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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91화 (192/260)

191화

당혹스러운 이유였으나 지호는 우선 현재 위치 좌표를 부른 뒤 공간을 확보했다. 소민은 지호 앞에 나타나기 무섭게 지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지호 씨,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알아요?”

“예?”

머릿속으로 온갖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딱히 특별한 일정이 있었다고 들은 건 없었는데. 하다못해 무슨 기념일이나 훈련 일정 잡힌 것도 없다. 지호가 당황해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민의 힘이 지호를 감쌌다.

종종 있는 이동 능력의 미미한 후유증조차 없는 깔끔한 이동. 그간 혹사당한 덕분에 소민의 능력은 꽤 수준급으로 끌어올려진 상태였다. 곧 죽어도 이상치 않을 만큼 몰아붙여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모여 있던 하나와 지윤이 지호를 반겼다. 지호는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뜬금없이 캠핑카가 보였다.

“어, 뭐예요 여기?”

“글램핑 구역인데 하나 빌렸어요. 균열 이후로 이런 휴양지들이 고정된 지역이 아니고 이동식으로 바뀌었잖아요. 이번 달엔 이쪽, 다음 달엔 저쪽 식으로요. 사람들 와글와글 몰려서 균열 열리게 되는 사태를 방지하는 거라나?”

달궈진 숯불 든 바비큐 그릴 위엔 벌써 먹음직하게 익은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하나가 들고 있던 집게로 고기를 뒤집자 갈색으로 잘 익은 고기가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지윤은 손뼉 치며 자리를 권했다.

“완전 적절한 타이밍! 고기 익자마자 도착하게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연락했는데요. 자, 앉아 앉아!”

소민이 어깨를 누른 탓에 엉겁결에 고기 앞에 앉은 지호는 고기 굽기 장인이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솜씨 덕분에 야들야들하게 잘 익은 고기 몇 점을 접시에 받을 수 있었다. 먹어 보니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끝내주는 맛이었다.

“맛있죠? 우리 1차 정산 끝났다구 해서 바루 예약했거든. 이게 균열 닫히고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사람들 안 많아서 자리가 있드라구요. 여기 인기 좋아서 잡기 힘들어.”

고기에 버섯이나 야채, 소시지 같은 것들도 같이 올라가 있었다. 솜씨 좋게 적절하게 익은 정도를 알고 있다며 집게를 놓지 않은 하나 덕분에 지호는 주는 대로 음식을 받아먹으며 갑작스러운 파티에 동참했다. 지호의 컵에 든 건 사이다였지만 나머지 셋의 잔에 든 건 술이었다.

“우리 이렇게 시간 낼 때도 없었잖아요. 솔직히 이번 정산 들어올 때까지 뭔 수로 돈 들어오는 건지도 정확하게 몰랐어. 뭐 생명 수당이니 구조 수당이니 이런 건 주는데 그거는 진짜 푼돈이드라. 지호 씨두 봤어요?”

“네? 근데 그 정산이란 건 뭐예요?”

“뭐야, 아직 안 봤어요?”

지윤은 야채에 고기며 뭐며 잔뜩 올려선 한입에 와앙 집어넣더니 자기 핸드폰을 몇 번 조작해 낯선 화면을 보여 주었다. 지윤의 계좌로 1차 정산금이라는 명목하에 상당한 금액이 들어와 있었다.

“어……. 꽤 벌었네요?”

“나야 지원 팀이니까 여러분만큼은 못 벌지. 그래두 균열 들어가서 치료받은 분들이 내는 수수료만큼은 분담되는데 이것만으로두 쏠쏠하다구요. 여기서 내가 젤 못 벌어! 균열 경계 팀 강하나 계좌 까!”

“이게 언니랑 맞먹네.”

하나는 집게를 착착 두드리며 지윤이 만족할 때까지 으르렁거려 준 다음 자기 계좌를 짠 보여 주었다. 지윤이 핸드폰을 만질 때 이미 같이 열어 놓았던 모양이다. 진짜 지윤의 것보다 훨씬 더 들어온 액수가 보였다. 소민도 수줍게 자기도 이번에 지원 팀이긴 했는데 협조한 팀만큼 분배받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저 진짜 엄청 많이 받았어요. 이동 능력자들 중에 제가 제일 금액이 크던데 다들 아마 지호 씨 때문일 거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진작 확인했을 줄 알고 축하 파티부터 하자구 부른 건데. 우리 일반 균열 출동은 처음이었잖아요. 보통은 일반 균열에서들 돈 벌고 급성 균열에는 진짜 사명감으로 뛰어 들어간다는데 우리는 뭐, 운도 없었지.”

“저 때문이요? 제가 왜요?”

지호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본 소민은 흐뭇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했다.

“이동 능력자들 중에서도 백업 팀하고 치료 계열 능력자들 중에 현장 안 뛰는 사람들, 그러니까 지원 팀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벌겠어요. 현장에서 일하는 헌터들과 협업하는 걸 일정 부분 협조로 쳐서 수수료를 떼 주는 거거든요. 왜, 그 험악한 헌터님이랑 있을 때 저 만났었잖아요.”

하나가 받은 것보다 한 자릿수는 더 있다. 지호는 당혹스러워하며 자기 핸드폰을 켰다. 워낙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와서 하나하나 일일이 확인하지 않은 탓에 몰랐던 것 같다. 거의 확인하지 않았던 은행 계좌를 연 지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이상한 금액이 찍혀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소민이 고기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쏙 빼서 지호의 화면을 확인했다. 거기 찍힌 숫자를 본 소민은 켁, 하며 먹으려던 고기를 도로 뱉었다. 하나가 눈을 부라리며 소중한 고기에 무슨 짓이냐고 일갈하는 사이 지윤은 잽싸게 지호 쪽으로 넘어와 핸드폰을 붙잡았다. 그의 눈이 사정없이 떨렸다.

“아니, 아니 지호 씨. 나한테 치료받으러 들렀어야져. 이, 아니, 이거, 아니…….”

백만, 천만 단위가 아니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지호는 멍청한 얼굴로 세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러고 보니 균열에서 사냥하며 잡은 괴물들을 회수하지 않고 수거 팀에게 연락만 넣었었다.

“어, 제가 기절해 있던 사이 제가 잡은 것들을 갖고 온 모양이에요. 이게 그니까. 어떻게 이렇게 많지?”

“이번에 지호 씨 쪽으로 배정된 수거 팀이 진짜 노다지였다고 난리였담서요. 원래는 자기들 팀끼리 몫 나눌 것도 없다고 어지간하면 무리해서들 일하는데 이번에는 중간에 다른 괴물들이 시체 먹을까 봐 여유 되는 손들 다 불러다가 작업한 모양이던데.”

지윤은 지원 팀답게 뒷이야기를 상세히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호는 자기 통장에 찍힌 숫자 단위를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무슨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금액이 찍혀 있어 기분이 이상했다.

“저 지금 당첨 복권 들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번에 지호 씨가 사냥한 결과라고 들었는데요. 그마저 1차 정산인데? 이거는 거의 상태 안 좋은 것들 빠르게 도매로 넘기고 연구 자료로 나갈 것들 먼저 협회랑 적은 금액으로 딜해서 나온 거로 알고 있어요. 2차 3차 정산도 있을 거라던데.”

소민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지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지호 씨는 내 보물……. 앞으로 다른 놈한테 이동 보조 맡기기 없기…….”

“뭐야! 나한테도 치료받고 가!”

지윤이 그 위에 팔을 겹치며 소민과 지호를 덩달아 끌어안았다. 소시지를 그릴 가운데서 끄트머리로 밀어 내며 하나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나는 내가 원해서 그쪽 팀으로 나간 거 아닌데…….”

“그러고 보니 지호 씨 파트너는 어떻게 됐어요? 그쪽 파트너도 엄청 벌었겠다. 지금 당장 은퇴해도 될 듯.”

임시 파트너로 등록되어 있던 조태양의 얼굴을 두 번째로 떠올린 지호는 떨떠름해졌다. 물론 함께 고생했으니 많이 받아 가는 것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지호는 금액을 정산받을 수 없는, 무늬만 헌터인 이의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며 쓴웃음 지었다.

“어쩐지 각성자 연합 들렀는데 굳이 이 카드 챙겨 가야 한다고 주더라고요. 우리가 번 돈으로 이제 사치스러운 헌터 장비 쇼핑을 시작하면 되는 건가?”

지호가 던진 말을 덥석 문 하나는 시무룩했던 것도 잊고 눈을 빛내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 냈다.

“그거라면 당연히 명동이죠, 명동. 거기 S사 제품들 전시된 건물이 통째로 있는데 그쪽이 새 장비들 제일 먼저 올라오는 동네예요. 혹시 이번에 새로 나온 팔찌형 보조구 봤어요? 신체 계열 아닌 사람들은 진짜 꼭 사야겠더라. 균열에서 몸이 약해지는 걸 방지해 준대요. 근데 무게가 좀 있어서 여러 가지로 힘들겠던데? 신체 계열 능력자들은 쉽게 들 수 있어도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지 않고, 아닌 사람들은 꼭 필요한데 들고 다니기가 어렵고. 좀 기다리면 개량형이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해요.”

지윤은 하나가 쏟아 내는 정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며 질렸단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 언니 완전 오타쿠임.”

“좋은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지원 팀이야 좀 다르겠지만, 이쪽은 진짜 장비 하나로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니까 그러네. 내가 이번 균열에서 밖으로 나온 괴물들이랑 싸울 때 그놈이 갑자기 쪼개져서 약해지지 않았으면 위험하지 않았다고 말 안 했나?”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고서에 올라와 있던 자료이면서 균열을 닫게 한 바로 그 현상이다. 불판에서 고기를 모두 내린 하나는 양은 냄비에 물을 올리며 아래에 놓인 박스에서 부스럭거리며 라면 한 번들을 꺼냈다.

“술 한 잔에 국물 한 숟갈 필요한데 우리가 국물이 없네! 역시 소주엔 라면이야. 돈을 아무리 벌어도 이 맛이 제일일 것 같다니까.”

“오타쿠에 아재라니 캐릭터 너무 과함.”

“고기도 좀 더 먹어요. 우리 먹을 거 엄청 많이 샀거든요?”

“그래서 괴물이 어땠는데요?”

지호가 사이다 컵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눈을 빛내는 걸 본 하나는 헛웃음 지으며 스프를 뜯었다.

“아니 지호 씨, 아까 내가 장인 정신으로 구운 고기 먹을 땐 이렇게 살아 있는 눈빛이 아니었는데.”

“괴물에게 이 정도 열정은 보여야 그런 금액을 벌 수 있는 듯.”

“아오, 장지윤 추임새 얄미워 진짜.”

지윤은 까르륵 웃으며 하나의 손을 피했다. 계란도 있다며 넣어 먹자고 열 개짜리 작은 판을 꺼낸 소민은 그걸 불판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때 현장들 진짜 다 비상이라 사방에서 지원 요청 와 가지고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랐어요.”

“아니 근데 장난 아니었다니까! 다른 데도 그랬지만 우리 쪽도 상대하기 유독 까다로운 새끼가 그렇게 분열했어요. 보니까 좀 똑똑하고 지능 높은 것들이 그러는 것 같드라고요.”

“어, 맞아요. 도훈 씨가 그랬는데 괴물들 사이에 균열을 나갈 방법이 있단 소문이 돌고 있대요.”

“도훈 씨? 아, 도플갱어가 그 이름을 쓰고 있댔죠.”

하나는 떨떠름하게 말을 정정하곤 목덜미를 긁적였다. 네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호는 뒤늦게 도훈이 익숙한 사람이라곤 자기를 제외하곤 준영 정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괴물 중에도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나눌 만큼 똑똑한 놈들이 있다고 하거든요. 퀸 패러사이트도 그렇고 도플갱어도 그렇고.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종종 있겠죠.”

“그것들끼리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단 말이죠? 몸을 쪼개면 뭐, 인간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동네가 있다, 그런 식으로?”

하나의 날카로운 말에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욕설을 중얼거린 하나는 아직 다 익지도 않은 면발에 계란을 대충 풀어 버려 소민의 경악을 끌어내면서도 꿋꿋이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희도 그렇게 긍정적인 생각은 아녜요. 괴물을 어떻게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니까. 지호 씨를 통해서 도플갱어 이야기를 듣지 않았으면 엄청 방어적이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놈이 주는 정보는 분명 도움됐고, 또 지호 씨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긴 하니까…….”

지호는 다른 친구들이 술을 한 잔씩 할 때 사이다를 홀짝였다. 하나의 빈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준 지호는 길게 한숨 쉬었다.

“제가 괴물로 변하게 되면 어떨 것 같아요?”

무서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보글보글 끓는 라면 냄비 흔들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지윤은 길게 신음하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신체 괴변이 현상 겪은 헌터들 자료를 좀 찾아봤거든요? 근데 신체 계열이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드라구. 이게 여러 가지 능력을 한 몸에 가진 사람이 잘 없으니까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여러 가지로 이례적인 상황이란 말이죠.”

흥겨웠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소민은 축 처진 채 라면을 각자의 그릇에 덜어 주었다. 그 와중에 양이 정확히 나뉘어 있어 어쩐지 웃겼다. 지호는 라면 그릇에 아까 남은 고기 몇 점을 얹은 다음 입안에 밀어 넣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지호 씨가 만약 본인이 괴물이 될 상황을 걱정하고 그래서 인간일 적 기억을 가진 괴물들에게 호의적인 거라면…….”

“아니지. 순서가 다르잖아. 지호 씨는 이번 균열에서 다친 거라고요.”

소민은 하나가 툭 끼어들어 말을 자르자 시무룩해져선 너무 익어 커다랗게 덩어리진 계란을 면에서 떼어 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침묵을 깬 건 하나였다. 그는 잔에 따르기도 귀찮았는지 병에 남은 소주를 나발 불어 끝낸 다음 병을 탁 내려놓았다.

“지호 씨. 기억해요? 우리 예전에 임시 헌터 시절. 그때 같이 팀 이뤄서 계양 균열 파견 나갔었잖아요.”

“저는 중간에 겁먹고 빠졌었던 거기죠?”

“그 눈알 나타났던 곳이요. 제 친구 거기 갇혀 있었던 거 기억나요?”

까마득한 기억이다. 실제로도 좀 시일 된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임시 헌터 시절이라고 하니 왜 이렇게 옛날 같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지호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그때의 지호는 자신에게 집중하기만도 버거운 시기를 보냈으니.

새 소주병을 따 자기 잔뿐 아니라 옆 사람 잔까지 채워 준 하나는 지호의 잔에도 사이다를 채워 주며 한숨처럼 말했다.

“그 친구는 균열에서 다친 상처가 덧나서 오래 못 버텼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상태로 균열에 오래 방치된 사람들이 괴물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약 제 친구가 괴물이 되어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저는 어떨까 가정해 봤어요. 가정만 했는데도 가슴이 철렁하더라고요. 그러니 그게 실제인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요. 물론 위험성도 크죠. 너무 크긴 한데……. 그래도 무작정 덮어놓고 괴물이니 죽어야 한다고 말할 순 없어요. 내 가족, 내 친구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실 그게 맞죠. 본디 사람이었던 이들이 맞는다면 지금처럼 그저 사냥할 대상, 죽일 존재로만 보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해요.”

내 일이 되어야만 역지사지를 할 수 있다는 건 슬픈 일이다. 공감 능력의 부재는 현대 사회에서 꽤 큰 문제로 다루어지고 있었는데, 특히 소중한 이들을 잃은 자들의 슬픔을 왜 여태 끌어안고 있느냐고 비난하는 자들의 경우 정도가 심한 편이다.

지호는 그렇게 삭막한 사회를 살아가는 일을 원치 않았다. 모두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사람이었던 적 있던 괴물들에게 기회를 주었으면 했다. 심지어 거기에서 데리고 나오자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저 그들을 사람으로 인정해 주자는 그 하나가 그렇게 어려울지. 오래도록 생각한다.

그나마 조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는 이가 옆에 있어 다행이었다. 지윤이 집중! 하고 외친 다음 발치에 놓인 아이스박스에서 마시멜로를 꺼내자 분위기가 다시 말랑말랑해졌다.

“이걸 꼭 해 보고 싶었어요. 불 피우러 가자!”

“더 먹어요?”

“이제 시작인데 약한 소리 마요!”

하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모닥불 피울 키트는 저쪽에 준비되어 있다며 지윤을 포켓몬 출동시키듯 내보냈다. 머리 복잡하게 하는 것들은 잠시 잊어도 좋은 시간이다. 양손으로 쥔 컵 안쪽에 서로 다른 손바닥 모양이 찍혔다가 천천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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