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헌터의 겸직 8화
“좋아, 그럼 너희는 이 정도로 봐줄게.”
진희는 잘 말했다는 듯 말하며 뒤돌아섰다.
“자, 잠깐만요! 이걸 풀어줘야죠!”
묶여 있던 사내가 발버둥 치며 말했지만 진희는 다시 돌아서는 법이 없었다.
“어떻게 잘 풀어보든가. 세게 매진 않았으니까 풀리긴 할 거야.”
“그, 그러다 몬스터가 오면! 죽는다고!”
“그건 네 운이지.”
알아서 잘 살아보렴. 일체의 동정심도 없이, 진희는 그들을 버리고 게이트 바깥으로 나섰다.
* * *
굳이 정의의 사자 노릇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 기사로서의 자세는 갖추고 있지만, 오히려 진희는 불의를 못 참는다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바보 같은 성격을 매우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굳이 까마귀파를 찾아가는 건, 사실 깊이 생각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다.
힘이 있는데 눈앞에 거슬리는 것들을 참아줄 이유가 없다. 딱 그 정도의 생각이다.
그녀에겐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정작 조폭들에겐 대형 사건의 시발점이었다.
“응?”
2구역, 그러니까 공원 주변의 골목길에서 까마귀파의 흔적을 찾아보던 그녀는 마침 실랑이 중인 한 소년과 사내를 마주했다.
“이, 이거 놔!”
“꼬맹아, 그러니까 적당히 나댔어야지, 응?”
사내는 소년의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소년은 어떻게든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고자 손을 물거나, 사내의 배를 발로 차는 등 반항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소년도 헌터로 보였지만 사내의 마력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이다.
난폭한 말투와 허접한 옷차림에 비해, 그가 운용하는 마력의 양은 상당했다. 대충 봐도…….
‘그 박준이란 사람 수준인데.’
B급 헌터에 필적했다. 양아치 정도로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제법 실력 있는 헌터였나 싶었다. 진희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갔다.
“내 동생을 풀어달란 말이야!”
“야, 어떻게 ‘그게’ 네 동생이냐? 너흰 우리랑 거래했잖아. 그럼 우리 거지.”
“내 동생은 물건이 아니야!”
“말 참 안 듣네.”
사내는 웃으며 소년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악!”
“꼬맹아, 세상은 그런 법이야. 돈을 받았으면 뱉을 줄 알아야지.”
“그런 거래…… 한 적 없어!”
“아니, 했어. 너희가 먹고 자는 거 다 우리 돈이었거든.”
짝! 짝! 사내의 힘이 실린 손바닥에 소년의 얼굴이 연신 돌아갔다. 입에 핏기가 어렸지만, 소년은 사내를 노려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마력이 실린 공격이었다면 소년의 머리는 옛적에 목에서 떨어졌겠지. 저건 그저 괴롭히기 위해 때리고 있는 것뿐이다.
“너희가…… 조폭인 줄 알았으면, 돈도 안 받았어!”
“…….”
진희가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사내의 팔을 붙잡았다.
“엉? 아가씬 또 누구야?”
“음, 이 아이 보호자.”
“뭐? 그런 사람이 있을 리…….”
“……가 될 예정.”
사내가 진희를 뿌리치려 했지만, 진희가 손에 힘을 주며 빼자 속수무책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사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물었다.
“이봐,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보호자라니까?”
진희가 누워 있던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양 뺨은 피멍이 들고 멍이 올라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소년도 진희가 누군지 몰라 연신 두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다.
난 운이 좋은 걸까, 진희는 방긋 웃었다. 진희의 영문 모를 웃음을 마주한 소년만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자, 너에게도 선택지를 줄게.”
마치 데자뷰 같았다. 아까 그 던전에서 만났던 도적들처럼.
“뭐?”
“이 아이의 보호자로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거든? 말할래, 아니면 맞고 말할래?”
소년의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아준 그녀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협박스러운 협상이었다.
진희의 예상이 맞았다. 사내는 까마귀파의 간부 중 한 명이었고, 소년은 까마귀파에 당한 피해자였다. 단지 예상외였던 것은, 그녀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까마귀파의 행동이 악질이었단 점이다.
“전 보육원 출신이에요.”
소년, 박청하는 천천히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진희와 청하는 골목길 주변의 한 식당에 들어왔다. 한가한 식당 구석에 앉아, 청하가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청하는 여기 신림에 위치한 보육원에서 나고 자란 소년이었다. 해당 보육원은 헌터 기업이 만든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보육원이었는데, 청하가 어렸을 때쯤 그 기업이 망해 없어져 보육원의 위치가 위태롭게 변했다고 한다.
본래라면 다른 사회복지법인이 이 보육원을 인계하게 되겠지만, 어째서인지 어떤 법인도 이 보육원을 인계하겠다 나서지 않았고, 이내 보육원은 해체되어 원생이 다른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미 가족이나 다름없는 원생들은 헤어지기 싫어하였고, 그때 나타난 게 바로 까마귀파 무리였다고 한다.
그들은 커다란 자본을 가지고 보육원을 일으켜 세우고, 이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부에게서 보육원의 승인을 다시 받아주었다. 그들이 까마귀파의 조폭이란 걸 몰랐지만, 원생과 사회복지사들은 자신들을 돕는 이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보육원의 사무국을 담당하게 된 그들은 일하던 사회복지사들을 갖은 핑계로 내쫓았고, 원생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공무원에게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동안 점검이 나오는가 싶더니 결국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성인만 되면 이 보육원을 나갈 수 있으니 조금만 참자, 그게 남은 원생들의 희망이었다.
그러나 행패는 더욱 심해져, 청하의 여동생마저 그들에게 끌려가고 말았다.
“……왜 조폭들이 보육원 편을 들어준 거야?”
“그건…….”
“그리고 네 여동생을 데려간 이유가 있어?”
“…….”
그건 말 안 해주겠단 이야기군. 식당에서 나온 김밥과 라면을 청하에게 밀어주며 진희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청하가 중요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왜 조폭이 보육원을 일으켜 세워주었는지, 그리고 청하의 여동생은 왜 데려갔는지. 게다가 보육원을 그렇게 방치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청하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보다 많을 테지만, 아무래도 방금 본 사람에겐 말할 수 없는지 그에 관해선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어쭙잖은 거짓말을 하며 속이려 드는 것보단 알지만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무는 게 좋다.
허기가 졌는지 빠르게 밥을 먹는 청하를 보며 진희가 물었다.
“그럼 그 까마귀파인지 뭔지 하는 곳이 어딘지는 알아?”
“……알아요. 저번에 가본 적 있거든요.”
“가봤어?”
“예. ……어쩔 수 없이요.”
이것도 말해줄 수 없는 일인가 보네. 진희는 다시 입을 다문 청하를 보며 얼른 밥이나 먹으란 듯 손짓했다.
“그런데 누나는…… 왜 도와주는 거예요?”
“나?”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진희는 가만히 고민하다 이내 웃으며 말했다.
“안 알려줘.”
너도 숨기는 게 있는데, 나라곤 없겠니.
“……누나가 강한 건 알겠지만, 그래도 위험해요. 아까 그놈은 간부 중에선 제일 약한 편이니까요.”
“그래? 대단하네, 그런 사람이 제일 약하다니.”
말은 대단하다고 하면서 표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태연하게 말하는 진희를 보며 청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그녀의 무용(武勇)은 대단했다. B급 헌터와도 겨룰 수 있는 간부를 단 수 합 만에 기절시킨 건 전투에 일면식이 없는 청하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한 것이었다.
“정말이에요. 거기 두목은 A급 헌터란 소문도 있어요.”
“헤에.”
그렇구나~ 하고 진희가 감탄했다. 무섭다거나 긴장돼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A급 헌터나 되는 양반이 이런 골목길에서 조폭 두목이나 하고 있단 사실이 신기했다.
B급 헌터가 조폭 간부란 것도 우스운 농담인가 싶었는데, A급 헌터까지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B급과 C급의 차이가 천지 차이이듯, A급과 B급의 차이는 감히 그 차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B급에서 날고 긴다고 하는 헌터 열이 뭉쳐도 A급 헌터 한 명의 힘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제 말 믿는 거 맞죠?”
“응, 믿어. 바깥 이야기보다 직접 본 네 말이 믿을 만하니까.”
“……그런데도 도와주시게요?”
청하는 일부러 진희가 까마귀파의 본거지를 알려달란 질문에 대답을 피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건 정말 고맙지만,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하고 나온 참에 다른 사람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이 뻔히 보여 진희는 젓가락을 하나 들어 청하의 이마를 꾹 눌렀다.
“걱정 마. 누나도 네가 생각하는 것보단 강하거든.”
나름 일석이조였다.
인신매매하는 눈꼴신 녀석들도 정리할 겸, 자타공인 강자와 싸울 기회도 만들 수 있다니. 어중간한 던전에서 파밍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이마가 찔려 아파하는 청하를 보며 그녀가 기대된다는 듯 웃었다.
도적들이 알려준 2구역 내에서, 청하는 까마귀파 본거지로 가는 길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너까지 올 필요는 없는데.”
“제 동생이 있는 곳이에요.”
“……그럼 별수 없고.”
진희는 청하의 고집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의 안내는 청하가 맡았다. 미로 같은 골목길을 지나, 폐허가 된 건물의 깊숙한 곳으로 가자 생각지도 못한 입구가 보였다.
마법적 처리를 한 것인지, 건물의 한쪽 벽이 모조리 함몰된 그곳에 검은색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저길 넘어가면 광부와 까마귀파의 본거지가 나와요.”
“와, 진짜 무슨 악당 본거지 같네.”
“여긴 위성으로도, 내비로도 못 찾아요. 폐허 사이에 있는 데다 마법으로 결계가 쳐져 있어서 장소를 모르면 절대 못 찾아오거든요.”
“대단하네.”
조폭질도 이쯤 되면 감탄이 나왔다.
“이곳은 진짜 무법지대예요. 애당초 두 조직 사람이 아니면 들어가서 살아 나올 수가 없거든요.”
“그럼 넌?”
“……전 경험이 있으니까요.”
무슨 경험인지는 모르겠다. 청하는 말하기 싫다는 듯 중얼거리다 이내 입구 주변의 건물 잔해에 가까이 가더니, 뭔가를 들고 나왔다.
“이건 뭐야?”
“모자예요. 그거 벗고 이거 쓰세요.”
마치 방독면처럼 생긴 마스크가 붙어 있는 일체형 모자였다. 쓰게 되면 볼 정도 말곤 얼굴이 드러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생김새도 신기했지만, 그게 바닥에 버려져 있는 이유가 더 궁금했다. 그녀가 물어볼 줄 알았는지 청하가 먼저 대답했다.
“이거 광부 쪽 사람들이 자주 쓰는 거예요. 신림 쪽 던전은 독 안개가 있는 곳이 몇 곳 있어서…… 이렇게 끼고 나가는 걸 자주 봤어요. 그리고 답답해서, 필터가 나가면 그냥 버려버리죠. 던전에서 얻은 물건을 정산하기 직전에 여기다 버리고 가는 걸 봤어요. 이 근방은 대부분이 쓰레기장이니까.”
“준비를 제법 많이 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