된 매끄러운 금속 배지였다.
“이걸 들고 가면 어지간한 검문은 다 넘어갈 거예요.”
“간부가 가지고 있던 걸 보여주면 더 의심하지 않아?”
“아뇨, 안 해요. 원래 자주 주고받는 거거든요. 심부름꾼, 정부, 측근, 온갖 사람들이 들고 다녀요.”
그건 그것대로 참 조폭다운 헐거운 보안이네. 어디 마피아 영화 같은 걸 참고한 게 아닐까 싶었다.
진희는 알아서 하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이곳에 관해선 자신보다 청하가 아는 게 더 많았다.
청하는 한껏 긴장한 어깨를 몇 번 주무르고, 진희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
검은 장막을 넘어서자, 커다란 돔 안의 시장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아마 과거 시장이었던 곳이었는지 천장엔 플라스틱 돔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고, 도로 곳곳엔 불이 밝혀지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였다.
신림역 근처의 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곳은 질서가 없었어도 활기가 있었다면, 이곳은 모두가 어두운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활기나 웃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광부예요.”
청하가 앞으로 걸어 나가며 작게 말했다.
2구역의 초입 부분은 광부들이 사는 곳으로, 신림역의 역세권과 다르게 온갖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했다.
“역 근처가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에요. 이곳은 정반대고요.”
이곳은 주거지가 없거나, 헌터 등급이 낮은 광부들이 사는 장소로 대부분이 까마귀파의 명령을 받는 부하들이었다.
청하는 솜씨 좋게 사람들의 몸을 피해 골목 깊숙한 곳으로 나아갔다.
진희는 말없이 청하의 뒤를 따랐다. 구경이나 해볼까 싶었지만, 모든 이의 눈에 저급한 욕망이나 절망, 분노만이 담긴 걸 보며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이곳이에요.”
“생각보다 작네?”
“지하가 있거든요.”
까마귀파가 있다는 건물은 과거 주민센터로 보이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입구엔 경비가 두 명 서 있었으나, 건물 내부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뭐야?”
청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이내 태연하게 경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경비와 잠깐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품 안에서 배지를 꺼내 보였다.
경비는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인 후 문을 열어주었다.
“쉽네.”
“자기들 실력엔 자신이 있을 테니까요.”
까마귀파는 신림역의 네 조직 중 가장 무력이 강한 단체다. 그들의 두목을 필두로 간부들은 모두 상위 헌터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휘두르는 폭력은 주변 모든 헌터가 알아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런 근거가 있으니 허술한 보안도 이해가 갔다. 주변에서 자신들을 당해낼 헌터가 없으니, 오만해질 수도 있는 거겠지.
“제 동생은 이 지하에 있어요. ……그래도 같이 가실 건가요?”
“응.”
“……감사합니다.”
마스크도 했고, 날 특정할 수단도 없겠다, 깽판 치기엔 조건이 딱 좋았다.
물론 그녀도 고작 이런 깽판 한 번에 이곳의 저열한 문화가 바뀌리란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이건 그저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재활운동도 겸하는 행위일 뿐이었다. 감사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었다.
그녀에겐 신림역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사명감도, 청하라는 비운의 소년을 돕겠다는 동정심도 그다지 없었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무시하면 오늘 밤 자리에 생각나겠네, 딱 그 정도.
편한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성격은 바제트나, 진희나 마찬가지였다.
들어갈게요, 라는 말을 끝으로 청하는 건물의 지하로 발을 옮겼다. 처음엔 제대로 마감된 계단이었지만, 내려갈수록 어설프게 파낸 울퉁불퉁한 계단이 그들을 반겼다.
잘도 이런 도시 한복판에 이만한 지하를 파냈구나. 마치 지하철역 지하상가를 방불케 하는 넓이에 진희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장은 높고, 체계적으로 나뉜 복도와 주거지가 가장 먼저 보였다.
“……까마귀파 두목은 마법사예요. 그것도 땅과 물을 다루는 마법사죠. 그 두목이 만든 아지트예요.”
“너 진짜 많이 아는구나?”
“…….”
온갖 전등이 천장을 밝히고 있는 거대한 복도, 험악한 인상의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거점에 들어가며 청하가 작게 중얼거렸다.
“……저도 여기서 일했으니까요.”
“…….”
이제 이곳까지 온 이상 진희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청하는 주변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허리를 곧게 펴고 앞으로 걸어갔다. 간혹 청하와 진희를 바라보는 눈은 있었지만, 이내 옷차림과 마스크를 보고 비웃음을 날릴 뿐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하층민을 보는 귀족들과 같은 눈빛이었다.
그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진희에게 딱 붙어서 걷는 청하가 말했다.
“조직원까진 아니지만, 저도 이곳에서 일했어요. 간부의 아래서 부하 노릇을 했죠.”
“왜?”
“……멋지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청하는 자신이 생각해도 부끄러운지 마스크 위의 입을 가리며 말했다.
지금보다 더 어릴 적, 청하는 보육원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까마귀파를 보고 동경했다고 했다.
미디어의 영향이 강했다. 야쿠자나 마피아, 조폭이 나와서 정의를 행하는 영화나 만화를 보며, 청하도 당시엔 ‘착한 조폭이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조폭들과 함께하며 자신도 의로운 조폭, 형제애가 넘치는 조폭이 될 거란 꿈을 꾸기도 했다.
어리석은 일이지만 동시에 그 나이 또래다운 망상이었다. 그러나 망상과 환상은 허상일 때 아름다운 것이란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청하의 그 하룻밤 꿈이 무너진 건, 바로 지하실의 ‘감옥’을 발견한 다음이었다.
“이곳이에요.”
청하는 한숨을 내쉬며 감옥 앞에 섰다. 울퉁불퉁하지만 넓은 복도 사이에 커다란 철창문이 버티고 서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주변엔 아무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의 안을 보고 난 후, 청하는 조폭이란 개념에 콩깍지를 벗었다.
“문이 잠겨 있는데?”
“……괜찮아요.”
청하는 열쇠고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제가 까마귀파에 들어오고 처음부터 간부의 아래서 일한 건, 이 능력 덕분이에요.”
그때, 찰칵찰칵하고 마치 자물쇠가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법이 아니구나?”
“네. 마나를 사용한 게 아니에요. 이건…….”
철컥, 모든 구멍이 맞춰졌을 때, 이윽고 자물쇠가 풀리고 철창문이 열렸다. 청하는 손바닥을 들어서 진희에게 들어 보였다. 그 손바닥 위에서 휘몰아치는 것은, 불투명하지만 형태를 갖추지 않은 정체불명의 기류.
“염동력(Psychokinesis)이죠.”
그 능력은 마나를 이용한 마법도, 술법도 아닌 이능(異能)이었다.
“물리적으로 큰 힘을 쓰진 못해요. 해봤자 이 정도 재주나, 눈앞의 물건을 드는 정도의 힘이죠. 하지만 제법 쓸모는 있어요.”
이처럼 자물쇠를 연다거나, 전자 기기 안의 회로를 망가뜨리거나 복구하는 등, 손이 닿지 않는 세세한 곳까지 건드릴 수 있는 힘이었다.
이를 제법 재밌는 재주라 여긴 간부는 직접 키워보겠다며 청하를 데리고 일을 시켰었다.
철창문을 열며 청하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각오하세요, 이곳은 쓰레기장이니까.”
그리고 자신이 조폭에 대한 환상을 없애준, 그 악랄한 곳으로 진희를 안내했다.
안은 축축하고, 또 더러웠다. 피비린내와 구토 냄새, 배변의 악취가 섞여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코를 막아야 할 정도였다. 필터가 망가진 마스크라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특이한 것은, 복도 중간중간에 커다란 까마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까마귀들은 천장 구석에 둥지를 짓거나, 바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청하와 진희가 나타나자 날개를 퍼덕이며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감옥은 기다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옆에 철창으로 가려진 방이 죽 늘어서 있었다. 사람 서너 명 누우면 자리가 없을 것 같은 작은 감옥에, 드문드문 사람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
그래, 매달려 있었다.
“목을 매달린 사람은 내일 아침에 ‘치워질’ 사람. 다리가 매달린 사람은 ‘아직’인 사람이에요.”
천장에 매달린 사람은 두 가지였다. 목이 매달려 죽어버린 시체와, 발목이 매달려 구토를 내뱉거나 침을 흘리고 있는 이들.
“매달려 있으면 까마귀가 나타나 살을 뜯어 먹죠. 굳이 고문하지 않아도 효과를 보는 곳이에요.”
수많은 까마귀를 키우고 있는 이유였다.
“목을 매단 사람은 더 이상 캐낼 게 없거나, 쓸모가 없어진 이들이죠. 까마귀들은 얇은 살을 좋아해서, 저들의 목을 특히 잘 뜯어먹어요. 시간이 지나면 까마귀가 목을 다 뜯어 먹어 시체의 몸과 머리는 분리돼서 떨어지고, 조직원이 그걸 회수해가죠. 다시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발을 묶어 매달고요. 처음엔 까마귀의 공격에 반항하지만, 이내 힘이 빠져 허벅지부터 천천히 뜯어 먹혀요.”
“잔인하네.”
그리고 추악하다. 현대의 인간도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구나, 바제트 때 보았던 고문 방식이 떠오를 정도로 잔인하고 추악한 방식이었다. 이곳에 인권이란 없었다.
청하는 이를 갈았다.
“까마귀파의 공포는 이런 점에서 나오는 거예요. 잔혹한 처치 방법이 소문이 되어 퍼지니까, 누구도 반항하지 못했죠.”
청하는 애써 감옥을 바라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감옥 문엔 하나하나 마법이 걸려 있었다. 억지로 열면 알람 소리가 울리는 단순한 마법이었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동정심에 문을 여는 순간, 저 밖에 있는 조직원들이 달려올 게 뻔했다.
이윽고 청하와 진희가 도착한 곳은 감옥의 끝, 지금껏 보아온 감옥 방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깔끔한 ‘방’ 앞이었다.
철창문이 있는 건 동일했지만 내부는 사정이 달랐다. 깔끔한 벽지와 침대, 소파와 탁자가 있는 곳은 허름한 여관을 보는 듯했다.
청하는 창살을 손에 쥐며 중얼거렸다.
“……민하야.”
그곳엔 한 소녀가 잠들어 있었다. 거대한 철구가 얽힌 쇠사슬에 발목이 묶여 있는 그 소녀는,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피멍과 울혈로 멍들어 청하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지만, 진희는 한눈에 소녀가 청하의 남매임을 알 수 있었다. 청하와 똑같은 검푸른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진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도 안 돼.”
바로 민하의 등에 매달린 두 날개였다.
노란빛이 맴도는 투명한 날개. 두 쌍의 작은 날개가 소녀의 등에 달려 있었다.
저걸 몰라볼 리가 없었다.
“……요정.”
진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바제트일 때 보았던, 바로 그 요정의 날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