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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33화 (234/260)

233화

둘의 시선이 불안하게 부딪쳤다. 지호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다고 머릿속에 있다는 도훈의 정신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손이 갔다.

김 반장은 그걸 끄집어내거나 하는 건 자기 영역이 아니라고 설명한 뒤, 오히려 뭔가 잘못될까 두려워 가능성 있는 행동들을 시도하는 일을 뒤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지호는 얼른 승낙한 뒤에 나중에 도훈의 멱살을 잡아 탈탈 털면 머릿속에서 그 정신체인지 뭔지가 빠져나가지 않을까 기대했다.

짧지 않은 혼란의 시간이 지난 뒤 보현이 부스스 일어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짙은 녹색 빛 에너지에 노출된 채 머리를 대고 누워 있으면 누구라도 잠들 수밖에 없는 법이다. 보현은 일어나자마자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호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뭐야. 괴물이랑 싸우러 갔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것들이랑 협조해서 금방 잡았어요. 계획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언니랑 김 반장님을 데려오라고 해서, 온 거예요.”

“아, 준우가.”

보현은 무심히 그 이름을 중얼거리며 벗어 놓았던 전투복 상의에 팔을 꿰어 넣었다. 아주 혼란스러웠던 조우 후, 보현은 이제 제법 덤덤히 그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지호는 지은 죄가 있어 눈치를 좀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저를 잃지 않는 거? 라고 김 반장님이 그러시던데. 그럼 계획이 뭐예요? 전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마감 부위를 깔끔하게 여민 보현은 장갑의 손목을 소맷단과 연결해 채우며 싱긋 웃었다.

“여왕 낚시할 거예요. 미끼가 지호 씨이긴 한데, 우리가 정신체 그물로 그 전에 놈을 낚아챌 예정이니 너무 무서워하지는 마요.”

“그런 설명으로 어떻게 안심하라고 말할 수 있나?”

김 반장이 혀를 차며 딴지를 거는데도 굴하지 않고, 보현은 꿋꿋이 자기 언어로 계획을 설명했다.

“준우가 가르쳐 준 건데, 2세대 악성 균열 때 퀸 패러사이트가 생겨났대요. 그 대구 균열 말이에요. 지호 씨는 좀 어릴 때지만.”

보현이 지호의 관심을 계획 아닌 다른 것으로 돌려놓기 위해 화젯거리를 꺼낸 것이라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퀸 패러사이트의 이야기이며, 보현에게 제일 중요한 인물이 꺼낸 비밀스러운 정보. 지호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피해 진짜 심각했었거든요. 반장님도 2세대 출신이니 알겠지만, 그때 정신계 헌터들 대부분이 각성했어요. 이유는 몰라도 괴물들에게 작용하는 어떤 힘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퀸 패러사이트 같은 정신계 괴물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그런 힘을 얻었겠죠? 우리가 사냥한 그 이상한 눈알 모양 괴물도 그때쯤 생겨났다고 했어요. 도플갱어는 좀 다르다는데, 아무튼 나머지 두 놈 역시 정신계에 바탕을 둔 놈이라 여왕의 본질에 제일 가깝다더군요.”

“여왕의 본질이 정신체예요?”

지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 말대로라면 순수 신체 계열 능력자들은 정말 손도 못 대고 당할 것이 분명하다. 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 반장을 돌아보았다.

“지호 씨한테 보여 주지 않았어요? 준우 말론 도플갱어 측에서 반장님한테 정보 전달했을 거라고…….”

“여왕의 이미지 말이냐? 보여 주긴 했다만…….”

“보기만 해도 아주 끔찍하다고 하던데. 아무튼, 그래서 놈이 이쪽으로 넘어오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때 정신계 능력자들의 힘이 필요한 거죠. 놈에게서 벗어나 본 놈들의 말에 따르자면, 균열과 균열 사이를 이동할 때는 꽤 취약한 상태가 된대요. 그러니까 아무리 그 잘난 여왕이라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태가 될 거라는 거죠. 아주 찰나의 순간이니 그때를 놓치면 재앙이 되겠지만.”

“결국 넘어오게 유도하긴 해야 한다는 거죠?”

“맞아요. 그래서 지호 씨가 게이트를 통해 여길 나가는 건 그 최후의 사태에 직면했을 때로 남겨 두기로 하죠.”

보현은 자기 핸드폰을 톡톡 두드리며 웃었다. 게이트에 관해선 생각도 않고 있던 지호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질문했고,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소식이었다.

***

“게이트를 통해 괴물들이 넘어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아, 이거 초 치는 소리 하네.”

“아니, 그렇잖습니까. 처음부터 이 작전에서 제일 중요시해야 할 부분이 그거였다고요. 그래서 선발대를 보내서 균열 저편을 확인하고 그 난리를 쳤던…….”

“이봐, 송한결 씨. 지금 사소한 거 따지다가 중요한 사람들이 다 죽게 생겼다니까.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렇게 해서 헌터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으려고?”

“하지만 괴물들이 넘어오는 게…….”

“그걸 막으려고 이 많은 헌터들이 모인 거라고. 방해할 거면 좀 나가 주겠나?”

양 솔 박사의 핀잔에 송한결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갖은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며 심지어는 대신 맞는 일까지 종종 있었던 튼튼한 멘탈의 소유자답게, 한결은 양 박사의 태도에 굴하지 않았다.

“안 됩니다. 혹시 박사님이 또 헛소리하셔서 분노하는 헌터님이 계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잘못해서 맞아 죽으면 그 머릿속에 든 국가 재산들은 복구할 수도 없어요.”

한때 비밀 기지처럼 사용되던 시흥의 지하 연구소엔 사람이 가득했다. 연구진을 제외하곤 전원이 각성자다. 보안 요원까지 투입되어야 할 정도였으나 모두 심각성을 이해하여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사유하려 들지는 않았다.

물론 당장 열린 악성 균열 때문에 벌어진 사고들을 외면할 수 없는 이들이 바로 각성자들이며, 그들 중에서도 타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직업을 선택한 자들이 헌터이니 당연한 노릇일 터.

그러나 이 게이트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유혹에 빠지는 사람은 분명 있을 것이다. 보안 요원이 필요할 거라고 주장했던 건 남선일 사령관이었고, 그의 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어디서 말을 주워듣고 온 건지 기자들이 입구에 들끓었고 sns로도 암암리에 현실에 기반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일반 균열 때 그렇게 무리하지 않았으면 이지호 헌터가 그 꼴이 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거기에 많은 사람의 이권이 달려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계속 일반 균열만 열리면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될 텐데.”

“거기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 않을 때의 이야기지. 최근에 있었던 대형 균열 같은 일반 균열이 또 생겨난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재앙인가? 그 정도 되면 우리도 다른 나라들 꼴 날 거라고. 헌터들마저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남지 못하는 시대가 와 버릴 거야.”

양 박사는 끊임없이 불만 어린 중얼거림을 토해 내면서도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일사불란하다고 말하기는 좀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연구 팀들의 분주한 노력으로 게이트는 안정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본디 좌표를 찍어 놓았던 게이트 위치가 악성 균열에 휩쓸리면서 일어난 우연한 사고 덕분에 수립된 계획이었다.

악성 균열이 넓어짐과 동시에 저쪽에서 사람들 사는 구역과 겹쳐지는 곳 역시 커진다. 이쪽에서 볼 때도 마찬가지로 균열인 기이한 공간. 그쪽으로 드론을 날려 보았던 연구진들은 이형 에너지가 드론 표면에 들러붙어 그것에 막을 씌워 주듯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상태로 균열 밖에 있을 때 투입되었던 드론들은 균열을 통과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균열 너머로 관측되는 것은 괴물들의 다 무너지고 황폐한 생태계였으며, 연구자들은 그것이 드론에 붙은 이형 에너지가 만들어 낸 작용일 것이라 의심했다.

괴물들의 세계를 관측하기 위해 들어간 드론에게서 데이터를 계속 전송받기 위해 게이트는 여전히 열린 상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헌터 중 상당수가 지하 실험실에 모였다.

“금유빈 박사님 편으로 공유받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악성 균열 내부 생체 지도를 거의 완성했습니다. 산발적으로 움직이는 은신 개체들 정도만 좀 파악이 안 되고 있는데, 병원 부근에서 다른 쪽으로 퍼진 것 같아요.”

“드론 세 기 추가 격추. 괴물들의 움직임이 난폭해집니다.”

“이상 반응이에요. 대형종들이 이렇게까지 모여든 것도 그렇고…….”

균열 경계를 날아다니던 드론들은 계속 부서졌다. 절반 이상이 부서진 뒤에 연구진은 이형 에너지의 과적 반응을 추적하는 것을 포기했다. 특정 방향에서 지나칠 정도로 밀집된 이형 에너지가 포착되고 있었다. 양 박사는 드론이 마지막까지 보내오던 관측 결과를 읽어 내리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쪽에 있는 것이 여왕일 것 같군요.”

연구진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지호 헌터의 보고를 읽고 그 보고를 통해 올라오는 자료들을 읽으며 실질적인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현장에 나가 뛰는 헌터들이 몸으로 체득하는 정보를 수치화하고 기록하며 유의미한 데이터 값으로 변환하는 작업에 매진하던 사람들.

기이할 정도로 널뛰는 온갖 수치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드론 한 기가 또 부서진다. 카메라를 통해 이쪽으로 상황을 전달하던 어떤 드론이 휘청이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며 사람 모양새 비슷한 것을 비추어 냈다.

“방금 봤어요?”

누군가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녹화되던 화면이 돌아갔다. 분명히 사람 같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괴물 중에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족 보행하는 생물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부정적인 의견이 당연히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양 박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조용! 저기 지금 사람이 있건 말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열었던 게이트, 열린 상태로 악성 균열 안쪽으로 넘어갔어요. 추가로 투입되는 신체 계열 헌터들이 안전 구역에 남은 생존자들을 모두 구출하고 난 뒤, 안정기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측 헌터들을 데려올 수도 있을 좋은 기회입니다. 박찬민 팀장이 해당 정보 임보현 헌터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저쪽에선 좀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더군요. 지금 이 악성 균열에서 벗어나도,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누군가의 낮은 탄식이 지나치게 크게 들렸다. 모두 침묵하며 고개를 떨구거나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양 박사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눈으로 불가능한 숫자를 보고 있으니 하는 말이지만, 아마 저 균열 밖에 버티고 있는 것은 아마 모든 괴물의 지배자. 통칭 여왕이 맞을 겁니다. 우리가 퀸 패러사이트라고 부르는 특정 정신 계통 괴물과 다르게, 진짜 여왕이겠죠.”

“굳이 말로 안 해도 상황이 나쁘단 건 다들 아는데요.”

“글쎄요? 저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송한결은 황급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양 박사가 또 재수 없는 소리나 눈치 없는 소리를 해 매를 부르는 것은 아닌지 염려한 것이다. 오랜 경험으로 포착해 낸 맞을 소리 꺼내고 한 대 맞는 그런 익숙한 시간의 도래였으나, 주먹을 부르르 떨며 초인적인 인내심을 보인 헌터 하나는 주먹 대신 질문을 던졌다.

“왜 잘되었다는 겁니까? 여왕이란 괴물의 존재를 기록할 수 있어서?”

“아뇨. 언제 우리가 균열이 열린 바로 근접 거리 외부에서 균열을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쪽 밖은 균열 내부보다 훨씬 이형 에너지 밀도가 높아요. 그리고 많은 헌터님들의 보고와 비슷하게, 이형 에너지가 ‘달라붙는’ 현상도 좀 더 선명하고 확실하게 관찰되죠.”

“원래 균열 들어가면 에너지가 좀 붙어요. 몸도 무겁고 좀…….”

“무생물에도 그러고 있잖습니까?”

“그거야 이형 에너지가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니니까?”

누군가의 대답에 양 박사는 손가락을 딱 튕겼다.

“바로 그게 이상한 거예요. 살아 있는 것도 아니라서 피아 식별이 될 리 없는 에너지. 물체에조차 들러붙어 이상 현상을 일으키는 바로 그 에너지가 저 여왕 부근에는 이상할 정도로 쌓여 있잖아요. 어쩌면 그 에너지의 근원이란 것이 사실 저 괴물인 건 아닐까요? 우리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 에너지의 진짜 주인이 나타났잖아요.”

“진짜 주인이라니……. 이형 에너지끼리 충돌하고 하긴 해도 자기 안에 있는 에너지를 쓰잖아요.”

“들어 보세요. 각성자들은 모종의 사고로 어떤 힘의 영향을 받아 그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잖아요. 각성하는 것도 균열 내부에서만 가능한 일이고. 그 몸이 살아 있건 시체건 상관치 않는 어떤 에너지가 모종의 작용을 해서 사람들을 죽음에서 되살려 냈어요.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산 것과 죽은 것, 혹은 물체와 생물을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신에 이형 에너지가 작용했던 거 아닐까요?”

수군거림이 커졌다. 양 박사는 맹렬하게 굴러가는 사고의 흐름을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을 쏟아 냈다.

“어떤 작용이 일어났는지까진 재차 연구해야 할 영역이겠죠. 하지만 모두가 당연하고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이형 에너지가 지금 보니 사실은 괴물의 힘이군요. 괴물에게서 비롯되어 거기에서 나오는. 그러니까 곧, 각성자들이 괴물과 다를 바 없다는 거 아닙니까?”

양 박사는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자기가 무슨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거기 있던 사람 중 일부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사람도 워낙 많이 모이고 정신계 능력 가진 괴물이 넘어올 수 있다는 이유로 조사 끝난 특수반 헌터 중 일부가 이쪽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던 정보가 이토록 다수에게 들통나고 말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는 사실 때문에 패닉에 빠져 황급히 상위 결정자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의 의사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김동주 팀장은 지금 악성 균열에 휘말려 여왕을 마주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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