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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헌터의 겸직-2화 (2/191)

기사와 헌터의 겸직 2화

윤수가 패드를 누르자 패널이 천천히 진희에게 다가왔다.

진희가 이쯤 하면 괜찮겠지 싶어 마력을 적당히 끌어올렸다. 뛰어난 기사이자 검의 정점에 있던 그녀에게 마력을 숨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윙윙 소리를 내며 패널이 총 다섯 번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등급은…… 와, C급이네요!”

딱 괜찮은 수준이다.

일반적인 재능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등급이자, 나름 엘리트란 닉네임을 달고 다니는 등급이 바로 C등급이었다.

“시작부터 C급의 상한선까지 감응력을 가지고 계시다니, 잘하면 B급으로 금방 올라가시겠어요. 축하드려요!”

윤수가 환한 얼굴로 말했고 진희는 작게 미소를 띄워주며 고맙다 대답했다.

하지만 이게 빈말임을 잘 알고 있었다. B급에 못 올라가는 C급은 차고 넘치며, 인터넷에서도 C급을 ‘관문급’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뛰어난 재능이 없으면 B급으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희도 C급을 따고 싶었다.

주목받지 않고, 그럼에도 나름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딱 알맞은 등급이니까.

“그럼 가보면 되나요?”

“아, 잠시만요. 이제 제가 확인서랑 평가서를…….”

윤수는 이후 헌터 인증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헌터증은 일주일 정도 후에 우편으로 갈 것이며, 온라인 교육과 게이트 현장 실습을 통과해야만 헌터로서 활동이 가능하다 등등의 이야기였다.

“어디 기업에 소속되어 있으시면 그쪽에서 처리하긴 하는데요.”

“전 혼자라 알아서 할게요.”

헌터 기업에 관심이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굳이 들어갈 필요는 못 느꼈다. 제약을 받고 싶지도 않고, 진희는 뭐든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한 편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은 후 진희는 평가실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던 찰나, 진희가 슬쩍 고개를 돌려 구석을 훔쳐보았다. 마침 이쪽을 바라보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

그는 인사의 의미로 싱긋 웃었지만, 진희는 아무런 반응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미련 없이 평가실을 떠났다.

* * *

“아, 선배 쓰레기는 저 주세요. 나가면서 버릴게요.”

“땡큐.”

윤수는 그의 선배, 신현성에게 다 먹은 과자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저 당번 근무 중엔 이런 방문은 삼가세요. 선배 숨겨준 거 알면 혼난단 말이에요.”

“나도 숨 좀 돌리자. 돌아가면 또 보고서다 뭐다 괴롭히잖아.”

현성이 투덜거리며 하품했다. 그들이 있는 직장은 노동환경이 최악이었다. 이틀을 밤낮없이 일하고 왔더니 주는 것은 산더미의 보고서와 잔소리뿐.

윤수는 이해는 간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럼에도 현성을 도와주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곳에서 쉬면 되잖아요. 방금 오신 손님도 선배 때문에 집중 못 하셨을 텐데.”

“집중을 못 해? 글쎄.”

특유의 비죽이는 웃음을 지은 현성이 윤수가 들고 있던 패드를 뺏어 들었다.

“이거 잘 봐라.”

“네?”

그리고 총 5번 실시했었던 감응력 테스트 수치를 윤수에게 보여줬다. 서진희라는 이름이 적힌 화면 아래엔 C급이라는 결과값이 적혀 있었다.

“이게 왜요? C급 맞잖아요?”

“그 결과를 보라는 게 아니라, 수치를 보라고. 5번 했는데 수치가 똑같지?”

“어, 그러네요.”

“보통 초보자들은 마나를 사용할 때 그 편차가 커. 그래서 테스트를 5번씩 해서 그 최고치를 알아보려는 거지.”

다른 평가자의 수치를 보니 그 차이가 뚜렷했다. 미숙한 초보 헌터들은 편차가 있는 수치를 기록했었으나, 진희의 수치는 값이 완벽히 똑같았다.

“와, 진짜네요.”

“마나를 일정한 수준으로 내뿜는다는 건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야 할 수 있는 일이야. 초보자에겐 어림도 없지. 힘을 숨기고 있는 거야. 일부러 C급을 받으려고 한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분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헌터가 아니었는데요?”

“그렇지. 그래서 재밌어.”

헌터로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수준급인 천재일지, 아니면 모종의 이유로 힘을 숨기고 있던 사람일지.

헌터들 중에도 가끔 등급을 낮추기 위해 테스트를 속이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걸 초임 헌터한테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특이한 사람이네요, 그럼. B급만 받아도 대우가 달라지는데…….”

“무슨 생각이 있나 보지.”

헌터 등급을 높게 측정하도록 위조하는 건 위법이었지만, 굳이 낮은 등급을 받도록 유도하는 건 위법이 아니다. 현성도 그걸 알기에 굳이 진희의 등급을 책잡지 않았다.

“요즘 신인 헌터들은 대단한 사람이 많네.”

“그러게요, 이번 달만 하더라도 B급이 세 명이나 나왔죠? 풍년이네요.”

윤수는 이 평가실을 지나쳐간 수많은 신입을 떠올리며 말했다. 올해는 유독 뛰어난 신입 헌터가 많았다.

저도 노력해야겠어요~ 하며 대화를 끝낸 윤수는 평가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현성은 진희가 나간 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 *

헌터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교육은 양이 제법 많았다.

온라인 교육만 12시간, 실제 던전 답사는 총 3번으로 이루어졌고, 마지막엔 직접 던전 하나를 마무리해야 공식적인 헌터로서 인정받았다.

온라인 교육이야 어찌 넘어가도, 중고등학생들과 같이 답사를 다니는 건 그녀로서도 고역이었다. 중2병과 허세에 찌든 나이 대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상식인이었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작업을 걸어오는 무뢰한도 있었다.

애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 일 덕에 싫어질 것 같다. 진희는 같은 조였던 녀석의 카톡 프로필을 차단했다.

“그럼 준비되셨나요?”

“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파티장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강남역 근처의 5급 게이트 앞이었다. 파티의 인원은 총 다섯 명으로, ‘약초밭’이라는 던전을 돌파하는 게 목적이었다.

“아까 소개했지만 신입분도 계시니까 다시 할게요. 안녕하세요, 전 이번 약초밭 파티의 파티장인 김유진이에요. D급 마법사고요.”

김유진은 전형적인 D급 헌터였다. 3~4급 이상의 던전은 위험하니 도전하지 않고, 5급 이하의 안전한 던전을 생계를 목적으로 드나드는 헌터다.

헌터 중에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생활방식일 것이다.

약초밭 던전은 입장하게 될 시 말 그대로 거대한 약초밭 한가운데에 떨어지게 된다.

보스가 정해져 있는 던전과 달리 약초밭 던전은 상시 개방형 던전으로, 뚜렷한 클리어 기준이 없다. 그저 그곳에 들어가 필요한 약초를 캐고, 가끔 습격해 오는 야생동물과 저급의 몬스터들을 퇴치하는 게 주 임무였다.

던전에서 나는 갖가지 약초는 한 움큼 쥐기만 해도 돈다발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이 던전은 약초의 씨가 마르는 것을 자제하기 위해서 던전 진입을 시간제로 두는 것이 특징이었다.

예를 들어 저번 주에 한 파티가 들어갔다면,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어떤 파티도 입장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다.

딱히 어긴다고 해서 처벌이 있는 건 아니었고, 경비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주변 생계형 헌터들에겐 제법 중대한 사안이었다.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약초에는 손을 대지 마시고 저와 제 친구가 약초를 캐고 있을 때 호위만 해주시면 돼요.”

심지어 약초를 캐는 것마저도 제한을 뒀다. 일명 약초밭 헌터가 아니면 던전에서 약초를 캘 수 없다. 나머지 헌터들은 모두 호위의 목적으로만 던전에 드나들 수 있고, 성과급 같은 제도도 없어서 파티장에게 일정한 보상금액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주변 헌터들끼리 만든 일종의 숨겨진 규칙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임무도 하나의 던전 완수로 봐주기 때문에, 지금의 진희처럼 헌터 공식 인증을 위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별다른 일도 필요 없고, 서울 내에 있다 보니 빨리 갔다 오기도 좋다.

물론 일당이 매우 짰지만 하는 일도 별로 없다 보니 소일거리로 하기도 좋았다. 약초밭 헌터들도 그걸 알기에 신입들의 참가를 매우 기꺼워했다. 김유진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어…….”

파티 다섯 명 중 우호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우선 김유진과 그녀의 동료 한 명은 고정파티니까 놔두더라도, 남은 세 명은 모두 김유진의 말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다. 자기소개를 하랬더니 자기 이름만 말하고 모두 입을 다물었다.

파티의 구성은 이랬다. 파티장이면서 마법사인 김유진과 그녀의 동료이자 연금술사인 김동수.

신입 헌터 서진희.

마찬가지로 신입 헌터인 이시영.

이시영의 뒤에 찰싹 붙어 있는 헌터, 박준.

고정파티인 김유진과 김동수의 등급은 둘 다 D등급이었지만, 진희와 이시영은 신입인데도 C급이었다. 게다가 박준은 무려 B급이다. 파티장이 D급인데 뒤따라오는 파티원이 등급이 더 높은 기이한 상황이었다.

고정파티를 긴 시간 해왔던 김유진은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혔다.

‘서진희란 분은 그냥 공식 인증을 받으러 온 솔로시고.’

어째서 성인으로 보이는 그녀가 이제 와서 헌터가 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녀의 목적이 그저 임무의 완수란 건 잘 알겠다.

그리고 같은 신입 헌터인 이시영도 진희와는 상황이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귀티 나는 것 좀 봐.’

나름 신입 헌터라고 국가에서 임대하는 무료 장비를 끼고 나온 진희와 달리, 이시영은 딱 봐도 고가(高價)의 아티팩트를 몸에 둘둘 두르고 있었다.

외모도 귀공자 스타일이다.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한 가르마 펌에다가 매끈한 피부, 크고 동글동글한 눈동자. 키는 170㎝는 되어 보였지만 얼굴은 아직도 앳되었다. 그리고 뒤엔 박준이라고 하는 B급 헌터까지 대동하고 있다.

뻔했다. 이시영은 부잣집 아들내미다. 귀한 집 자식이 헌터 인증받겠다고 나온 거고, 그 호위로 무려 B급 헌터가 따라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5급 던전에 B급 헌터가 오냐…….’

B급 헌터가 1시간 숨 쉬면 김유진이 하루 약초 캐내서 판 값과 비슷할 것이다. 그만큼 B급과 D급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그런 B급이 굳이 C급 뒤에 붙어왔다면 이유야 뻔하지.

“그, 그럼 들어갈게요~ 모두 스마트 워치는 켜셨죠?”

“네.”

대답은 진희에게서만 나왔다. 김유진이 식은땀을 흘리자, 곁에 있던 김동수가 그냥 가자고 어깨를 두들겼다.

헌터의 기본 장비 중 하나인 스마트 워치는 던전 안에서도 직접 신호를 뽑는 장치로, 서로의 위치나 입구의 좌표 등을 기록해 주는 필수 장비였다.

진희와 박준은 끼고 있었으나, 이시영은 끼고 있지 않았다. 요즘 애들이란. 김유진은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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