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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13화 (214/260)

213화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도훈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을 도우려고 아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도훈을 무조건 괴물로 몰아갈 수 없었다. 또한, 자신이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는 지호는 도훈의 말에 담긴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앞에 했던 말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그를 괴물로 보라고. 괴물인 채로 죽겠다고. 사람 취급하지 말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도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호는 신음하는 헌터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포식자들이 물러갈 때까진 우선 할 일을 해야 했다.

“퀸 패러사이트가 사람들 쪽으로 갔어요. 당신네들 원하는 건 그 헌터를 찾는 일이죠? 그가 여기 있으리란 사실을 어떻게 확신해요?”

여왕이 들으라고 하는 질문이었다. 도훈은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생긋 웃었다.

“쉽사리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니 헌터들 중에도 그걸 아는 사람은 적겠지. 심지어는 우리가 목격한 모든 헌터들 중에 가장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우리 이지호 헌터마저 모르고 있는 사실을 아는 자야. 당연히 중요 인물이겠지. 그리고 그 옆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지 않았을까? 호위대를 거느리고 있듯이, 언제고 달려갈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우리 문 열어 주신 분의 생각인데.”

결국, 지호가 문제였다.

보현을 비롯해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트린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이 지호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 지호에게 눈을 떼어 쓰러진 헌터들 쪽으로 몸을 숙인 도훈은 그들의 머리에 차례차례 손을 짚었다. 한 사람에 몇 초씩 일부러 시간을 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곧 투덜거리는 흉내를 내며 도로 상체를 일으켰다.

“여긴 꽝이군. 그 헌터를 찾으면 내게 연락해. 너희가 만든 깜찍한 연락 도구로 충분하겠지.”

“제가 조심해야 할 건 뭐죠?”

“네 정신계 친구들을 옆에서 떼어 놓지 마. 너를 노리는 건 한 놈이 아니니까.”

도훈이 먼저 건드렸던 사람부터 부스스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냥 손만 얹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신음하는 이들에게 후다닥 달려간 지호는 자기 앞에 도로 쪼그리고 앉은 채 입 모양으로 말 건네는 도훈을 무시하지 못했다.

금방 다시 보자.

어디로 가는지 이야기하지도 않고 도훈은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바람을 밟는 것처럼 가볍게 걸어 사라지는 뒷모습에 오래 눈을 두기 어렵다. 헌터들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쓰러지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질겁하며 일어났다. 주변이 고요했기에 그들의 소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졌다.

“이 미친, 어, 뭐야. 어디 감?”

“지윤 씨, 일어났으면 나 좀 도와줘요.”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지윤은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도로 주저앉았다. 그가 맨몸으로 추위에 노출된 사람처럼 떨기 시작하자 지호는 당황했다. 분명 다들 무사하다고 했을 텐데?

황급히 달려온 지호의 팔을 더듬거리며 붙잡은 지윤은 사방으로 데록데록 눈을 굴렸다. 그 뒤에 지호를 와락 끌어안고는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씨발, 살아 있어……. 이번에야말로 뒤지는 줄…….”

“많이 무서웠죠. 괴물들을 조종하는 놈을 물리쳐서 여기 모여 있던 것들도 다 도망갔어요. 이제 괜찮아요.”

물론 거리는 괴물 시체로 가득하며, 거기에는 다른 존재에게 먹히지 않은 채 방치되어 죽어 가는 불운한 죽음이 즐비하다. 아마 태양이 보았다면 당장 마정석 추출 작업에 들어가자며 지호를 재촉했을 현장이다. 그의 눈에는 그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 곳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윤 씨, 얼른 소민 씨 회복부터 좀 도와줘요. 아파트 쪽에 코드 레드 원이 나타났어요.”

“그 새낀 어디 가고요? 본색 드러냈더라. 도플갱어 그거 아주 나쁜 새끼임.”

지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가 지원 오기 전까지 밀려오던 괴물의 해일에 파묻혀 있던 헌터들에겐 어떤 옹호도 먹히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지호도 그건 좀 심하지 않았나 생각하던 중이었고.

괴물들의 시신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었다. 그래도 벌레는 꼬인다. 이런 세계에서도 생태계는 제 역할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이 본래 세계에서의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좀 멀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혹여 벌레들이 이형 에너지를 흡수해서 모종의 영향을 끼치면 어쩌나 싶어, 지호는 우선 바닥에 떨어지고 짓이겨지고 내팽개쳐지고 짓밟히고 으스러진 시신들 부근을 천천히 걸으며 마정석 추출을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지윤이 소민을 먼저 깨웠고, 다른 자들도 늦지 않게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거기 쌓여 있던 유해들을 모두 에너지로 환원한 지호는 손바닥 가득 담긴 투명하고 영롱한 마정석을 주머니 아무 데나 쓸어 넣었다.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이들이 있었으나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재차 지원 요청이 울린다.

“아파트 쪽에 코드 레드 원 출현. 현재 방어 인원 이주리 강하나 신다은 셋뿐입니다. 곧바로 돌아갈 거예요. 일어나자마자 미안합니다.”

보현의 눈이 사람 하나 죽여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서늘하게 번뜩였다. 최대한 피하고 싶었으나 더는 도망칠 곳도 없다. 지호에 김 반장, 세진, 지윤, 거기에 보현까지. 인원 초과였으나 거리가 짧아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소심한 발언 후에 소민은 모두를 에너지로 감싸며 이동했다.

지호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마정석 중 하나가 그 에너지에 응답했다. 본래라면 불가능했을 초과 인원 이동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 소민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중간에 떨어지거나 뭐 그럴 줄…….”

“임보현!”

주리가 벼락같은 노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방벽은 여전히 견고했으나 주변을 빼곡히 메운 괴물들의 수는 심각할 정도로 늘었다. 지호는 그것들이 도훈의 앞에서와 비슷하게 제 몸도 돌보지 않고 방벽을 들이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쪽으로 달려온 주리는 제일 먼저 보현의 어깨를 붙들었다.

“악, 아파. 왜 이래요?”

“난, 우리가, 아니, 이 빌어먹을. 저 밖에, 내가…….”

“왜 이렇게 말을 더듬어. 퀸 패러사이트가 나타났으면 당연히 제가 나서야죠.”

보현은 짜증스럽게 주리를 밀어 내려 했다. 그러나 주리는 순순히 밀려나지 않은 채 불타는 것에 가까운 눈으로 보현을 노려보았다.

“내가 뭘 봤는지 믿을 수 없어.”

지호는 눈을 감았다. 도준우를 봤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던 현실이 드디어 코앞에 다가왔다. 다들 영문을 모른 채 그들을 멀뚱히 구경하고 있자 보현은 염동력까지 써 가며 주리를 떼어 내야 했다.

“이상 상황 있으면 보고하도록. 뭐 하는 거예요.”

“임보현 헌터. 나는 우리가 꽤 오래 임시 파트너로 일했다고 생각하거든. 그러니 내가 누굴 찾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을 거야.”

보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준우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네. 흠뻑 땀에 젖었던 손에서 그제야 힘이 빠졌다.

“네 동생? 막내 말이야?”

“주원이가 헛짓거리하지 말고 여길 기어 들어왔어야 했는데. 내가 본 게 맞는지 모르겠어. 퀸 패러사이트의 옆에 있었는데, 어떻게 모습이 그렇게 온전한지도 모르겠어. 이지호 헌터가 그랬잖아. 여기 오래 있으면 괴물처럼 변한다며. 그런데 왜 멀쩡하지?”

주리는 충격과 혼란 때문에 평소 사적인 자리에 있을 때처럼 보현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막내 동생, 그리고 퀸 패러사이트의 곁.

지호는 짧게 신음하며 그제야 볼 수 있었던 퀸의 나머지 두 호위대 중 하나를 떠올렸다. 아이의 형상을 미끼처럼 흔들고 있던 바로 그 괴물.

지호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다. 심지어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마치 샛별이를 연상시킬 법한 작은 체구이기까지 했고.

보현은 그의 친구를 빤히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괴물들이 연신 방벽을 긁거나 찌르고 할퀴며 매달려 있었으나 다행히 큰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주리가 그토록 애타게 지원을 요청했던 이유는 여기가 위험해서라기보다는 다른 데 있었다. 다은과 하나가 뒤편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보였다. 보현은 침착하게 일렀다.

“내 말 잘 들어.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 중 하나라면 그걸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걸 네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게 가능한가? 네 동생이 실종되었던 건 몇 년도 더 전이야. 그동안 이 균열에서 버텼다고?”

“일전에 이지호 헌터가 시간의 흐름이 다른 균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잖아. 그때와 비슷한 작용이 있던 게 아닐까? 사실 걔한텐 일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일이었던 거야. 그래서, 그러니까. 어쩌면 내가 구해 주길 기다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주리는 뺨을 철썩 얻어맞고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물론 하던 말을 멈추고 멍청한 얼굴을 보이긴 했지만.

신체 계열 헌터를 맨손으로 때린 대가를 혹독하게 느끼며 보현은 제 오른손을 흔들었다. 새빨갛게 부어오른 손이 보기만 해도 아파 보여 지호가 얼른 둘 사이로 뛰어들었지만, 그가 치료를 해 주건 말건 보현은 주리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화냈다.

“정신 똑바로 차려. 평소엔 똑똑한 게 동생 일만 연루되었다 하면 왜 이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앞뒤 분간을 못 하는 거야? 그게 네 동생이 맞다고 쳐. 퀸 패러사이트 옆에 있다면서? 저 많은 괴물을 뚫고 그걸 구하자고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야?”

주리의 간절한 시선은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노련한 헌터인 이주리의 머리는 작전의 실행 가능성을 몇 번이고 검토했다. 가능할 리 없다. 애당초 그는 신체 계열 퓨어 헌터라 퀸 패러사이트 앞에 뛰어들 수 없는 몸이다. 여기 모인 대다수도 마찬가지였다.

주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얼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린 주리의 눈이 위태롭게 빛났다.

“그러자곤 말 못 하지.”

“저 밖의 괴물 대다수가 정신계야. 우린 계획을 다시…….”

“도와달라곤 못 하지만, 그렇다고 나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뭐? 이 미친 새끼야!”

임보현의 입에서 결국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주리가 몸을 돌리며 땅을 박차는 순간, 지호 역시 움직였다.

나머지 헌터 중 신체 계열 능력자였던 세진만이 그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일순간 둘의 모습이 번개처럼 사라지고, 주리의 모습은 방벽 바로 앞에 머리를 처박힌 채 다시 나타났다. 소민은 제 눈을 의심했다. 이형 에너지가 느껴지진 않았지만, 숫제 단거리 이동에 준하는 속도였던 까닭이었다. 간신히 방벽 밖으로 튀어 나가기 직전의 주리를 붙잡아 패대기친 지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예고도 없던 격돌이라 조금 힘겨웠다.

“그런 짓 하지 마요.”

“이거 놔!”

“그 밖에 있던 건 이주리 헌터님 동생이 아녜요. 아닐 거예요.”

주리가 거칠게 반항하자 그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아 버린 지호는 뒤에서 달려오는 헌터들이 듣지 못하도록 낮게 속삭였다.

“이 균열에서 이주원 각성자에게 개수작 부리던 괴물을 찾았어요. 선택해요. 죽은 동생이에요, 산 동생이에요?”

“뭐라고?”

“그놈을 잡지 않으면 이주원 각성자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을 텐데요. 그렇지 않으면 죽은 동생 찾겠다고 이길 수도 없는 싸움에 뛰어들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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