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손예린 팀은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지호 헌터가 폭탄처럼 떨어뜨린 실종자 생존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의 주장을 따르는 자들보다 거부감을 드러내며 앞으로 나서는 자들이 더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극적 동조자들이 손예린 헌터 팀에게 그들의 행동을 잘했다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까닭은 당연하고도 단순했다.
경력도 얼마 안 되는 헌터를 낯선 괴물 앞에 홀로 버려두고 도망쳤다. 그 와중에 신입 각성자를 구해 온 공로마저 자신의 것 삼기까지 했으니 거기에 잘했다는 말을 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에 휘말려 손예린 헌터의 의견에 동조했던 팀원들조차 리더를 원망하며 와해되는 분위기다.
평범한 사람들조차 거부감을 느낄 선택들이었는데 그들은 보편적인 이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진 집단이었고 그중에서도 남 구하는 일 하겠다고 모인 헌터들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도플갱어와 함께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존중한다는 자들이 많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바꾼 것이지.
“팀장, 솔직히 애 구한 건 이지호 헌터 이름으로 올렸어도 되지 않아? 당연히 못 돌아올 거라고 하는 건 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조용히 해. 그때는 너희들도 다 못 돌아올 게 분명하다고 했었잖아. 나도 그 상황에선 좀 화나서 그랬던 거야. 나중에 구조 요청 넣기는 했다고. 시간이 좀 지나긴 한 다음이지만.”
예린은 힘껏 인상 썼으나 워낙 순한 얼굴이라 화가 난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던 팀원이 설마 진짜 그럴 줄 몰랐다는 중얼거림을 남기고 떠나가자 예린은 있는 힘껏 벽을 걷어찼다.
화풀이 때문에 놀란 사람들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예린과 눈이 마주치자 그를 훈계하려는 듯 다가왔던 남자는 예린의 손바닥 아래로 떨어지는 벽이었던 물체를 보곤 흠칫 놀라 다시 가던 길을 갔다. 망할 새끼들. 병실 부근에서 필요한 서류에 사인한 예린은 피하고 싶었던 얼굴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친 탓에 자리를 떠나는 것도 모양이 이상했다.
“또 뵙네요.”
지호는 덤덤히 말하며 헌터증을 병원 직원에게 내밀었다. 지호 자료를 조회한 직원이 아까 예린이 사인했던 서류와 비슷한 것을 내어 주었고, 지호는 별 질문도 없이 자기 이름을 적고 사인을 끝냈다. 기이한 침묵. 예린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어떤 말로 임시 각성자를 구워삶았는지 모르겠네. 보통은 다른 보호자로 바꿔 달란 소리 잘 안 하는데.”
“그 보통이 아닌 일을 이뤄 낸 게 내가 아니라 본인일 거란 생각은 안 하시는 모양이죠?”
“일반인이 뭘 안다고.”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그 상황에 저를 외면하고 간 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하겠어요? 헌터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체계도 알지 못하는 어린앤데 더하죠. 이례적인 일을 이루어 내신 걸 축하드릴까요?”
예린은 욱했으나 주변에 보는 사람이 많아 눈만 부라렸다. 꽉 쥐었던 주먹을 내린 예린은 사납게 으르렁댔다.
“그깟 괴물 새끼 옹호하는 네가 헌터라고 할 수 있어?”
“처음 보는 괴물 앞에 동료를 버리고 간 사람보다는 좀 더 헌터답지 않을까요?”
사사건건 비아냥대는 어조에 예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틀린 말도 아니었던지라 더했다. 지호를 노려보는 눈에 핏발이라도 설 것 같다. 한참 서로를 노려보던 둘은 분위기 못 읽고 데스크 사이로 들어온 한 손님 덕분에 대치 상태에서 벗어났다. 예린이 쿵쿵 소리 내며 그곳을 떠나자 지호는 조금 안도했다. 멱살 잡지 않고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강준영 씨는 708호예요.”
지호는 싱긋 웃었다. 아까부터 정제되지 않은 이형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기에 사실 알려 주지 않아도 진작 알고 있기는 했다. 가볍게 인사하며 헌터증을 돌려받은 지호는 준영의 에너지를 본인의 것으로 밀어 내며 천천히 걸어갔다.
노크하자 가볍게 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각성자들에겐 본래 독방을 주는 건지 1인실이었다. 지호는 그가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병실을 훑으며 침대에 앉아 있는 준영 쪽으로 눈을 돌렸다.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환자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준영은 균열에서 마주했던 때와 달리 멀끔하고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거, 건강해요. 헌터님 덕분에 다치지도 않은걸요. 제가 너무 무례한 부탁을 드린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맡아 주신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영은 귀뿌리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또박또박 할 말을 다 했다. 중간중간 더듬거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것이 꼭 지호를 보면 이 이야기를 하려고 외우기라도 한 것 같았다. 지호는 웃으며 들고 온 병문안 선물을 내려놓았다.
“뭐 먹거나 하는 건 괜찮다고 해서 간식거릴 좀 챙겨 봤어요. 오늘이면 퇴원한다고 듣긴 했는데, 그래도 며칠 입원해 있으면서 병원 밥만 먹었을 거 아녜요.”
지호가 가지고 온 간식거리를 본 준영은 얼굴에 드러난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역시 병문안에는 먹을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 지호는 빙그레 웃었다. 보현도 음식을 사 와서 내밀곤 했었는데.
물론 준영의 감정은 지호가 이렇게까지 자기를 신경 써 주고 챙겨 주는 것에 대한 감동과 설렘 때문에 피어난 것이지만 지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저, 다치셨다고 들었어요. 저 때문인가요?”
“아뇨. 다른 말썽쟁이 때문이에요. 좀 다치긴 했는데, 이 정도야 훈장이죠.”
부은 팔에 붕대를 감고 그 위에 장갑을 낀 것처럼 보이는 전투복 오른쪽 팔을 본 준영은 근심했다. 그러나 지호가 괜찮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자 다쳤다는 이야기를 더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준영은 지호의 눈치를 살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 보호자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꾸겠다고 했었어요. 손예린 헌터님은 그, 아무래도 좀 헌터답지 않은 행동을 했잖아요.”
준영은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당시 상황을 판별할 정도의 판단력을 갖고 있다. 지호는 미소만 지은 채 그 말에 대답 없이 준영의 말을 기다렸다. 눈을 굴리던 그는 소심하게 말을 이었다.
“설명하기로는 그때 이지호 헌터님과 같이 있던 잘생긴 형이 괴물이라고 하던데요. 진짠가요?”
정말 몰라서 던지는 질문이 아닐 것이다.
한 사람도 아니고 여럿이 지호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며, 안정기에 들어설 때까지 캠프에서 다른 헌터들과 함께 있었다고 들었다. 준영이 거기에서 도플갱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보는 쪽이 좀 더 부자연스러웠고, 지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손 헌터님은 본인이 민도훈 헌터란 분을 원래 알고 있었다고. 지금 이지호 헌터님이랑 같이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그분을 해치고 그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이라고 욕했었어요.”
“손예린 헌터가 민도훈 헌터를 본래 아는 사이라고 했나요?”
“그, 헌터님이랑 헤어지고 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다음에 들은 이야기였어요. 얼굴 반반한 개새끼였다고 욕하긴 하시는데 그거 있잖아요. 진짜 욕하는 건 아니고 뭐라고 할까…….”
준영이 허둥지둥하며 말을 정리하지 못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호는 준영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도훈과 예린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였을 거란 생각을 떠올렸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호에게 등을 돌릴 정도로 그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훈 씨는……. 도플갱어라고 하면 이름이 좀 익숙하겠죠. 최대한 우리가 인식하기에 비슷한 이미지를 코드 네임으로 부여하는 모양이니까.”
“진짜 괴물이었군요.”
준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지호는 보호자가 앉을 수 있게 옆에 놓인 의자 몇 개 중 하나를 끌어당겨 준영의 침대 옆에 앉았다. 균열에서 갇혀 있던 비좁은 주유소 휴게실 생각이 났다. 이만큼 시설이 좋지는 않았었지만.
“보통의 괴물들과는 좀 달라요. 준영 씨는 헌터가 되고 싶다고 했었죠.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르지 않나요?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저와 손예린을 비롯해 헌터들을 많이 봤잖아요.”
그를 위해 사방을 뛰어다니며 괴물과 싸웠던 지호를 시작으로 도훈은 평소라면 보기 어려울 밀도로 모인 헌터들과 마주했었다. 머뭇거리던 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헌터가 되고 싶어요. 저를 구해 주셨을 때 느꼈던 그 안도감을 기억해요. 누군가에게 그런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한 감상에 이번에는 지호 쪽이 부끄러워졌다. 노련한 헌터로 보이고 싶었던 지호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제야 좀 또래 나이로 보이는 얼굴이라 준영은 긴장을 좀 풀 수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괴물들, 그러니까 그 도플갱어란 괴물을 제외한 다른 괴물들은 하나같이 진짜 괴물 같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아시죠? 사람처럼 말하지도 않고, 무조건 먹으려는 욕망으로만 충실한 것 같은…….”
“일반적으로는 그렇죠. 우리가 아는 많은 괴물이 사실 그래요. 도훈 씨가 특이한 편이죠.”
“그렇죠. 다른 괴물들 볼 때는 헷갈린 적도 없었어요. 생긴 것 때문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는데, 사람 모양으로 덤벼든다고 해도 별로 사람처럼 느껴지진 않을 것 같거든요. 좀비나 뭐 그런 것 같지 않을까요?”
“도훈 씨가 사람 같았죠?”
준영은 목이 아프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은 이렇게나 곧바로 지호와 같은 생각을 하는데. 다른 이들은 도훈을 비롯한 실종자들과 만나 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을 배척하고 적대하고 있었다.
“괴물들이 정말로 사람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 형이 괴물이란 말을 듣고는 쭉 생각했던 거예요. 한 놈만 그러리란 법은 없잖아요.”
“괴물들의 생태가 궁금해졌나요?”
“안 그럴 수 있겠어요? 제가 보기엔 사람답게 행동하는 괴물이나 괴물보다 잔인한 사람 중에 누가 더 낫다고 말하기 어려웠는데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 형은 우리한테 공격적이었던 적이 없는데, 이건 물론 제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그때 손 헌터님네 팀은 이지호 헌터님을 그냥 내버려 뒀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랬어요. 이지호 헌터니까 살아남았을 거라고.”
지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뭐 특별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상시하려는 사람들에게 넘어가지 마세요. 제가 살 수 있었던 건 도훈 씨가 정신계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때 나타났던 놈의 인식을 교란해서 거길 빠져나올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형이 선택해서 접근하고 정체를 드러낸 건 이지호 헌터님이잖아요.”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대답이었고, 그래서 지호는 도훈과의 일화들을 풀어 설명하는 대신 차분하게 설명했다.
“시기가 잘 맞아 마주쳤던 거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협력했던 거예요. 제가 아닌 다른 헌터였어도 그럴 수 있었겠죠.”
“제가 헌터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도훈 씨를요? 음, 저도 확답을 주기는 어려운데요. 알다시피 균열도 다 닫혔고, 우리가 그쪽으로 넘어갔을 때나 마주칠 기회가 생기는 건데 균열이라는 게 매번 같은 자리에 열리는 게 아니다 보니까…….”
또 설명이 길어질 것 같았다. 지호는 이 이상의 이야기는 조금 더 배우면 알 수 있을 거라며 말을 돌렸다.
“제가 뭔가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게 있진 않지만 손예린 헌터에게서 준영 씨를 인계받았어요.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요. 우선은 검사 마치고 퇴원하는 게 순서겠어요. 삼촌분은요?”
“회사에 계시죠, 뭐. 제가 어디 아픈 건 아니고 검사 결과 기다리는 건데 옆에 계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니까…….”
지호는 그가 병원에 있을 때 오곤 했던 무수한 연락들을 떠올렸다. 준영의 핸드폰이 연신 울리고 있던 탓이다. 전화라도 오는 것처럼 끊임없이 울려 대는 온갖 메시지들에 준영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호는 진동하다가 밀려 떨어질 뻔한 준영의 핸드폰을 잽싸게 잡은 뒤 거기에 자기 연락처를 입력했다.
“훈련 중일 때나 바쁠 때는 바로 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되도록 준영 씨를 우선하도록 노력할게요. 이제 준영 씨 보호자니까요.”
어쩐지 요즘 연락처를 여기저기 주게 되는 것 같다는 잡스러운 생각을 떨쳐 내며, 지호는 준영의 손에 핸드폰을 쥐여 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영 못지않게 지호의 핸드폰도 열심히 울려 대고 있었다. 또 보자는 인사와 함께 병실을 나온 지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에요? 계속 전화하고.”
본래라면 일을 마치고 나중에 연락했을 텐데 같은 이름이 화면에 계속 뜨는 것이 신경 쓰였다. 수화기 너머에서 지윤이 쾌활하게 외쳤다.
-지호 씨 지금 어디예요? 위치 좌표 좀 전송해요!
“예? 저 병원인데…….”
-아니 병원? 왜 우리 병원 안 오고?
아마 눈을 희번덕이고 있을 지윤의 표정이 생각나 지호는 짧게 웃었다. 그는 자기 검진 결과는 정상이며 어디가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려고 잠시 들른 거라는 사실을 몇 차례나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고 나서야 지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헛기침한 지윤은 다시금 지호를 채근했다.
-왜 이렇게 연락 안 받아요. 소민 씨가 지금 데리러 갈 거니까 위치 좌표 불러요.
“네? 어딜 가는데요?”
-우리 회식. 뼝아리즈 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