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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18화 (219/260)

218화

“나도 정확히 몰라. 퀸 패러사이트가 죽을 때 같이 죽을지, 아니면 자유의 몸이 될지. 하지만 내 손으로 그걸 죽일 수 없었던 건 확실해. 그럴 의지를 끌어내는 것조차 어려웠고, 실행은 아예 불가능했거든.”

“그럼, 그러면 내가 그 새낄 잡을 테니까…….”

“그런다고 해서 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알잖아.”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지호가 왜 그렇게 괴물로 변한 실종자들을 옹호하려 애썼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준우와 마주하고 난 뒤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호를 알아보고 구하러 나타난 것을 보니 지호는 보현보다 앞서 준우와 마주쳤을 것이다. 계획이란 무엇인가. 지호에게 묻고 싶은 것도, 준우에게 묻고 싶은 것도 산더미 같았다.

“방법이,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

준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손을 뻗어 보현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거기에 걸린 묵직한 보조구도, 무게 때문에 쓸려 상처가 생긴 손목의 여린 살도 전부 거슬렸다. 준우는 그 안쪽을 손끝으로 슬쩍 문지르며 힘을 흘려 보냈다. 녹색의 빛. 보현은 손을 잡힌 채 준우를 노려보았다.

“돌아올 수 없는 거야?”

“너도 많이 약해졌구나. 균열에 다시 들어와서는 안 될 일이었는데.”

“내가 어디에 갈지는 내가 정해.”

“아까 봤듯이, 여왕이 네 친구를 노리고 있어. 네가 여기 떨어지게 된 건 저 헌터와 함께 있어서겠지.”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준우가 괴물이 된 것을, 그리고 퀸 패러사이트의 수족이 된 것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인내했지만, 그가 괴물들만 아는 이야기를 꺼내자 견딜 수 없는 거부감이 밀려왔다.

“말하지 마.”

“필요한 이야기니 들어. 여왕은 네가 아는 것 이상으로 위험한 존재야. 이 헌터는 한때 여왕의 부하였던 괴물을 이겨 내고 각성했기에, 여왕이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졌어.”

“네가 왜 그런 걸 알아.”

“퀸 패러사이트 역시 여왕에게서 비롯된 괴물 중 하나니까. 아무 괴물이나 조종해서 나타날 수 있는 게 아니야. 충분히 강하고, 그러면서 정신계 능력으로 여왕의 힘을 거부할 능력이 없어야…….”

“여태 괜찮았어. 아무 일 없었다고! 지호 씨가 균열에 처음 들어온 게 아니란 말이야. 갑자기 저런 게 튀어나와? 어떻게!”

“저 헌터가 악성 균열에 들어온 건 처음일 텐데. 내 말이 틀려?”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두 사람이 각성했던 대균열을 비롯해 모두의 악몽으로 남은 대구의 악성 균열을 포함하여, 한국에 악성 균열이 열린 횟수는 다섯 번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여왕이란 새끼가 지호 씨를 노리지 못하게, 악성 균열에만 안 들어오면 되는 거 아니야?”

“그거라면 벌써 실패했잖아? 애초에 여왕은 저 헌터가 있는 위치에 균열을 연 거야. 피할 방법은 없어.”

준우는 그때까지도 잡고 있던 보현의 손을 느릿하게 놓았다. 무거운 보조구에 쓸려 내내 통증만 느껴지던 손목이 오랜만에 멀쩡해졌다.

닿았던 손바닥의 온기가 너무도 분명하게 기억에 남았기에 보현은 재차 괴로워졌다. 그와 죽음으로 이별했다고 생각하던 순간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면 금방이라도 서로를 품에 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숨기지 못하는 감정을 드러내며 서로를 바라보던 둘을 방해한 건 낯선 소음이었다.

불타던 백색의 길 너머에서 무언가가 찰박찰박 그 흔적을 밟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보현은 황급히 지호 앞을 가로막았고, 동시에 쓰러진 나머지 세 헌터 쪽으로 시선을 두며 난처함을 드러냈다. 불길 속에서 나타난 것은 지네에 버금갈 정도로 무수한 다리를 가진 징그러운 괴물이었다. 툭 튀어나온 눈알 몇 개가 데록데록 구르며 그들을 응시했다. 꽤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놈이 입을 열었다.

“그룸피 봤다. 돌연변이 부하 인간하고 친해.”

보현은 당혹감을 숨기려 애쓰며 근처에 떨어진 칼에 염동력을 가했다. 손바닥을 향해 착 날아온 손잡이를 익숙하게 움켜쥔 보현은 앞을 향해 칼날을 겨눈 채 소리쳤다.

“뭐 하는 새끼냐?”

“맛있어 보이는 인간.”

갑자기 화악 몸을 부풀리는 놈의 행태에 보현은 질겁했다. 허리쯤 오는 크기였을 때도 징그러웠는데 그 크기가 커지자 더더욱 혐오스러웠다. 동물보다는 벌레에 가까운 모양에 키틴질 때문에 반질거리며 빛나는 갑각이 더욱 그런 느낌을 주었다. 처음 보는 괴물을 상대하며 동시에 헌터들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보현은 난처해하며 준비 자세를 갖추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저놈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보현은 나타난 괴물이 처음 말을 건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몸을 부풀린 괴물이 아가리를 쩍 벌리기 무섭게 준우가 움직였다.

신체 계열이 아니었기에 보현은 준우가 사라진 뒤 갑자기 괴물의 허리가 동강 났다는 사실만 인식했다. 사망 처리되기 전까지 가장 빠른 헌터로 불렸던 사람이다. 괴물이 된 후에 갑자기 그 속도가 느려질 이유가 없을 터.

“어?”

그룸피는 이상함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엔 토막 난 그의 허리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고, 그게 끝이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에 이어, 이번에는 좌와 우로 갈라진 괴물의 몸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푸른색에 가까운 피가 치솟았을 때 누군가 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바닥에 튄 피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에서 자글자글 끓었다. 그리고 보현의 앞을 막은 이의 등 역시도 그러할 것이고.

“너, 너 미쳤어?”

준우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비켜섰다. 그러나 그는 자기 몸을 돌보는 대신 보현을 살폈다.

“튄 데 없냐? 깔끔하게 끝냈어야 됐는데 끝이 영 더러운 놈이라.”

“미친 소리 하고 있어! 네가 다쳤잖아!”

“난 괜찮아. 언제나 그랬어.”

물론 보현은 준우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그의 몸을 휙 뒤집었다. 그러느라 내던진 칼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바닥에서 끓어오르던 푸른 피는 준우의 등에도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등은 보현이 알던 모습이 아니었고, 얼핏 구형 헌터복처럼 보이던 것이 사실 진짜 헌터복은 아니라는 사실에 보현은 충격을 받았다. 낯선 질감. 준우는 자기를 붙든 보현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다고 했잖아.”

상처는 아물고 있었다. 치료계 능력을 타고난 몸답게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모양새. 그 자체는 그렇게까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명백한 몸을 직접 확인했다는 사실이 보현을 끔찍한 기분으로 몰아갔다.

준우는 여전히 자기 팔에 닿은 채 가늘게 떨리는 보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아 내렸다.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었던 보현조차 균열을 이겨 내지 못했고, 퀸 패러사이트와 마찬가지로 형편없을 만큼 약해진 상태다. 준우는 씁쓸히 웃었다.

“네가 내 주인을 죽이는 목표를 말했었지. 하지만 네 손으로 죽일 새가 없을지도 몰라.”

“왜? 여왕이란 놈이 먼저 죽이려고 드나?”

“비슷한 알력이 있었어. 퀸 패러사이트를 포함한 몇 괴물이 먼저 여왕이 그 몸을 이용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부하들을 잡아 죽이기 시작했는데, 거기 함정이 있었거든. 결과적으로 내 주인은 거의 죽어 가는 중이야.”

보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퀸 패러사이트를 제 손으로 죽이지 못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보현은 여전히 준우에게 잡힌 손을 의식하며 의견을 냈다.

“놈이 어딨는지 말하면 어때. 어차피 죽을 놈, 내가 처리할게. 네 손으론 죽일 수 없다고 했잖아. 그런 걸 주인이라고 부르지도 마. 그 빌어먹을 호칭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설령 진짜 그 새끼가 네 주인이라 할지라도 내 앞에서 그딴 소리 마. 나는 그 새낄 찢어 죽이려고 여기에 와 있어. 그걸 위해 여태까지 버텼고. 네가 죽은 후로 나를 지탱해 준 건 그 복수심이야. 알아들어?”

퀸 패러사이트를 향한 증오 때문에 보현의 뒷말은 거의 절규하는 것처럼 들렸다. 준우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보현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차마 감정을 전부 숨기지 못한 눈에서 익숙한 열망이 느껴졌다.

한때 보현에게 아주 익숙했던 것.

언젠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준우는 힘겹게 고개를 돌리며 보현의 손을 놓았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간을 연장시키고 싶었던 사람 같았다.

“여왕에게서 비롯된 괴물 중에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세 마리의 괴물이 있어. 어떤 것은 여왕의 눈에서 비롯되어 세계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떤 것은 여왕의 손끝에서 태어났기에 다른 괴물에게 자신을 섬기라 명령할 수 있었지. 어떤 것은 특히 유별났는데, 그것은 여왕의 기억에서 비롯되었기에 다른 것들과 달리 자신이 삼킨 모든 것을 잊지 못하는 형벌 같은 삶을 살고 있어. 그것들은 여왕에게서 떨어져 나오며 서로를 형제 삼아, 자신들을 여왕의 자식이라고 불렀고. 그중 하나가 지금 저 뒤에서 불타고 있거든.”

보현은 눈알 모양이었던 백색 괴물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들도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준우는 여전히 바닥에 시선을 둔 채 속삭이듯 말했다.

“그들은 여왕이 연 악성 균열을 이용해 그가 부리는 모든 괴물을 없앨 계획을 세웠어. 함정에 좀 빠지긴 했어도 거의 다 사냥하는 데 성공했지. 의견 차이가 좀 생겼는지 괴물들 사이가 좀 틀어져서 이 눈알 괴물은 다시 여왕 쪽으로 붙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어차피 이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놈도 아니었고. 하지만 마지막 하나, 우리가 아는 중요한 문제가 남았거든.”

바닥에 고정된 것 같았던 준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보현은 가슴이 철렁하여 그의 얼굴을 붙잡아 돌렸다.

“안 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지호 씨를 죽이려고 할 거라고? 사실이야?”

“너도 봤잖아. 여왕은 이 헌터의 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 지금은 균열에서 그랬지만, 본디 너희 살던 곳에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어. 그편이 오히려 재앙에 가깝지 않아?”

보현은 이를 악물었다. 여왕이 지호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신 방벽이 견고한 자신조차 반쯤 넋을 놓았다. 정신계 능력자 중에서도 탁월하다고 불리는 김 반장 역시 여태 기절해 있는 것을 보면 말 다 한 셈이다.

여왕은 그 존재만으로 악몽이 될 것이다. 보현은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놈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지?”

“이 헌터를 죽이면 돼. 지금으로썬 그게 제일 쉬운 일이지. 여왕은 현신할 만큼 강하면서 여러 조건을 만족하는 괴물을 찾기 전까지 다시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할 거야.”

“그딴 대답 듣자고 물어본 거 아니야! 지호 씨를 죽일 수 없어. 그런다고 여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

보현의 간절한 음성에 준우는 난처한 기색을 드러냈다. 얌전히 얼굴을 잡힌 채 보현을 내려다보던 그는 마지못해 다른 해결책을 일렀다.

“다른 계획이 있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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