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지호가 상황을 파악한 뒤 온갖 괴물들을 뿌리쳐 가며 그들을 향해 날아오기 시작할 때로부터 조금 전, 최세진 헌터 팀의 다섯 사람은 꼬물거리며 주변을 수색하는 마름모꼴 괴물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느릿하게 수색을 진행했다.
놈들은 묘하게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촉수로 주변을 더듬어 가며 움직였고, 자기들끼리 부딪치거나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훨씬 잦았다. 거기 휘말린 사람들은 대단히 운이 없거나 비명을 숨기지 못했거나 숨은 장소를 하필 놈들이 수색하여 잘못 걸린 자들이다. 한번 쓰러진 자들은 몇 번 건드려 본 뒤 움직이지 않으니 사물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하여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고, 거기 늘어진 이들을 소민이 아파트 단지로 옮겨다 두고 오느라 일행의 움직임이 빠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화도 메시지로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속도가 더뎠다. 다섯 사람이 들어간 대화방이 임시 개설되고, 제일 바쁜 소민을 제외한 네 사람은 특이사항이 보일 때마다 그 채팅창에 메시지를 적었다.
[신다은 : 남동구청 쪽이 깨끗했던 게 신경 쓰이네요. 우리한테야 균열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지만 괴물들 처지에선 그냥 멀쩡히 있던 장소가 갑자기 다른 세계와 합쳐진 곳으로 변하는 거 아닐까요?]
[장지윤 : 첨부터 균열 범위가 아니어서 사람들이 걍 대피 완료한 것 같은데여.]
[최세진 : 그것도 그런데, 이놈들 숫자가 점점 줄어요.]
[임보현 : 괴물들끼리의 충돌이 거의 없어. 제일 이상한 부분이야. 이 시기에 영역 다툼을 하지 않는 것들이라니…….]
소민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숨어 있는 상황. 정찰하면 할수록 분위기만 기묘하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감지 파장으로 몇 차례 이곳을 훑은 다은은 얼굴을 구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신다은 : 사방이 괴물인데,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들은 없어요. 제 파장에 희미하게 잡히는 것들이 저 이상한 정신계 괴물들인데 그것들이 다른 괴물에게 들러붙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는 서로 싸우질 않아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임보현 : 놈들이 다른 괴물들을 조종하고 있을 확률이 있겠군.]
보현은 냉정하게 판단하며 다은이 지도에 괴물들의 위치를 표기하는 것을 빤히 응시했다. 괴물의 분포가 기묘하다. 특정 거리를 중심으로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고정된 건 정상이 아니었다.
[최세진 : 저 하얀 네모들끼리 특수한 신호로 의사소통하는 것 같은데 해석할 수가 없군요.]
[임보현 : 고등한 객체들이 사용하는 언어라기보다는 모스 부호에 가까운 느낌이다. 길었다가 짧았다가를 반복해. 아니지, 초음파?]
[최소민 : 아까 위치에 그대로 계신가요?]
[장지윤 : 넹, 복귀하시믄 다시 출발할 듯여.]
소민이 복귀하자 일행은 곧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소음이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는 괴물들 때문에 나중에는 거의 기는 것과 진배없는 속도로 움직이게 됐으나 덕분에 괴물이 다른 괴물을 지배하며 조종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녹화할 수 있게 됐다. 왜 자기 카메라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며 투덜대던 다은은 세진의 카메라는 멀쩡해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장지윤 : 오디세이 팀 촬영 있던 거져? 지호 다음 게스트로 나올 거란 예고 봤음여.]
[최세진 : 게릴라 촬영이 있어서 깜짝 방문했던 건데, 균열까지 저희를 깜짝 놀라게 해 줄 줄은 몰랐죠.]
보현은 다은의 카메라가 부서져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균열이 열리던 순간을 보지 못했단 건 이상한 일이며, 지호와 김 반장이 그들을 ‘깨웠던’ 순간을 상기하면 이상함은 몇 배로 커진다. 당시 깨어 있던 것은 지호와 김 반장, 그리고 그들이 정신을 잃은 이후에 도착한 나머지 세 사람의 헌터들뿐이다.
정지 신호. 보현이 주먹을 들어 올리자 네 사람이 우뚝 멈추었다. 세진과 보현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정신계 능력자들에게만 잡히는 희미한 감각.
괴물들을 조종하는 모종의 존재가 있다. 그것도 정신 지배와 관련된 능력을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놈이.
[임보현 : 최소민 헌터는 상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신다은이 메인 방벽을 맡아. 장지윤이 보조하도록. 최세진, 앞으로 나와라.]
부근이 고요하다. 보현의 능력으로 방벽 내부의 헌터들을 보호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들도 금방 바깥의 괴물들과 비슷한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바닥에 고인 흰 액체가 섬뜩했다.
특유의 감으로 보현은 그것을 밟지 않도록 지시하며 방벽으로 그것들 사이를 항해하듯 걸어왔다. 좌우로 밀려났던 흰 액체들은 기분 나쁘게 끈적이며 방벽 부근에 붙었다가 느리게 떨어지기를 반복했기에 헌터들이 이동해 온 자리 뒤로 달팽이의 것과 반대되는 흔적이 남았다. 곧 부근에서 밀려든 액체로 메워지는 흔적이다.
[최세진 : 이대로 진입합니까? 다른 헌터들에게 상황을 알리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임보현 : 타이밍이란 게 있다. 지금 괴물들이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일 확률도 있고. 지금 괴물들을 지배하는 개체가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확인하는 중일 수도 있고, 혹은 저렇게 괴물들을 조종하는 와중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놈일 수도 있지. 어느 쪽이건 일단 확인부터 하겠다. 이동 능력자가 있으니 퇴로는 확보된 상태야. 움직인다.]
보현의 메시지가 끝난 순간이었다. 찰박, 찰박. 누군가가 수상쩍은 흰 액체를 밟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저것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보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가오는 건 사람처럼 보였다.
익숙한 복장이다. 신형 전투복. 날렵하고 경쾌하기까지 한 걸음걸이. 공원 초입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 어떤 헌터였다.
혹은 헌터처럼 보이는 무엇이던가.
세진 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에게서 발신되는 신호의 이름이 지호의 것이었던 까닭이다.
[장지윤 : 뭐임? 이거 오류 난 듯?]
[최소민 : 남자 같은데요?]
두 4세대 헌터가 태연한 것에 반해 다은과 세진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 무섭게 전투태세를 갖췄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보현이 그들을 흘깃 돌아보곤 상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지. 소속과 이름을 밝혀라.”
내내 메시지로만 소통해 왔기에 보현이 입을 여는 순간 다른 헌터들 역시 비슷하게 움찔했다. 괴물이 움직이는 일은 없다. 근처를 바르작거리며 희생양을 찾아 돌아다니던 마름모꼴의 괴물들은 신원 미상의 헌터가 나타나기 직전부터 골목으로 그림자 속으로 건물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챈 보현은 구태여 소리 죽이는 헛된 노력으로 힘을 빼지 않았다.
걸음을 멈춘 헌터는 손에 들고 있던 태양열 집광판을 접어 허벅지 옆 주머니에 수납했다. 그 움직임이 여유롭기까지 해, 보현은 미묘한 인상을 받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까닭이다. 그럴싸하게 생겨서 그런가? 옛 파트너를 자주 본 탓에 눈이 높아진 보현은 모두와 같은 평가는 내리지 않은 채 재차 소리쳤다.
“소속을 밝히라고 했을 텐데.”
“소속?”
“헌터가 맞긴 하나?”
“알면서 묻는구나? 과연 그 헌터로군.”
보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대가 자신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던 까닭이다. 저런 얄미운 놈은 모르는데, 하고 생각했던 보현은 곁의 팀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놈이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까?”
“이지호 헌터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괴물에게 당했고, 놈이 균열 너머를 빙 돌아 우리에게 온 게 아니라면 그 추측이 맞겠죠.”
세진의 날 선 발언에 소민과 지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은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도플갱어, 어떻게 여기!”
“여왕이 균열을 열었잖아.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라는 의미지. 우리 지호는 이쪽으론 안 왔나?”
“이지호 헌터에게 무슨 볼일이지?”
“그야 무사한지 궁금하잖아. 연락할 수단도 없고. 이거 충전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문이 열린 김에 새 충전기도 좀 찾으면 좋겠군.”
헌터들이 잔뜩 곤두서 있는 것에 반해 도플갱어의 반응은 대단히 평온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다. 그러나 세진과 보현은 그에게서 뻗어 나온 무수한 실들을 보고 있었다. 다른 괴물들을 꼭두각시로 만든 힘의 근원이다. 보현의 눈이 아무것도 아닌 허공이 아니라 정확히 자신의 힘을 따라 하늘을 훑자 도플갱어는 빙긋 웃었다.
“이게 보이나? 걱정하지 마. 너희를 공격하지 않도록 명령했잖아. 덕분에 편하게 왔을 텐데?”
“그게 무슨……. 도플갱어에게 광범위 정신 지배 능력이 있단 말은 들은 적도 없는데.”
“그래? 하지만 나에 관해 정확히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쪽이 많을 텐데? 당연한 말을 하는군.”
도플갱어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동시에 다섯 헌터가 한꺼번에 물러난다.
“한 걸음밖에 안 갔는데 대여섯 걸음을 도망치면 곤란하잖아. 거리가 계속 벌어지기만 한다고.”
“무슨 속셈이냐?”
“속셈이라니.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는구나? 저 밖에선 말이지, 대화의 수단이란 것이 오로지 먹고 먹히는 것뿐이거든. 이 어찌나 폭력적이고 야만스러운 일이야? 서로를 보호하고 구하려고 살아 왔던 나들에겐 너무도 가혹한 삶이지.”
그 자리에 도플갱어에 관한 보고를 읽지 않은 자는 없었다. 무수한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아무 짓 안 한 것처럼 서 있는 모습이 괘씸했기에 세진은 이를 뿌득 갈았다.
“네가 먹은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았겠지만, 너는 아니야. 너는 괴물일 뿐이다. 같잖게 사람 흉내 내려고 하지 마!”
“그런가? 우리 지호는 이런 나를 꽤 좋아했는데. 사람이라고 말해 줬어.”
“헛소리 집어치워. 얼마나 많은 사람을 먹었나? 균열로 삼켜진 실종자들에게까지 손댄 건 아니겠지?”
그 말 때문에 보현은 세진의 공격적인 반응의 원인을 알았다. 본디 괴물에게 호의적인 헌터는 없지만, 특히나 그들을 적대하면서도 괴물 대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자들이 있다. 세진과 같은 실종자 가족들.
도플갱어는 대답 없이 손을 둥글게 굴리는 모양으로 펼쳤다. 보현은 그 손목에서 뻗어 나와 있는 무수한 실타래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퀸 패러사이트와 같은 코드 레드 개체다. 놈과 달리 사람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그보다 훨씬 위험한 놈일 수 있었다.
“너희 중 하나로 변하면 좋아해 줄까?”
도훈이 펼쳤던 손을 안쪽으로 확 당겼다. 동시에 그가 펼쳐 놓았던 무수한 실들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부근에 숨어 있던 괴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보현의 전화가 울린다. 당연히 받을 새가 있을 리 없었다.
마름모꼴 괴물이 이마 혹은 목, 적어도 상체 부근에 붙어 있는 괴물들이 다리를 질질 끌며 다가왔다. 하반신에 붙어 있는 종류도 있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모양새가 아니다. 질겁한 소민이 곧장 이동하려 했으나 머리 위로 가루처럼 뿌려지는 트랩에 일순간 통제력을 잃었다. 정신계 공격을 이형 에너지 방벽으로 막을 수 있었다면 그 많은 헌터들이 퀸 패러사이트에게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갈 곳 잃은 힘이 헌터들이 아닌 괴물들을 휘감았다.
“이 빌어먹을!”
소민의 힘이 엉뚱한 곳을 감쌌다는 것을 깨달은 다은이 황급히 그 틈에 뛰어들었다. 괴물 몇과 소민, 그리고 다은의 모습이 사라진다. 보현은 급히 방벽을 펼치며 고개를 돌렸다. 허옇게 질린 지윤과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하죠?”
대답은 괴물의 포효로 돌아왔다. 보현은 지윤을 붙잡아 자기 등 뒤로 당기며 방벽을 최대한의 두께로 펼쳤다. 열세에 몰린 채로 전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