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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43화 (244/260)

243화

“그들이 교섭을 요구한다는 건 무슨 말이죠?”

특수반 헌터들은 질문할 겨를도 없었으나 상대적으로 대기 상태를 유지하던 다른 헌터들은 얼마든지 물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박 팀장은 자신과 함께 이곳으로 헌터들을 옮겨 온 이동 능력자들 쪽을 돌아보며 난처하단 표정을 지었다.

“달리 요구할 게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자기들도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단 겁니다.”

이곳에 함께 온 박 팀장 휘하 이동 능력자들은 소민을 제외하면 전원이 부천 센터 소속이다. 유별나게 앞뒤 가리지 않기로 유명한 헌터들.

머뭇거리던 이들 중 하나가 물었다.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이제 와서요?”

박 팀장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김 반장을 비롯한 특수반 사람들이 숨기고 있던 바로 그 정보가 풀려나간 지금, 괴물로 변한 생존자들을 배척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동시에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위험했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다른 괴물 손에서 구해 내어 온 공로만큼은 인정해야 했다. 게다가 돌변하면 구출해 온 사람들의 머리를 따 버릴 능력 있는 이들의 요구라면 더더욱 들어 봄 직했다.

“여기 상황이 급하니 저만 다녀오겠습니다. 만약의 경우, 주요 인물들만이라도 대피시켜 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알죠?”

박 팀장과 눈을 마주친 일부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임보현 헌터와 김동주 헌터 외의 나머지는 수틀리면 버리는 패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당연히 다른 이들의 희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므로, 해당 작전은 이동 능력자들 사이에만 은밀하게 전해진다. 누구도 그 작전의 시행을 바라지 않기는 하지만,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박 팀장이 급히 자리를 떠난 뒤 균열 밖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외부 상황을 전해 줄 책임자가 사라지자 헌터들은 눈에 띄게 불안해졌다. 김 반장은 지호를 덮고 있는 트랩을 컨트롤하느라 다른 이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임보현 헌터는 다른 이들을 규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헌터들은 보현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 위명에 기대고 싶은 것이다. 사실은 누구보다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데도.

균열 밖의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며 도준우는 도플갱어의 계획이 완전히 성공했음을 알았다. 이제 이지호 헌터의 몸속에 있는 정신체와 그의 몸을 완전히 분리하는 데만 성공하면 여왕을 성공적으로 제압할 수 있을 터.

분명 그래야 했다.

아무리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지만 이런 사태까지 예견하지는 못한 도준우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났다. 본디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않아 생채기투성이였던 지호의 살이 갈라지며 비늘이 돋아나고 있었다. 목 아래까지 거의 전신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양쪽 눈은 양서류처럼 각기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안 돼.”

도준우의 음성에 깔린 당혹감이 헌터들의 불안을 증폭시켰다. 모여 있던 헌터들은 퀸 패러사이트의 협조자였던 전직 헌터가 곧장 임보현 헌터 쪽으로 몸을 트는 것을 보기 무섭게 방벽을 전개했다.

거의 전력을 다해 펼친 방벽이었으므로 두께가 상당했으나 한 번의 공격을 막는 순간 절반이 깨졌다. 엉겁결에 준우의 품에 안긴 채 한참 먼 곳으로 물러나게 된 보현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뭐야, 풀려났어?”

“죽여야 해.”

보현을 안전한 거리에 내려놓은 준우가 중얼거린 음성에 보현은 질겁하며 그의 팔을 붙들었다.

“아직 특수반 트랩이 안 풀렸어!”

“시간문제일 거다. 이지호 헌터가 도대체 저걸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어. 모르겠냐? 저 많은 정신계 헌터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는데, 그걸 정신 방벽 하나 없는 일개 어린애 하나가 버틴다고?”

퀸 패러사이트의 영향에서는 벗어났으므로 준우는 정신계 작용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까지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여왕의 힘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느꼈다. 한 번이라도 놈의 정신력에 압도되면 보현을 지킬 수 없을 테니.

“아직 다른 사람들도 포기 안 했어! 지호 씨도, 버티고 있잖아!”

“그럼 게이트로 이동해.”

“뭐?”

“어차피 넌 지금 전투에 도움도 안 돼. 놈이 너를 노리고 달려드는 거 못 봤어?”

지호의 눈이 피처럼 붉었다. 심지어 그 신체는 더 이상 사람의 것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변이되고 있었다. 보현은 입술을 꾹 깨물며 현실적인 계산을 끝냈다.

“지호 씨를 죽인다고 끝날 일이 아니잖아.”

“네 피보호자 한 사람의 목숨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 중에 선택해야 해. 하지만 후자에 네 목숨까지 들어 있는 이상, 내게 선택지는 더 이상 두 개가 아니야.”

준우는 보현의 대답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특수반의 트랩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지호를 통해 드러나는 여왕의 기운은 거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정신을 깎아내렸다. 심지어 쳐다보기만 해도 피로감이 느껴진 탓에 보현은 현기증을 느꼈다.

“지호 씨를 죽인다고 해도 저건 우리 쪽으로 넘어올 방법을 찾아내지 않을까?”

“당장은 아니겠지. 어쩌면 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닐지도 몰라.”

준우는 보현을 데려오며 가로챘던 칼을 꺼내 날을 확인했다. 신체 계열 능력자가 쓰기엔 투박한 물건이다. 이형 에너지를 불어넣어야만 날이 서는 칼이니까. 자신에게는 그저 몽둥이에 지나지 않는 칼을 휘둘러 본 그는 씁쓸한 얼굴로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네가 갖고 있는 편이 좋겠어.”

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호의 목 아래로 돋아난 비늘들이 그의 모습을 한층 기괴하게 만들고 있었다. 신체 계열 능력자는 아니었으나 유독 눈이 좋은 편이었던 보현은 지호의 변이 과정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지호의 눈가로 연신 흘러내리는 그것은 눈물이었다.

“더는, 괴롭지 않게 해 줘.”

고개를 끄덕인 준우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뒤이어 몰아치는 후폭풍에 눈 앞을 가리며 비틀거린 보현은 준우가 지호의 머리 쪽으로 공격을 집중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다른 부분은 괴물의 것으로 돌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인 부분이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 사람이고 어디까지 괴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유독 괴물과 사람의 경계에 관해 고민하던 지호의 앳된 얼굴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보현은 저도 모르게 지호를 따라 울었다.

준우와 지호가 본격적으로 격돌하며 부근에 서 있던 헌터 대부분이 견디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간신히 버티고 선 강하나 헌터 뒤로 자신을 짜내어 에너지를 지원하는 장지윤 헌터가 보였다. 위협적으로 날아와 방벽을 손상시킬 만한 것이 그들에게 꽂히기 전에 그것을 멀리로 날려 버리는 최소민 헌터까지, 지호의 친구들은 손발이 착착 맞았다.

하필 보현의 앞에서 전투의 충격을 막아 내는 어린 헌터들. 본디 지호 역시 저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여왕 때문에 명운을 달리하는 이런 상황이 아니라,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삶을 살아가야 했다.

당연히 지호도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문득 지호가 죽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란 당연한 사실을 떠올린 보현은 눈가를 거칠게 쓸어 닦았다. 지호의 보호자로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진정 그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일일까?

여왕이 내려친 공격의 여파로 쭉 밀려난 헌터들은 보현 근처까지 왔다. 뒷걸음질 치다 보현에게 부딪친 지윤은 당황하여 고개를 돌렸다가 곧 보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임시 대장, 얼굴이 완전 핼쑥해졌네. 누가 보면 대장이 죽는 줄 알겠어요.”

“죽어 가는 사람은 저기 하난데, 제가 왜 죽겠어요.”

나머지 두 사람도 흘깃 뒤를 돌아보는 것이 느껴졌다. 보현은 쓸데없는 소릴 했단 생각에 아니라며 말을 얼버무리려 했으나 본디 말 많던 지윤은 그 이야기를 쉬이 넘기지 않았다.

“지호 씨 안 죽을 건데요? 임 헌터님이 그걸 안 믿으면 어떻게 해요? 살려고 저렇게 버티고 있는데. 살려 달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지윤은 그런 농담 하는 거 아니라며 좀처럼 보이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남은 힘을 박박 긁어모았다. 보현은 느릿하게 전달되어 오는 치유 에너지를 느끼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럼요. 우리 전에 같이 캠핑도 다녀왔거든요? 지호 씨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시죠? 해 봐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을 거예요. 안 해 봐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친구라고요. 너무 행복할 때면 기쁨을 꾹 참으려고 얼굴 모으는 그 이상한 표정을 몇 번은 더 봐야겠어요. 그러니까 임 헌터님이 먼저 포기하고 그러지 말아요. 지호 씨가 헌터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좋아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지윤의 청산유수와 같은 말과 함께 그 마음처럼 따뜻한 에너지가 차올랐다. 보현은 그가 준우에게 했던 말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맞는 말이다. 지호가 싸우기를 포기했다면 저것은 진작 헌터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을 터.

“미안한데, 최대한 채워 줄래요? 저쪽으로 접근해야 해요.”

“미안하긴요. 이게 제 일인데. 근데 괜찮겠어요? 저쪽에서 대놓고 헌터님을 노리는 것 같던데. 위치 바꿔도 몇 번이나 그쪽으로 달려들었잖아요.”

“해 봐야죠. 여러분 말처럼, 지호 씨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지윤은 입가를 실룩이며 묘한 얼굴을 했다. 곧 지윤은 익살맞은 얼굴로 윙크하며 소민에게 보현을 잡지 않은 반대편 손을 내밀었다. 소민은 한숨 쉬며 안쪽 주머니에서 챙겨 둔 마정석 몇 개를 꺼내 주었다. 보현과 눈이 마주친 소민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그, 이, 이 전투복 지호 씨 거잖아요. 여기저기에 무슨 사탕 넣어 놓듯이 마정석이 남아 있어서. 빌리는 거예요. 이해해 줄 거라고요.”

“넣어 놓고 잊어버렸을걸요? 아니 누가 전투복에 마정석 넣고 까먹냐. 현금화 안 한대요? 지호 씨는 진짜 물욕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나 같으면 당장 최신형 장비 보러 뛰어갔다.”

“언니 장비 빌렸으면 우리 마정석 없어서 허덕이다가 처발렸을 듯.”

지윤이 비속어를 섞어 시시덕거리자 하나가 도끼눈을 떴다. 보현은 그들 사이의 친밀한 공기를 실감하며 지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공격으로 쭈욱 찢어진 피부가 비정상적인 속도로 복구되는 것이 보인다. 갈라진 전투복 아래로 보이는 것은 사람의 피부가 아니었고, 지호의 몸은 거의 괴물에 가깝게 변해 가고 있었다.

막을 수 있을까?

준우뿐 아니라 다른 이들이 힘에 부쳐 허덕이는 것이 보인다. 거기 둘러선 채 특수반을 보호하며 버티는 헌터들을 보며 보현은 힘겹게 결심했다. 이대로는 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보현이 해야 하는 결심은 지호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1세대 헌터답게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힘이 돌아오자 약해져 있던 마음까지 곧게 선다. 보현은 헌터였다. 그가 잡아야 할 것은 동료 헌터가 아니라 괴물이다. 본디 전투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원칙.

여왕이 당장 바라는 것은 사용할 지호의 몸이겠지만, 그 몸을 얻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진짜 목적일 것이다. 놈이 본체를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넘어오는 것만큼 최악의 재앙은 없겠지만, 어차피 이 대치가 길어지면 지호의 몸은 완전히 괴물로 변하여 여왕에게 넘어가고 말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명령대로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결정을 내린다면 보현이 해야 했다.

마정석을 에너지화하여 보현 쪽으로 밀어 넣는 지윤의 얼굴은 다른 이들 모르게 굳어 있었다. 필터도 없이 마정석을 바로 사용한다. 그 말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거기에 아무도 없다.

괴물과 다를 바 없는 각성자들. 그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지윤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작 알고 있었다면 갖고 있었던 마정석을 써 버렸을 텐데, 최후의 최후까지 뭣도 모르고 가지고만 있을 수도 있었으니.

제각기의 생각이 얽혀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리깔렸다. 준우가 재차 지호를 향해 맹렬한 공격을 날리고, 그것을 튕겨 내며 바닥을 부수어 날리는 반격은 주변 헌터들에게 지나치게 위협적이었다. 소민은 그것들이 방벽에 닿기 직전에 힘을 가해 방향을 틀며 땀을 닦아 냈다. 말은 안 하지만 다들 한계에 몰려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거기에서 가장 힘들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으니까. 보현은 약해진 몸이 언제까지 버틸지 짐작하기 어려웠으나, 최소한 이번 균열만큼은 이겨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믿지도 않는 신을 이럴 때만 찾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마 있는지 모를 절대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것이다.

보현은 초조함을 감내하며 기다렸다. 약해진 몸으로 뛰어들어 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최소한 여왕의 압박을 견뎌 낼 수 있는 수준까지는 회복해야 한다. 조급함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입술이 아픈 쪽이 낫다. 그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헌터들의 가운데,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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