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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08화 (209/260)

208화

지도에 표기되던 녹색 범위에서 갑자기 아파트 단지가 사라졌다. 세진 팀과 연락되지 않는 까닭에 다른 팀과 먼저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하던 김 반장은 안색이 싹 변하여 다른 이들을 멈춰 세웠다.

“왜요?”

“단지에 뭔가 들어갔다. 괴물이 침입하면 안전 구역이 해제돼.”

“그놈들일까요? 입구에 붙어 있던…….”

하나의 소심한 추측에 김 반장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힘이 고만고만하단 건 상대하면서 봤잖아. 뭔가가 있는 거다. 최세진 헌터 팀과 연락이 안 되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겠지. 지금 아파트 단지에 우리가 구조해 둔 사람 수만 해도 벌써 백 단위가 넘어. 그쪽엔 진짜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왔다. 방비가 될 리가 없어.”

돌아가야 한다. 보현을 찾으러 가는 것보다 이쪽이 급했다. 헌터들이야 만약의 경우 자기들 힘으로 빠져나오든가 괴물과 싸워 버티기라도 할 수 있지, 민간인들은 괴물 한 마리만 있어도 우수수 쓸려 나가기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호 역시 그것을 안다. 격렬히 흔들리는 속내를 억누르며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향 잡아 줘요.”

퀸 패러사이트의 신호가 추가적으로 잡히지 않았다. 놈들을 목격할 만한 생존자가 남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 있어 입이 바싹 말랐다. 지호는 부디 그가 생각하는 최악의 결과만은 아니기를 바라며 아파트 단지 방면으로 빠르게 비행했다. 거리가 멀지 않았으나 그들을 방해하는 놈들이 수두룩했다. 덕분에 달리는 것보다 더 느린 속도로 단지 앞에 도착한 김 반장 팀은 당황했다.

아파트 단지를 휘젓고 있는 괴물의 수는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놈들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러 뛰어다니는 소민과 다은을 제외하면 전원이 비전투 인원이다. 바닥에 혈흔이 낭자하고 다친 몸을 끌고 사각지대에 숨은 이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다.

“소민 씨!”

지호의 목소리를 들은 소민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괴물의 아가리가 그의 다리를 향해 달려든다. 소민은 질겁하며 일 미터가량을 빠르게 이동하고는 염동력으로 놈의 몸을 짓눌렀다. 그러나 괴물은 버둥거리며 금세 거기서 벗어나 또다시 소민에게 달려들었다. 출력 차이였다. 소민의 힘으로는 놈을 제압하기 어려운 것이다.

놈이 소민을 쓰러뜨린 그 순간, 달려든 지호와 다른 팀원들이 놈의 관절부를 끊어 버렸다. 뜻밖에도 그 머리 부근에서 주먹보다 크기가 작은 마름모꼴 괴물이 뽈뽈거리며 기어 나왔다. 그걸 짓밟아 깨 버린 김 반장은 소민을 붙잡아 일으키며 물었다.

“저기 싸우고 있는 신다은 외의 다른 팀원들은?”

소민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당했어요. 거기 있던 괴물이 갑자기 제 눈을 가리면서, 그게. 분명 거기서 다 같이 도망치는 게 계획이었는데 이쪽으로 넘어온 게 팀원들이 아니고 저 괴물들이라…….”

“뭐라고요?”

다은이 악을 쓰며 괴물의 눈을 찍어 버리는 것이 보였다. 놈의 입에서 사람을 꺼내는 것을 본 김 반장은 욕설과 함께 지시했다.

“우선 여길 먼저 정리해. 괴물의 수는?”

“다섯이 넘어요. 계속 분열하고 있어요. 원랜 좀 큰 놈이었고요.”

“산 넘어 산이군. 혼자 잡을 수 있나?”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감지 파장이 사방을 훑는다. 외부 방벽에 들러붙은 놈이 하나, 그리고 아파트 단지로 기어 들어간 놈이 하나. 포식하고 있는 것 같은 놈이 또 하나 있었다. 나머지는 신경 쓸 필요 없을 만큼 힘이 약했고, 확인하기로는 다른 각성자가 대치 중이다.

“203동과 206동, 207동으로 갈라지죠. 제가 방벽 옆에 있는 놈을 맡겠습니다.”

김 반장은 다친 민간인들에게 달려가고 나머지 수습은 다른 헌터들의 몫이다. 그림자들이 중첩되어 있는 곳을 보니 결계 바깥쪽에 다닥다닥 들러붙은 마름모꼴 괴물들이 보였다. 근방에 흰 액체가 보이진 않았으나 그렇게 멀지는 않은 위치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지호는 이를 악물었다. 빨리 정리하고 보현에게 가야 한다. 놈들의 목표야 당연히 보현일 수밖에 없다. 그가 균열로 들어오지 않자 이번에는 저쪽에서 보현을 노리고 균열을 열어 버린 것이다.

여왕이 어떻게 보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는지는 지호가 알 방법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건 당장 부딪쳐야 할 결과지 원인이 아니었다. 지호는 섬광처럼 날아 방벽에 들러붙은 놈을 반으로 찢어 버렸다. 오른손을 무기처럼 쓰는 데 점점 익숙해진다.

피를 흘리며 주르륵 방벽에서 미끄러진 괴물의 뒤통수에서 흰 마름모꼴 괴물이 기어 나온다. 마찬가지로 크기가 작아진 상태였다.

바깥의 큰 놈들과의 차이점은 뭘까. 이 괴물들을 조종하려고 들러붙어 있었다는 점? 다른 개체를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게 눈에 보이는 크기로 드러나는 건가? 이 추측이 맞는다면 놈들의 크기가 클수록 능력도 강하다고 볼 수 있을 터였다.

“지호 씨, 나머지 사람들 남은 곳에 도플갱어가 나타났어요!”

“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소모한 에너지를 보충한 후에 지호 쪽으로 이동해 온 소민은 허겁지겁 상황을 설명했다.

“그, 그 도플갱어가 다른 괴물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어요.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그 명령을 따라 저희를 한꺼번에 덮쳤고, 저는 모두를 이동시키려다 괴물을 이쪽으로 데려와 버렸고요. 돌아가야 해요. 수가 엄청 많았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지호는 그 말을 삼켰다. 이미 벌어진 일 앞에서 토해 내 봐야 무용한 말이기 때문이다. 지호는 도훈이 다른 것들과 다를 바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자꾸 잊곤 했다. 그가 지호에게만큼은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혹은 지호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거나.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쓰러진 괴물들에게서 빠르게 마정석을 추출한 지호는 다른 이들이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빠 보이는 것을 알고 굳은 얼굴을 소민에게 돌렸다.

“지원 가요.”

“예? 우리 둘만요? 위험해요!”

“언니가 계속 연락이 안 돼요. 그쪽 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방금은 전투하느라 바빠서…….”

소민은 자기가 꺼낸 말 때문에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기에 고립된 세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괴물과 싸우느라 연락받을 여력이 없겠지. 소민은 떨리는 손으로 지호의 팔을 붙들었다가 흠칫 놀라 손을 놓았다. 하필 오른손이었고, 비늘 같은 감각이 그를 당혹스럽게 한 것이다. 소민은 자기가 한 행동에 놀라 사과했으나 지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을 시간 없어요. 언니가 싸울 만큼 상태가 멀쩡하지 않다고요. 빨리요!”

“두, 둘은 안 돼요. 저도 전투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단 말이에요. 게다가 그쪽 바닥에 밟으면 안 되는 게 깔렸어요. 임보현 헌터님이 방벽으로 내내 밀어 냈던 것들인데 지호 씨나 저한텐 나쁜 영향을 미칠 거예요. 분명히요!”

이 균열 사방에 퍼진 바로 그것이 분명하다. 지호는 욕설과 함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김 반장에게 몸을 돌렸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공황 발작에 가까운 상태에 들어선 자들을 재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두려움에 빠진 이들을 통제하는 데 김 반장의 능력만큼 유용한 것도 더 없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지호는 소민을 붙잡고 멀지 않은 거리를 단박에 날아올라 김 반장 옆에 착지했다. 뒤에 떨어지는 중량감에 질겁한 김 반장은 두 사람을 확인하곤 안도하며 욕을 퍼부었다.

“괴물 새끼 온 줄 알고 놀랐잖아!”

“곤란한데요. 괴물 새끼들 득실거리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뭐?”

“소민 씨, 어서 가요!”

지호가 김 반장을 단단히 붙잡은 것을 본 소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형 에너지를 전개했다. 그걸 느낄 감각은 없어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눈치 빠르게 알아챌 수 있었던 김 반장은 경악하며 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을 입 밖으로 낼 새도 없이 그들은 낯익은 도심 지상 십 미터가량 상공으로 이동했다. 눈 깜짝할 새였다.

발밑을 빼곡히 채운 건 괴물의 시체였고, 흰 액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핏물이 흘러 백색보다 붉은색이 더 눈에 띄었다. 지호는 강렬히 발산되는 이형 에너지 쪽으로 곧장 몸을 틀었다.

세 사람은 간신히 살아 있었다.

지윤을 보호하기 어려워 그를 안은 세진은 보현의 등 뒤에서 그의 지지대가 된 채 버티고 있었다. 지윤은 세진의 품에 안긴 채 팔을 어깨 너머로 뻗어 보현을 회복시키는 데 전념했고 보현은 방벽을 최소한의 크기로 줄인 채 근접한 괴물들의 급소를 공격했다. 방벽의 형태는 가시 달린 갑주형이었고, 들러붙는 놈들은 오히려 그 공격으로 자신을 상하게 했다. 그러나 밀어붙이는 수가 너무 많고, 보현의 얼굴은 지나치게 창백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지호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소리쳤다.

“반장님, 저 보호할 수 있죠?”

“안 돼, 여기 깔린 게 안 느껴지나?”

머리를 정으로 쪼개는 것 같은 두통은 진작부터 지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하찮은 통증 때문에 여기서 보현을 잃는다면 지호는 평생 후회할 것이다.

“믿을게요!”

김 반장은 욕설과 함께 지호의 등짝을 쳤다. 짜증에 가까운 동작이지만 그것만으로 두통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다. 아래가 너무 위험해 두 사람을 데려갈 수 없다고 판단한 지호는 근처 삼 층짜리 건물 옥상에 둘을 내려놓곤 빠르게 괴물들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괴성도, 소란도 없는 고요한 죽음의 행렬들. 이놈들 역시 조종당하고 있을까? 지호는 자기 몸 주변에 방벽을 휘감은 채 그대로 보이는 것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소민이 보기에 그것은 사람보다는 다른 것에 가까워 보였다.

김 반장은 먼 거리에서도 지호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었기에 두 사람 등 뒤로 접근하는 무언가를 먼저 알아챈 건 소민이었다.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린 소민은 그들의 옆에서 일행인 양 선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도플갱어를 발견하곤 기겁했다.

“언제 여길!”

그는 괴물들의 무자비한 사신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듯했다. 소민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도플갱어는 유쾌하게 말했다.

“역시 잘 골랐지.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 자들이 이동 능력을 얻곤 해. 하지만 헌터들은 언제나 끝까지 도망칠 줄은 모르는 자들이야. 결국에는 돌아온다니까.”

지호가 들었다면 그것이 도훈 안에 있는 무수한 자신 중 하나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려움에 물러날 곳을 찾는 소민과 지호를 위해 움직여서는 안 되는 김 반장뿐이었다.

조금 늦게 시선을 돌리며 도플갱어가 싱긋 웃었다.

“저 세 사람을 구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떠나면 곤란하거든. 내게 인질이 필요하다는 뜻이야. 누구를 잡아 두고 싶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

“지, 지호 씨가 너를 얼마나 신뢰했는데.”

소민은 덜덜 떨면서도 김 반장을 지키려고 그의 앞에 섰다. 체격 차이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모양새지만, 전투에 한해서는 소민이 김 반장보다는 눈곱만큼은 나을 터였다. 도플갱어는 너털웃음을 터뜨린 후에 고개를 기울였다.

“알아. 그래서 내가 지호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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