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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203화 (204/260)

203화

“안 닿으면 되는 거잖아요. 날아서 가겠어요.”

어울리지 않게 고집부리는 지호를 물끄러미 응시한 김 반장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지호가 초조해할 만큼 친한 사람이 몇 없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그는 언짢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혹시 모르니 근처 상가에 들어가서 대기하도록. 만약의 경우 습격이 있을 시 대원이 방벽을 치고 이주리에게 업혀라. 그리고 도망갈 수 있는 위치까지 튀어. 다행히 먼 곳이 아니니 금방 복귀할 수 있을 거다.”

혹여 발바닥에 그걸 묻히고 갔다가 무슨 영향을 끼칠지 몰라 김 반장 역시 지호와 함께 날아가는 데 동의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였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돌려 보면 농구공만 한 크기의 괴물들이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소음이 먹힌 거리. 무엇이 숨어 있어 이토록 조용하단 말인가? 지호는 바짝 긴장한 채 바닥에서 십여 센티미터가량 뜬 상태를 유지하며 앞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 소리를 제외하면 안정기의 균열과 다를 바 없이 고요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발소리가 났다.

일반적인 소리보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걸음을 뗄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바닥의 흰 액체에 영향받는 개체가 아닌 모양이다. 평범한 사람일 리는 없으니 남은 결과는 한 가지뿐. 지호는 근처에 주차된 차량 위에 김 반장을 내려놓으며 방벽을 펼쳤다. 만약의 경우 그를 데리고 도망칠 곳은 허공뿐이다. 다행히 근처를 날아다니는 것들도 자취를 감춘 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느린 속도로 펼친 감지 파장에 드디어 무언가가 닿았다. 거기에 닿은 생김새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묘하게 익숙한 생김새에 지호는 당황하여 멈추었다. 그는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어떻게?”

“왜?”

지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김 반장을 돌아보았다.

“아는……. 아는 괴물인 것 같아요.”

“도플갱어 말이냐?”

“아뇨, 실은 그게.”

“괴물이 된 생존자 말인가?”

지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망가지지 않은 주택가를 돌아본 지호는 여기가 폐허가 되거나 어딘가와 좀 중첩되고 뒤섞이면 그때 구슬 비 속에서 보았던 어떤 건물과 유사한 풍경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주소, 그리고 이 정신계 작용을 일으키는 물질 같은 것들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지호는 가까스로 긴장을 풀며 움츠리고 있던 몸을 바로 했다. 골목길에서 걸어 나온 건 지호가 아는 괴물이 맞았다. 김 반장은 짧게 숨을 멈추었다가 그의 동료 눈치를 살폈다. 정신 계통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이 뻔히 보이는 괴물이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그들을 발견한 괴물은 곧장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속도는 변하지 않는다. 시선만 고정되어 있었으나 김 반장이 위축되는 건 당연했다. 몇 미터를 남긴 거리에서 그가 멈춘다. 지호는 익숙하게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꼬리가 바닥의 끈적이는 액체에서 떨어지며 묘한 소리를 냈다.

“안녕, 또 보네.”

지호와 김 반장을 번갈아 본 승환은 짧게 응답하곤 그들의 뒤를 확인했다. 다른 헌터가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지호는 허공에 살짝 뜬 상태라 승환과 눈높이가 비슷해진 상태였고, 그래서 그의 언짢은 기색을 평소보다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여기 있을 줄 몰랐어. 무슨 일이라도 있어? 여기 이 하얀 것들은 뭐야?”

“이게 기화되면 비가 되어서 내리는 거야. 나는 옛날부터 이거랑 같이 있어서 익숙해.”

“말이 더 늘었네.”

“다른 거랑 대화할 일이 많았어.”

질병 같은 연기가 드물게 피어오르는 경우는 있었으나 눈으로 보고 피할 수도 있었으며 김 반장의 경고로 멈추어야 할 때도 있었다. 여기서 인사나 나누라고 소개하기엔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았기에 지호는 우선 질문부터 던졌다.

“어쩌다 넘어왔어? 악성 균열인데.”

“그게 뭔데?”

승환은 도훈과 달리 지호보다 아는 것이 없는 아이였다. 지호는 그가 넘어올 수 있는 균열 중 하나라고 대충 설명한 다음 승환의 뒤쪽을 살폈다. 승찬의 집이 바로 저 뒤쪽이었다.

“근처에 괴물들이 하나도 없더라. 네가 처리했어?”

“어. 늘 하던 일이잖아.”

“너희 집도 아닌데 여기엔 어쩐 일이야?”

별것 아닌 질문이었으나 승환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일그러지는 괴물의 얼굴에 김 반장은 긴장하여 물러났다. 아이는 꼬리를 바짝 세우며 으르렁거렸다.

“우리 집이야.”

“뭐?”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지호는 당황했다. 사정 모르는 김 반장만 애처롭게 지호의 등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지호의 핸드폰이 다시 재차 울렸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지호는 노기 띤 승환을 똑바로 마주 보며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수화기 너머에선 떨리는 숨소리가 먼저 들렸다. 지호가 바로 받을 줄 몰랐던 것 같았다. 약간의 침묵 후에 승찬이 가까스로 목소리를 냈다.

-지호 씨.

“네, 저예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혹시 어디 다쳤어요?”

-지호 씨, 저 좀 데리러 와 줄래요?

“다 왔어요. 아저씨네 집 앞이에요. 집에 있죠? 제가 지금 올라갈게요.”

-이상한 말처럼 들릴 거 아는데, 오면서 다른 괴물들을 죽이지 않을 수는 없을까요? 그러니까, 그게, 분명 말도 안 되는 이야기겠지만…….

불편을 드러내며 곤두서 있던 꼬리가 바닥을 치며 흰 액체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호는 그걸 피하며 당혹스러운 눈으로 승환을 바라보았다. 이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어쩌면 두 사람이 벌써…….

“어린 헌터, 우리 형 아는구나?”

승환은 건조하게 말을 읊으며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괴물의 복잡한 표정을 읽어 내기에 지호는 아직 서툴렀다. 그는 고갯짓으로 안쪽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 형이 나를 무서워해.”

“승환아…….”

“그럴 수밖에 없지. 난 뭘 기대했던 걸까?”

아이는 침묵했다. 균열 소멸기에 도심이 그 폭풍에 휘말려 넘어가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괴물들이 이쪽으로 넘어올 때는 어떤 방식으로 오게 되는 걸까. 승환은 어떻게 여기에 와 있었고, 본디 자기 집이었던 곳을 똑바로 찾을 수 있었을까.

지호는 여전히 이형 에너지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세계에 관해서라면 아는 것은 더더욱 적어진다. 그는 모르는 것에 관해 추측하려고 무의미한 머리를 굴리는 대신 김 반장을 짐짝처럼 어깨에 짊어졌다. 그는 입이나 꾹 다문 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는지 냉큼 지호에게 올라탔다.

“어린애 같군.”

“맞아요. 많이 어릴 때 균열에 휘말렸대요.”

지호는 금방 건물 입구에 도착했다. 누군가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간 까닭에 1층 현관엔 깨진 유리 조각이 잔뜩 널려 있었다. 계단에 김 반장을 내려 준 지호는 올라가기에 앞서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해 둬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 애는 제가 균열에 처음 휘말렸을 때 저를 도와줬던 괴물이에요. 처음부터 저한테 호의적이었어요. 우리와 달리 죽으면서 힘을 얻은 케이스가 아닐 거예요. 여기에 오래 생존해 있으면서 이형 에너지로 인해 변화된 것 같더라고요.”

“형 운운하는 것도 그렇고 아까 이야기도 그렇고……. 구조대원 지승찬이 저 괴물의 형인가?”

“둘 다 서로가 죽은 줄 알았던 사이예요.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승찬에게 동생의 생존을 미리 이야기했어야 했을까.

지호는 그것 역시도 해답이 아니었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온갖 일이 터지며 승찬과 따로 대화할 시간이 없단 생각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지호가 내내 회피하고 싶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준우와 보현의 조우 역시 그럴 것이다.

입이 썼다. 지호는 올라가자며 먼저 계단을 밟았다. 삼 층에 들어서자 현관이 다 뜯긴 입구가 그들을 반겼다. 다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 지호는 화들짝 놀라 문을 옆으로 밀어 치우며 그의 집에 뛰어들었다.

“아저씨!”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현관이 그러하듯 사방이 부서지고 깨진 상태다. 승찬은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몸을 떨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지호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놀라움에서 염려, 그리고 슬픔으로 뒤덮인다. 승찬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금방 와 줬네요. 지호 씨네 집도 균열에 휘말렸을 것 같았어요.”

그의 품에 들려 있는 액자를 본 지호는 상황을 추측하려 애썼다. 뒤늦게 따라 들어오려던 김 반장은 승찬의 상태를 보곤 혀를 차며 현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지호는 조심스럽게 승찬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아예 다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의 이마 부근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으니.

“안 다쳤다고 했잖아요.”

지호는 저도 모르게 딱딱하게 말하며 그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녹색 빛이 느릿하게 상처에 와 닿는 동안에도 승찬은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치료 계열 능력엔 소질이 없었으나 다행히 의학적 지식이 따로 필요한 상처가 아니었던 까닭에 승찬의 이마는 천천히 아물었다. 느릿하게 손을 들어 지호의 왼손을 잡아 내린 승찬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동생이 살아 있었어요.”

그의 떨리는 시선을 마주하자 지호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도리어 입을 다물게 되었다. 승찬은 흔들리는 시선을 어찌할 바 모르며 품에 안고 있던 액자를 보여 주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앳된 승찬과 그를 쏙 빼닮은 동생이 각기 장난기 어린 자세로 사진에 찍혀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런 시절에서 무자비하게 단절되었던 몇 년을 보내며 승찬은 동생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렸었다.

그리고 그것은 괴물이 되어 돌아온 동생을 본 후에는 더더욱 심해졌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저씨 잘못이 아니었잖아요. 그건 사고였어요.”

“괴물들 득실거리는 그 무서운 곳에서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저는 마주치자마자 걜 공격했어요. 괴물이라고 생각했다고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외형이다. 지호 역시 처음 봤을 땐 단단히 겁을 먹었었다. 그러나 승찬에게는 들리지 않는 위로일 것이다.

지호는 장갑을 이로 깨물어 벗으며 그에게 잡힌 손 위에 오른손을 얹었다. 괴물의 것이 된 손이다.

“제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슬퍼하던 승찬은 당혹을 숨기지 못하며 지호의 얼굴과 그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사고가 멈춘 것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던 그를 본 지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 저도 아마 저렇게 변할지 몰라요. 괴물의 모습이 되고 나면 아저씨에게 저는 뭐가 될까요? 한때 친구였던 괴물? 아니면, 아무튼 이제는 괴물일 뿐인 무엇?”

그는 제 손을 붙잡은 지호의 양손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짧은 만남일 수 있는 시간. 지호는 그가 후회와 두려움으로 이 시간을 흘려보낸 뒤에 후회하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승환이는 다른 괴물에게 먹힌 것도 아니고, 죽을 만큼 다친 것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떤 특정 환경에 노출되어 변했고, 그 이후에는 그저 생존했겠죠.”

“저 애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무슨 대답이 정답일까. 지호는 그의 눈 앞에서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반신반의했어요.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했고요. 둘 다 서로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비슷한 다른 사람들을 가족으로 두었을 거라고도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아니었던 거죠.”

승찬은 침묵했다. 지호는 그의 시선이 두려워 슬그머니 손을 잡아 뺐다.

“다른 사람일 수도 있는데 굳이 이야기해서 아저씨를 심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모습이 저렇게 변해 버린걸요. 이렇게 균열이 열리고 상황이 겹치지 않았다면 영영 모를 수도 있었던 일이에요. 그래서, 어쩌다 보니까. 숨기려고 했다기보다는…….”

지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일어났다. 여기서 변명을 늘어놓을 시간이 없었다. 애석하게도 악성 균열은 여전히 세를 불려 나가고 있을 터. 지호는 한숨과 함께 사과했다.

“퀸 패러사이트가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어요. 아저씨가 여기 있으면 위험할 것 같네요. 저를 미워하셔도 어쩔 수 없겠죠. 우선 살아남고 나서 생각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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