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와 헌터의 겸직-7화 (7/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7화

“와, 이런 곳에 여자 신입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가장 앞에 있었던 사내가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섯 모두 옷차림이 더러웠다. 반쯤 해진 가죽 바지나 웃통을 벗고 있는 자도 있었다. 똑같은 점은, 그들 모두가 피로 얼룩진 무기를 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형님, 꽤나 짭짤하겠는데요? 무기도 저거 대여 무기예요. 진짜 신참인가 봐요.”

“그러게, 그래도 이번엔 위에 던져줄 게 좀 있어서 다행이구먼. 신참 헌터 하나 올리면 한 달은 퍼질러 놀 수 있겠어.”

“…….”

이 구시대적인 대화는 뭘까. 내가 지금 한국이 아니라 중세 유럽쯤에 있는 걸까. 그녀는 천천히 자신을 둘러싼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본데.”

형님이라고 불렸던 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가씨, 그러게 여긴 왜 들어왔어. 파티나 맺고 사람 많은 게이트 들어갈 것이지. 딱 봐도 막다른 길에 있는 게이트면 의심했어야지.”

“여기 주인도 있었어?”

“응? 주인은 없지. 근데 텃세는 있거든.”

진희의 물음에 사내가 비듬 어린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여긴 우리가 터 잡은 노가다 촌이라, 이거야. 헌터 약탈은 요즘 벌이가 심심찮아서 안 했는데, 이렇게 보물이 굴러떨어질 줄은 몰랐네.”

약탈이라, 듣자 하니 이 자들은 도적 비슷한 일을 하는 자들인 것 같았다.

전생에서야 자주 봤었지만, 설마 현대에서 이런 뻔한 일을 하는 무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어벙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희가 이내 턱을 괴더니 중얼거렸다.

“아, 아냐, 오히려 잘 됐나…….”

“뭐라 중얼거리는 거야? 아가씨, 우리 신사답게 일하자. 응? 그냥 가만히 잡히자고. 어차피 아픈 꼴 당하기 싫으면…….”

“그렇네, 아픈 꼴 당하기 싫으면 가만히 잡혀야지.”

“……아가씨 말이 통하네.”

사내가 진희의 대답을 듣고 음흉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잘 보니 미인의 상이었다. 대충 걸쳐 입은 박스티에 청바지, 모자와 마스크였지만 그 사이로 보이는 눈이나 피부가 제법 미인으로 보였다.

한몫 챙길 수 있다, 그런 저질 생각을 품고 다가오던 그는.

“자.”

“어?”

무릎이 꿇렸다.

어느새 뒤로 다가온 진희가 그의 정강이를 차서 무릎을 꿇려버리고, 허리춤에서 검을 꺼내 그의 목에 가져다 댔다.

“다들 입 닥치고 돈 될 만한 거 싹 다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마.”

……이거 대사가 거꾸로 아니야? 그러나 목의 피부를 쓱쓱 밀며 피를 뽑아내기 시작하는 숏소드의 날 때문에 사내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진희는 마스크 너머로도 보이는 환한 웃음을 짓고, 그렇게 남은 네 명의 도적에게 협박을 가장한 협상을 시작했다.

“자, 잠깐!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이긴, 너희가 하려고 했던 거랑 똑같은데?”

진희가 뭔 이상한 소리를 하냐며 비웃으며 말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검이 쓱쓱 움직여, 잡혀 있는 사내의 목의 표피는 점점 더 긁히고 있었다. 사내가 히익히익 하고 소리를 내고 있을 때, 그와 대화했었던 다른 아우가 나섰다.

“그, 그만!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형님을 놔줘, 응? 그냥 보내줄 테니까!”

“그냥 보내줘?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구나?”

진희가 하하- 하고 인위적으로 웃으며 사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좀 씻지 그래, 미끄럽네, 약간의 불만을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너희 나 팔아넘기려고 했잖아?”

“그, 그건…….”

“인신매매하려고 했던 거지? 뭐, 뻔하지. 미인이 갑자기 혼자 나타났고, 딱 봐도 초보인 데다, 이곳은 무법지대. 위쪽에 넘긴다는 말 하는 거 보면, 어디 조폭 같은 놈들한테 사람을 상납하기도 하나 보다?”

“…….”

아니라고 말하기엔 앞서 말했던 저질스러운 대화가 그 증거였다. 그들은 자신을 미인이라고 떳떳하게 말하는 그녀 앞에서 뭐라 반박도 못 했다.

할 말은 있지만, 그렇게 되면 그들의 두목이 목이 잘릴 판국이었다.

인신매매, 노예 매매 같은 건 질릴 대로 질려서 다신 안 들을 줄 알았는데, 설마 현대에서 그런 일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아아, 정말 실망이야.

“히이익!”

“아, 미안. 이러다 곧 죽겠네.”

검이 흔들리자 목에 상처가 더욱 심해졌다. 어떻게든 마력을 이끌어 목 주변을 강화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검은 그런 마력을 모조리 무시하고 파고들고 있었다.

이 검은 기성품 싸구려 검이다. 그렇단 이야기는 이 여자의 검에 담긴 마력이 자신의 마력보다 몇 수 위란 뜻이었다.

사내의 얼굴이 점점 새파랗게 변해갔다. 공포와 절망, 그리고 진짜 피가 없어 머리가 식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협박을 받았는데 내가 왜 너흴 그냥 보내줘? 말했잖아, 무기 내려놓고 돈 될 만한 거 싹 다 내놓으라고.”

“그, 그럼……. 다 주면 형님 살려주는 거지?”

“응.”

도적 떼 주제에 제법 동료애가 강하다. 진짜 도적 수준의 마인드였다면 형님이 죽고 자시고 덤벼들든가 도망갔을 텐데, 진희는 침착하게 협상하려 드는 남성을 보고 작게 웃었다.

물론, 그게 연기란 걸 알면서도.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아, 아냐! 그럼 무기 내려놓을게. 기다려봐.”

사내가 말하자 주변의 동료들도 차분히 무기를 내려놓았다. 정말 느린 몸짓으로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있었지만, 시선은 끝까지 진희를 바라보았다.

그게 포기나 수긍의 눈빛이 아니란 건, 진희도 방금 눈치챘다.

“너희 같은 애들은 왜 꼭 약속을 안 지킬까?”

진희는 한 손은 검을 그대로 든 채로, 반대편 손으로 사내의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제법 좋은 물건이다. 예기도 탁월하고, 끝에는 독까지 묻어 있었다.

진희는 그것을 뽑자마자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왼쪽을 향해 던졌다.

“컥……!”

단검은 나무의 건너편, 이쪽을 향해 활의 시위를 당기고 있던 한 사내의 목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거의 50m는 될 정도로 먼 거리였지만, 그녀의 투척은 정확했다.

“허억!”

뻔했다. 이 녀석들은 두목이 사로잡힘과 동시에, 아까부터 숨어 있었던 동료를 통해 기습하려고 했던 것이다. 협상하는 척 시간을 질질 끌며 활로 요격할 생각이었겠지. 말하자면, 그들이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면 별수 없지, 안 그래? 기회를 줬는데 걷어찼으니까.”

“그, 그만! 기다려! 우리가…….”

사내가 뭐라 다시 말하려 했지만, 이미 진희의 검은 깔끔하게 허공을 그었다.

피를 내뿜는 두목, 비명을 내지르는 사내를 보고 진희가 다시 말했다.

“자, 돈 될 만한 거 내놔. 목숨은 덤으로 가져간다.”

진희의 메마른 검은 눈동자가 매끄러운 호를 그렸다.

그녀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현대의 진희가 어떻든, ‘바제트’는 기사였다.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자르고, 사기를 치면 혀를 자르며, 사람을 죽이면 마찬가지로 사형을 당하는 곳에서의 기사.

그곳에서 노예매매상은 곧 사형이었다.

* * *

그녀의 아버지가 바제트가 무술의 재능이 있음을 눈치챈 것은, 그녀가 아직 사교계에 데뷔도 하지 않은 어린 나이일 때였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제국이 혼란한 이 시기에 그녀를 전선에 세우고 싶지 않았고, 이내 바제트에게서 무술을 멀리했다. 하지만 천재의 재능이란 것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었다.

‘아가씨는 정말 어른스럽네요.’

바제트에겐 놀이 친구가 있었다. 요정족 소녀는 대대로 아이의 정서 발달을 위해 귀족의 놀이 친구로 자주 선택받던 상대였다. 요정족이 내뿜는 기운엔 아이들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다소 어른스러웠던 바제트를 항상 곁에서 보필하며 놀아주었던 그 요정족 소녀는, 어느 날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당하고 만다.

바제트가 무술을 배우겠다고 용병 길드를 들락거리던 때였다. 자신의 무술 재능을 깨달은 그녀는 용병 길드에서 검술 스승을 찾아 몰래 저택에서 탈주하던 버릇이 있었다. 그녀를 곁에서 보호하고 따라다니던 것이 요정족이었다.

하지만 몸을 숨기고 바제트를 지켜주던 요정족은 지나가던 노예 상인의 눈에 띄고 만다. 특수한 아티팩트로 무장한 그는 요정족을 납치하여 도망쳤고, 뒤늦게 그걸 깨달은 바제트는 친한 용병들과 함께 상인을 추적했다.

도착했을 때, 이미 요정족은 노예의 인장이 등에 박힌 후였다.

용병들이 노예 상인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있을 때, 바제트는 유일한 친구였던 요정족을 가슴팍에 안고, 우는지 웃는지 모를 표정으로 노예 상단 상단주의 목을 베었다.

그때가 바제트 나이 일곱 살.

검으로 사람을 처음 죽여 본 나이였다.

* * *

“자, 그럼 말해봐. 사람 사준다는 조직이 어디야?”

“…….”

진희는 딱 두 명을 남겨두었다. 도적들을 모두 참수한 그녀는, 남은 두 사람을 나무에 묶어두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로프를 사용해 꽉 묶고, 모든 무기를 빼앗은 그녀가 물었다.

“알려주면 이 정도로 봐줄게.”

이 정도? 지금 이 정도라고 했나? 한 사내가 이를 악물고 진희를 노려봤지만, 이내 태연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양 손목은 신경 안, 마나 회로를 모두 잘린 상태였다. 병원에 가면 회복은 할 수 있겠지만, 비인증 헌터인 그들이 합법적인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2구역에 있다.”

“있다?”

“이,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니, 신림의 게이트는 거대한 4개의 조직이 나눠서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헌터와 비인증 헌터 둘 다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상업의 중재와 거리 관리를 맡고 있는 ‘역전 조직’.

본래 있던 조폭들을 중심으로 뭉쳐진 무력 조직, ‘까마귀파’.

생계를 위해 뭉친 비인증 헌터들의 파밍 조직, ‘광부’.

마지막으로 외부 기업들의 비공식적 조합인 ‘컨테이너’.

“호칭 좀 단결하지. 외우기 힘들게.”

중립적인 조직이 역전 조직이고, 불법적 일을 하는 깡패는 까마귀파, 먹고 살기 위해 뭉친 광부, 그리고 숟가락 좀 얹어보려는 기업들의 컨테이너 이렇게 네 조직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까마귀파와 광부라고 했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 하는 광부는 까마귀파에게 온갖 것들을 팔아 재꼈고, 그중에선 몬스터나 아티팩트, 심지어 사람도 있었다.

나무에 묶여 있는 이들도 광부 소속이었다. 이곳처럼 몬스터 리젠이 잦은 던전에 자리를 잡아, 나오는 부속품들을 까마귀파에게 파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그러다 가끔 진희처럼 초짜 헌터나 외부 헌터가 들어오면 납치해서 판다고 말했다.

‘사람을 샀다면, 어딘가 팔 만한 판매처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진희라도 거기까지 예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대충 윤곽은 잡혔다. 까마귀파라고 하는 조폭들은 분명 나머지 두 조직 중 하나에 사람을 매매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 헌터들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런 블랙마켓은 소비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그녀가 들은 것 이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있겠지. 물론 그걸 사사건건 신경 쓸 만큼 그녀는 세심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