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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12화 (213/260)

212화

지호의 추측이 사실이었다면 퀸 패러사이트가 멀쩡히 그를 관찰하고 돌아갔을 리도 없다고 덧붙인 도훈은 그가 왜 지호를 이쪽으로 데려왔는지 설명하기 위해 지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왕도 알고 형제들도 알다시피 우리는 곧 끝이 나. 아마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너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을 거야. 그 정도는 되어야 이쪽에서 자신이 쓸 몸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래서 네게 그 많은 힘을 허락했을 거다.

지호는 충격을 받았다. 여왕이 그에게 간섭하며, 그를 조종한다는 것까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훈이 하는 말은 그보다는 좀 더 내밀한 부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호는 추측했고, 도훈은 지호가 떠올린 심상에 동의를 표했다.

그래. 여왕은 네가 되려 할 거야. 너를 흉내 내고 따라 하며 인간들 사이에서 네 몸을 쓰고 네 위치를 활용하며 그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할 거야. 너를 꼭두각시 삼아 그 세상을 자기 발아래 두겠지. 우리에게 그러하듯이. 방해 없이 그러기 위해 우리를 정리하는 거야. 인간들 사이에서 우리만큼의 정신적 영향력을 가지는 것들은 없으니. 네 친구 정도라면 약간은 그 힘에 반항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영구적으로 지속하는 건 힘에 부칠 거야. 이 방법을 쓴다면 저쪽 세상으로 넘어가는 방법 따위 몰라도 상관없지. 네 몸은 아무 저항 없이 저쪽과 이쪽을 오갈 수 있을 테니까. 원리는 그때 가서 알아봐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거야. 사실 틀린 말도 아니지.

그 친구라는 것이 김 반장을 뜻하는 것임을 아는 지호는 그가 이 상태를 다른 헌터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도훈은 지호의 생각을 읽으면서 껄끄러운 내색을 보였다.

우리는 여왕이 제 수족처럼 부리는 것들을 정리했지만 정작 우리의 존재를 생각지 못했어. 셋이 모여 여왕의 부하 놈들을 죽였다고 했지. 강한 놈을 사냥하며 얼마간의 피해가 있었으니 그걸 보충하려고 놈을 먹는 건 우리에게 당연히 예정된 결과였어. 여왕은 그 틈을 노렸어. 그게 여왕이 우리에게 부린 개수작이었지. 그것이 몸속으로 들어가 우리의 피와 살이 되기 전에 역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갉아먹기 시작했어. 그럴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뭔들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우리는 여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운다는 생각으로 대단히 흥분된 상태였어. 제일 먼저 몸의 이상을 알아챈 건 퀸 패러사이트야. 힘이 빠져나가는 흐름으로 볼 때 우리에게는 아마 며칠의 시간도 남지 않았을 거야.

지호는 도훈이 어떻게 이렇게 침착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혼란을 느낀 도훈은 짧게 웃었다.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나는 너무 많은 죽음을 겪었어. 너도 알다시피, 대부분은 내가 나에게 선사한 죽음들이지.

지호는 뒤늦게 도플갱어의 형질적 특성에 관해 떠올릴 수 있었다. 지호가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을 아는 도훈은 천천히 어떤 환상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한때 괴물들은 자손을 생산할 수 있었지. 생김새도 비슷하고, 돌연변이도 적었어. 지금처럼 제각기 완전히 다른 존재들처럼 생기지는 않았었다.

괴물이 수태하여 그와 비슷한 것을 낳은, 어찌 보면 괴물이라고 부르기에는 아름답게 잘 조형된 생물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첫걸음을 떼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와 양수로 젖은 몸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작은 생물은 비틀거리던 걸음을 딛고 제힘으로 바닥에 우뚝 섰다. 경이에 가까운 장면이었으나 그 모습은 오래 보이지 않고 사진이 불타는 것처럼 사라진다. 지호는 도훈이 왜 이런 것을 보여 주었나 궁금했다.

네가 본 저것은 내가 포식자라고 부르는 것들이야. 여왕이 낳았으나 다시는 낳지 못하게 된 것들. 그의 몸에서 태어났으나 그것 자신이 아닌 것들. 너희 역시 자식을 낳아 자신이 못 한 것을 시키고 싶어 애지중지 키우지만, 결국 그 자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날아가지. 어떤 세계에서 태어난 자식들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어. 그것들은 여왕의 진짜 자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들이었지. 그것의 피와 살점, 신체 부위로 만들어진 우리와 달리.

작은 생물은 순식간에 자라나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 지호는 괴물들의 시선으로 균열을 처음 목도했다. 거대한 반구형의 공간. 외부에서 호시탐탐 약한 것들을 먹으려 모여든 것들이 있다.

포식자라고? 지호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일전에 시흥 게이트에서 나연이 느꼈던 힘 역시 그것들의 것일 터.

포식자들은 여왕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만큼 강하지. 하지만 여왕이 그 종족의 대표로 생식의 기능을 잃었을 때,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빼앗겼어. 그래서 그들이 노릴 수 있는 것은 가장 강한 존재가 되는 것뿐이었거든. 여왕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건 그 때문이지. 지금이야 당연히 여왕이 훨씬 강하지만, 저것들은 얼마든지 여왕의 심장을 가르고 그를 잡아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자손을 낳아 후대를 번성시킬 권리를 박탈당한 자식의 마땅한 반항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낳아 준 것도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개자식들이라고 생각할까? 포식자들과는 공동 전선을 구축할 수도 있지만, 호시탐탐 이쪽 능력을 노리는 것들이 많아서 교류를 이어 가는 건 불가능했어.

먹거나 먹히는 것에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 지호는 곧 먹은 것 중 약한 존재가 그의 몸을 차지하기도 하는 괴물들의 해괴한 생태에 관해 떠올릴 수 있었다. 그들이 하찮은 먹잇감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주로 그런 예시에 속한다.

지호는 도훈의 설명 속에서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종족의 대표? 생식의 기능을 잃어? 베일 너머 그림자 같은 여왕의 환상을 보여 주었던 도훈은 한때 위대하고 자애롭던 여왕은 보여 주었으나 그가 어떤 일을 겪고 이렇게 추락했는지는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그는 먹고 먹히는 어떤 괴물의 기억을 보여 주었다. 한때 아주 작았으나 거대한 무엇에 잡아먹히고, 그것의 몸을 차지하며 눈을 뜬 것. 도훈이 먹은 것들 중 하나였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괴물들은 살고 죽는 것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 강한 것에 먹히는 것은 그대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과 진배없고, 먹힌다고 하여 그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고, 먹히지 않은 채 죽는 것은 불행에 가깝다. 그래서 너희에게 사냥당한 것들은 매번 비통하게 울부짖지. 에너지로 환원되잖아.

마정석을 뜻하는 것 같았다. 괴물들의 몸을 재료로 쓰는 사냥꾼들이나 헌터들 또한 그렇겠지. 그들이 인간을 먹고 사냥하는 것에 또 다른 의미가 있을 줄 몰랐던 지호는 뒤늦게 인간들이 괴물의 사후를 다루는 방식을 상기했다.

먹지 않는다. 그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조각내고 해체하여 부산물을 쓴다. 에너지를 추출하여 다른 곳에 사용했다. 그것을 괴물들 측면에서 볼 때의 진정한 죽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헌터들에게 자기 목숨 소중한 줄 모르고 무모하게 몸을 던지는 경향이 있다고 염려하던 금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차피 괴물에서 비롯된 자들이기에 그러한 걸까? 죽어도 진짜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무의식이 알고 있어서?

도훈은 지호가 떠올린 생각들에 아무런 첨언도 하지 않고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네 몸을 빌리면 여왕은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도, 그렇다고 너희에게 해체되어 먹히는 것보다 못한 끝을 맞이하지도 않게 되지. 그러면서 너희 중에 가장 강한 축에 속하고, 몸이 약해지지도 않았어. 이보다 더 적절한 대상이 있을 수 있을까?

지호는 불편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의문에 도훈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현실이 불쑥 앞으로 다가온다. 지호의 어깨에 얹었던 손을 뗀 도훈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몰라. 어쩌면 방법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지.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끔찍한 소리 마요.”

말을 줄인 도훈은 핸드폰을 두드렸다. 액정에 명확히 적힌 문장이 지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민도훈 : 그렇지 않으면 여기를 탈출하는 방법도 있지. 이형 에너지가 너희 세계에서 작용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 봐.]

[이지호 : 아직 안정기까지는 시간이…….]

[민도훈 : 저길 뚫고 나가라는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좀 위험할지 모르겠지만, 다른 것의 방식으로 균열을 넘어. 우리 세계를 지나가. 그래서 너희가 알아낸 방식으로 문을 열어.]

지호는 도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시흥 게이트. 그러고 보니 이전에 괴물들의 세계로 넘어갔을 때도 승찬의 집이 있던 위치에서 걸어서 그쪽으로 나갔었다. 실제 시흥만큼의 거리가 아니니까. 그쪽에서의 공간감과 이쪽에서의 공간감이 다르니까.

지호는 염려를 숨기지 못한 채 질문했다.

“가능할까요?”

“해 봐야지.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야 할 거야.”

그러나 곧장 움직일 수는 없었다. 도훈은 포식자들의 존재를 재차 상기시키며, 지금은 균열 경계 밖에 포식자가 어슬렁거리고 있노라 이야기했다. 지호는 다시금 게이트 부근에 있던 포식자의 존재를 생각했다. 아마 같은 놈일 확률이 높았다.

살날도 며칠 안 남은 주제에 도훈은 평소처럼 말하고 웃었다. 지호는 그 심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아마 평생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그에게 오는 연락을 확인했다. 이주리 헌터였다.

[이주리 : 코드 레드 원과 조우. 아직 귀환은 멀었습니까?]

돌아가도 되느냐는 질문에 도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왕의 눈을 속여 가며 지호에게 전해야 할 말은 다 전했으니 괜찮다고 말을 덧붙인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유령처럼 떠다니는 흰 마름모형 괴물들을 가리켰다.

“저것이 곧 균열을 나갈 수 있을 만큼 약해질 거다. 애당초 형제의 성질은 공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하지만 정신계 계통 괴물 특성상 주변에 있는 것에 기생하고 그것을 조종하려고 들 거야. 놈이 자신을 최대한 쪼개며 약해지는 데는 밖으로 나가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어.”

“죽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흉내 냈어요. 바깥으로 능력을 써 가며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했고요. 거기 강하게 영향받은 헌터가 있어요.”

지호는 허둥지둥 설명했다. 그의 엉성한 설명을 듣던 도훈은 결국 잠시 양해를 구하고 지호의 기억을 확인했다. 그가 떠올리는 것을 읽는 방식이라 김 반장이 했던 것처럼 기억을 뒤지고 섞는 식은 아니었다. 이주원 각성자의 일들을 쭉 엿본 도훈은 고심하며 팔짱을 꼈다.

“균열을 계속 열어야 꾸준히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지. 하지만 우리 힘으로는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너희가 일반 균열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어. 이쪽에서 문을 열 수 있으면 그쪽에서도 열 수 있을 거란 아이디어는 형제가 냈다. 놈은 아주 작은 틈으로도 외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자인데, 대신 몸은 유리보다 더 약해. 퀸 패러사이트보다 더 약할 거다.”

만났을 때 그 눈알을 깨 버렸어야 했는데. 지호는 후회하며 눈을 찡그렸다.

“균열을 열기 위해 사람들을 조종하고 이용했다는 말이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아니, 어떻게 우리가 그런 기술을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그야 주기적으로 균열을 열어 너희를 먹어 왔으니까. 내가 그것들의 존재를 모두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제 역시 비슷한 변이를 거쳤거든. 저놈은 그 존재가 변하지는 않지만, 먹은 모든 것의 기억을 갖고 있지. 목소리 정도는 어렵지 않게 흉내 낼 수 있었을 거다. 죽은 자의 시늉 역시도.”

괴물 중에 제일 악질이었다. 지호는 집회 장소에 모여 독특한 문양에 대고 실종자의 생환을 기도하던 이들의 간절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이가 다 갈릴 지경이었다.

“주기적으로 인간을 먹으면서 운 좋게 이쪽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단 걸 알았고, 그래서 균열을 열게 했다? 그럼 그 모든 급성 균열들이 다 사람들이 연 거였어요?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일전에도 설명했잖아. 악성 균열만이 여왕의 손으로 연 것이고, 일반 균열은 괴물들이 연 것. 그러니 나머지는 너희의 짓이지. 이미 죽은 자를 다시 만나고 싶어 타인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이기적인 자들 덕분에 이쪽 괴물들은 꽤 포식했어.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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