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센터까지는 금방이었다. 거리상으론 꽤 되는 위치였는데, 지호와의 통화를 그 밝은 귀로 엿들은 승환이 준영을 어깨에 짊어지고 건물 위를 휙휙 넘어가 순식간에 도착한 탓이다. 준영은 그 비상식적인 이동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센터에 도착했다. 균열 센터 1지부. 균열 도시에 제일 먼저 만들어진 센터이며, 이지호 헌터의 새 소속지인 곳이었다.
“준영 씨!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키가 더 큰 것 같아요. 전에도 작은 키는 아니었는데.”
현관에서 준영을 맞이해 준 지호가 활짝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호였으나 온갖 뉴스며 커뮤니티며 바쁘게 오르내리는 얼굴이라 낯선 것이 더 이상하다. 한때 보았던 작고 앳된 이지호 헌터는 없었다. 거기에는 새로이 떠올랐던 영웅이자, 변이자가 되어 추락한 것처럼 묘사되곤 하는 쇠락한 영웅이 있었다.
준영은 뉴스 기사에서 비아냥거리듯 지호를 칭하는 용어들 무엇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민 지호는 자기 손을 두 손으로 꼭 붙잡아 오는 준영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박 팀장, 아니 지부장님이 좀 보자고 하네. 제 2훈련실에서 모의전 중이니까 끝나면 이야기 좀 해 봐. 그리고 아저씨가 집에 좀 들어와서 자라더라. 맨날 센터에 있지 말고.”
승환은 입을 비죽인 뒤 훈련실이 있는 동으로 후다닥 달려가 버렸다. 준영은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도 안 하고 떠나가는 승환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지호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분명 준영 씨랑 동갑인데 왜 저렇게 애같이 구나 모르겠어요. 변이되고 나선 정신의 성장이 더디다곤 하는데…….”
“천천히 커도 될 거예요. 그리고 덕분에 각성자와 성숙도의 관계 뭐 그런 것도 연구할 수 있다고 양 솔 박사님이 좋아하셨단 이야길 들었던 것 같아요.”
“양 박사 그 인간은 하여간에 입이 너무 가벼워서 문제예요. 혹시 무슨 프로젝트 진행한다고 사람 모으는 일 있으면 한번 참여자 명단 잘 봐요. 내가 추천하는 건 금유빈 박사님이에요. 실력 있고 믿음직한 편이거든. 적당히 도덕적이고.”
지호는 양 박사 흉을 보며 투덜거리면서도 익숙하게 패널을 조작해 준영을 방문자로 등록해 주었다.
“여기 회복실 대부분 비어 있으니까 편하게 있다 가도 돼요. 사냥은 대부분 월초에 가서 요샌 좀 한가해요. 센터 소속 헌터들도 꽤 많이들 게이트 밖으로 나갔을 거고요.”
“헌터님도 나가고 싶으시죠?”
“저야 뭐.”
지호는 씩 웃었다. 이지호 헌터가 괴물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괴물과 싸우며 반쯤 변이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패닉에 빠졌던가. 준영은 당시 사회 분위기를 기억했다. 그리고 지호가 상처투성이의 몸을 끌고 카메라 앞에 서야 했던 순간들 역시도.
당시, 지호는 평이하게 발표했었다.
-균열의 이형 에너지는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작용합니다. 개중에는 여러 원인을 거쳐 각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조건이 맞아야 하고 여러 가지로 일반 각성은 어렵거든요. 하지만 균열 에너지에 노출된 사람은 누구라도, 변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왕은, 그러니까 괴물들의 우두머리는 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웠어요. 균열을 계속해서 열면서 여러분이 사는 곳으로 이형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 말이죠. 아마 이대로 상황이 반복된다면 균열에서뿐 아니라 여러분이 사는 평범한 삶의 터전에서도 변이자가 생겨나게 되겠죠.
죽지 않고 버텨 돌아온 실종자들은 모습이 변했다고 하여 변이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투박한 이름이지만 지칭하기 어려운 용어는 아니었다. 지호는 얌전히 뒤에 서 있는 변이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말했다.
-게이트를 넘어가지 못하게 수립된 법이 이분들의 귀가를 막는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저와 같은 모습이 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할 거란 이야길 하고 싶어요. 당장은 당황스러우시겠죠. 막무가내로 들여보내란 이야길 하는 게 아녜요. 다들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했고,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있거든요. 그저 알고 계세요. 변화를 막을 수는 없어요. 받아들일 준비를 하세요. 그 비일상이 일상으로 다가오기 전에, 우리는 균열 도시에서 당신들을 지키는 방벽이 되겠습니다. 우리에게 천천히 적응하도록 해요. 곧 다가올 여러분의 미래일 수도 있으니까.
준영은 그때 정말 사회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곳곳에서 조심스럽게 고백하는, 이형 에너지에 민감한 사회 속 일부 변이자들의 등장에 더 그랬다. 이지호 헌터는 시종일관 차분했고, 분노했으나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마 변이는 이미 시작되었을 겁니다. 자신의 이상을 감지한 분들은 가까운 센터로 찾아가 검사받으십시오. 그리고 변하지 않은 분들은, 이후로 찾아올 미래를 위해 변이자들에게 익숙해지세요. 결국, 모두가 변이자가 되는 미래가 올 겁니다. 이미 십 년을 노출된 거예요.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그러니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십시오. 균열이 열리며 살아남기 위해 삶의 방식을 바꾸었던 것처럼, 저는 우리가 모두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지호 헌터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이형 에너지가 사람들 사이에 지나치게 풀려 변이 현상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일까. 곳곳에서 마정석이 쓰이고 있었고, 그 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해 원자력이나 화력 발전으로 돌아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마정석을 많이 사용하는 고위층, 부유층에게서 변이가 더 빠르게 발견되었다는 것도 사회가 빠르게 변이자들을 받아들이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그런 말 한두 마디로 사회가 변하지는 않는다. 이지호 헌터가 내민 것은 거대한 마정석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어디 가난한 나라 하나 정도는 한 방에 사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힘이 담긴 물건. 모두가 그것을 탐냈고, 이지호 헌터는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그것을 쪼개어 곳곳에 나누어 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 마정석이 사용되는 도심 곳곳에서 변이자가 더 빨리 생겨날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미 적응된 편리함을 포기하지 못해 잠정적 위험성에서 눈을 감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제 균열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울 수도 없고, 다른 종류의 발전만으로는 마정석의 에너지 효율을 따라갈 수 없었으니.
준영은 임시 헌터로 교육받으면서 센터에 찾아와 검사받고 적응 훈련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을 많이 보아 왔다. 악성 균열 이후, 균열 너머에서 살아 돌아온 헌터들과 이제는 변이자로 불리는 생존자들의 귀환 당일. 그날로부터 일 년간, 사회는 참으로 다양하게도 뒤집혔다. 그 폭풍을 일으킨 장본인은 태연하게도 센터 소개나 해 주며 웃고 있었지만.
“오늘 사냥 있던 날도 아닌데 늦으셨네요? 사실 저는 지승환 헌터 보러 온 건 아니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 나올 거라고 하셔서 좀 놀랐어요.”
“아, 하하. 오늘 일 년째 되는 날이라서요. 언니 좀 보러 갔다 왔어요.”
“임보현 헌터님이요?”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말이 필요 없는 단어다. 이지호 헌터가 그토록 친근하게 언니, 하고 칭하는 이는 임보현 단 한 사람뿐이다. 사이가 가까워진 친구들에게조차 쉬이 말을 놓지 않는 지호였던지라 더 그렇다.
“그 균열, 구경해도 돼요?”
“그럼요. 위험하니까 가까이 가면 안 돼요.”
준영은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사람들의 접근을 차단할 목적으로 세워진 센터인지라 출입 제한 구역이 있었는데 지호는 통과할 자격이 있다. 헌터들이 이것저것 귀찮고 불편한 칭호를 주렁주렁 달아 주려 노력했지만, 지호는 전부 거절했다. 높은 자리 올라가 많은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던 탓이다.
“여기가 바로 그 균열이에요. 시공간 뒤틀림이 있으니 절대 가까이 가지 말고요.”
준영은 영상으로만 보던 녹색 균열을 신기한 듯 관찰했다. 다른 균열들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몇 미터가량을 지나면 곧 공간을 넘어 인간 세상과 괴물들의 세상을 무작위로 잇곤 했는데, 이 균열만은 그렇지 않다. 내부가 비추어 보이지 않는 빛 덩어리 같은 것. 그러나 동시에 느껴지는 에너지의 압박감에 가까이 가지 않아도 허덕이는 기분이었다.
“좀 힘들죠? 멀리서 봐도 돼요.”
“아니, 아녜요.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신기하네요. 움직이는 것 같고.”
“위험하니까 거기까지만 가요.”
“이건 어디로 이어지는 건가요? 일반적인 균열은 사람들 사는 곳과 연결되는데…….”
“아마 다른 세계인 것 같았어요. 완전히 생소한 풍경들이 보였거든요.”
“외계인이나 뭐 그런 것만 아니면 좋겠는데. 그런 말도 있다면서요? 이건 어떻게 하면 없어지는 걸까요?”
“균열을 여는 데 들어간 힘이 자연스럽게 소진되면?”
지호는 잠자코 웃기만 했다. 녹색 빛 덩어리처럼 보이는 균열. 무지막지한 에너지가 뭉쳐 있어 통과하는 순간 아득한 시간을 넘게 될 것이다. 예전에 지호가 만난 바 있는 바로 그 균열이다.
폭발하려는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누른 순간 시공간이 비틀어졌다. 이전에 급성 균열을 막을 때에는 그 균열이 열리는 힘이나 지호가 막았던 힘 자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아 고작 일주일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 균열은 그야말로 여왕의 힘 그 자체 때문에 만들어진 균열이다.
몇 차례나 드론을 통한 관측이 시도되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암석이나 바위 같은 것들을 넣었다 빼 관측해 본 결과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간 것이 관찰되었다는 결과나 얻게 되었다.
이전에 지호가 경험한 바로는 균열 내외부의 시간 흐름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여전히 알려진 것은 많지 않지만, 균열 경계 자체를 지나갈 때 시간의 흐름이 비틀어지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지호는 균열이 열리던 순간 거기에 휩쓸리던 보현의 모습과 그곳으로 뛰어들던 준우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두 사람은 균열에 휘말려 사라졌고, 균열은 닫히지 않았으며, 지호는 여기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비밀도 아니었다. 준영은 머뭇거리며 물러나 머쓱하게 웃었다.
“오래 못 버티겠네요.”
“약한 각성자들은 더 못 버텨요. 힘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대요. 그래서 이렇게 특수 처리한 설비 내부에서 관리하는 거예요. 문 닫을게요.”
“이렇게 닫아 놔도 되나요?”
“누가 안에서 나오면 신호 들어오게 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문도 열리게 되어 있고. 그게 제가 기다리던 사람이면 좋겠지만, 이상한 게 넘어올 수도 있으니 시설은 일차적으로만 열려요. 나머지는 센터에 대기 중인 담당자가 판단하겠죠.”
여왕의 말처럼 다른 세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누구도 이런 식으로 알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사람들의 삶을 파괴했던 첫 번째 괴물들과 달리 그렇게 호전적인 종족이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낯선 힘들은 균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을 드러냈지만, 이쪽으로 넘어오지는 않았다.
저도 모르게 균열을 뚫어지도록 응시하는 지호의 옆얼굴을 슬쩍 훔쳐본 준영은 속삭이듯 질문했다.
“임보현 헌터님이 돌아오실 수 있을까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지호는 준영 쪽을 돌아보았다. 물끄러미 그를 응시하던 지호는 곧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언니 마중 나간 놈도 아직 살아 있는 게 느껴지거든요. 드물게 그놈이 보는 풍경 같은 것들이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확신을 할 수 있죠. 얄미운 새끼였지만 도움이 되니까 다행……. 어, 아무튼 다 구경했으면 이제 나갈까요? 여기 아직 마땅한 식당이 있는 건 아니라서 직접 요리한 걸 먹어야 해요. 아저씨가 손님맞이 도와준다고 해서. 어, 그러니까 아까 지승환 헌터 형이요. 집에서 솜씨 좀 발휘했을 거예요. 음식 잘하거든요.”
“헌터님 집이요?”
“당시엔 제가 미성년자라 뭐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많아서 친구 도움 좀 받았어요. 그 후에도 스무 살은 아직 완전한 어른은 아니네 어쩌네 하면서 하도 시끄러워 가지고요. 음, 승찬 아저씨는 제가 고를 수 있는 제일 좋은 선택지였어요. 아저씨도 동생 때문에 균열 도시에 거주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요. 아마 준영 씨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언니네 집이었던 위치를 그대로 쓰고 있어서 사실 아직도 제집이라고 하긴 좀 뭣한데.”
지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제한 구역을 하나둘 잠그며 다시 그 균열을 봉한 뒤 준영은 지호의 집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리며 승찬과 인사를 나누었다.
손님은 준영뿐이 아니었다. 지호의 친구들이라던 세 헌터는 왁자지껄하게 떠들어 대며 훈련 이야길 해 댔고, 임시 헌터라고 소개한 준영에게 잔소리랍시고 온갖 충고를 떠들어 준 덕분에 식사 시간은 아주 소란스러웠다.
뒤늦게 합류한 승환이 왜 자길 빼놓고 맛있는 걸 먹느냐며 식탁에 합류한 뒤엔 맹렬한 식사 시간이 이어졌다. 준영은 이것도 먹어 봐라 저것도 먹어 봐라 하며 생색내는 장지윤 헌터 때문에 체할 뻔했다. 승환은 어이없어하며 왜 우리 형이 만든 요리로 헌터님이 잘난 체하느냐고 소리를 높이다가 남에게 주기 전에 다 먹어 버릴 거라고 다시 접시에 머리를 박았다.
지호는 온갖 일에 큰 소리로 웃으며 즐거워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이는 자리라기에 준영은 거기에 있는 걸 미안해했지만, 다들 무슨 소릴 하냐며 오히려 그를 타박했다. 이런 날에는 다 같이 즐거워하며 시간을 함께해 주는 게 오히려 도움이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