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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27화 (228/260)

227화

방벽이 사라지기 전 아파트 근처에서 목격된 퀸 패러사이트의 존재 때문에 보현은 굳이 김 반장을 지호에게 딸려 보냈다. 정신 공격에서 지호를 보호하기만 하면 그 이상의 도움이 더 없을 것이란 부연에 김 반장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포식자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해?”

“그렇진 않을 거예요. 우리 같은 잔챙이에겐 별로 볼일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지호의 염동력에 붙들린 채 하늘로 날아오른 김 반장은 재차 임시 파트너가 된 동료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포식자들은 거대한 존재였다.

크기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물론 큰 놈이 있기는 하지만, 김 반장은 여왕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숨 막히는 감각이 재현되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지호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지호는 소리를 낮추었다.

“아까 상황 파악하러 위로 올라갔었을 때, 저는 도로 내려온 게 아니었어요. 충격 때문에 추락한 거였지. 도중에 정신을 차리지 않았으면 그대로 곤두박질쳤겠죠.”

“포식자들이 대원을 공격했나?”

“아뇨. 그냥 기본적으로 부근에 존재하는 것들을 짓누르는 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목소리 같은 게 저를 깨웠는데.”

지호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포식자들 쪽을 응시했다. 밖을 향해 소리친 헌터가 있었다면 지호가 위험했었단 사실도 이제야 고백할 필요 없이 모두 아는 사실이었을 터였다. 김 반장은 끙, 앓는 소릴 내며 지호의 정신 방벽에 간섭했다. 한결 움직임이 편해지자 지호는 빙긋 웃었다.

“어, 고마워요. 머리가 아프던 참이었어요.”

“목소리는 무슨 말이야?”

“어, 가끔 그러거든요? 위험한 순간 같을 때 내면의 음성 같은 게 들려온다고 해야 하나.”

김 반장은 하마터면 지호를 붙잡은 손을 놓칠 뻔했다. 염동력에 익숙해진 덕분에 지호는 동행자를 안거나 업는 등의 불편을 겪지 않고도 상대를 공중에 띄워 둘 수 있었는데, 신체가 닿지 않은 상태로는 에너지가 몇 배로 들기에 당연히 눈살을 찌푸릴 행동이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낙법도 못 하고 다리 아작 나요.”

“아니, 아니야. 머릿속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그냥 그런 기분이란 거죠. 저 자신을 응원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지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돌리려고 했으나 김 반장은 지호가 그 화제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지호 헌터. 앞으로는 나나 네 보호자랑 필히 동행해. 만약의 사태에서 네게 가해지는 정신 공격을 잠시라도 차단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고. 알아들어?”

“그렇죠. 퀸 패러사이트나 여왕이나 다 정신 계통 능력을 쓰니 제가 너무 무력하게 느껴지고 그러네요.”

“여왕의 잠식 조건을 알아낼 필요가 있어. 여왕이 대원의 몸을 통해 드러날 수 있었다면 여태까지는 왜 하지 않았을까? 네가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갔을 때 나타났다면 어떻게 되는가? 궁금하지 않나?”

지호는 입을 다문 채 속도를 올렸다.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는 폭발적인 속도로 건물 벽을 박찼다.

아파트 건물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힘없이 걸린 생존자 표식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지호는 김 반장과 함께 총알 같은 속도로 건물 위를 가로질렀다. 근방에 비행형 괴물이 없는 것이지 이 균열 내에 없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시선을 끄는 일은 적은 편이 좋다.

건물 옥상을 거의 스치듯, 그러나 옥상을 박차거나 건드리는 일 없이 곡예 비행하듯 날아오른 지호는 외벽 간판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거주구를 주파했다. 병원까지는 금방이었다. 대형종이 없는 것도 그들을 돕는 요소 중 하나였다.

빠르게 허공을 가로질러 병원 옥상에 내려선 지호는 김 반장의 손을 거칠게 놓으며 눈을 사납게 치켜떴다.

“이 목소리가 여왕의 것일 수 있다, 뭐 그런 의심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까진 말하지 않았어. 너만 듣는 머릿속 목소릴 내가 어떻게 아냐.”

“반장님은 제 머릴 들여다보신 적이 있잖아요. 왜, 도훈 씨한테 당했다 일어났을 때도. 그러고 보니 그때 좀 이상했어요. 분명 보셨잖아요.”

“지금 할 이야기 아니야.”

“지금 아니면 언제 하죠? 다른 헌터들 앞에서? 그때 절 감싸 주셨던 걸 알아요.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마침 없을 때 이야길 마저 해야 하는 거 아녜요?”

“뭘 말해야 하지? 도플갱어가 며칠 못 버티고 뒈질 거라는 거? 네 괴물 친구가 말했을 텐데. 정신계 능력자들을 옆에서 떼어 놓지 말라고. 널 노리는 게 한 놈이 아닐 거라고.”

김 반장이 입 밖에 내놓는 것은 모두 도훈이 한 말이 맞았으므로 지호는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짧은 침묵 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질문했다.

“어디까지 보셨어요?”

“사람의 무의식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까지 담기는 법이야.”

병원 안쪽에서 괴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씨름할 시간이 없었다. 분명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당장은 아닐 것이다.

“바로 내려가요!”

지호는 문짝을 뜯을 기세로 옥상 문손잡이를 잡았다가 가까스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걸 뜯은 뒤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당장이야 지호의 기운 때문에 가까운 곳에 있던 괴물들이 전부 도망쳤다지만, 그가 이곳을 떠난 후에는 활짝 열린 문으로 모두를 불러 모을 것이 분명했다.

마음 같아선 걷어차 부수고 들어가고 싶었으나 지호는 신중하게 문 잠금쇠를 재구성했다. 오랜만에 구현화계 능력을 사용한 탓에 모양새가 투박하고 실용성이 떨어졌으나 그럭저럭 열고 들어가 다시 잠글 수 있는 잠금쇠가 만들어졌다. 지호는 서둘러 문을 열었다.

“여기 정리하고 다시 얘기해요.”

그러자고 대답하기보다 비명이 먼저 들렸다. 지호는 욕설과 함께 바닥을 박찼다. 홀로 남은 김 반장은 한숨을 쉬며 지호가 만든 두꺼운 자물쇠를 철컥 닫아 잠갔다. 당장 전투에 그가 도움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까 잠시 해 둔 처리로 지호의 정신 방벽이 두꺼워졌으니 몇 시간 정도는 그가 없이도 버틸 수 있을 터. 거리만 너무 멀어지지 않으면 그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는다.

지호가 소리 들린 방향으로 거의 날아가듯 사라졌기에 후폭풍에 휘말린 집기가 사방으로 나동그라져야 옳다. 그러나 복도는 깨끗했다. 심지어는 벽면에 붙어 있어야 할 비상등까지 없었다.

김 반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형 에너지와 비슷한 정신계 방벽을 몸에 두른 그는 닿는 것만으로 환각을 일으킬 무시무시한 능력을 휘감은 채로 슬금슬금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원 내부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빠르게 복도를 지나치던 지호는 그 기이함을 눈치채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까의 비명을 마지막으로 병원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낮게 호흡을 가다듬은 뒤 건물 전체를 표적 삼아 감지 파장을 확장했다.

일부 개체가 지호의 힘을 느끼고 바짝 경계하는 것이 느껴진다. 놈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그 가운데 익숙하면서도 반갑기까지 한 놈이 있었다. 그 낯설고도 익숙한 감각. 지호는 병원 실내가 왜 이렇게 깨끗한지 깨달았다.

“실내 청소부?”

지호가 각성했던 첫 균열에서 마주했었고, 재차 출동했던 급성 균열에서도 출현했던 놈이다. 모습이 보이지 않아 피해는 극심했을 터. 이주환 각성자도 그렇거니와 병원에 있는 것으로 소재가 파악된 헌터들은 누구도 전투 계열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숨어 있을까? 바깥에 있던 한 무리의 헌터들이 악성 균열의 골칫거리를 잡아내어 이 균열이 사라지게 되기를 바라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추론일 것이다. 아마 전투 중에 다쳤거나 전투 자체가 불가능한 괴물일 확률이 높다. 김 반장으로부터 메시지가 넘어왔다.

[병원 입구 쪽엔 괴물들이 없어. 하지만 시신은 지나칠 정도로 많지. 여기가 안전지대임을 알고 오는 사람들을 아무 방해도 없이 사냥할 수 있는 놈들이 있단 뜻이야.]

멀리서 줌을 당겨 찍은 이미지엔 우그러진 차 지붕과 낯익은 발자국이 보였다. 지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설상가상으로 그림자 호랑이까지. 은신 개체들이 판을 치는 곳이다. 감지계 능력 있는 헌터가 한 사람도 없다면 애당초 이곳에서 생존자를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주환 헌터를 비롯해 병원에 남아 있던 헌터들이 멍청하거나 이기적이라 숨은 것이 아니었다. 놈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다면 당연히 취해야 할 일은 남은 자들을 되도록 안전한 곳으로 숨기는 것뿐이었을 터.

지호의 감지 파장을 느낀 것인지, 거기에 감지된 이후로 지호를 피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었다. 일부러 눈에 힘을 집중한 채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흔적조차 볼 수 없다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한참 병원을 돌아다니다 제풀에 지쳐 움직임을 멈춘 지호는 몇 층이 통으로 뚫려 위층 난간이 올려다보이는 병원 로비에 선 채 심호흡했다.

병원 입구 방비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다. 실내를 돌아다니는 괴물의 수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을 터. 지호의 감각에 잡힌 놈들의 수 역시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나타난 것 중 은신 개체 아닌 것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고, 그 정도면 여기 남은 헌터들이 없앨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지호가 최우선적으로 잡아야 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일 것이다. 지호는 감지 파장 전부를 거두어들였다. 방벽 역시 거두었다. 살갗으로 쭈뼛, 위험을 알리는 감각이 그를 두드려 깨운다. 멀지 않은 곳에 뭔가가 있다.

짐승의 것과 비슷한 감각이 그 심장을 방망이질한다. 지호는 귓가에 쿵쿵 울릴 정도로 뚜렷한 소리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새삼스러운 자각을 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소리에 신경을 집중한다.

일부러 이형 에너지를 충분할 정도로 흘려 대고 있었는데, 위협이 섞이지 않을 정도로 무방비하게 힘을 퍼트리고 있어 머리 나쁜 놈들은 이쪽으로 달려들 것이다. 지호는 자신의 감각을 죽인 채 괴물에게서 마정석 추출하듯, 자신의 이형 에너지를 몸에서 천천히 밖으로 빼냈다. 기상천외한 작업이었다. 괴물에게서 그 힘의 근원을 빼내는 요령 있는 헌터의 머리에서 나올 법한 작전이면서도, 자신을 미끼로 쓰는 위험한 상황이다.

지호는 자기 자신의 몸에서 빼낸 에너지로 만들어지는 마정석을 보며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빼다 팔면 굶어 죽는 일은 없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헌혈하러 간답시고 피를 뽑아 영화표를 얻곤 했던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생명력을 돈으로 바꾸는 비슷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지호의 에너지가 촛불처럼 작아지며 그 힘의 영역이 좁아지자 금세 괴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눈에 집중했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물체가 맹렬히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뜩이나 깨끗하던 복도에서 미세하게 쌓인 먼지조차 사라져 간다. 시신도 핏자국도 전혀 남지 않은 깔끔함. 이름값 하는 놈이다. 지호는 눈에 힘을 집중하여 놈의 형태를 파악하며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형 에너지를 추출한다고 하여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애석하게도 지호의 파장을 느끼고 그를 향해 돌진해 오기 시작한 놈은 하나가 아니었다.

지호는 팔뚝을 거의 물릴 뻔하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옆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호랑이가 허공에 이를 콱 깨물며 지호를 스쳤다.

뒤에서는 실내 청소부가 무서운 기세로 굴러왔다. 좁은 복도를 달리던 지호는 머리를 쭈뼛 서게 하는 울음소리에 바닥을 박차고 몸을 옆으로 날렸다. 그대로 멈추지 않고 벽을 걷어차 반동으로 천장까지 뛰어오르자 지호가 있던 자리를 노리고 그림자 호랑이의 흐릿한 형체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놈은 그대로 실내 청소부에게 발톱을 휘둘렀다.

흉내 낼 수 없는 괴이한 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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