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퀸 패러사이트의 지배에서 벗어난 도준우는 눈에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보현을 공격하는 것 외에는 거리낄 것이 없었는지 다른 헌터들의 공격을 역이용해 그들을 제압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대로 당해 줄 거란 기대는 할 수 없었지만, 저토록 망설임도 없이 헌터들을 공격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아마 그들 역시 인간의 모습을 한 도준우에게 일말의 자비 정도는 기대하고 협동 공격을 퍼부었을 테지만…….
지호는 퀸 패러사이트 곁에 있던 도훈이 그를 얹고 있던 호위대로부터 그 주인을 인계받는 것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지호가 기억하기로는 가장 강하고 무자비했던 호위대가 퀸을 보호하고 있었고, 이제 막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할 중요한 이유를 잃었다.
둘은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관계다. 그러나 믿기 어려운 형제는 기어오르는 것이 괘씸한 벌레 같은 인간들보다는 훨씬 믿음이 갔을 터. 지호는 괴물이나 떠올릴 법한 비유로 생각하며 퀸이 도훈에게 기대는 것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퀸의 안전을 확인한 놈은 포효했고, 헌터들에게 달려들었다.
무자비한 사냥이었다.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애당초 균열 경계를 이용해 가며 유인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놈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익숙하게 놈의 공격을 흘려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노련한 알파 팀을 제외하면 나머지 헌터들은 대응 한번 하지 못하고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알파 팀 사이에서 이주리 헌터를 발견한 지호는 그의 시선이 전갈 닮은 코드 옐로우 개체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곤 조심스럽게 보현을 내려놓았다.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한 까닭에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던 보현은 자신을 부축하는 간호사에게 기대어 비틀거리며 질문했다.
“이들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뇨. 괜찮을 거라고 누가 그랬어요.”
“누가, 아니. 지호 씨. 혹시 머릿속에 있다던 도플갱어 정신체 이야기예요?”
지호는 그 말에 답하지 못한 채 복잡한 얼굴로 도훈 쪽을 응시했다. 지호가 보현을 보호할 때 그러했듯, 도플갱어 역시 퀸 패러사이트를 안아 든 채 부근 헌터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 거리를 두고 있다. 도준우가 이주리 헌터를 바닥에 처박아 그 목을 거의 부러뜨릴 뻔했을 때 보현은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려다 넘어졌다. 그 모든 것을 마치 제3자처럼 바라보며 지호는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도훈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걸까?
바로 곁에서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 음성보다는 의미 자체가 곧장 전달되어 보현의 음성보다 더 크게 지호를 흔들었다.
날 믿어. 기다릴 수 있지?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지호는 그가 목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 자체를 불합리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어떤 타인도 지호의 의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 들 수는 없었다. 그것이 설령 선의에 기반을 둔 일이라고 해도.
목소리가 내내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지만, 지호는 느릿하게 앞으로 움직였다. 치료계 능력자 덕분에 피만 좀 멎은 다리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역설적으로 그 고통 때문에 지호의 정신이 또렷해졌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며 지호는 생각했다.
‘도훈 씨가 내게 호의적인 건 이상한 일이야.’
머릿속 목소리가 어떤 부정의 말을 던지건 상관없었다. 홀로 싹을 틔우기 시작한 의문은 빠르게 피어났다. 지호는 자신이 보현을 위험에 빠트릴 선택을 한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의 기억은 여태까지 도훈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빠르게 훑으며 거꾸로 되감겼다.
도준우에게 인간미를 찾지 못했던 지호가 도훈에게는 인간적인 느낌을 받았던 이유? 명확한 것이 있을 턱이 없다. 그는 그저 지호에게 호의적이었고, 지호 역시도 그에 맞추어 보답하듯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의문은 좀 더 명확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괴물을 인간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더라. 그 모든 인지가 지호 본인에게서 비롯되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호의 머릿속 한곳에서 그에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건 아주 다른 이야기다. 무수한 선택지들을 지나치며 지호가 지나온 줄 알았던 선이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의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는 추측.
뒷덜미를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언제부터였지? 다른 괴물들도 다를 바 없을지 모르는데, 도훈 씨를 지나칠 정도로 친숙하게 여겼어. 언니에게 소중하다던 도준우조차 헌터보다는 괴물이 되어 버린 놈이라고 생각했으면서…….’
손예린 헌터에게 수작질했던 그가 머릿속을 차지하고 나서 얌전히 지호를 관찰만 했을 리 없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한때 친구라고, 어쩌면 균열 안에서만큼은 그의 파트너일 수 있겠다고 여겼던 이가 갑자기 멀게 느껴졌다.
먼 곳에 있던 도훈과 눈이 마주쳤다. 혹은 그랬으리라고 생각했거나. 사실 후자일 확률이 더 높았다.
지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 정신체인 도훈은 알고 있겠지만, 그 먼 곳의 본체인 도플갱어 역시 알고 있을까? 보현의 말처럼 그 생각을 고스란히 읽고 있을까?
헌터들이 다시 연합하여 코드 옐로우 괴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을 바로 그 순간, 놈들을 여유롭게 상대하면서도 그것들이 지호의 존재를 의식한 바로 그 순간이다. 머릿속에서 웃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내내 도훈을 응시하고 있었기에 지호는 보았다.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일반적인 크기가 아니었다. 뺨이 찢어지고 턱이 열리며, 인간의 형태 아닌 것의 아가리가 드러났다. 지호는 처음으로 도플갱어의 본체를 목격했다. 인간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지 않은 그 본연의 모습. 정해지지 않은 형태가 일렁인다.
인간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외형과 달리 입 안쪽은 도플갱어의 것이다. 그것은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고 기우는 대로 흔들리면서도 용케 형체 자체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여, 날카롭게 선 이빨들로 형제의 머리를 짓이겼다.
퀸 패러사이트는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으나 목적을 달성하기 전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행동을 멈추었다.
퀸의 머리를 삼킨 도플갱어는 천천히 형체를 회복했다. 일전에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러나, 죽이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고.
퀸 패러사이트가 쓰러지자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괴물들이 줄 끊긴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도준우만이 멀쩡했다. 물론 그 역시 당황한 얼굴로 무릎을 꿇으며 움직임을 멈추긴 했으나 다른 것들처럼 아주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헌터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함정일 거라고 외치는 자와 지금 공격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쓰러진 퀸의 몸이 바람에 휘날려 버석버석 흩어졌다. 끝이었다.
“왜?”
들릴 리 없는 질문을 던진 지호에게 답을 돌려준 것은 그의 머릿속 목소리였다. 먼 곳에서 도훈이 이쪽을 응시하는 것이 보인다. 그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지호는 그것이 도훈의 말임을 기민하게 깨달았다.
이로써 계획이 완성되었어. 이제 여왕이 나타날 거야. 네 동료들은 너를 상대해야겠지.
지호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의 계획은 연합하여 여왕에게 맞서는 일 아니었던가? 퀸 패러사이트가 그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어 그들이 대립하게 된 것이 아니었다고?
형제들의 기억이 모두 내 것이 되었으니 이제 여왕의 진짜 목적도, 우리를 이용해 얻으려던 것도 명확히 알아. 홀로 고고히 선 먹이 사슬 꼭대기의 포식자가 아니었어. 알고 있어? 여왕도 우리처럼 두려워하는 것이 아주 많다는 것을.
머릿속에 천둥이 치는 것 같다. 한때 너무도 작아 지호의 인식 속에 무의식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던 도훈의 정신은 이제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할 만큼 큰 존재감으로 지호를 짓눌렀다.
“퀸을 죽이려고 우릴 속였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세상 누구도 머릿속의 존재와 대화하지는 않으니까. 그러나 지호는 조심스럽게 도훈의 이름을 중얼거려 보았다. 어디에서도 반응이 없다.
“퀸을 먹어 그 기억을 얻으려고, 나를 속였어요?”
지호의 목소리는 이제 반쯤 떨리고 있었다. 도훈의 정신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그가 말을 듣고 있으리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곁에 누군가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지호는 버럭 소리쳤다.
“우릴 사냥하기 위해 호위대를 다 보낼 걸 알고 있었죠? 일부러 이 시기를 고른 거야, 그렇죠? 여왕이 균열 내부에 들어오기 전 어떤 식으로 괴물들을 속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그 포식자들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니까. 아니, 그런 괴물이니까. 대답해요. 대답하라고!”
그때 보현이 거의 울부짖는 것에 가까운 소리로 준우의 이름을 불러, 지호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돌아갔다. 다른 괴물들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모양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으나 도준우는 자신을 포박하려는 헌터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비틀거렸다.
“퀸 패러사이트가 당했나?”
멀지 않은 곳에서 박순자 헌터가 소리 높여 질문했다. 지호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도훈이 있던 곳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들리던 목소리 역시 없다. 마치 그 먼 곳에서 머릿속 정신체를 통해 말을 전해 왔던 것처럼, 도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 목소리 역시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게이트를 통해 지원 올 헌터들이 있을 거라곤 생각했었다. 보현이 균열 안쪽으로 길이 열려 있다고 말해 주었으니까. 도준우를 포박한 자들은 그를 바닥에 쓰러뜨린 채 대여섯은 달려들어 움직임을 봉쇄해야 했다. 뒤늦게 충격에서 회복된 주리는 대열을 이탈해 코드 옐로우 중 하나의 시신으로 달려갔다.
“주아야!”
주리는 괴물의 꼬리에서 시신을 우드득 뜯어냈다. 등에 연결되어 있던 모종의 줄기들이 뽑혀 나오자 산 것처럼 보이던 시신의 몸이 빠르게 생기를 잃었다.
“안 돼,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 없다고!”
주리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이미 죽은 몸. 그리고 그 사후까지 내내 이용되기만 했던 불행한 아이의 주검이 맥없이 흔들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차라리 시신을 찾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제는 무난해진 인사조차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김 반장은 박 팀장이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본 그는 거기 모인 헌터들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게이트를 넘어온 건가? 다른 사람들은?”
“경계가 넓어지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구조 인력을 차출하는 것이 불가능할 거란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더 늦기 전에 게이트를 통해 사람들을 구출하기로 했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게이트 부근에 최소한의 방어 인력을 남겨두고 외부 방어에 동참하지 않는 인원 전원이 내부로 들어와 구조 작업 중입니다.”
“퀸 패러사이트는? 이지호 헌터는 어떻게 됐지?”
“안 그래도 지금 싸움이 좀 이상하게 끝나서 상황을 파악 중인데……. 이지호 헌터도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말이 아니야. 어딨지? 다들 모여! 곧 놈이 모습을 드러낸단 말이야!”
김 반장이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아는 박 팀장은 이유는 나중에 묻겠다며 헌터들을 다시 소집했다. 전투 후 피로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헌터들은 영문도 모른 채 집결했다. 멍하니 한쪽을 응시하고 있는 이지호 헌터만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부르려 했을 때, 김 반장이 소리쳤다.
“건드리지 마!”
“예?”
“놈이 온다. 특수반, 전원 보호한다!”
지원 팀에 섞여 있던 특수반 헌터 몇몇이 빠르게 서로의 힘을 엮어 헌터들에게 정신 방벽을 씌웠다. 무슨 일이냐고 소리 내어 묻기도 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헌터들은 그것을 느꼈다.
투웅. 심장 안쪽에서부터 무언가가 울렸다.
소리가 아니었으며 물리적인 무엇도 아니었다. 정신계 능력에 내성 없는 신체 계열 퓨어 헌터 일부가 고통을 호소하며 비틀거렸다.
“저게 뭐야?”
박순자 헌터의 말은 비명에 가까웠다. 모든 헌터들이 똑같은 방향을 응시했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 발목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이 얼어붙는 공포. 생의 마지막을 맞닥뜨린 적 있는 자들이기에 더욱 죽음에 가까운 헌터들 모두가 일제히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도망쳐야 한다고. 저런 것을 상대할 수 없다고.
먼 곳을 응시하던 이지호 헌터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는 눈. 몇 번 눈을 깜빡이자 그 붉은색은 곧 사라졌으나, 이내 천천히 색이 돌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지호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 사이에서 놀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보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두개골을 쪼개어 뇌를 파낼 것 같은 격통. 지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머리를 움켜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의미가 전달되지 않는 누군가의 속삭임.
곧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