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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50화 (251/260)

250화

“도플갱어가 내게 말해 주었던 작전이란 건 사실 진작 다 끝났다. 나는 놈이 여왕의 몸을 차지했는지를 확인하려고 갈 뿐이야. 네가 오는 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여왕의 봉인이 임시라고 했잖아. 언제 풀릴지 모를 봉인을 언니 옆에 두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래서 데려가잖아. 입만 산 꼬마야.”

여왕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갈수록 몸을 짓누르는 압력이 올라갔다. 이형 에너지가 쌓여 해당 능력 사용자에게 이로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는 건 어느 정도까지의 이야기다. 이형 에너지를 다룰 힘이 전혀 없는 도준우는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는 느낌을 받으며 인상 쓸 뿐이었으나, 지호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밀도 높은 이형 에너지에 허덕이며 바닥에 내려섰다.

“더 날아서 가기 어렵나?”

“이 앞은 허공이 아니라 부피 가진 공간에 가깝다고. 날아가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는데.”

바닥에 착지한 지호는 등을 타고 흐르는 서늘한 감각에 준우를 걷어차며 옆으로 펄쩍 뛰었다. 위에서부터 그들을 내리찍는 낫 같은 앞발이 있다. 곤충과 비슷한 모양새로 겹눈을 끔뻑이는 거대한 괴물. 다른 점이 있다면 눈이 사방에 달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놈에게서 물러난 준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두 놈이 아니었다.

“역시 날아서 가는 편이…….”

준우는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바닥에서 튀어나온 무수한 다리들에 붙잡혔다. 두족류의 것과 비슷한 다리들이 사방을 뚫고 튀어나와 움직이는 모든 것의 발목을 잡아챘다. 지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괴물에 붙잡힌 순간 공포의 예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지호는 반쯤 떠 있던 곳에서 바닥으로 끌려 내려왔으나 다른 놈들이나 준우처럼 그대로 처박히거나 지면을 파고들어 끌려 들어가지는 않았다. 얌전히 바닥에 내려선 지호 옆으로 낯선 다리들이 익숙한 듯이 흔들렸다.

그것이 마치 사람이 손 흔드는 것처럼 움직이기에 지호 역시 당황하면서도 그것을 마주 잡아 주었다. 실제로 악수를 하고자 하는 의미였는지 지호의 손을 열렬히 흔든 다리는 다시 땅속으로 사라졌다.

“뭐야, 아는 괴물이야?”

“그쪽이 모르면 내가 어떻게 알까 싶긴 한데……. 이 경우에는 둘 다 아는 괴물이라고 해야 옳지 않나 싶은데.”

부근에서 위협적으로 이를 드러내던 거의 모든 괴물이 땅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지호는 근처에 가득한 이형 에너지 때문에 다른 괴물들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여왕의 막강한 기운이 다른 것들의 힘을 덮고 있어 뭐가 어디에 숨어 있나 명확히 느끼기 어려웠다. 감지 파장을 세밀히 뻗으려면 방벽을 거두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긴 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누구인지 뒤늦게 확인한 모양이네. 다리만 파묻힌 걸 보면.”

“이거 도플갱어인가?”

준우는 파묻힌 다리를 땅에서 뽑아내며 신음했다. 실내 청소부와 비슷하게 닿는 것만으로 다른 개체를 상하게 하는 부위인 모양이었다. 개수도 월등히 많은데 거기에 저런 특이한 능력까지.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땅으로 끌려 들어간 것들 뒤로 남은 여러 크기의 구덩이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괴물들은 붙잡힌 채로 먹히고 있었다.

여왕쯤 되면 다른 것을 사냥하는 방식조차 효율적이겠지. 입으로 섭취하지 않아도 에너지를 빨아들일 수 있고, 적을 상대하는 것에 본체를 상하지 않는 방식도 쓸 줄 알게 되었을 터. 지호는 그쪽에서 느껴지는 도훈의 기운에 인상 썼다.

“도훈 씨가 여왕의 본체를 완전히 차지할 수가 있나? 이쪽에 여왕의 정신체가 봉인되어 있다고 해도, 그 정신 전체가 이쪽으로 넘어온 것도 아닐 텐데…….”

“그래서 임시라고 했겠지. 빌어먹을, 몸이 너무 무거워. 가까이 갈 수는 있는 건가?”

두족류 다리에서 나오는 산성 비슷한 것은 지호의 새 신체를 녹일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의사도 없는 것 같았다. 지호는 준우가 살을 녹이는 액체들을 떨쳐 내려 버둥거리는 걸 물끄러미 보다가 여왕의 본체를 올려다보았다.

웅크리고 있던 몸이 느릿하게 펴지며 유선형에 가까운 몸체가 이형 에너지를 무수히 품은 채 반짝이는 것이 훨씬 잘 보였다.

여왕에게 가까이 갈수록 지호의 의지는 천천히 꺾였다. 놈의 본체는 존재만으로 상대를 압도하기 충분했으며, 그 주변을 채우고 있는 이형 에너지들은 모두 여왕의 에너지원처럼 보였다. 도플갱어의 인식 교란 때문에 여전히 백색으로 빛나고 있는 몸체는 신성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준우는 역겨움과 울렁거림을 불러일으키며 끓어오르는 검은 몸체를 보며 인상 썼다.

“대화가 가능한 상태이기는 한가? 여기까지 접근했으면 알 법도 한데.”

포식자였던 것으로 추측되는 시신들의 토막 난 신체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까 지호와 준우를 맞이한 괴물들은 그것들을 먹으려고 모여 있던 잔챙이들에 불과하고, 그마저 얼마 먹지 못했을 것이다. 여왕의 본체 근처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보다 꽤 강한 놈들이었겠지만, 그래서 먹이가 되기에 적합할 것이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포식자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 빽빽하게 쌓여 있던 이형 에너지들이 한곳을 향해 천천히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시체들의 위, 여왕의 몸체와 연결된 신체 부위 한쪽에 혹처럼 돋아난 것은 지호가 익히 아는 얼굴이다.

“도훈 씨?”

이형 에너지들은 도훈을 향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몸이 느릿하게 점멸한다. 검은 연기 같은 것에 휘감겨 있다가 흰색으로 깜빡깜빡 흔들리며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양새는 살아 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지호는 여왕의 몸에 반쯤 먹혀 버린 그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준우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짧게 숨을 들이마신 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자그마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지호 왔네. 적당한 때 와서 다행이야.

“여왕은?”

보다시피 잠깐 잡아 둔 정도. 네가 정신체와 함께 와서, 오래 지나지 않아 다시 풀려날 거야.

“뭐? 그럼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했어야죠!”

두 가지 선택지가 있지 않았어? 이쪽으로 오는 것과 너희 세계로 돌아가는 것.

지호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어깨에서 진동하는 가시를 움켜쥐었다.

“이딴 걸 달고 돌아갈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임시 봉인이니 뭐니 해 놓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도 않았는데 도망치라는 거예요? 내가 또 사람들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중요한 거야? 네가 사는 게 먼저잖아.

“저 혼자 살고 다른 사람들이 다 죽는 수도 있어요. 여왕이 다시 악성 균열을 열면, 그래서 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똑같은 위험에 빠지면? 그때는 다른 헌터들이 함께 있으리란 보장도 없어요!”

더 준비하고 대비해서, 여왕을 상대할 수도 있잖아. 어차피 네 주변에 일어날 재앙임을 알고 있다면.

“그런 일을 마주하느니 저를 죽이자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죠. 저를 봐요. 이제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 된 나를 보라고요.”

너는 너 스스로 사람이라고 느껴?

오래전에 도훈에게 던졌던 질문이 돌아왔다.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래도록 고민했던 것.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이 그를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지호는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의 모습을 거의 잃은 지금에 와서는 다시금 생각해야 했다. 도훈은 그 동요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릿하고 부드럽게 질문했다.

알다시피 나는 말이야, 많은 나들 속의 하나야. 그 속에는 태어나서부터 괴물이기만 했던 나도 있고, 사람으로 살다 내가 된 나도 있지. 그 때문에 나는 때때로 나를 괴물로 생각하지만, 가끔은 사람 같다고 느낄 때도 있어. 어떤 친구가 나를 사람으로 대해 줄 때는 더욱 그렇지.

주변에 휘몰아치던 이형 에너지의 흐름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절반만 듣고 있던 준우는 몸을 낮추며 소리쳤다.

“오래 못 버텨. 뭔지 몰라도 빨리 끝내!”

내가 죽으면 저 녀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아직 나들 중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영역이라 신선해. 죽게 될까? 어떻게 생각해?

검은 가시가 길게 진동했다. 지호는 밀려오는 통증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너무 턱에 힘을 주어 이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이제 어떻게 해요? 내가 사람인 게 중요해요?”

내게는 중요하지 않지. 네가 돌아가기 위해서가 중요하겠지.

“어떻게 돌아가요? 이런 모습이 되어서, 내가 어떻게 사람들이랑 살 수 있어요.”

너는 인간의 모습을 잃은 실종자들을 사람으로 인지하지 않았어? 그들에게 공격받고, 그들이 너를 배척하는 동안에도.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두 번 울렸다. 지호는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던 도훈의 정신체가 여왕의 본체와 결합한 본체와 함께 말하고 있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여왕의 정신체를 상대할 때도 그러했다. 도훈을 노려보는 지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여왕의 가짜 모습을 내게 주입시켰죠? 김 반장님을 통해서, 일부러 그렇게 했던 거죠? 처음부터 그런 계획이었어요?”

그래. 여왕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는데 잘 버텼어. 임보현이 당하지 않은 것도 의외고.

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기 와서 보현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낸 적 없는데 그의 안위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언니가 당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괴물들이 자신을 쪼개면 일반적으로는 약해져. 주체가 되는 정신이 없는 쪽, 그러니까 분리당한 쪽은 특히 그렇지. 자아를 잃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아 그 이름을 찾기 전까지는 정말로 멍청하게 먹고 먹히는 것밖에 할 줄 모르게 되거든.

“딴소리하지 말아요. 언니가 당할 거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 거예요?”

퀸 패러사이트가 찾아 헤매던 어떤 헌터에 관한 정보를 여왕이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네 몸을 차지하면 그 헌터가 누구인지 아는 건 시간문제고. 그렇지?

지호는 도훈이 생각한 것보다 오래 버텼다. 여왕이 자신의 몸을 차지했을 때 꽤 집요하게 보현을 노렸던 것이 생각났던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했다.

“언니가 죽는 게 계획이었냐고 묻잖아요!”

균열을 넘어 다녔던 경험 가진 개체잖아. 모두가 노리는 것은 당연하고, 여왕이 얼추 그 정보에 관해 알게 되었다고 해도 보아하니 실패한 모양인데. 임보현을 완전히 삼키는 쪽을 택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 이 상태로 내가 흡수되면, 여왕은 다른 괴물의 기억을 온전히 얻을 힘도 가지게 될 거야. 자신이 된 것들의 기억도, 경험도, 일부만 얻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가지게 된다고.

지호는 이형 에너지 때문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준우 쪽을 돌아보았다. 그를 돌려보내야 한다. 보현을 보호하게 해야 했다. 어차피 여기로 함께 와 봐야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보현이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사람을 왜 데리고 왔을까? 지호는 이형 에너지 폭풍을 뚫고 비틀비틀 걸어가 준우의 팔을 붙잡았다.

“돌아가요!”

“뭐? 어딜 가?”

“여왕의 봉인이 풀리면 놈이 언니를 삼키려고 할 거래요. 도플갱어가 먹히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언니를…….”

쐐애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뒤편으로 익숙한 이가 착지했다. 준우는 답지 않게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지호는 절망과 두려움 때문에 완전히 얼었다. 보현은 둘의 이상한 얼굴을 확인할 새도 없이 그 앞을 가로막으며 방벽을 쳤다.

“언니, 언니가 왜…….”

“도플갱어 이 새끼가 지호 씨 몸을 노리고 있어요!”

“아녜요. 이게 노리는 건 제가 아니고 언니예요. 여기 오면 안…….”

도훈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에너지의 흐름이 빨라졌다. 지호는 그 이형 에너지에 반응하듯 격렬히 흔들리는 가시 때문에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깜빡이던 도훈의 모습이 완전히 어두운색으로 뒤덮였다. 여왕의 본체가 눈을 뜨며,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보다 붉은 눈이 스르륵 미끄러져 세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그것이 말했다.

자비의 시간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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