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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04화 (205/260)

204화

밖에서 괴물들이 사납게 짖어 대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오래 이어지는 소리는 아니었다. 일부가 부딪쳐 싸우고는 금세 조용해진다. 근방이 아마 승환의 영역이 되었을 것이다. 괴물들끼리 싸우느라 난리가 난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괴물들이 천천히 생겨나는 일반 균열과 달리 급성이나 악성 균열은 그 피해가 너무 크다. 소민에게 위치 좌표를 보낸 지호는 허공에 나타나는 이동 능력자에게 현 상황을 전했다.

“바닥에 깔린 것들에 닿지 말아요.”

“그거 말인데, 임보현 헌터님이 전해 달래요. 그 마름모 형태의 정신계 괴물들이 어디에선가 생산되는 것 같다고.”

지호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김 반장이 신경질적으로 욕설을 뱉었다.

“젠장,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여태까지 산란형 괴물은 나타난 적이 없어. 놈들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서로의 능력을 취사선택하고 흡수하며 변한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저 괴상한 괴물들이 계속 나타날 리가 없지 않아요?”

소민의 추측을 들은 지호는 바르르 떨었다. 어떤 강력하던 정신계 괴물이 자신을 무수히 많이 쪼개어 갈라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을 산란이라 부르는 것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다.

“짐작 가는 게 있어요. 산란형 괴물 같은 건 아녜요. 아마 하나 씨가 더 잘 알 거예요. 놈들은 아마 밖으로 나가려고 이 균열을 연 모양이군요. 서두릅시다. 모두에게 알려야 해요.”

소민의 에너지가 네 사람 모두를 감쌌다. 이동하기 직전 지호의 눈이 바깥을 훑었다. 승환은 거기에 장식처럼 서 있었다.

형제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묻는 것이 두려워 지호는 거기에서 눈을 돌렸다. 곧 아파트 단지 입구로 이동해 온 일행은 방벽에 몸을 부딪치는 인영들을 보고 깜짝 놀라 물러났다. 좀비처럼 몸을 늘어뜨린 채 머리만 붙들려 움직이는 것 같은 모양새의 사람들이 거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현관 입구에는 쓰러진 자들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는데 등이나 가슴 언저리가 느릿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죽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저건 대체 뭐죠?”

“저 이상한 괴물에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방벽을 좀 두드리다가 픽 쓰러지던데요. 괴물에게 조종당할 때는 뚫고 들어올 수 없는데 놈이 조종하던 사람을 놓아주면 별 저항 없이 들어올 수 있더라고요.”

입구를 지키던 임시 자경단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지호는 설명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멋쩍어하며 물러나 뒤에 선 사람에게 이지호 헌터랑 이야기했다고 속삭이며 즐거워했다. 다 들리는 것을 모른 척하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김 반장은 방벽에서 멀찍이 떨어진 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분위기가 썩 좋지 않군.”

“저런 것들이 입구를 막고 있으니까 당연하긴 해요. 근데 저 상태면 이쪽으로 누가 대피해 오는 건 무리겠네요.”

“오려다 괴물한테 잡혀 꼭두각시나 안 되면 다행이겠다.”

또 한 사람이 마름모꼴 괴물의 촉수 같은 것에서 해방되어 안쪽으로 풀썩 쓰러졌다. 기절한 자들이 제풀에 깨어나는 일은 아직 없었던 모양이고, 여기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가까이 갔다가 혹시 모를 위협에 휘말리는 일은 피하고 싶었는지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진 상태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김 반장은 놈들의 힘을 가늠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닌 놈들이지만 수가 많아서 귀찮을 뿐이야. 저기 저 사람들도 좀 끌고 가려다 놓치는 걸 봐라. 최세진 헌터가 놈에 관해 이야기한 게 좀 있나?”

“안 그래도 김 반장님 기다린다고 했어요. 정신계 능력자들끼리 의견 좀 내 주세요. 저것들 수가 많아지니까 영 꺼림칙해서.”

소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하더니 세진이 기다리는 11층으로 김 반장을 안내했다. 지호와 승찬을 따로 두려는 행동을 본 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구조자 케어도 헌터의 중요한 임무잖아요.”

승찬에 관해 여기서 제일 많은 걸 알고 있을 사람은 당연히 지호였다. 그를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소민으로서는 당연한 조처를 했을 터.

승찬과 둘이 남은 지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언제까지고 외면해도 괜찮은 문제였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에게 이런 재앙 같은 현실이 닥쳐오지 않았다면 그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러나 슬픔에 진흙처럼 허물어진 친구에겐 그런 불행이 도래했다. 지호는 줄 끊어진 인형처럼 그를 따라 걸어오던 승찬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이야기 좀 할까요, 우리?”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질문형으로 물음을 던졌기에 기계적으로 응답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지호는 단지 한쪽에 조성된 공원 옆 벤치에 그를 앉혔다.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시선과 파르르 떨리는 손. 평소답지 않게 움츠린 어깨가 안쓰럽다. 충격일 수밖에 없다. 동생이 죽었을 거라고 내내 믿었던 사람이니까. 승환이 예전에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아마 살아 있었는데 왜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았느냔 이야기라도 들은 게 아닐까 싶었다.

지호는 그가 패닉에서 벗어나기를 오래 기다려 줄 수는 없어 묵묵히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균열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던 건 엄청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였어요. 그 애는 절 구해 줬어요. 그리고 쉴 곳을 마련해 주고, 다른 괴물을 물리쳐 줬죠. 그 삭막한 괴물들의 세계에도 아저씨네 집이랑 비슷한 건물이 남아 있었어요. 승환이는 거기 살고 있었고요. 한 번 이야기했었죠.”

그 건물 302호. 문명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차디찬 공간을 떠올렸다. 거기에서 홀로 남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냉장고를 본래 용도 비슷하게 쓰려고 하던 승환의 행동도.

“저를 구해 준 승환이는 다른 헌터들도 그곳을 많이 다녀갔었다고 했어요. 늘 다른 사람들을 도와준 것 같았죠. 그리고 거기에 혼자 남아 있는 이유가, 거기를 지나가려는 무시무시한 괴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알려 줬어요. 제가 보고했던 것들 기억나죠? 괴물로 변한 실종자들…….”

협회 본부에서 지호를 보조해 주었던 승찬이다. 당시의 대화를 더듬어 떠올렸는지 그의 입이 느릿하게 열렸다.

“거기에 괴물이 하나 있었다고 했죠. 그게 제 동생이었군요.”

체념한 어조. 평소보다 낮은 음성. 지호는 풀잎처럼 시든 승찬을 마주 볼 자신이 없어 그와 나란히 앉았다.

“그 이후에도 또 만났어요. 저를 또 구해 줬죠. 항상 저를 도와줬어요. 비록 괴물의 외형을 가졌다곤 해도, 저는 그 애를 괴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요. 괴물이 된 실종자들이 사람인지 괴물인지, 그런 복잡한 고민은 다른 사람들에게 넘기라고 했었죠? 아저씨 동생도 그렇고 저를 도와주는 또 다른 괴물 친구도 있어요. 저는 그 사람들을 다른 것들과 똑같이 여기지 못해요.”

정돈되지 않아 두서없이 흘러나오는 지호의 말을 들으며 묵묵히 바닥을 내려다보던 승찬은 갑자기 물었다.

“그 애가 사람 같던가요?”

“저를 낯선 괴물 앞에 버려두고 도망친 헌터들보다야 훨씬 인간답죠.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어요.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요. 저는 그 답을 찾을 때까지는 저에게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괴물들이라도 사람으로 여기기로 했어요. 그건 노력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되는 거니까요.”

준우의 경우가 조금 예외가 되겠지만 그걸 승찬이 알 필요는 없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승찬은 긴 한숨과 함께 천천히 등을 바로 세웠다. 서글픈 시선이 여전히 방벽 밖에서 버둥거리는 꼭두각시들에게로 향했다.

“지호 씨와 그 대화를 나눈 후로 저도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변한 자들을 사람이라고 불러도 될까, 하는 것들요. 균열에 가족 잃은 자들을 많이 보아 온 저로선 사람이었으면 좋겠단 의견이 지배적인 편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한쪽으로 기울게 되었네요.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저를 원망한다고 하더라도…….”

“따로 만나게 되면 저도 한번 이야길 해 볼게요. 이번 균열이 그리 넓지 않으니까 아마 금방 마주칠 거예요.”

“저런 것들처럼 조종당하거나 타의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그렇죠?”

“그럼요. 그 애는 자의로 저를 구해 줬어요. 다른 헌터들도요.”

승찬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착한 녀석이었어요. 길에 사는 동물들이 좀 다친 것 같으면 안절부절못하며 병원에 데려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죠.”

“겉모습은 변해도 속은 변하지 않았네요.”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걸렸다. 호출 신호가 울렸다.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이 끝난 모양이다. 지호는 자리를 떠나면서도 몇 번이나 그를 돌아보았다.

임시 본부로 삼은 거실은 꽤 지저분해진 상태였다. 지호는 한쪽에서 도우미 이모님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쓰럽게 떨고 있다가 지호를 발견한 그는 황급히 다가와 수첩을 펼쳤다.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이런 재앙에까지 휘말렸다니.

휘갈긴 글씨가 불안한 기분을 대변했다. 지호는 그 날아가는 글에서 염려와 걱정을 읽었다.

<큰일 겪고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지호는 당혹을 숨기려고 애썼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시는 거냐고 되물을 뻔했다. 엄마를 닮은 사람들은 왜 이토록 선량한가.

“저는 멀쩡해요. 헌터잖아요. 제가 여기 있는 분들을 지켜 드려야죠. 이모님은 괜찮으세요? 다친 덴 없죠?”

<다른 분들이 구해 주셨어요.>

지호는 빙긋 웃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는 사람의 죽음을 전해 듣는 것에 익숙해지고 싶은 이는 아무도 없는 법이었으니.

영화를 보려고 마련한 빔 프로젝터를 벽면에 쏘아 둔 상태라 장식 없던 벽은 마치 그러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변모한 것처럼 보였다. 몇 개 없던 액자들마저 가지런히 한쪽 편에 쌓여 있다. 신발을 신고 벗을 새가 없어 무작정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는지 바닥이 신발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지호는 도우미 이모님의 시선이 그런 곳들을 향하며 괴로운 기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고 약간 안도했다.

생존을 당연시하며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란 때때로 타인에게 힘이 되는 법이다. 헌터들이나 각성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엔 그다지 두려운 기색이 드러나지 않았다. 하물며 민간인들까지도 그랬다.

“어, 지호 씨. 잠시만.”

보현은 들어온 지호를 보고 나서도 다른 헌터들과 하던 입씨름을 멈추지 않았다. 대충 들어 보니 어느 방향에서 괴물들 간의 교전이 벌어졌는데 그게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거길 덮치는 과정에서 사고가 있어 몇 사람이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 보현은 그들을 병원으로 보내기를 요구했으나 다친 자들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피차 목소리가 커지더니 결국 보현의 손이 탁자를 꽝 두드렸다.

“다친 상태로 피 흘리다 뒈질 생각이 아니면 왜 말을 안 듣는 겁니까!”

“괴물이 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새된 음성이 실내를 내달렸다. 각자의 대화로 나직이 소란스럽던 이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보현은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고, 꺼낸 말을 주워 담지 못한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지호 쪽을 손가락질했다.

“균열에서 잘못 치료하면 저렇게 되는 거 아닙니까? 나는 죽어도 사람인 채로 죽고 싶지,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다들 그렇단 말입니다. 치료기를 약간 정도만 사용하게 해 줘요. 그쪽에서 과도한 에너지를 퍼부었다가 괴물이라도 되면 어떻게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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