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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46화 (247/260)

246화

보현은 그를 쫓는 괴물들을 보며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일반적인 전투 상황에서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신 방벽을 최대로 올려 두는 편인데, 이제는 거기에 쏟을 힘조차 모자랐다. 허덕이던 와중, 보현은 경계 근처로 다가가지 않는 괴물들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그의 팀원이 내뿜는 에너지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제로는 아니다. 처음에는 그쪽으로 호기심을 보인 탓에 무리해 가며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다 죽어 가는 보현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먹이는 아니었을 터. 가까이에 있던 놈은 필연적으로 그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전부를 막아 줄 수는 없으나, 일부 정도라면 따돌리기를 기원하는 것이 보현이 해 줄 수 있는 전부.

그럼에도 놈들은 경계 쪽으로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보현은 살기 위해 괴물처럼 사고했다.

그의 인지가 뒤바뀌고 자신을 긍정하는 감각이 사라지자 보현은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전락했다. 본디 명확했던 균열 밖이 소등되는 것처럼 깜빡거린다. 눈꺼풀을 깜빡이기 때문에 느껴진 착각일까? 피곤해서인가? 보현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경계 바깥, 그들에게는 본래 세계로 돌아갈 길일 뿐인 곳에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명확해지기도 전에 뭔가가 보현을 습격했다. 팔에 느껴지는 격통.

보현이 느낄 수 없는 속도에서 날아온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그 순간 균열 밖이 가물거리며 세상이 흐릿해진다. 보현은 그 너머에 있는 무엇을 느꼈다. 기묘한 일이었다. 보현 본인은 삶의 끝이 다가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죽음을 원하지 않았다.

먼 훗날 그의 피보호자에게 일어났던 일이 보현에게는 좀 더 빨리 찾아왔다.

팔이 잘린 직후, 보현의 몸은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 먹이를 찾아 시야를 넓혔다. 본디 인간의 것이었던 시야가 개변하여 확장되며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아래에서 뛰는 심장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확장되며 당장 ‘섭취할 수 있는’ 개체를 파악하는 것에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의지를 배반하고 스스로 생을 찾기 위해 변이하는 신체를 관찰하며 놀라워했다. 눈앞이 깜빡인다고 느낀 순간 이후, 보현은 균열 경계라 불리는 것을 명확히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본디 조금만 더 이동하면 곧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던 공간이 갑자기 광활하고 위험한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위험한 풍경 속에서 보현은 사냥꾼이자 동시에 사냥감이었다.

꿈일까? 그럴 턱이 없다. 보현은 그에게 일어난 일을 재고하는 대신 움직였다. 팔은 잘렸으나 몸이 움직일 힘은 남아 있었다. 보현은 거의 남은 모든 힘을 다해 자기 몸을 쏘아 보냈다. 염동력이 거의 떨어지며 착지할 일이 요원해졌으나, 당장 괴물들의 머리 위를 지나쳐 한때 균열 경계였던 곳을 넘어가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바닥에 나동그라질 줄 알았던 뭔가에 부딪쳐 충격을 덜었다. 짐승의 살보다는 단단하며 형태를 고정해 인지하기 어려운 어둠. 그 위에 서 있던 어린아이 형태가 보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흐릿한 인영. 헌터 복장 같은 것을 본 기분도 든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어떤 그리운 얼굴을 본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준우야. 맴도는 이름은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보현은 그대로 기절했다.

그가 가물가물 넘어가는 정신을 제대로 다잡지 못하고 쓰러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보현은 번쩍 눈을 떴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언제 기절했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더라?

눈을 뜨자, 정체 모를 어두운 무엇 위에 누운 채였다. 단단한 짐승의 근육 같은 외피. 손이 닿자 뒷덜미로 오싹, 소름이 돋는다.

기절하기 직전 보현을 내려다보던 것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림자가 두 개였던 것은 착각인 모양인지 내려다보는 머리는 하나뿐이다.

아이는 준우의 어린 시절 모습을 꼭 빼닮은 채였다. 준우가 정말로 돌아온다 해도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한참 올려다보던 보현은 괴물이 반응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고 용기 내어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잘린 팔 한쪽은 손에 든 채였다.

“덕분에 안 다쳤다. 덕분이 맞겠지?”

보현의 물음에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가 입을 벙긋거렸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 모양을 읽을 수는 있었다.

‘어서 가.’

아이의 뒤편으로 연결된 검은 줄 같은 것이 걸렸다. 보현의 감각은 끊임없이 그것이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당장 달아날 방법도 기운도 없어 보현은 자기 직감을 따르지 못했다. 보현이 멈추어 서 있자, 아이는 팔을 들어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 사람들.’

다른 말들을 명확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보현은 어린 준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물었다.

“준우, 야?”

아이는 당연히 대답하지 않았다. 보현은 잘린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떨어지며 느껴진 온몸의 통증 중 어느 쪽이 더 아픈지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정신계 능력자 특유의 능력으로 통각을 차단한 보현은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아이가 가리킨 방향이었다.

보현을 겁먹게 했던 그것과 아이 모두 보현을 따라오는 일은 없었다. 환상일까. 죽겠다고 생각했더니 어린 준우의 얼굴을 보다니, 이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다. 보현은 기이하게 보이는 둥근 경계를 보며 균열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풍경은 꼭 송도 같았다. 헌터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감각이 차단되어 걷던 기억만으로 걸음을 옮겨야 하니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보현은 움직이며 느릿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 돌아가 다시 균열로 들어가면, 그때는 준우를 찾을 수 있을까? 그 흔적도?

한 번도 찾은 적 없던 실마리. 보현은 준우를 닮았던 어린아이를 돌아보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미 아이도, 괴물들을 겁내게 해 자기 영역을 유지하고 있던 괴물도 없다.

보현은 다시 몸을 돌려 본래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린 준우를 보자 죽은 파트너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 듯 밀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이런 모습을 그가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떠올렸다. 아마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다. 어디서 다쳐 돌아왔느냐고, 누가 다치게 했느냐고 다그치겠지. 그러고는 사람을 무슨 솜사탕 다루듯 치료기에 집어넣으며 눈으로만 울고는 보현을 괴롭힌 무언가를 처리하러 달려가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 그런 사람이었다. 보현은 그 그리움 때문에 꺽꺽대며 울었다. 그를 살게 하는 유일한 사람이 세상에 없는데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보현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그럼에도 보현은 자기 기억 속의 준우를 다시 보고 싶어, 잘린 팔 들고 있는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살아야지. 살아서 다시 헌터 일하면서, 사람들을 구하면서, 또 이런 위기 만나면 준우가 어떻게 했더라 생각하면서 살아야 했다. 보현 안에 살아 있는 그의 기억까지 죽게 할 수는 없었다. 그마저 죽으면, 진짜로 준우를 기억하는 이들이 남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이라서 사랑을 하는 걸까. 괴물이 된다면 그렇게 괴롭지 않을까. 보현은 자기 감각을 차단하던 힘조차 거의 다 소진했으나 가까스로 경계를 넘었다. 헌터들 사이에서 놀란 지호의 얼굴을 본 순간 깨달았다.

아직 죽을 수 없었다.

지호와 헌터들의 얼굴을 보았을 때 안도했다. 살아 있었고, 살아남았다. 살아남을 것이다. 준우가 기억하던 보현의 모습 그대로, 그런 삶을 살며 그를 기억하고 쫓을 것이다. 아마 그러기를 바랄 테니.

보현이 어떤 감각을 되찾은 순간, 그의 신체가 본래 상태로 되돌아왔다. 동시에 보현이 지나왔던 공간이 다시금 본래의 도시들로 되돌아왔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가 지나온 균열을 발견하는 일은 다시 없었다.

보현은 그가 꿈을 꾸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만큼은 매번 복기하고 있었기에 유달리 선명했다. 여왕이 속삭였다.

너 자신이 괴물의 경계를 넘었을 때 그들의 세상으로 넘어갔고, 어떤 불필요한 집착 때문에 스스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구나. 자신이 무엇이란 감각이 중요했던 것이지? 내가 너희 세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나를 인간이라고 느껴야 한다는 뜻이로구나.

보현은 타인이 엿보기 위해 억지로 끌려갔던 기억에서 부상했다. 준우가 그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겨를 없는 와중에 자신이 무슨 짓을 당한 것인지 깨달은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정신계 능력자답게 그는 여왕이 자기 몸의 통제권을 가져가는 것까지는 막을 수 있었다. 거의 숨 쉬는 힘을 제외한 모든 능력을 퍼부은 필사적인 반항 때문에 일전에 눈알 괴물이 이주원 헌터를 이용할 때 그랬던 것처럼 보현의 눈은 얼음처럼 시퍼렇게만 빛났다.

여러 종을 넘나들며 몸을 변이시켜 온 내가, 고작 그런 것 하나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겠지? 기대가 너무 컸구나. 어리석은 것.

여왕의 검은 형체가 연기처럼 꺼졌다.

보현의 무릎이 풀썩 꺾였다. 준우가 잡아 주지 않았다면 바닥에 쓰러졌을 것이다.

보현이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었던 그 방법이 너무도 간단했다는 것에, 부근 헌터들 모두가 당황하고 있었다. 서둘러 보현을 둘러메고 지호에게서 멀어진 준우는 그 상태부터 확인했다. 가늘게 떨리는 가슴팍을 보니 돌이킬 수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준우는 지호와 보현을 번갈아 보다가 이를 악물고 보현을 안아 들었다. 지호의 몸에서 다시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일어나고 있었다. 김 반장의 힘을 밀어낼 정도로 짙고 무거운 형체. 특수반 헌터들이 뒷걸음질 치고 그를 보조하던 이들도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특수반이 쳐 놓은 정신계 트랩이 깨졌다. 여왕은 자신의 본체와의 위치를 가늠한 뒤, 허공을 떠다니는 드론들 쪽으로 눈을 돌리며 웃었다.

“오랜 기다림이었다.”

지호가 걸음을 떼자 남은 발자국마다 검은 자국이 남았다. 그것들은 흡사 담배 연기처럼 육안으로 구분되게 공기 중에 섞여 들어갔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그곳에 남아 이형 에너지를 불태웠다. 여왕의 정신체를 쫓아 그곳에 밀도 있게 쌓여 있던 이형 에너지들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힘을 거의 다 끌어다 쓴 탓에 외부로부터 힘을 공급받아 버티던 이들부터 무너졌다. 가까운 공간의 모든 이형 에너지를 자기 손에만 쥐게 되자 여왕은 곧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이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유롭게 웃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균열 경계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악성 균열이라지만 그 크기가 본디 작았던 공간이다. 비틀거리며 그를 따르기 시작한 헌터들은 절망감 속에서 여왕의 걸음을 쫓기만 했다. 앞을 막을 수도, 재차 다른 작전을 펼 수도 없다. 그 최악의 상황을 그저 지켜보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뒤따를 뿐.

기이한 행렬이었다.

균열 경계가 지나치게 가깝다. 원래 이렇게 가까웠던가? 그저 보편적인 보폭으로 걸을 뿐인데도 지나치게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헌터들은 서로의 얼굴에 서린 두려움을 모른 척하려고 말도 섞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균열 경계 쪽으로 달아났던 괴물들조차 여왕을 쫓기 시작했다. 싸움도, 사냥도 없이 행렬이 길어진다. 뒤따르는 괴물들이 지나치게 이질적이지만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 여왕의 뒤를 따르기 바빴으니.

검은 연기가 행렬을 이끌었다. 여왕은 어느 순간 하얗게 점멸하여 균열 경계를 지나갔다가 헌터들이 그 앞에 멈추어 선 것을 보고 되돌아왔다.

“이 부근이 경계인가 보군.”

여전히 그의 눈에는 자신의 본체와 포식자들이 싸우는 것이 보일 터. 지호의 몸을 경계 부근에 멈춰 세운 여왕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하얗게 빛나는 팔.

여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호가 보통 저런 표정을 짓는 일이 거의 없었기에 명확히 구분됐다. 여왕은 몇 번이고 팔을 경계에 집어넣었다. 헌터들 눈에는 하얗게 빛나며 그곳을 통과하여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고, 그건 모든 괴물에게 보이는 동일한 현상이다.

즉, 보현의 기억을 통해 어떤 방법을 알아낸 괴물이 보일 법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수차례 뭔가를 시도하던 그는 으르렁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도준우에게 의지해 선 채 지호를 바라보던 보현은 움찔했으나 물러서지는 않았다. 여왕의 눈에서 붉은빛이 깜빡였다.

“자기 자신까지 속였나? 기억을 조작했어?”

“나는 한 점 부끄럼 없이 결백한데. 여기 누구 내 기억 조작한 사람?”

여왕이 내뻗으려던 손은 무언가에 막힌 듯이 우뚝 멈추었다. 여왕의 일그러진 표정이 느릿하게 펴지더니,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익숙한 표정이 나타났다.

“하하, 하하하. 사람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우리 모두 매 순간 사람답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고작 나는 이제부터 사람이란 한마디로 진짜로 네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지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붉은 기운이 서리지 않은, 또렷하고 반듯한 시선.

눈이 마주치자 그는 빙그레 웃었다.

“말은 이렇게 하는데 수틀리면 그냥, 도준우가 하려는 일을 묵인해 줘요. 무슨 말인지 알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호의 눈에 다시 붉은빛이 차올랐다. 동시에 표정이 야차와 같이 일그러지고, 여왕의 기운이 더없이 흉포해지며 이형 에너지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감히 고작 인간 주제에!”

한 어절을 끊어 뱉을 때마다 충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다시 한번 균열 경계에 자기 손을 들이민 여왕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다. 바닥에 발 닿은 모든 이들이 동시에 위로 떠올랐다. 인간이고 괴물이고 할 것 없이 땅에서 십여 센티미터가량 떠오른 생물들은 모두 버둥거렸다. 의미 없는 몸짓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영향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저 보고 싶었죠?”

괴물들을 내리꽂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호를 향해 쇄도한 박 팀장의 손에 들린 건 낯선 신체 부위였다. 얇고 가느다란 백색의, 긴 이쑤시개처럼 보이는 무엇. 지호가 반항할 새도 없이 박 팀장은 그걸 지호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찔러 넣었다.

사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이 퍼져 나가며 박 팀장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지호를 찌른 가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지호에게 서린 검은 기운이 그 가시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쐐애액, 청력을 초월한 높은 소리와 함께 여왕의 정신체가 뿜어내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허공에 떠 있던 이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홀린 듯이 여왕의 뒤를 쫓아왔던 낯선 괴물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아나 버렸다.

나동그라진 사람들뿐인 혼란스러운 균열 경계 앞에서 제일 먼저 기침하며 일어난 신체 계열 능력자들은 죽은 듯이 누운 지호를 향해 달려갔다.

가볍게 오르내리는 등. 고른 숨소리. 까뒤집어 보니 붉은색도 아닌 눈. 거기에 여왕은 없었다. 새까맣게 변해 버린 가시 때문에 비스듬하게 누운 지호만 남아 있을 뿐.

“저게 뭐예요?”

“도플갱어에게 받은 겁니다. 여왕의 첫 번째 자식에게서 뜯어낸 물건이라나?”

“놈이 성공했답니까?”

“어느 정도는요.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여왕을 잠시 봉인해 두는 정도의 효과뿐일 거라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장의 상황이 대충 끝난 것 같자 눈치를 살피던 승환은 잽싸게 튀어나와 지호를 안아 올렸다. 얼굴 외의 부위는 대부분 괴물의 것으로 대체되어 낯설었다. 그러나 지호는 여전히 지호였고, 거기에는 여왕에게서 자신을 지켜 낸 승리자가 잠들어 있었다.

그가 아주 오래도록 필요로 했던 단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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