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47화 (248/260)

247화

28. 안녕들

균열 안정기가 멀지 않긴 했으나, 여왕의 존재가 사라지기 무섭게 부근으로 괴물들이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으니. 일부 감지계 능력자들은 서둘러 게이트로 복귀하는 것이 좋겠다며 남은 이들을 채근했다.

균열 안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던 헌터들 중 대부분은 밖에 남았으나 개중 일부가 동행해 다시 악성 균열로 들어가는 팀에 합류했었다. 이주리 헌터나 병아리들 같은 경우가 그러하다. 물론 제대로 쉰 적도 없이 내내 몸을 혹사시켜 다른 이들보다 피로가 더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모두 너덜거리는 몸을 간신히 추슬러 움직이는 와중에 거기에 남을 수밖에 없는 한 명은 떠날 준비하는 헌터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서로를 부축하고 챙기면서 거기 모인 헌터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준우와 보현 쪽으로 돌아갔다. 균열 밖, 여왕의 본체 쪽을 응시하고 있던 도준우는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한숨 쉬었다.

“이제 가. 몸도 약한 게 두 번 다시 균열에 얼쩡거리지 말고.”

함께 돌아가자고 말할 수 없다.

보현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도로 삼키느라 고생했다. 이 만남의 끝이 어떻게 될 거란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준우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무엇이 되었고, 보현은 몸이 약해 균열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내민 손으로 그의 옷자락만 붙잡고 있던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퀸 패러사이트가 죽었는데도 살아 있는 거잖아, 너.”

“그 역할을 도플갱어가 맡은 것뿐이야. 놈이 죽으면 나 역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사실 다른 놈들처럼 끝난다는 게 제일 유력한 가설이긴 해.”

“왜 그렇게 말해. 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여왕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닐 거다. 나는 여기에서 도플갱어와 함께 저것의 처분을 의논해야 해. 미리 약속한 것처럼 네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나도 내 약속을 지켜야지.”

보현은 물고기처럼 입만 뻐끔거리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놓지 못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리자, 또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박 팀장이 슬쩍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어, 도플갱어가 전해 달라는 게 있어서요.”

“그러고 보니 저 이상한 거, 도플갱어한테 받았다고 했죠? 어떻게 된 거예요?”

보현의 물음에 설명할 것이 너무도 많은 박 팀장은 그냥 웃기만 했다. 지호를 안고 있는 승환에게 접근할 수 없었던 헌터들은 머뭇거리며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생존자들은 승환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지호를 이리저리 들춰 보고 뒤집어 보고 건드려 보았다. 자는 사람 좀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할 용감한 헌터는 거기 없었다. 그들을 구경하던 절반 외의 나머지는 체력의 한계를 느껴 기절한 상태였으니까.

“여왕은 헌터들을 직접 상대한 경험도 없고, 전투 경험은 당연히 없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까다로운 괴물을 상대할 때의 교본을 따라 본 겁니다. 감지 가능 범위 너머에서 전투를 시작할 것. 염동력 능력자들에게는 꽤 익숙한 방식이거든요.”

“도플갱어가 그랬나요? 어디서 놈을 만났고, 어디서 그런 물건을 받은 거죠?”

“실종자들을 만났을 때의 일인데요. 실은 그게…….”

박 팀장은 머뭇거리더니 최대한 단어를 골랐다. 조심스러워하는 걸 보니 보현이 화낼 만한 일이 분명하다. 잡은 옷자락을 놓지 않고, 둘의 시간을 연장할 상황이라면 사실 무슨 일이건 상관없었을 보현은 도끼눈을 뜬 채 박 팀장을 채근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다른 델 갔다가 어디서 나타나서 저, 실종자들을 포탄처럼 쐈죠? 저 사람들한테 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거예요?”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뇨? 저는 언제나 제가 한 말 꼬박꼬박 지키는 어른입니다.”

“실종자들한테 집에 갈 수 있게 해 주겠다면서요.”

“집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는데요.”

보현은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눈썹을 꿈틀거렸다. 박 팀장은 그 시선을 자연스럽게 흘려 내며 실종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지호 헌터에게 듣지 않았습니까? 게이트 앞에 도시를 세울 겁니다. 이미 한 번 전례가 생겼으니 윗선에서도 빠르게 일 처리를 하겠죠. 저 사람들도 진짜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까진 기대 안 할 겁니다.”

“그렇게 믿고 있던데요.”

“돌아갈 집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들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실이기도 할 테고.”

돈 있는 사람들이야 균열에 휘말려도 최우선적으로 구조되니 균열 닫힐 때까지 남아 있다가 실종된 사람들은 다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들뿐일 것이다. 도준우는 혀를 차며 한마디 거들었다.

“비인간적인 처사야. 저놈들이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데. 인간성을 잃은 놈들이야 하나하나 밖으로 내몰렸지만, 여기 남은 놈들은 그래도 자기가 인간일 적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어 하던 놈들이라고.”

“당신도 말입니까?”

“나야 뭐…….”

보현과 눈이 마주친 준우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충분한 대답이 되는 행동이었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명료했으니.

“일이 다 끝난 다음 처우를 의논해도 늦지 않겠지만, 당신도 이번에 협조한 실종자들과 같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게이트 앞에 도시를 만들 거예요. 당신과 이번 협조자들은 우선 거주권을 갖게 될 거고요. 거기에서 게이트로 넘어오는 것들을 막아 주시겠습니까?”

“내가 왜?”

“당신이 지키고 싶던 사람이 사는 곳이잖습니까? 야박해라. 보이지 않으면 소용없다, 뭐 그런 거예요? 아는지 모르겠는데 임 헌터가 몸이 좀 많이 약해져서…….”

박 팀장은 보현에게 한 대 얻어맞곤 엄살떨며 팔을 문질렀다.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것을 느낀 박 팀장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보다 좀 문제가 있어서요. 실종자들을 만났을 때 말입니다.”

간신히 처음 화젯거리로 돌아온 박 팀장은 거의 속삭이는 것에 가깝게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그들이 게이트 앞에 생존자들을 구출해 와서 교섭을 요구한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 넘어갔더니, 그 앞에 도플갱어가 있더군요. 그런데 형태가 좀 불안정해 보였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게이트를 가로막은 채 양쪽 모두를 협박하고 있었고, 그의 작전에 협조하지 않으면 거기서 게이트를 부숴 버릴 것같이 행동하더군요.”

“도플갱어가 지호 씨에게 요구했던 건, 여길 나가게 해 달라는 거였죠.”

보현은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했다. 아무리 지호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였다곤 해도 도플갱어는 본질적으로 여왕에게 가까운 괴물이었고, 그들이 대처하기 어려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괴물들의 무리에 휩쓸려 살기 위해 전투하던 때를 떠올린 보현은 치를 떨었다. 박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했다.

“거기서 게이트를 이용해 그쪽으로 넘어가겠다느니 하는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에 도움받은 때처럼 우리 장비가 필요하단 이야길 하더군요. 우리가 가진 설비들에 관해 꽤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박 팀장은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노여움을 꾹꾹 눌러 참으려 노력하며 덧붙였다.

“헌터들을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속일 생각 말라고. 남은 사람들마저 다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내놓으라고요.”

“게이트로 넘어가려 하진 않고요? 애초에 거길 넘어 도망가면 아무도 막을 방법이 없었을 텐데?”

“게이트 앞에 버티고 선 채 우리 쪽 기계들을 사용하겠다고 요청했고요. 실종자들 쪽으로도 생존자들을 통행료로 지불하고 게이트를 넘을 생각은 말라며 날 선 말을 던지는 게 협력 관계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지호를 통해 도플갱어의 이야기를 꽤 많이 전해 들었던 보현이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생각에 잠겼다. 박 팀장은 계속 상황을 설명했다.

“사실 협회 측에선 수락하지 말고 게이트를 닫아 버리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만, 이지호 헌터 죽는 꼴 내버려 두면 그다음엔 너희가 무사할 것 같냐는 식의 도발이 양 솔 박사를 건드려서……. 아, 게이트 측 관리자가 양 박사님이라서요. 협회 명령 무시하고 도플갱어의 요구 받아들여서 생존자들 게이트 쪽으로 넘기고 장비 지원받아 떠나는 것까지 보고 온 참입니다. 실종자들이 전투에 도움이 될 거라는 도플갱어 말을 순순히 듣자고 들은 건 아닌데, 어린애가 있었어요. 아시죠? 이지호 헌터와 구면인 것 같던 저…….”

“승환이가 원래대로 컸으면 이지호 헌터랑 몇 살 차이 안 났을 거야. 균열에 고립되어 여러 영향을 받아 정신적으로는 그리 자라지 못한 것 같지만.”

준우가 한마디 덧붙임으로써 진짜 어린애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보현은 신음을 흘렸다. 그 어린애를 데리고 싸우러 온 거냐고 한 소릴 하고 싶었던 보현은 잔소리를 참았다. 쓸데없는 소릴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럼 그때 도플갱어한테 저 수상쩍은 물건을 받은 거예요? 저게 대체 뭔데요?”

“어, 아뇨. 저걸 받은 건 위에서 내려오기 직전입니다. 도준우 씨한테 작전이 거의 다 성공했다고 전해 달라던데요. 형태가 좀 다르긴 했는데, 아무튼 도플갱어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괴물들이야 균열 경계가 의미 없으니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고요.”

“거의 다 성공?”

“문제가 좀 있단 이야길 남기긴 했는데 여기 상황이 너무 급해서 길게 말할 틈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잘 끝냈잖아요? 이지호 헌터 일어나면 도플갱어가 사실 이렇게 꿍꿍이 모를 새끼였다는 걸 알려 줘야죠. 그 얼굴로 구워삶은 건지 아니면 세뇌를 한 건지 묘하게 그놈한테 약하더라니까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알고 지낸 건 제가 더 오래됐거든요? 근데 우리 이지호 헌터가 저번에…….”

박 팀장이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하던 때였다. 이형 에너지의 흐름을 느낄 줄 아는 모든 이들이 벌떡 일어나거나 당황하여 주변을 살폈다. 중심에서 외부를 향해 불던 흐름이 멎었다. 불길할 정도로 정적인 감각. 승환의 품에서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지호가 눈을 떴다.

색 바랜 하늘. 어둡고 고요한, 다 부서져 가는 도시와 이질적인 환경이 중첩된 부근의 풍경. 지호는 단박에 그곳이 여전히 균열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 역시 깨달았다. 다른 이들보다 균열 소멸기를 겪은 경험이 꽤 있는 편인 지호는 황급히 팔을 뻗었다.

“어, 일어났어?”

“균열, 중심을…….”

“응?”

“균열 중심 파악…….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야…….”

지나치게 쇳소리가 섞여 거의 들리지 않는 음성이었다. 승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지호의 입가로 머리를 숙였고, 애석하게도 그 말이 전달되지 않은 채 균열 소멸이 시작됐다.

일반 균열이나 급성 균열과는 다른 악성 균열. 차원이 다른 이형 에너지의 흐름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겨를 없이 거기 있던 거의 모든 이들이 휩쓸려 내동댕이쳐졌다. 신체 계열 능력자들만이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납작 엎드려 균형을 잡았고, 근처에 있는 동료를 붙잡은 이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

여태 중심에서부터 뻗어져 나왔던 모든 이형 에너지가 거꾸로 빨려 나가기 시작했다.

거친 소용돌이 한복판에 휩쓸린 것이나 다름없이 몸이 흔들렸다. 지난 균열 소멸기들을 버텨 냈던 지호조차 경악할 정도의 흐름이었다. 쇄도하는 에너지가 모든 발을 잡아채며 질풍처럼 내달렸다.

실종자들은 황급히 몸을 날려 에너지 흐름에 휩쓸려 가는 헌터들을 붙잡았다. 거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들 모두가 신체 계열 능력자였기에 무리 없이 그 흐름을 견뎌 낼 수는 있었으나, 아무도 그 흐름을 거슬러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날아오는 간판이나 물건들, 표지판, 경차 같은 것들이 또 다른 방해물이었다. 일부는 버티다가 날려 온 것에 얻어맞아 중상을 입으며 휩쓸려 갔다. 진짜 재난 같았다. 여왕의 힘에는 발버둥 칠 수라도 있었지, 자연재해에 가까운 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헌터들 거의 전원이 본래 있던 자리에서 아파트 가까운 곳까지 휩쓸려 갔다. 끝끝내 버티지 못하고 중심부로 빨려 들어간 헌터의 얼굴에 공포가 선연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다. 휘몰아친 이형 에너지는 어느 순간 뚝 멈추었다.

신음하며 고개 든 헌터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경악했다. 실종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살아남은 김 반장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부근을 돌아보았다.

“균열 소멸에 휩쓸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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