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주변에서 보는 것을 숨기지도 않고 지호를 구경하고 있었기에 지호는 동물원 케이지 안의 동물들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며 헛기침했다. 길을 오갈 때마다 그를 엿보는 시선들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공간의 모든 사람이 지호를 향해 집중하고 있던 적은 없었기에 대단히 당혹스러웠다.
“어, 언니랑 김동주 반장님 이쪽으로 왔다고 들었는데요.”
“집중 치료실 올라가셨을 겁니다. 그 임보-”
“고마워요! 제가 일을 방해했죠! 길게 말하면 괜히 힘 빠지니까 쉬어요!”
갑자기 입을 틀어막힌 주환은 눈만 껌뻑였다. 그들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단체로 물음표가 떠오른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호는 자기 행동에 해명할 시간도 없어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집중 치료실은 일전에 지호가 입원했던 특수 병동에 있다. 분주하게 오가는 치료계 각성자들이 감지됐다.
문이 열려 있었기에 노크 없이 불쑥 치료실에 들어선 지호는 당황했다. 보현의 상태를 표시하는 수치 전부가 바닥을 치고 있는 화면이 큰 모니터에 떠 있던 까닭이다. 팔짱을 낀 채 기기 안의 보현을 노려보던 동주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왔나. 놈들이 모인 모양이지? 우리도 곧 가야 할 때고.”
“언니는 여기서 회복이나 하다가 안정기 오면 바로 나가야 할 수준인데요?”
“본인도 다 아는 이야기야. 하지만 이런 기회가 두 번 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 분명 말하지만 나도 말렸다. 도준우도 그렇고.”
보현은 치료기에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옅게 오르내리는 가슴팍은 퀸 패러사이트의 죽어 가는 모양새를 연상시켰다. 지호는 숨이 탁 막히는 것 같다고 느끼며 유리에 이마를 바짝 붙였다.
“언니가 어디 다쳤어요?”
“아니, 그냥 상태가 안 좋은 거다. 다친 것처럼 보이긴 하는군.”
“아니 도준우가 물어보더라고요. 언니 어디 다친 거냐고.”
김 반장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아파트 부근으로 대형종들이 다가오고 있었어. 하지만 나나 이 녀석이나 전투에 본격적으로 낄 수는 없는 상황이라 그냥 먼저 이동했다. 우리가 병원 쪽으로 빠지는 걸 알고 있었던 거 아닌가? 이동하는 걸 보거나 대화를 들었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야. 갑자기 병원으로 간다고 하면 어딜 다쳤나 보다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 진짜 비인간적으로 변했던데, 대장에 한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인간적이군. 마음에 안 들어.”
자기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한 지호는 보현의 상태가 느리게나마 회복되고 있다는 치료실 담당자의 말을 들으며 안도했다.
“두 분을 데려오래요. 그 계획인지 뭔지를 할 때인 거 같아요.”
“대장 좀 쉬게 십오 분만 더 기다려. 만약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비할 에너지 정돈 필요하단 말이야. 저기 넣은 지도 얼마 안 됐어.”
지호는 그것이 무슨 말이냐고 질문했다. 분주하게 특수 약물을 채우고 마정석 필터를 교체하는 간호사들 쪽으로 눈길을 주던 김 반장은 좀 늦게 그 질문에 대답했다.
“당연히 경계해야지. 도플갱어도 말하지 않았나? 퀸 패러사이트는 신뢰할 대상이 아니야. 사실 도플갱어 역시 마찬가지지. 내 걱정은 이쪽이 좀 더 크다. 대원은 놈에게 너무 열려 있어. 다른 괴물들의 정신계 작용에는 반발하면서 놈의 힘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더군. 다른 힘들을 마주할 때는 두통을 느꼈었지? 하지만 놈의 힘엔 안 그러잖아?”
“네? 아니, 하지만 제 임시 파트너나 다름없는데요. 그리고 해를 끼친 적도 없고, 언니가 그 헌터란 사실을 알면서도 결국 자기 목적을 위해 움직이지도 않았잖아요. 게다가 음, 여왕이 한 짓거리들 때문에 그 둘은 거의 죽어 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죽어 가고 있다고?”
김 반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전에 지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다면 분명히 알고 있었어야 할 바로 그 문제에 관해 전혀 모른다는 태도를 보이는 그 모습이 낯설다. 지호는 고민하다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 씨랑 그 형제들은 여왕의 손발을 묶고 이쪽으로 넘어오는 걸 저지하기 위해 여왕의 호위대를 사냥했는데, 그 과정에서 함정에 걸려서 곧 죽을 거래요. 시한부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더더욱 이상하지. 놈들이 자기 사후에 새로 태어나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우리를 위해 좋은 일만 해 주고 죽게 된다는 뜻이잖아.”
지호는 입을 쩍 벌렸다. 김 반장은 가뜩이나 험악하던 인상을 더더욱 구기며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지만, 놈들은 다른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거다. 죽어 가는 몸이라고? 그럼 새로이 갈아탈 몸이 필요하겠지. 그게 여왕조차 탐내는 튼튼하고 능력 있는 몸이라면 더더욱 좋을 거고.”
지호는 퀸 패러사이트가 준우를 통해 거두었던 세뇌형 촉수를 기억했다.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도훈은……. 생각을 떨쳐 내려는 듯 고개를 흔든 지호는 몸을 휙 돌려 김 반장을 마주 보고 섰다.
“전에 제 기억을 보셨잖아요. 전 당연히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였거든요. 왜 저 괴물들이 죽어 가고 있단 걸 몰랐죠? 그럴 수가 있나요? 제 기억을 봤다면 당연히 알아야…….”
“안 봤어.”
김 반장은 지호의 말허리를 뚝 끊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안 봤다. 내가 본 건 네 기억이 아니야.”
“하지만 꽤 오랫동안 제 머릴…….”
“그래. 네 안에 정신체를 심어 놓았던 도플갱어를 만났다. 이상함을 느낀 적이 없었나? 분명 그 도플갱어는 대단히 인간적인 태도를 보이긴 하지.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퀸 패러사이트나 다른 고등한 괴물들에게도 같은 느낌을 받아야 할 거야. 그놈의 체질 때문에? 인간을 수도 없이 잡아먹은 괴물에게 우선 혐오감과 공포를 먼저 느껴야 하지 않나?”
지호는 저도 모르게 물러나려 했으나 바로 뒤를 막고 있는 것은 특수 치료실과 대기실을 가로막는 두꺼운 유리 벽이었다. 동주의 악문 이 사이로 발음이 새어 나왔다.
“도준우가 퀸 패러사이트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너는 도플갱어에게 조종당하고 있다. 다른 놈들에게 그러하듯 온전한 지배는 아니겠지. 그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정신체의 영향은 크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다른 정신 계통 괴물이 비슷한 짓을 하려고 들 때, 놈은 도플갱어 때문에 너를 지배하지 못하게 될 거다. 도준우가 여왕 앞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야. 너는 이미 주인 있는 종속체나 다름없는 몸인 거고.”
“헛소리 마요.”
“헛소리라고?”
김 반장의 손이 불쑥 가까워졌다. 지호는 황급히 옆으로 움직여 그것을 피했으나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은 피하지 못했다. 거의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한 자신을 억지로 허공에 고정한 지호는 내부에서부터 이형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쌓여 있던 기록지와 서류들, 파일과 온갖 가벼운 것들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펑하고 솟아올랐다.
팔락팔락 떨어지는 서류들의 빗속에서 지호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두통이, 느껴지네요.”
“그래.”
“하지만 저는 반장님이 저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제가 아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힘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왜 그런지까진 정확히 모르겠다. 추측건대 이유는 단순할 거야. 지금은 그 본체가 네 정신계 사정까지 신경 쓸 상황이 아닌 거겠지.”
지호는 침을 삼켰다. 두 헌터가 갑자기 싸운 줄 알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간호사들이 보였다. 김 반장은 그쪽으로 대충 사과의 몸짓을 보내며 속삭였다.
“당장은 놈의 행동이 네게, 그리고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내버려 뒀다. 퀸 패러사이트나 여왕에게 불의의 기습을 당해 넘어가게 되는 일도 없을 테고.”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왜 저한테 말 안 해 줬어요? 제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그런 걸 허락했을 거라고?”
“그럴 겨를이 없었다. 알잖아. 솔직히 그 많은 일이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버거웠을 텐데. 다른 일보다 놈들의 수명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이 신경 쓰여. 역시 네 몸으로 갈아타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짓 할 사람이…….”
“그건 괴물이다, 대원. 사람으로 인지하지 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한하려고 하지 마라. 놈은 도플갱어야. 다른 개체를 잡아먹어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는 괴물이지. 다시 한번 말해 봐라. 그런 짓을 할 괴물이 아닌가?”
지호는 상처받은 얼굴로 입을 벙긋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 반장이 하는 말이기에 더더욱 비수처럼 박히는 말이었다. 난장판이 된 대기실을 흘깃거리던 간호사들이 두 사람이 싸운다고 생각하곤 이쪽에서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 덕분에 지호는 남이 들을까 염려할 것 없이 그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어떻게, 우리도 똑같은 괴물이란 걸 잘 알고 있는 반장님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우린 뭐 사람 구할 괴물이고, 도훈 씨는 아녜요?”
“놈은 사람을 먹었잖아.”
“환이도 그랬어요. 그 어린애도 살기 위해 그렇게…….”
“나는 그 꼬마를 사람이라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우득 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 맛이 났다. 지호는 저도 모르게 깨물고 있던 제 아랫입술을 씹어 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느릿하게 오른손을 올려 입가를 가렸다. 녹색 빛이 한 번 반짝이자 상처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호는 괴물의 것이 분명한 자기 오른손을 쫙 펼쳐 보이며 분노했다.
“우리나 저 괴물들이나 다를 바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물론 위험할 수도 있겠죠. 제 머리에 뭐가 들어차 있는지 저보다 반장님이 똑똑히 봤을 테니까 그게 위험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고 하진 않았잖아요! 저도 알아요. 저 괴물들뿐 아니라, 저 스스로까지 믿을 수 없다는 걸 안다고요. 제 머리에 뭐가 들어 있다고요? 그런 것을 알면서도 저를 신뢰하셨어요? 저와 함께 괴물과 싸우셨나요? 어떻게 그렇게 선택적으로 사람을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럼 네 머릿속에 괴물 새끼가 있으니 네 목을 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라도 해야 했단 소리냐?”
쫙 펼치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지호는 스르르 오른손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도훈 씨가 저한테 고백한 게 있어요. 타인의 감정과 기억을 조작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저한테도 그런 짓을 한 적이 있었다고.”
“제 입으로 털어놨단 말이야?”
“물론 제 머리에 그런 걸 넣었다곤 말하지 않았죠. 제 생각엔 손예린 헌터와 그 팀에 수작질했던 때를 말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이후로 제가 도훈 씨를 꽤 신뢰하게 되었으니…….”
김 반장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치료실 한쪽에선 보현의 상태를 표시하는 수치가 긍정적으로 상승하는 곡선 그래프가 보였다. 그 밖의 수치들은 그렇게 긍정적이라곤 할 수 없으며, 일부는 당장 입원을 권할 정도로 심각한 수치였지만 거기 있는 누구도 보현을 강제하기 어렵다. 딱 한 번만 버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 반장은 말했다.
“놈이 어디서부터 어떤 짓거릴 했는지 알아내려면 단순히 시간만 필요하진 않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그 시간조차 모자라니, 당장은 최악의 사태에 주의하며 움직일 수밖에. 내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널 백업할 거다. 외부에서 놈을 막을 순 있어. 머릿속에서 어떤 짓거릴 하는지까진 몰라도.”
“여왕을 잡고 나면 그때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언니랑도 논의를 해 보고…….”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