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오늘은 지호의 스물한 번째 생일이었다. 바쁜 사람들이 모처럼 시간 내어 모이기에 좋은 날이었다. 다들 호들갑 떨며 생일 축하한다고 건네는 선물들이 다 부평 각성자 연합 주문 제작 물건들이라 사람들 생각하는 게 왜 이렇게 똑같냐고 어이없어하며, 지호는 선물들을 한쪽에 놓아두었다. 사람이 많으니 양이 상당했다. 소란스럽게들 들어오니 넓은 거실이 꽉 찬다.
스무 번째 생일은 정신없이 넘어가 버려서 올해는 꼭 챙기자고, 다 같이 맛있는 것도 먹고 시끄럽고 요란하고 행복하게 보내자는 지윤의 계획 덕분에 많이들 모였다. 시간들이 맞아 다행이었다.
분주하게 삶을 살다 보니, 어느새 보현을 잃은 지 일 년이 지났다.
지호는 웃을 때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매일 녹색 균열을 들여다보고 있고, 간혹 도시로 뛰어드는 정신머리 없는 괴물들을 사냥하며 헌터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균열 도시를 지키는 하나의 상징이 된 건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박찬민 지부장과 김동주 소장이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둘은 으르렁거리면서도 자리에 끼었고, 좀 늦게 도착한 이주리 헌터는 동생 상태가 꽤 좋아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느슨한 웃음을 보였다. 선물을 들고 찾아온 신다은 헌터는 그의 파트너가 너무 바빠 자기만 찾아올 수 있었다며 울상이었다. 준영은 이 사람 저 사람을 다 소개받으며 반쯤 혼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간략하게 소개했지만, 김동주 소장만큼은 제대로 인사 나눌 자리를 마련해 준 지호는 한마디 덧붙였다.
“특수반 소집 해제되고 나서 반장님, 아니 소장님이 헌터들 정신적 트라우마 자체를 정신계 능력으로 해결해 주는 치료소를 세우셨거든요. 이게 정신과 상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본질적인 문제다 보니까 도움은 많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준영 씨도 혹시 균열에서 정신계 괴물하고 부딪치고 나면 꼭 치료소 들러요.”
“센터란 이름은 헌터들이 부르기에 헷갈릴 것 같아서 이렇게 붙인 거야. 일반인 진료도 받으니까 아는 사람 중에 균열 피해자 있으면 홍보나 좀 하든가.”
동주가 말을 툭 던지며 음식을 우물거리자 찬민은 왜 자기 예약은 안 받아 주냐며 툴툴거렸고, 동주는 이 정도로 환자 가려 받아야 치료소 직원들도 좋아할 거라며 옆 사람에게 대놓고 이야기했다. 애초에 정신계 능력자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찬민이다 보니 여전히 미운털이 다 가시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쪽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임시 헌터들 교육 담당인 차나연 헌터는 지호네 집에서 준영을 마주치자 왁 소리와 함께 놀랐다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소를 착각한 줄 알았다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 해를 기념하기 위해 모인 날인 것을 준영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의 생존자들을 비롯해 안면 있는 몇 사람도 자리에 참석했다고 했다. 일부는 그날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모임을 거절하기도 했다고.
죽음은 한순간이지만 삶은 계속 이어진다. 여러 죽음을 딛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음 해에도 지호 생일에 모여 생존을 축하하자고 인사했다.
본디 친구들끼리 소박하게 지낼까 하다가 지호를 위해서라도 다 같이 모이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냈던 소민은 잘했다며 여기저기서 주는 술에 잔뜩 절어서는 쓰러지고 말았다.
찬민은 이동 능력자는 술에 취해서는 안 된다며 알코올 때문에 일어났던 여러 사고를 나열하는 주사를 부림으로써 모두의 빈축을 샀다. 미성년자도 있는데 술 자제하라고 소리치는 지호 목소리는 저 멀리로 묻혔다.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러운 저녁이 저문다.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분위기를 띄우느라 지쳐 버린 지윤은 한쪽에 처박혀 잠들었다. 가뜩이나 균열 도시에 넘어와 바짝 긴장한 상태였던 준영은 그 들뜬 분위기에 휩쓸렸다. 지윤의 텐션을 따라가려다 자정도 안 되어 먼저 뻗어 버린 준영을 보며 젊은 애가 벌써 체력이 없다고 쓴소리를 하던 나연의 혀는 진작 꼬부라진 지 오래였다.
주리는 헌터 일을 그만두었고, 덕분에 출입 허가받느라 힘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주원의 상태를 전해 들은 동주는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긴 할 테지만 나을 수 있을 거라며 주리를 위로했다. 치료소에서 치료를 권하기도 했지만, 주원이 거절했다. 워낙 치료 대기자가 많았고, 그중에는 주원 때문에 환자가 된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불편함보다 죄책감이 더 커 보이는 모습에 동주는 그 이상 권하지 않았다. 늘 열려 있을 거라는 말만 남겼을 뿐.
정신계 능력에 지나치게 오래 노출된 후유증은 균열 피해 후유증 중에서도 중증에 속한다. 그나마 팔다리 성한 게 어디냐고 웃은 주리는 잠시 바람 좀 쐬겠다며 일어서는 지호를 보며 다른 이에게 눈짓했다. 승찬은 얼른 지호를 따라 베란다로 나왔다. 바람이 찼다.
“오늘 음식 하느라 진짜 고생했겠다. 사람도 많잖아요.”
“오늘을 위해 굽기만 하면 될 것들, 데우기만 할 것들 어제부터 준비했잖아요. 집주인께선 그래서 만족하시는지?”
“그럼요. 정말 맛있었어요. 덕분에 훨씬 좋았네요. 균열 도시에도 이것저것 많이 생기고 그래서 내년에는 아저씨 고생 안 하고 같이 놀 수 있으면 좋겠다.”
“제가 음식점 하나 차릴까 봐요. 균열 도시에 소방서 생기기도 전에 식당부터 생기겠네.”
“저 단골 할게요. 예약해야겠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했다. 지호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승찬에게는 서늘할 바람이라, 지호는 습관적으로 겉옷을 벗어 승찬에게 건넸다. 그는 익숙하게 옷을 받아 어깨에 걸쳤지만, 당연히 사이즈가 맞진 않았다. 대충 얹어 놓은 것에 가깝게 옷을 어깨에 덮은 승찬은 고개를 기울였다.
“오늘 모이길 잘했죠?”
“별것 아닐 줄 알았는데, 괜찮네요. 제 반대를 반대해 줘서 고마워요.”
승찬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술 취한 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유리창을 삐져나오는 와중에, 신체 계열 능력자 한 명은 멀쩡해야 한답시고 금주하고 있던 주리만 맨정신으로 주취자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승찬은 베란다 한쪽에 잔뜩 쌓인 술병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지호 씨 옛날 생각나요? 이제 술 마실 수 있는데, 말려 줄 헌터들 있을 때 한잔 해 볼래요?”
“지금 분위기 보니까 제가 말려야 할 판인데요? 제가 맛 가서 날뛰기라도 하면 도시 다 망가져요. 그만한 재앙이 또 없을 거야. 그럼 또 귀찮은 기자들 몰려와서 변이자 때문에 생긴 재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며 마이크 들이밀 테고…….”
지호는 하하, 하고 장난처럼 이야기를 이었다. 승찬은 거기까지 생각 못 했다고 사과했으나 지호는 별것 아니라며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요. 그런 것들 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실은 돌아온 언니가 그 에너지들 때문에 변해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미리 선수 친 거예요. 그리고 만약 멀쩡히 돌아온대도 도준우 그놈이랑 함께 있을 수 없다면 슬퍼하겠죠. 그래서, 언니를 위해서.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덕분에 환이도 혜택받는걸요. 늘 고마워요.”
“에이, 그건 걔가 열심히 한 거죠. 속성으로 헌터 교육받고 자격증 딴다고 얼마나 다른 분들 들볶았는데. 그리고 도시 외곽에서 건설 인부들 지키고 경계하며 싸우는 거 얼마나 어려운데요. 항상 기특해요.”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지호는 보현을 생각한다. 함께한다면 더 행복하겠지.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또 말도 안 되는 농담 던지면서 분위기 싸늘하게 하곤 혼자 좋아했을 텐데, 하는 생각들.
지호는 무릎을 세운 채 쪼그리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빛나는 도시. 부근에 쌓인 이형 에너지만으로 자가발전되는, 그러나 무수한 위협에 노출된 도시의 위태로운 모습이 보였다.
그 어둠을 뚫고도 지호에게는 도시 외곽에 경비를 서는 헌터들이 또렷이 보였다. 지호는 조금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끔 도준우가 보는 풍경을 봐요. 진짜 낯설고 이상한 곳인데 사람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요. 다행스러운 일이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걸려 제게 전해지는 그 풍경 속에서 말이에요. 며칠 전에 언니가 눈을 떴더라고요.”
승찬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호는 기쁨을 숨기지 않는 얼굴로 고갤 끄덕이며 코를 문질렀다.
“눈을 뜨는 걸 본 게 엊그제예요. 우리 일 다 끝나고 난, 일 년쯤 된 날이었던 것 같거든요. 정신을 차렸으면 회복할 테고, 그러지 않아도 돌아올 방법을 찾겠죠. 이제 제 걱정은 균열을 연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서 저게 닫히면 어쩌나 하는 일인데……. 매일 보는 바로는 당장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균열 경계를 넘어갈 때 시간 흐름이 뒤틀린다면 방법을 찾아야겠죠. 며칠도 아니고 몇 달, 몇 년을 건너뛰게 된다면 살아 있는사람은 넘어오지 못할 거예요. 그 방법을 찾으려고 금 박사님 쪽에 연락을 넣어 놨어요. 양 박사님은 좀……. 그, 좀 시끄러우니까.”
여전히 얄밉기도 하다고 중얼거린 지호는 다행이라며 축하를 건네는 승찬에게 고맙다고 웃으며 허리를 세웠다. 쑥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이런 매일을 지키고 있으면 언니가 돌아오겠죠. 아니면 제가 찾으러 갈 수도 있고요. 그때쯤 되면 변이자들이 모두에게 익숙해지고, 게이트를 넘어서 다시 원래 집에 갈 수 있게 될지도 몰라요. 우리도 지금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알 수 있게 되겠죠. 지금도 연구실 불 안 꺼지고 매일 야근들 하는 거 보면 참 대단하다 싶어요. 각성자 아닌 분들이 더 많은데.”
승찬은 대답 없이 지호의 이야기에만 귀 기울였다. 술 대신 물 한 병을 뜯으며 지호는 웃었다.
“우리 내년에도 또 모여요. 그 후년에도, 매년요. 꼭 제 생일 아니어도 날 잡아서 다 같이 보면 좋겠어요.”
그러자는 대답이 안에서 들린 웃음소리에 묻혔다. 그러나 지호는 분명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생긋 미소 짓고는 창문을 닫았다.
“바람 더 쐬면 아저씨 감기 걸리겠어요. 들어가서 치울까요? 그리고 다들 자라고 이불도 좀 꺼내 주고요.”
“그래요. 어, 그렇지. 이 말을 안 했던 것 같은데. 생일 축하해요, 지호 씨.”
아직 열두 시가 지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호는 말로 안 해도 오늘 수고해 준 덕분에 다 알고 있지만, 말로 해 줘서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종종 슬픔에 잠겨 있던 때와 달리 아주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술자리가 슬슬 파장 분위기였다. 다들 일 마치고 돌아왔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호는 잠든 이들을 위로 띄운 다음 아래 쓰레기를 싹 쓸어 내고 빈자리마다 이불을 펴 한 명씩 한 명씩 기절한 이들을 던져 넣었다. 먹은 자리를 함께 청소하며 집주인과 세입자는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놀라워했다. 하기야,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시끌벅적한 밤이 지나간다.
날이 밝아, 다시 출근해야 하는 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났다. 오늘 쉴 거라는 몇몇 이들은 도로 곯아떨어지고, 준영은 자기가 술에 이렇게 약할 줄 몰랐다고 쩔쩔매며 변명했다. 지호는 크게 웃으며 자긴 사실 술을 아직 마셔 본 적이 없다고 속삭여 주었다.
“저, 여기 입주 신청 넣었어요. 이지호 헌터님이 허가해 주시면 금방 승인 날 거라고 그러시더라고요.”
“엑, 여기 아직 좀 위험하지 않나? 어린애가 들어오긴…….”
“저 어린애 아녜요. 곧 헌터가 될 거잖아요. 진짜 교육 얼마 안 남았거든요.”
“어, 그런가? 하긴, 저도 어리단 말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근데 이상하게 하게 되네. 이것이 꼰대…….”
“승인해 주실 거죠?”
“도시 건설 좀 더 진행되면요. 제 허가만 있다고 되는 거 아닐걸요?”
“헌터는 그렇대요. 센터장님하고 몇몇 대표 자격 헌터 인증만 받으면 괜찮다더라고요.”
대표자라니, 하며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한참 모자라 보이지만, 그가 균열 도시에서 가장 강한 헌터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준영은 준비해 온 서류에 지호의 사인을 받은 뒤 기쁜 얼굴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 심사야 좀 걸릴 테고, 그사이에 정식 헌터가 되면 더 좋을 것이다.
“도시 외곽에 자주 출몰하는 것 중에 골치 아픈 놈이 좀 있어서. 코드 네임 설철이요. 전설에 쇠를 먹는 괴물이란 게 있대요. 거기서 따온 거라나. 불가사리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던데, 이름이 뭐가 됐건 아무튼 쇠 먹는 놈이란 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어, 아무튼, 그런 것들 때문에 여전히 위험한 편이니까 정식 헌터 된 후에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차피 곧 정식 헌터 될 수 있어요. 훈련 과정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테스트도 다 받고요.”
“잘됐네요. 새로 발견된 괴물들에 맞춰 다른 포메이션 연습 중이라고들 하던데, 잘 배워 와서 이쪽에도 알려 줘요. 살아남는 데 정보만큼 도움 되는 게 없잖아요.”
꼭 그러겠다고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준영을 보며 지호는 빙그레 웃었다. 지호는 빠르게 잃어야 했던 순수함이다.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어린 친구는 제 나이대로 살며 자기 속도대로 성숙해질 수 있다면 좋겠단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지호는 도시 외곽에서 잡히는 괴물 관측 신호를 보여 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제가 즐거웠으면 좋겠네요. 다음엔 좀 사람 적은 곳에서 봐요. 이렇게 많이 모이면 아무래도 대화는 좀 어렵잖아요.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까, 준영 씨도 금방 좋아하게 될 거예요.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보시다시피 제가 여기저기 뛰어야 할 때라.”
또 보자는 인사의 다른 표현에 준영의 얼굴이 환해졌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감정이 드러나는 후배 헌터를 재밌다는 듯 바라본 지호는 손수 그를 게이트까지 배웅해 주었다. 게이트 너머로 돌아가며 아쉬운지 연신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다. 귀가 붉어지며 수줍어하는 모습은 좀 낯설지만, 저런 풋풋한 감정은 받는 것만으로 함께 즐거워지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삐빅, 삐빅, 급한 알림음과 함께 신호가 울렸다. 접근 신호가 어느새 지원 요청으로 바뀌었다. 지호는 곧바로 좌표를 확인했다. 멀지 않은 위치에 괴물 출현 경보다. 가까이 온 놈이 멈추지 않고 도시까지 들이닥친 모양이었다. 현장 헌터들이 고전하고 있는지 지원 요청 신호가 간격도 없이 요란하게 울렸다. 지호는 망설이지도 않고 곧장 날아올라 교전 장소로 향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헌터들은 괴물의 머리가 과일처럼 터져 나가자 반가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호는 멋지게 착지하며 소리쳤다.
“이지호 헌터, 지원 나왔습니다!”
매일을 숨 가쁘게, 그리고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그가 기다리는 이가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런 희망을 붙들고, 사람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반쯤 건설된 균열 도시 한복판에는 아무나 살 수 없는 임대 아파트가 있다. 목숨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거나, 자기 한 몸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 혹은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가지 못할 모습이 된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어느 헌터가 강력히 주장하여 본래 형태를 유지한 아파트 단지 어느 동의 11층 창문은 아직도 매일 밤 잠기지 않고, 가진 힘으로 모두를 억압하기 충분한 능력자는 평범한 하루를 위해 앞장서 싸우며 도시를 지킨다.
기다리는 이들의 또 다른 기적을 위해, 도시로 접근해 오는 모든 괴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균열 도시를 지키는 어떤 헌터가 있다. 누군가는 괜히 힘 빼는 일이라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하는 그 별것 아닌 일들 덕분에 괴물이 된, 그러나 사람의 기억을 가진 몇몇이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산 것을 뜯어 먹던 기억에서 다시금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기억해 내려면 아마도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사람답게 사는 길을 택한다면 어떤 헌터는 그를 충분히 도울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이가 자신을 기다리던 가족들과 대화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마다 눈물을 삼키려고, 노련한 헌터로 보이려고 애쓰며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는 어떤 헌터가 있다.
이제는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몸이지만, 여전히 다른 이들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서.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