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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11화 (212/260)

211화

지호는 이번에야말로 액정 위로 뚝 떨어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고개 들지 못하는 이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도훈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먼저 잡은 고기를 빼앗으러 오는 불청객을 맞아 보실까. 저것들은 방해되니 한쪽에 모아 둬. 내 인질을 뺏길 생각 없거든.”

도훈이 불청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이 균열의 괴물들 대다수가 ‘여왕에 가까워진’ 지호의 힘을 피해 달아났다는 걸 감안한다면 그것을 무시하고 접근할 만큼 강한 괴물이거나, 그것을 감수하고 올 이유 있는 괴물 둘 중 하나일 터.

지호에게는 씁쓸한 일이지만 후자의 괴물이었다. 한때 한 마리가 나타나는 것만으로 헌터들 대다수가 고초를 겪었던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섯 모두 있는데 그중 셋은 낯이 익었다. 가장 거대한 놈의 머리 위에 비스듬하게 누운 퀸 패러사이트가 느릿하게 상체를 세워 앉았다.

오, 전에 얻은 기회를 놓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쉽게 됐군. 이렇게 탐스럽게 자랄 줄이야.

퀸 패러사이트의 정신이 머리를 울렸다. 지호와 도훈 모두에게 전달되는 의미였는지 곧 도훈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잡은 거야. 숟가락 얹으러 왔나?”

갑자기 인간처럼 구는구나.

“우리 둘이 말도 없이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얘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퀸 패러사이트의 머리가 이쪽으로 돌아왔다. 눈이 없는 존재. 어떤 놈은 눈만 있고 어떤 놈은 눈이 없으며 어떤 놈은 괴물 같지도 않게 생겼다. 물론 본체는 아니지만……. 지호는 문득 도훈의 본모습이라는 것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졌다. 타인의 모습을 흉내 내지 않았을 때의 그는 무엇일까. 그런 상태의 그를 보아도 여전히 사람이라고 느낄까?

지호는 자신이 보이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안다. 애당초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다. 자신과 같이 팔다리가 두 개이고 눈 코 입이 제자리에 달린 사람들을 같은 종으로 인식하지, 오른손이 파충류 섞인 괴물의 것이거나 머리에 촘촘한 이빨이 그 안면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촘촘한 이빨이 차르륵 움직였다. 무어라고 이야기는 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도훈에게만 이야기했는지 지호에게 들리지 않았고, 그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입을 꾹 다무는 것을 본 후에는 정말로 그들만의 대화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에게 눈을 돌리자 퀸의 나머지 두 호위대가 보였다. 퀸 패러사이트의 호위대 전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낯선 개체 중 하나는 대놓고 괴물의 형상을 한 놈이었는데, 나머지는 아주 작았다. 작은 소녀 같았다. 그러나 지호의 감각은 그 모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잡아냈다. 지호는 소녀의 발아래, 그리고 등 뒤의 어둡고 납작한 그림자를 보았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덫이다.

소녀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린 채 어딘가에 기대어 있었다. 그 작고 둥근 어깨가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혹자는 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이고 질문할 것이다.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그러면 그 순간에 고개를 드는 것은 아이가 아니다. 어둠 속에서 아귀 같은 입이 꾸물거렸다. 언제고 다가온 것을 낚아채어 삼킬 수 있는 음험함. 괴물이 덫으로 이용하기에는 작고 덜 자란 인간이 유용할 것이다. 괴물은 사냥하기 쉬운 것을 노리는 법이고, 인간은 약한 것을 경계하지 않으니.

준우는 여전히 선글라스를 쓴 채다. 지호는 입술이 바싹 마르는 것을 느꼈다. 퀸 패러사이트는 아래에 있고 그들은 삼 층짜리 건물 위에 올라서 있다. 일반적으로는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거리. 그러나 이보다 더 먼 곳에서도 이야기했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정신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이 위로 올라오지 않는 한 여기 누워 있는 헌터들을 알아채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호는 부디 준우가 보현의 존재를 깨닫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간신히 다른 놈에게로 눈을 돌렸다. 경제적이고 흉악한 모양새의 괴물들은 개성적인 모양으로 위협적이었다.

지이잉. 핸드폰이 울리며 알림이 뜬다. 도훈이 동시에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을 보니 수신 대상은 균열 내부 생존자 전원인 모양이다.

<균열 확장 중. 현재 내부에서 임보현 헌터와 이지호 헌터를 비롯한 열네 사람의 헌터가 괴물을 사냥 중이니 소멸기 경보를 기다리며 생존하시기 바랍니다.>

괴물들에게 공지가 가지 않아 다행이다. 대놓고 이름자를 따로 거론하다니, 이 둘이 중요하다고 광고해 대는 꼴이 아닌가. 지호는 도훈과 마찬가지로 주인 없는 핸드폰을 주웠다가 기기 사용법을 알아내는 괴물이 생겨나지는 않기를 바라며 슬쩍 도훈의 눈치를 살폈다. 퀸 패러사이트와의 대화가 끊기지 않았는지 찌푸려진 이맛살이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강하나 : 또 어딜 혼자 기어 나갔어요!]

[이지호 : 혼자 아니에요. 김 반장님하고 소민 씨랑 같이 왔어요. 다른 분들하고 합류했는데 좀 상황이.]

[강하나 :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요?]

[이지호 : 연락할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무사해요.]

지호는 우선 하나에게 소식을 전하며 고심했다. 지금 일을 이야기해 봐야 좋을 것이 없을 터. 오히려 이쪽으로 없는 구조 인력 꾸려 나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아까 공지로 미루어 볼 때 그들 아홉을 제외하고 병원 측 혹은 외부에 있었을 헌터는 고작 다섯. 신원을 아는 이주환 헌터를 제외하고 나머지 넷의 정보도 곧 열람할 수 있었으나 안면 있는 사이가 아니다. 다은과 하나, 그리고 이주리 헌터 세 사람이 아파트 단지를 보호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지 않기를 바라며 지호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지호 : 당장 돌아가긴 어려워요. 코드 레드 원이 근처에 있어서요. 그쪽 상황은 어때요?]

[강하나 : 이상한 허연 둥둥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뜻밖의 이점도 있긴 해요. 어디 잘 숨어 있거나 혹은 아파트 쪽으로 오려다 잡힌 사람들을 그대로 데려와서 입구 두드리게 흔들다가 놓치거든.]

[이지호 : 들어온 사람들 상태는요?]

[강하나 : 내가 지윤이도 아니고 정확히 알긴 어려운데……. 아직 깨어난 사람은 없어요. 생기는 대로 연락 전할게요. 이주리 헌터님이 화 많이 났어요.]

차가운 인상과 달리 불같은 성정의 보유자다. 지호는 곁의 동료들을 돌아본 뒤 느릿하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이지호 : 상황이 너무 급했어요. 혼은 나중에 날게요. 안전 구역을 부탁해요.]

지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도훈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대화가 끝났을까. 퀸의 정신이 다시 지호에게 말을 걸었다.

형제의 것이 되었으니 우선은 놓아두겠다만……. 여왕이 주시하고 있는 인간 변종 개체는 흥미롭구나.

지호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퀸 패러사이트가 공격해 오지 않는 이유가 저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다. 그를 도훈이 먼저 사냥한 사냥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도훈이 접촉해 왔을 때와 달리 상대의 감정 같은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일은 없다. 어쩌면 이쪽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의 속까지 내보이는 정신 접촉은 너무 위험할 테니.

네 머리에는 그 정보가 없다지. 그렇다면 혹여 그 헌터에 관해서는 알고 있나?

지호는 준우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보현이 자주 하던 것처럼 무심하게 거리 두는 인상을 흉내 낸 지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차르륵 차르륵 괴상하게 움직이던 퀸 패러사이트의 이빨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상심한 것 같았다. 지호는 상대의 감정을 읽어 내는 것을 이제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같은 괴물들끼리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여기게 된 까닭이다.

어차피 변이한 개체가 몇 있지 않아 수색이 어렵진 않겠어. 좁은 문이었고……. 형제가 따로 계획이 있다고 하니 우선은 봐주지.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 없어. 명심하는 게 좋을 거다, 먹음직스러운 꼬마야.

퀸 패러사이트는 다시 몸을 늘어뜨렸다. 그를 유리 도자기처럼 들고 있던 호위대는 다시 느릿하게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도 당연한 것처럼 뒤를 따라간다. 도준우만이 이쪽을 올려다보았다가 부근을 훑고는 조금 느리게 그의 주인을 뒤쫓았다.

눈치챈 건 아니겠지. 지호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안도했다. 도훈은 고개를 까딱였다.

“그래. 가자 꼬마야. 우리도 움직여야지.”

“다른 사람들은요?”

“거추장스러운 거 챙길 시간 없어.”

도훈은 퀸 패러사이트와 반대 방향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난폭하게 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짧은 환상이 지호의 눈을 가렸다. 그가 ‘형제’들과 나누었던 대화들이다.

지호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도훈을 보면서도 그가 데려가는 대로 우선 걸음을 떼었다. 근방에 괴물이 없으니 당장은 쓰러진 헌터들이 위험하지 않을 것이고, 도훈 역시 지호를 데리고 멀리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아까 저 녀석이 했던 이야기처럼. 네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말로 해도 되는 건가 봐요?”

“이건 듣든지 말든지 상관없어. 여왕이 너를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테지?”

지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각성하던 순간부터 지호를 따라다녔던 붉은 눈들이 그 증거다. 도훈은 부근으로 뽈뽈거리며 기어 오는 괴물에게 손짓해 놈의 눈을 현혹하며 중얼거렸다.

“그 방법이 아마 정신을 잠식하는 종류일 거란 건 짐작하고 있을 거고.”

다른 메두사들처럼 지호 역시 정신 방벽이 없는 수준이다. 예전처럼 맥없이 당하지 않는다는 게 유일한 차이일 것이다. 그러나 공격받을 수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 것만으론 여왕에게 대응할 수 없다. 도훈은 바로 그 사실을 입에 올리며 설명했다.

“퀸 패러사이트는 여왕이 조종하는 것들 대부분을 없앴다. 예전보다 그 수가 훨씬 줄어들었지. 그러나 머릿수가 줄어든 만큼 남은 놈들의 움직임은 한층 정교해졌고 똑똑해졌어. 힘을 분산시킬 필요 없어진 여왕이 우리 형제들에게 대놓고 경고를 시작하기도 했다.”

“다른 뱀들로요?”

“어. 저항의 의미로 놈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고 일부는 먹었는데, 그게 함정이었어. 쉽게 말하면 지금 나나 형제들은 폭탄을 삼킨 뒤 그게 배 속에서 터진 꼴이야. 내장이 다 망가지고 그릇이 깨졌지. 며칠 못 버틸 거야.”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 며칠이라고? 지호는 말을 더듬었다.

“어, 어떻게 그렇게. 아니 어떻게 알아요? 왜 며칠밖에…….”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필요한 에너지도 잡아 둘 수 없게 됐어. 생명을 유지할 힘조차 새어 나오기 때문에 잠시 정도는 본래보다 몇 배는 강한 힘을 쓸 수 있지만, 그게 다 빠져나오고 나면 끝이야. 사라지겠지.”

“다, 다른 걸 먹으면 되잖아요. 다른 괴물을 많이 먹어요. 몸을 회복하라고요.”

“그런 게 가능하면 진작 그렇게 했겠지? 여기 이 균열의 누구보다 먹음직스러운 상대를 두고 어딜 가서 한눈을 팔고 있겠어? 심지어 저기 무력하게 누워 있는 헌터들이 나 잡아 잡수시오 하고 진열되어 있는 꼴인데. 저 한 명만 먹어 보면…….”

지호의 눈에 불이 튀었다. 도훈은 빠르게 제 앞을 가로막는 지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됐어. 먹을 거면 진작 먹었을 거란 소리야. 소용없더군.”

“당신이 너무 약한 것들을 먹은 것이 아니고요?”

“무슨 소리야. 너희들이 여기 들어오기 전에 이 균열을 거의 닫아 버릴 뻔했는데. 악성 균열은 이쪽에서 확장 작용을 일으키기 위해 우리 쪽에서 한 번 공간을 축소한단 말이지. 그때가 유일한 기회였어. 한 번도 협조했던 적 없던 형제들과 처음으로 힘을 합쳐 여왕의 가장 강한 부하를 잡았다고. 그런데도 아무 변화가 없었지. 균열은 열렸고, 우리는 확장하는 공간에 밀려 흩어졌어. 우리가 필사적으로 사냥해 뜯어 먹은 놈은 우리에게 약간의 능력도 주지 못했고. 아니, 우리가 그 함정에 빠져 다 죽어 가는 꼴이 아니었다면 또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가정뿐이지. 우린 이미 이 꼴이 되었으니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지호의 혼란스러운 음성에 도훈은 빙긋 웃었다.

“모르는 편이 나아. 그걸 알게 된 후엔 곧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외엔 더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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