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소리 낼 줄 아는 놈이었네.’
지호는 천장에 거꾸로 붙은 채 놈들의 싸움을 관찰했다. 복도를 가득 채울 기세로 기어 오던 실내 청소부는 예전에 지호가 봤던 놈보다는 크기가 작았다. 놈의 위쪽으로 한 사람 지나갈 틈이 보일 정도. 그러나 끈끈한 겉면과 산성 체액 비슷한 것이 근처를 지나는 이를 내버려 둘 턱이 없다.
호랑이는 청소부에게 달려들어 놈의 살을 물어뜯으며 항전했다. 그러나 오래 버티긴 어려웠다. 애초에 목표로 삼으며 돌진해 온 지호에게 모든 힘을 퍼부은 터라 그가 공격을 피하면서 힘이 빠졌고, 속도를 늦추다 다른 놈에게 부딪친 것이라 원하는 각도로 공격하기도 불가능했다. 매서운 이빨과 발톱으로 청소부를 공격하던 호랑이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쓸려 들어갔다. 으적으적 으깨지는 모양새가 토악질을 불렀다.
놈의 감지 파장이 지호를 확인한다. 헌터들이 쓰는 것과는 다른 느낌. 아주 짧은 범위만 확인할 수 있는 모양이다. 꼭 더듬이같이 사방을 휘젓던 능력에 지호는 일부러 발을 들여놓았다. 놈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지호도 마찬가지로 복도를 질주하며 사방으로 감지 파장을 퍼트렸다.
실내에 돌아다니는 괴물은 여럿. 그러나 실내 청소부가 여러 마리는 아니다. 급작스럽게 약해진 지호의 힘을 역추적하며 달려온 괴물들은 하나같이 실내 청소부의 아가리에 자기 몸을 내던져 소화되었다. 지호는 지치지도 않고 병원 온 사방을 뛰어다니며 소리치거나 공격을 가하며 다른 것들을 유인했다. 일부러 힘 뺄 필요도 없었다. 실내 청소부 쪽으로 달려들도록 유인하기만 하면 된다.
지호를 공격하러 따라오던 괴물도 어느새 그 패턴을 학습했는지 다른 놈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산성 체액을 뿜어냈다. 어떤 것은 실내 청소부에게 닿자마자 녹았다. 지호는 괴물들을 사냥하며 본래의 용건도 잊지 않았다.
“이주환 헌터, 내 말 들려요? 부천 센터 이지호예요. 들리면 신호라도 좀 줘요! 이주환 헌터!”
소리에 이끌려 오는 건 괴물뿐이었다. 실내 청소부를 끌고 온 사방을 뛰어다닌 끝에 지호는 아마도 내부의 위협이었을 괴물들을 거의 다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때쯤 되자 따라오던 놈 역시 지쳐 헐떡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수고했다. 이제 쉬어.”
지호는 양손을 펼쳐 손끝을 뒤로 젖혔다.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던 마정석이 연기처럼 기화된다. 동시에 손가락 틈마다 암기 같은 이형 에너지 창날이 고드름처럼 돋아났다. 놈은 또 기이한 소리를 토하며 지호에게 달려들었으나 체력도 없고 속도도 없어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일 미터가량의 크기로 길어진 화살들이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맹렬히 쏘아졌다. 요란하게 산성 액체를 뿜어낸 놈은 분노하여 달려들었으나 뒤이어 날아오는 화살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돌진에 불과했다.
고슴도치처럼 몸을 꿰뚫린 놈이 절명하자 지호는 손을 이형 에너지로 감싼 채 놈의 몸에서 마정석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다른 것들을 이놈이 먹어 버렸으니 건질 것이라곤 이거 하나라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지만,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몸만 쓸 수 있는 효율적인 사냥이었다.
병원이 하도 넓어 한 시간을 넘게 뛰어다녔더니 제법 땀이 흘렀다. 지호는 아무리 불러도 이주환 각성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1층으로 내려갔다. 본디 사람들이 대기할 의자가 늘어서 있어야 할 곳이지만 깨끗했다. 반나절도 더 병원을 돌아다니며 먹을 수 있는 것은 전부 처먹은 괴물의 활발한 식사 덕분일 터.
덕분에 지호는 그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훈 씨? 어떻게 들어온…….”
“이 몸이 이 병원에 온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
다른 자들과 달리 먹은 것의 모습을 베끼는 도플갱어의 특성이 그를 밖으로 밀어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파트와 달리 거주민 등록을 일일이 할 필요가 없어 더욱 쉽게 들어왔을 것이다.
“혼자야?”
“네? 어, 아뇨. 김 반장님이랑 같이 왔어요. 괴물을 좀 잡느라 잠깐 떨어졌는데……. 밖에 돌아다니던 놈들은요?”
“지금은 나한테 못 덤벼. 너희 쪽 문은 준비됐어?”
“그 눈알 괴물이랑 싸우다 전기가 나가 버려서 당장은 연락 못 해요.”
“그냥 경계를 통과해서 나가면 안 되나?”
지호는 정색하며 도훈을 노려보았다. 비상 전력만 가동되고 있던 탓에 실내는 어두웠고, 빛나는 것은 비상등 표시뿐이다. 그 때문에 도훈의 표정이 잘 보이진 않았으나, 여느 때와 같은 그의 태도 덕분에 지호는 평정심을 유지했다.
“제가 싸우면서 전기를 끊는 바람에, 사람들이 위험해졌어요. 어쩌면 전자식 보안 설비를 쓰는 곳은 다 위험해졌을지도 몰라요. 퀸 패러사이트를 사냥해야 이 균열이 닫힐까요?”
“부족하겠지.”
“그럼…….”
“다음으로 누구를 사냥해야 하는지 알고 있잖아?”
도훈의 명쾌하기까지 한 음성에 지호는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했다. 실내가 어두워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를 이렇게 한눈에 알아보았을까. 그 반반한 얼굴이 보인 것도 아니었는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우리 지호 있는 곳인데 내가 알지.”
“헛소리하지 말고요.”
그의 웃음에 지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까지 괴물을 찢어 죽이던 헌터 앞에서 왜 저렇게 태연할까? 악성 균열을 없애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태연히 일러 주면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목숨이 얼마 안 남았다고 했었죠.”
“맞아. 그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니 잘된 일이지.”
“아니 그런 말을 하려던 게…….”
괜스레 멋쩍은 느낌에 지호는 고개를 돌렸다. 남은 괴물은 없었고, 외부에 있던 그림자 호랑이들도 물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균열에 은신 개체가 있음을 알리지 않으면 외부의 헌터들이 들어올 때 문제가 커질 것이다. 감지계 선글라스가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넉넉했던가.
지호는 센터의 상비품들 수를 가늠하며 고민하느라 도훈이 자기 바로 옆까지 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딴생각에 빠져 있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너무 가까이 있어 지호는 화들짝 놀랐다. 기척도 못 느꼈다.
“어, 왜요.”
“아무렇지 않지?”
“네?”
“처음에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슬퍼해 줬잖아. 지금은 그렇지 않네.”
“어…….”
지호는 또 당황했다. 도훈 앞에서는 늘 그랬다. 사람을 대하듯이, 그리고 의식해 본 적 없는 이성을 대하듯이 당혹스럽고 낯설다. 지호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그래도 여기 상황 정리하고 김 반장님이랑 이야기하긴 해야 했어요. 제 기억을 확인하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상황을 덮어 줬거든요. 하지만 분명 제 기억을 확인한 후에 괴물들의 이야기를 전해 줬거든요? 그것도 제가 모르는 아주 오랜 옛이야기들요.”
“뭘 들었는데?”
“여왕과 그 괴물들에 관한 내용?”
도훈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뭘 그리고예요? 여왕과 당신들에 관한 이야길 끄집어냈다니까요. 헌터들이 그걸 다 알게 됐어요.”
“내가 죽는다는 사실도 말이지.”
“그건 따로 말하진 않았지만…….”
지호는 당혹스러워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김 반장이 그의 기억을 엿본 것뿐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도플갱어와 퀸 패러사이트의 수명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김 반장이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지호에게 찾아왔던 그 밤, 그는 여왕에 관해 이야길 하자고 말했었다. 준우에게 들은 이야기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환상들. 지호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졌다.
“김 반장님은 제 기억을 꽤 오랫동안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그때는 여왕에 관한 언급이 없었죠. 그 이후에 도준우가 언니 앞에 나타나서……. 제가 깨어난 사이에 여왕이 이 몸을 통해 이쪽으로 드러났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괴물들의 근원인 여왕의 과거를 그렇게까지 자세히 안다?”
지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도훈은 지호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기다려 주었다.
김 반장이 지호의 기억을 보았다면 가장 중요시하며 언급해야 할 두 코드 레드 개체들의 수명 이야기는 정말 어디에도 없었다. 지호는 대화를 복기하려 애쓰며 인상 썼다.
“도준우가 어디까지 입을 털고 갔는진 몰라도 그놈 역시 태생부터 괴물은 아니었어요. 당신처럼 먹은 모든 것의 기억을 가진 특이 개체가 아니라면 더더욱 괴물의 기억을 물려받는 건 불가능할 텐데…….”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야. 무의식에는 때때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 있기 마련이거든.”
최근에 들은 이야기다. 병원에 진입하기 전에 김 반장이 꺼낸 바로 그 이야기이기도 했다. 지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훈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어떻게 그 말을 알아요?”
“어떻게? 말이 좀 이상한데. 누가 이 소릴 또 했었나 보지?”
“어, 네. 정신계 능력 가진 친구 중 하나가요.”
“그가 네 기억을 들여다봤다던 김 반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겠구나.”
도훈은 생긋 웃었으나 그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지호는 괜히 초조해져선 그를 노려보았다. 닿아 있으면 감정과 기억 모두를 엿보았던 도훈의 능력이 생각나 일부러 거리를 두었는데, 지금 보니 그 능력으로 지호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뭘 숨기고 있는 거죠?”
“왜 숨기고 있다고 생각해?”
“제 감이 그렇게 말했어요.”
도훈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였다. 괴물 울음소리와 바닥 혹은 벽, 가끔 천장 부서지는 소리만 요란했던 병원 내부에 울린 도훈의 목소리에 지호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그는 종종 자신을 위험에서 구하곤 했던 직감을 외면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요. 무슨 짓을 꾸미고 있죠?”
그 특유의 체질 때문에 자신이 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을 밥 먹듯이 해 온 괴물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들켰다면 할 수 없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사실 널 만나러 온 건 아니었어. 나와 어떤 계획을 공모한, 네 친구를 만나러 온 거지.”
“공모라고요?”
“그래. 여왕이 네 몸을 탈취해 이쪽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잖아. 내 형제가 주장한 대로 그 호위대 전원을 죽였는데도 여왕을 막을 수 없었지. 네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긴 했어. 녀석은 너를 이용하겠다는 내 계획에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너를 쭉 살려 두는 일에 찬성하지도 않았거든.”
“제 친구가 언제부터 퀸 패러사이트였죠?”
“끝까지 듣지그래? 놈에게 너를 넘기지 않으려면 다른 계획이 필요했어. 나는 생각의 방향을 바꿨지. 여왕을 끌어내지 않으려고 할 게 아니라, 이쪽으로 넘어온 놈을 제압할 방법은 없을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걸 대비하는 쪽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야. 네 친구는 내 생각에 동의하던데.”
지호는 경악을 숨기려고 애썼다. 호위대의 다 망가진 몸을 빌려 그 앞에 나타났던 여왕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그를 위축시켰었다. 지호의 몸을 통해 드러났을 때는 더했다고 들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할 방도가 있기는 하단 말인가?
“그걸 제 친구와 공모했다고요? 도대체 언제 어떻게…….”
“위험천만한 계획이 맞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놈은 내 의견에 동의했어. 듣자 하니 형제의 호위대가 너희 쪽에 접촉했다지? 그리고 좀 더 구체화된 계획을 전달했을 거야. 네 친구 중엔 정신계 능력자가 둘 이상 있지 않았던가?”
지호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보현과 김 반장일 것이다. 다른 헌터들에게 비슷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특기로 기억하지 않을 만큼 능력이 미비할 수 있었다. 지호는 더듬거리며 질문했다.
“그 두 사람과, 모종의 계획을 공모했다고요? 어떻게?”
“정신계 능력자들 사이에는 일반인들이 쓰지 못하는 대화 방식도 있는 법이야.”
“그 계획이란 게 뭔데요?”
그때까지 여유로운 태도로 설명을 이어 가던 도훈은 처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지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그는 썩 내키지 않는다는 얼굴로 느릿하게 말했다.
“네가 필요한 방법이야. 정확히는, 네 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