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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6화 (6/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6화

“네, 그렇군요.”

“박준이란 헌터 참 강하죠? 금강 기업에서도 제법 고속 승진을 한 헌터예요. 태생 B급이긴 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만큼 우직하고 강한 사람 별로 없죠.”

“그래 보이더라고요.”

“창술도 기가 막히고요.”

“네에.”

“…….”

진희의 대답이 성의가 없음을 안 걸까, 사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진희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팔짱을 낀 채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던 진희가 사내의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건조한 눈동자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겠군. 사내는 단숨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테러범들 사체를 보니까, 창으로 입힌 상처가 그다지 없더군요.”

“…….”

“마력을 사용한 공격엔 화상이 생긴다거나, 단면이 깔끔하다거나, 특유의 자국이 남게 마련이죠. 마치 총의 탄흔처럼 말입니다.”

“…….”

“하지만 사체에선 마력의 흔적뿐 아니라, 검의 흔적이 보였어요. 두께가 20㎜, 세로 길이가 5㎝ 이상. 깊이는 15㎝. 창으로는 낼 수 없는 ‘찌르기’ 형태죠.”

찌르기라, 아마 석궁을 쓰던 적의 두개골에 검을 박아 넣었던 적이 있었지.

흥미롭다는 듯 웃는 진희에게 사내가 마지막으로 말을 보탰다.

“마침 그 자리에서 검을 쓰는 사용자는 진희 씨, 당신밖에 없습니다. 공교로운 일이죠?”

“이름.”

“……예?”

“제 이름을 알고 계셨네요.”

진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싶어 인상을 찌푸리려던 사내는, 이내 진희가 자신의 이름을 모르고 있겠구나 싶어 대답했다.

“저번에 평가실에서 들었으니까요. 아, 제 이름은 신현성입니다.”

“신현성 씨군요.”

“네.”

“경찰이신가요?”

“……아뇨.”

정확히는 경찰과 관련된 직종, 혹은 헌터를 관리하는 직종에 있는 사람이겠지.

이 시각에 경찰서에 있는 점이나, 국가 기관인 헌터 센터에 버젓이 있던 저번을 생각하면 뻔한 일이었다.

진희는 현성의 가슴팍에 있는 마나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마나홀의 크기가 곧 실력은 아니지만, 그의 홀 크기는 저번에 보았던 박준이나 나윤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진희로서도 실력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재밌는 사람이네, 진희는 방긋 웃었다.

“그렇다면 제가 취조당할 이유는 없네요?”

“…….”

취조, 확실히 마지막에 와선 살짝 떠본다고 했던 말이 점점 과격해졌다.

그가 대답할 말을 못 찾자, 진희는 팔짱을 풀고 복도 벽을 몇 번 두드렸다. 노크하듯이 똑똑 두드리자, 현성의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이 여자, 알고 있다.

“굳이 이렇게 귀찮은 짓까진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알고 있었군요?”

“뭘요? 굳이 복도에 사람을 물리는 결계를 친 거? 아니면 박준 씨한테 물어도 만족스러운 대답이 안 나와서 나한테 찾아온 거?”

“하, 참.”

현성이 머리를 벅벅 긁더니, 웃었다. 아까처럼 상냥한 웃음이 아니었다. 입술이 뒤틀리는 비죽이는 웃음을 짓고선 천천히 말했다.

“선수라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괜히 돌려 말하느라 진만 뺐네.”

“그러게요. 차라리 처음부터 정직하게 물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 덕분에 기분이 좋진 않다. 진희가 웃는 낯으로 손가락에 힘을 줘 벽을 다시 한번 두드렸다.

콩콩 소리가 나던 벽에서 별안간 폭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성이 쳐놨던 결계가 박살 났다.

하급 주술이라지만 현성이 거미줄처럼 엮어놓은 이 결계는 수준급의 헌터도 알아차리기 힘든 염인(厭人) 결계였다. 일반인이 들어오기 싫어지고, 내부에 있는 사람은 허락 없이 나가기 번거로워지는 일종의 환술이었다.

그것을 억지로, 마력을 밀어 넣어 무식한 방법으로 깨뜨린 그녀가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다음에 올 땐 선물이라도 들고 오세요. 그럼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여기서 해명 안 하시면 전 계속 의심할 텐데요.”

“하시든가.”

진희가 손을 어깨 너머로 휘휘 저으며 걸어갔다.

“……기찬 여자구먼.”

마력을 이용해 결계의 잔해를 말끔히 지운 현성은, 진희가 경찰서의 출구를 열고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진희가 테러 집단에 연관된 사람이 아닌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의 업적마저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돌아가는 그녀를 테러와 연결 짓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숨기고 있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판별해야 했다.

“확실히 B급은 아닌데 말이지.”

B급 중에선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 박준마저도 쩔쩔맸던 테러 상대를 물리쳤다. 전투 상황이 어땠는지 몰라도, B급 헌터를 상처 입히는 적을 일도양단하는 수준이라면 적어도 A급이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이 결계를 단숨에 알아채고 파훼할 정도의 마력 구현력이라.

“……조사를 좀 해봐야겠네.”

그 순간. 여우와 같은 인상의 그는, 정말로 둔갑이라도 쓴 것처럼 경찰서에서 사라졌다.

2. 까마귀 퇴치

집에 온 진희는 다음 날, 바로 게이트를 찾아 나섰다.

박준이 한동안은 잠적하고 있으라 연락이 왔었지만, 모자 뒤집어쓰고 마스크 쓰면 되겠지 하며 검 하나 달랑 들고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검도 바꾸긴 해야겠어.’

잠깐 썼는데 날이 군데군데 망가지고 말았다. 하기야 날붙이 간의 싸움이었고, 피가 묻었는데도 제대로 관리를 안 했으니 기성품 검의 날이 성할 리 없었다. 심지어 어제 적들의 무기는 그녀의 검보다 훨씬 좋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돈을 좀 벌어둬야겠다 싶었다.

박준이 보상금을 보내준다고 해도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고, 원래 잠깐 일했던 회사에서 받았던 월급도 거의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아온 곳은 신림역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나름 박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은 딱 ‘진희와 같은 사정’의 사람이 많았다. 말하자면, 신상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의 중심지란 뜻이다.

“……사람이 많네.”

검은색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리며 진희가 중얼거렸다. 신림역의 다리를 넘어 구석으로 들어가면, 과거엔 중국인들의 가게가 많았던 골목이 나온다.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던 이곳은 잦은 게이트 출몰로 인해 일반인들은 거의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높은 등급의 게이트는 그다지 없었으나, 가끔 게이트 바깥으로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특별관리형’ 던전이 자주 생성된 탓이었다.

던전의 종류는 크게는 ‘일반형’, ‘특별관리형’, ‘비 관리형’의 셋으로 나뉜다.

그중 특별관리형은 게이트 안쪽의 존재가 가끔 지구로 튀어나오는 매우 위험한 유형을 뜻하는데, 신림에는 유독 이런 게이트가 많았다.

자연적으로 일반인들은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헌터들의 유입은 늘었다. 다른 안전한 던전들과 달리 위험성은 높았지만, 게이트가 많은 탓에 동업자들끼리의 경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신림에 출입하는 헌터들은 곧잘 이곳을 노다지라고 불렀다. 나라가 관리하기엔 너무 많은 게이트의 출몰, 공급(던전)과 수요(헌터)가 제법 잘 어울리는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 헌터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진짜 무법지대네.’

이곳은 대기업과 국가마저도 포기한, 서울 내 가장 대표적인 ‘비인증 헌터 사냥터’이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식 헌터는 전과 기록이 없는 사람만이 될 수 있다. 공식 헌터가 된다는 것은 세금을 부과함과 동시에 헌터의 복지, 장비 대여, 헌터 기업 입사 등이 가능해진단 뜻이고, 당연히 대외적으로 융숭한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전과가 있거나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자들, 뒤가 구린 일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공식 헌터 인증을 받지 못했고, 받지도 않았다.

헌터 자격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전과 수준의 범죄를 일으킴과 동시에 징계를 받고 그 자격을 취소당한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이곳, 신림이었다.

과거엔 식당 노점이 세금을 내지 않고 불법 장사를 했다면, 현대엔 비인증 헌터들이 바로 그런 장사를 이곳 신림에서 하고 있었다.

“자자, 자이언트 멘티스 다리 껍질 팔아요! 갑각 장비론 이만한 게 없어!”

“복제 마나 회복 포션 단돈 이십만 원! 효과는 모자 마녀의 포션 수준의 5할!”

“파티 찾습니다! C급 마법사분~ 야간부터 오전까지 교대 근무로 사냥하실 분~”

그야말로 시장바닥이었다. 중국 음식이나 식품을 팔던 매장엔 온갖 몬스터의 사체나 불법 무기 따위가 팔리고 있었고, 그녀처럼 얼굴을 가린 사람들은 파티를 찾겠다고 요란이었다.

비인증 헌터에게 있어 신림은 곧 삶의 터전과도 같은 곳이었다.

이곳도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그저 게이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이윽고 주변의 조폭이나 전과범, 불법 체류자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국가마저도 관리하기 어려운 땅이 되어버렸다.

상식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 무리가 점점 모이다 보니, 정작 진짜 헌터였던 자들은 이곳을 차츰 떠나고 말았다. 굳이 뒤통수칠지 모르는 위험한 이들 사이에서 던전을 공략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이곳 신림은 무법지대, 비인증 헌터 사냥터, 블랙마켓 따위로 불리는 곳이 되었다.

본래라면 진희도 공식 헌터가 출입 가능한 게이트로 가볼까 생각했지만, 문득 이곳이 떠올라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어차피 신분도 속이면서 움직일 거라면 이런 장소가 딱 맞기도 했고, 전생에서도 이런 시장을 드나드는 건 한 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태연스럽게 시장을 가로질러, 게이트가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도로 표지판이나 신호등 따위로 간판 표시가 된 게이트들이 골목 구석구석에 존재했다.

어디로 들어가 볼까 고민하던 중, 마침 [주의 : 리젠 잦음]이란 글이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리젠이란 몬스터가 생겨나는 수준을 말하는 것으로, 리젠이 잦단 이야기는 곧 던전 내의 몬스터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단 뜻이었다.

등급은 4등급. 몸풀기론 딱 적당할 것 같았다. 그녀는 게이트로 걸어 들어갔다.

“와, 더워라.”

봄 날씨였던 신림과 달리 게이트 안은 후덥지근했다. 그곳은 정글이었다. 10m는 거뜬히 될 것 같은 나무들이 즐비하고, 바닥엔 온갖 잡초로 걷기조차 힘들다.

기온은 여름 수준에 습기마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괜히 들어왔나 싶었지만, 어차피 들어온 거 좀 더 구경하고 가자 싶어 걸음을 옮겼다.

여긴 어떤 사냥감이 있으려나. 저번 인형 정도는 되어야 수련이 되고 돈이 될 텐데.

그런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

“……?”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다수다.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발걸음을 멈추자, 건너편에 있던 거대한 나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한 나무뿐 아니라, 곳곳에서 걸어 나온 사람들은 그 수가 총 다섯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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