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김 반장의 대답은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지호는 어둠 속에서 자기 모습조차 비치지 않는 고독 속에 방치되었다. 타인의 기억으로 행동하고 움직일 때, 지호는 누구인지도 모를 가족을 만나고 싶어 애타게 움직였었다. 그 감정은 남의 것이라고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날것이었으니.
“그런 의문을 품으면 안 돼.”
“왜요?”
“보통 사람은 그런 의문을 품지 않으니까.”
김 반장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딱딱하게 느껴졌다. 지호는 그 말에 담긴 함의를 기묘하게 느끼며 의문을 표했다.
“저는 보통 사람인데요.”
“보통 사람은 자신이 먹은 돼지고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돼지의 삶에 남은 기억을 반추하지도 않지.”
“그 사람은 돼지가 아니었어요.”
“이지호. 정신 차려.”
“저는 가족을 잃은 전양련 회원일까요, 그를 먹은 메두사일까요, 아니면 어떤 이유인지 그놈을 뚫고 각성한 이지호일까요?”
지호는 미묘한 경계에 놓여 있었다.
생물은 본디 자신이 먹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피와 살이 채워지기 위해서는 그 입으로 들어가 소화된 것들이 있어야 하고.
괴물들 역시 기조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먹은 것의 기억을 제 것 삼고, 감정을 제 것 삼으며, 드물게는 먹은 것에게 잠식되어 자신을 잃고 마는 생물들은 그들이 아는 생물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었다.
생물과 생물 아닌 것. 그 경계에서 교묘하게 자신의 존재를 고심하던 지호의 눈앞에 갑자기 균열 밖 여왕의 형태가 벼락처럼 내리꽂혔다. 김 반장이 온 힘을 기울여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다행히 지호는 그것에게 정신이 팔려 자신이 하던 생각을 잊었다. 생물이 무생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위험한 순간이었고, 그의 정신을 엿보던 김 반장이 알아채지 않았다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사고가 날 뻔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일부러 잔잔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여왕은 자신의 힘으로 이쪽과 저쪽 사이를 뚫어 놓긴 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자기 피조물이 있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그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이었어. 또한, 그 강함 때문에 피조물들이 발치에 모여들지도 않았지. 여왕은 애정을 담아 자신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것들을 자식이라 불렀으나, 실제로 그 자식이 된 것은 여왕의 힘에서 벗어날 능력이 있던 세 개체뿐이었다. 다 네가 알고 만났던 것들이지.”
지호는 무의식중에 답을 도출해 냈다.
“퀸 패러사이트와 도플갱어, 그리고 눈알 새끼.”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아는 괴물들과 그 세 놈은 모두 여왕이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든 놈들이야. 진짜 자식이라고 부를, 그러니까 여왕이 아직 생식 능력이 있을 때 진짜로 낳은 자식들은 따로 있지. 그것들을 놈들은 포식자라고 불렀다. 네가 아까 그 환상 속에서 보았던 대적자 같은 것들 말이야.”
“환상 속에서?”
“그래. 환상 속에서.”
김 반장이 쐐기를 박듯 단호히 일렀다. 그는 포식자의 강함은 앞서 이름 지은 세 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단언했다.
“여왕이 모종의 음모를 꾸며 이쪽으로 넘어오려 할 때가 아마 빈틈이겠지. 그때 포식자들에게 여왕을 방해하도록 사주할 방법이 있을 거다.”
“방법이요? 그런 게 있을 리가 있어요? 그것들이 여왕만큼 강하다면 그놈들에게 우린 한 입 거리 간식도 안 될 텐데.”
“그 방법을 찾겠다고 움직이는 녀석들이 있어. 그러니 우리는 적절한 시간, 적절한 장소로 여왕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지.”
여왕의 환상이 사라지며 동시에 지호의 앞에는 다시 보현의 거실이 나타났다. 그 풍경은 환상이 아니었다. 지호는 더듬거리며 자기 온몸을 주무른 다음에야 이것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른손이 괴물의 것이고, 피부 곳곳이 더는 부드럽거나 따스하지 않았으니까.
그 냉혹뿐인 현실 앞에서 지호는 자조했다.
“환상 속에서 저는 사람 같았는데.”
“지금도 사람이야. 무슨 이상한 소릴 하냐.”
“반장님이 저한테 알려 주신 것들, 다 이상해요. 어떻게 알게 되신 거죠? 사실 민도훈 씨가 반장님을 잡아먹고 그 모양을 취하고 있는 건가요? 그럼 지금부터 반장님의 원수를 갚아야겠는데요.”
김 반장은 지호의 목소리에 섞인 장난스러운 어조에 콧방귀를 끼며 몸을 일으켰다.
“놈이 그 적절한 시기를 위해 준비하라고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아주 고약한 방법이었어.”
“도훈 씨가 반장님을 기절시킬 때 환상이라도 심어 놨어요?”
“다시 생각해도 고약해.”
김 반장은 혀를 차며 주방 쪽으로 가 버렸다. 불친절한 해설자였다. 그가 떠난 뒤 현실의 감각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지호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까 하던 고민과는 궤가 다른 생각들이다.
지호는 환상 속 여왕에 관해 생각했다.
김 반장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면 지호의 머릿속에 그 환상이 그토록 뚜렷이 남아 있을 턱이 없다. 그러니 메두사일 적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여왕의 기억 역시도 지호가 본디 다른 존재를 이겨 내기 전부터 그에게 남아 있던 것 중 하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애당초 여왕은 무엇이며, 괴물들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생명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종은 도태되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길을 아주 가파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는 와중에 인간이라는 돌파구를 찾아낸 것일까?
아는 것이 적어 추측도 어렵다.
고심 속에 밤이 저물었다. 해가 떠올라 인공적인 불빛 없이도 주변이 보이게 된다는 사실이 유일한 장점일 시간이 돌아왔다. 일상적으로 떠오르던 태양이 뿌리던 뜨거운 볕에 불평불만을 토하던 자들도 이 순간만큼은 그때 감사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이다. 지호는 따사롭지 못한 아침 햇살을 맞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지막이 일어나 지호에게 혼란을 안겨 주었던 김 반장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균열의 공기는 남달랐다.
간밤에 괴물들 간의 서열 정리가 끝난 모양인지 부근은 조용했다. 좋은 소식은 아니다. 생존자들에겐 더더욱 끔찍한 시간이겠지. 그러나 괴물 간의 다툼으로 집이 무너지고 숨은 장소마저 안전하지 않게 되는 것보다는 이 상황이 나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제 구역을 확보한 괴물은 그곳에서 주기적으로 먹잇감을 찾아 돌아다닐 테니.
“지호 씨, 안 잤어요?”
목소리가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지호는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렸다. 망부석처럼 앉아 꼬리를 무는 고민에 골몰하다 보니 몸이 좀 뻐근한 것 같기도 했다.
“아저씨는 자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잠이 오지 않더군요.”
승찬은 며칠 밤은 꼬박 새운 것 같은 몰골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간밤에 몇 사람이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자주 깨어 거실을 서성이다 돌아간 탓에 술은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다. 모두의 공동 재산이 된 냉장고에서 제일 먼저 사라진 건 당연하게도 술이었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술의 힘이라도 빌려 두려움을 떨쳐 내려는 자들을 탓하기는 어렵다. 승찬은 몇 개 남지 않은 맥주 캔을 하나 집었다가 고개를 저으며 그걸 내려놓았다.
“술보단 커피가 좋겠죠.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잠이 안 오던가요?”
“예. 간밤에 동생이 다녀간 걸 알고 나니 영 잠이 안 오더군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발언에 지호는 당황했다. 목소리를 낮춘 적이 없던 것 같기는 했다.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던 승찬의 이야기를 떠올린 지호는 염려를 담아 질문했다.
“어, 알면 나오지 그랬어요?”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더군요. 순찰 돌고 들어왔더니 목소리가 들려서 알았어요. 들어올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한 바퀴 더 돌고 왔습니다. 지호 씨도 이젠 알겠지만, 제가 그 애를 못 알아봤죠. 어쩌면 괜찮은 재회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어요.”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저도 똑같았을걸요.”
지호는 서툴게 위로를 건네려 애썼다. 힘없는 웃음을 보니 별로 효과는 없는 것 같았지만.
동생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것도 모자라, 자신이 공격한 괴물이 바로 그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형의 심정은 어떨까. 지호는 그걸 짐작하는 것조차 무례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인 역시 가족이 비슷한 상황을 거쳐 앞에 나타난다면 입에 담기 어려운 기분을 느낄 것이 분명했으므로.
인스턴트커피 두 봉을 컵에 붓고 뜨거운 물을 붓자 공기 중으로 느릿하게 향이 퍼져 나왔다. 승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애는 죽었을 때 그대로인 것 같더군요.”
“음, 이런 비유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보통은 각성할 당시에 인간성이 고정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승환이는 죽음을 경험했다가 살아난 건 아니니까…….”
“그랬다고 했었죠.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엔 여전히 그때 그 꼬맹이 같더라고요. 아주 착하고, 부끄러움 많고, 남을 돕는 걸 좋아하는 꼬맹이더군요.”
그런 모습이 되어 형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공격했다는 사실을 마주했으면서도, 아이들이 자기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승환이는 행동했다. 지호는 빙그레 웃었다.
“아주 용감한 아이였어요. 누굴 닮았는지 알 것 같던데요.”
“저보다 훨씬 낫죠. 저는 살기 위해 고작 도망치는 것밖에 못 했던 사람인걸요. 그게 환이를 아프게 했겠죠. 제힘으론 아무 공격도 통하지 않았지만, 아마 가슴에는 큰 상처가 났을 거예요.”
“간밤에 그 애를 만나셔야 했어요.”
“동생을 구하러 가지도 못했고, 이후에는 그 애를 공격하기까지 한 제가 어떻게 뻔뻔히 얼굴을 들 수 있겠어요?”
승찬의 중얼거림에 지호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저씨가 미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애가 모르잖아요.”
화해와 사과는 얼굴을 마주 보고 할 때 가장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다. 승찬은 한숨과 함께 컵에 든 커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연기가 한 풀 가신 것이지만 여전히 뜨거웠을 텐데, 그는 열기로 붉어진 얼굴을 숨기지 않고 컵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또 기회가 올까요?”
“알 수 없죠. 어쩌면 유일한 시간이 사라졌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못할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이 죽을 수도 있죠. 균열이란 그런 곳이잖아요.”
지호는 냉정하게 말하고는 자기가 너무 매정한 태도를 보였나 싶어 승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자신의 슬픔에 골몰하는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승찬은 타인에게 관심을 돌리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했을지를 생각하느라 시무룩해졌다. 지호는 성큼성큼 걸어가 저보다 머리 하나쯤 큰 구조대원 친구의 등짝을 두드렸다.
“이 일이 끝나면, 균열 너머에 도시를 만들 거예요. 비록 괴물로 변한 사람들은 사람들 사는 곳으로 돌아오기 어렵겠지만, 이런 삭막하고 험난한 곳에 그들을 버려두는 것도 도의가 아니잖아요. 승환이도 함께할 수 있을 거예요. 홀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그러는 편이 덜 외롭겠지요.”
“도시를 만든다고요? 어떻게…….”
“높으신 분들이 어떤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를 확정해 주면 머지않아 도시 건립이 시작될 거예요. 그때 그 도시로 일반인도 넘어올 수 있지 않겠어요? 이형 에너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도구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만 잘 착용하면 이쪽으로 오가며 가족들을 만나는 일도 먼 미래는 아닐 거예요.”
지호는 협회에서 내린 결정들이니 아직 비밀이라며 친구의 귓가에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게이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 승찬은 탄성을 숨기지 않았다.
“그때 시흥 연구소에서 발견했던 그거군요.”
“압수했으니 유용하게 사용해 줘야죠. 그러니까 그렇게 될 때까지 살아남아요. 그게 우리의 선결 과제잖아요.”
지호의 손이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승찬은 자신의 나이 어린 친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괴물이 된 동생과 괴물로 변하고 있는 친구. 어쩌면 승찬에게 필요한 것은 넓은 마음으로 다른 모습이 된 자들을 포용하는 자세일지도 몰랐다.
두 사람의 고요한 아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괴물이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며 지진처럼 땅이 울렸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감지 파장을 뻗었고, 곧 얼굴을 굳혔다.
“대형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