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어디에요?”
“그걸 알아내는 게 다음 단계라 다들 고생 중이에요. 그 괴물은 형태가 없고 정신 자체로만 존재하는 놈일 확률이 있다던데. 우선은 시흥 연구소에서 게이트를 열어서 이주원 각성자를 균열 너머로 보내 놓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온 단계예요. 특수반을 비롯한 정신계 능력자들이 돌아가면서 감시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찮게 또 이동 능력자이기도 하고요. 지금이야 어떻게 통제를 따르고 있긴 한데, 그게 얼마든지 부술 수 있는 종류의 금제다 보니 좀 골치가 아파요.”
“그럼, 악성 균열이 왜 열리는 거예요?”
“그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주체는 누군지 말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 다 당연히 떠올린 존재가 있다. 지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벽면에 뜬 사진을 노려보았다. 대구에 남은 흔적 중 거대한 발자국 같은 것이 있었는데, 지호가 이번 균열에서 사냥한 대형종의 것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자국이었다.
아마도 여왕의 것이리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 만큼 거대한 크기에 저절로 몸이 떨렸다. 저런 것이 사람들을 노리고 있다니, 생각만으로 우울해질 것 같았다.
“저런 무지막지한 걸 어떻게 막아요?”
“그것도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대구 이후로 한동안 악성 균열이 거의 없다시피 했거든요. 여왕이란 강력한 괴물이 운신하는 데 뭔가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 중이에요. 단순히 추측뿐이지만.”
박 팀장은 우울하게 대답하며 화면을 껐다. 고작 이거 하나 보여 주자고 그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체 괴변이 현상으로 몸이 변하기 시작한 헌터들이 헌터 일을 오래 했던 적이 별로 없어서 아마 다들 신기하게 여길 거예요. 주의하라고 이야기도 했고, 또 알아서들 조심하기는 하겠지만, 눈이 저절로 돌아가는 건 어떻게 막을 수 없겠죠. 웬만하면 센터나 협회로 오지 말고 당분간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안 듣겠죠?”
“오히려 제가 좀 더 돌아다니면 어떨까요? 균열에서는 변이 현상이 심화될지 몰라도 지금은 뭐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걸요. 멀쩡하잖아요. 팔이며 어깨까지 타고 올라와서 변하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균열에서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박 팀장은 복잡한 표정으로 지호를 응시했다.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꽤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그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괴물들이 튀어나오는 탓에 균열을 닫을 필요가 있지 않았다면, 지호 씨는 균열에서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왜요?”
“당연히 그렇게 변해서 완전한 괴물로 전락했을 거라고들 여겼으니까.”
“거기 남아 있는 편이 더 위험했던 거잖아요. 저를 그런 위험에 내버려 두자는 의견이 우세했다는 말씀이세요?”
“지호 씨만 그런 건 아니었어요. 단순히 지호 씨를 위협의 대상으로 보고 있던 게 아니라……. 그러니까, 신체 괴변이 현상으로 몸을 잃게 되었던 사람들 모두가 타인에게 위협이 되었어요. 정신적으로건, 물리적으로건. 그런 예시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내리려고 했었겠죠.”
균열이 닫힌다는 이야기가 지호에게 들어오지 않았던 건 그래서였던 모양이었다.
지호는 슬픔과 분노, 어처구니없음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러나 그 모든 감정을 받을 자는 박 팀장이 아니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것들을 드러내지 않은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일어났고, 그래서 제가 균열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거죠.”
“바라지 않았던 자들이 분명 있기는 해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협회에서 지호 씨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박 팀장님은 어떤데요?”
“저는 지호 씨를 신뢰하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말이죠.”
박 팀장의 애매한 표현에 지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괴물을 사람으로 볼 수는 없다……. 뭐 그런 건가요?”
“지호 씨도 이제는 알게 되셨겠지만, 사실 우린 다들 괴물과 다를 바가 없잖습니까.”
박 팀장의 태연한 어조 때문에 지호는 그 말이 주는 충격을 뒤늦게 받았다. 아는 사람 얼마 없다더니 이 사람 저 사람 다 알고들 있는 거 아닌가.
실실 웃는 얼굴의 넉살 좋은 박 팀장이지만 본래는 부천 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어쩌면 지호가 모르는 더 많은 일을 맡고 있을 박찬민 헌터는 웃음기 거둔 얼굴로 마른세수를 거듭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지호 씨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어느 정도는 인지합니다. 우리가 균열 너머 괴물과 다른 점은 인간을 먹지 않는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런 주제에 사고를 겪고 다른 괴물들처럼 신체 모양이 변한 자들을 배척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웃기지도 않는 일이고요.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들을 이끄는 헌터 집단 수장 중 한 사람으로의 의견은 좀 다릅니다. 우리 수는 한정적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자들은 아직도 너무 많아요. 여론이 시끄럽고 불안이 들끓습니다. 불안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는 편이 좋죠. 언제 변할지 모르는 동료 역시 그 불안 요소 중 하납니다. 오히려 괴물보다 더 안 좋은 케이스죠. 괴물로 변한 실종자 출신 괴물보다 더요. 한때 등을 맡기고 싸웠던 동료를 쉽사리 공격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박 팀장이 쏟아 낸 이야기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호를 위해 선택한 쉬운 예시다. 두 사람은 비슷하게 시무룩해졌다.
“결국, 우리나 그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는데…….”
“뭐, 꼭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먹었을지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인간을 먹은 괴물을 먹는다……. 혹은 죽은 인간이나 산 인간을 먹었을 수도 있죠. 도덕보다는 생존이 우선이 되었을 테니까요.”
끔찍한 추측이었으나 당연한 말이었던지라 지호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 밖에는 딱히 기억할 만한 것 아닌 자잘한 안부 인사가 이어졌고, 균열 너머에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찬성하며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박 팀장의 진심 가득한 인사 후에 지호는 회의실을 나설 수 있었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오디세이 팀 사람들은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다시 마이크를 부착하자 새삼 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음, 원래는 동향 파악도 하고 필요한 회의도 하고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지금 제 컨디션도 썩 좋지 않고 해서.”
“손을 다치셨죠. 다쳤을 땐 쉬어야 해요.”
다은이 맞장구치자 지호는 오른손을 카메라 쪽으로 슬쩍 흔들어 주었다. 본디 며칠이 걸려 나아야 했던 상처들은 성능 좋은 치료기에서 온갖 약을 제공받은 덕분에 빠르게 나았고, 지호에게 남은 상처 비슷한 것은 오른손 정도. 그나마도 겉보기에 상처지 실은 다친 것이 아니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며 오디세이 팀의 임시 출입증을 발급받았다. 다은이 타 센터 출신 헌터에게는 이런 것이 나온다며 카메라 앞에서 분량을 뽑는 동안 지호는 그간 함께 협동 훈련을 해 왔던 헌터들이 슬금슬금 눈들을 피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지호는 덤덤히 그들의 등을 바라보다가 새로이 내려온 지침을 우선 확인했다. 다은의 원샷이 끝나 다시 지호를 잡은 카메라는 그가 읽고 있는 문서 쪽으로 줌을 당겼다.
“그건 뭔가요, 이지호 헌터님?”
“이번 균열에서 일어났던 특이점에 관해 헌터들에게 알리는 요약본이에요. 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균열이 닫히고 나서 헌터들에게 이렇게 정리된 형태로 문서가 전달돼요. 꼭 읽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새로 알려진 것들은 숙지하는 쪽이 생존에 도움이 되죠. 다음 균열에서 맞닥뜨릴 수도 있잖아요.”
같은 헌터라 다 알고 있는 부분일 텐데 다은은 신기하다는 듯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방송하는 사람이라 리액션이 남달랐다. 목을 쭉 빼 지호가 보던 서류를 훔쳐보는 것처럼 움직인 그는 어느 한 부분을 짚으며 눈웃음 지었다.
“여기 이런 것들 시청자분들한테 살짝 알려 주시면 안 돼요? 일반인은 이런 괴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비하시는 게 좋다든가, 뭐 그런 거.”
“균열에 안 휘말리시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그렇죠. 만약의 경우란 게 있으니까.”
이번 균열에서 새로 관측된 괴물은 한둘이 아니었다. 일반 균열이었던 탓에 더더욱 괴물의 종류가 많았던 것도 있다. 지호는 그가 마주쳤던 것들 중 가장 충격적인 부류를 떠올리며 이미지를 찾았다. 촬영본이 있었다. 지호를 비롯해 몇몇 헌터들이 찍은 영상이다.
“음, 여기 이걸 보세요. 혹시 바깥을 관찰할 수 있는 상황인데 저 먼 곳에서부터 전기가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한다면 이 괴물이 여러분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는 거예요.”
금속 먹는 괴물은 좋게 말해도 호감 있는 생김새라고 말하기 어려운 편이다. 놈의 코드 네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름이 붙지 않아서 뭐라고 설명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우선 저는 그냥 금속 먹는 놈이라고 불렀어요. 보시면 사방이 이빨로 이루어져 있고 지렁이처럼 생겼죠. 머리 끄트머리에 톱니 같은 이빨이 특히 많아요. 겉 부분은 우둘투둘하고 수북하게 털이 나 있죠. 제가 만났던 괴물 중에 징그럽기로는 손에 꼽는 놈이에요.”
지호는 띄워 놓았던 영상을 재생했다. 썸네일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생김새인데 움직이는 모습은 더욱 기이했다.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놈이 금속을 찢어발기다 못해 씹어 먹는 것을 본 다은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지금 무슨 과자라도 되는 것처럼 쇠를 씹고 있는 것 같은데…….”
“바로 보셨어요. 제가 이름을 대충 설명한 것처럼 금속을 먹는 놈인데, 일반적인 철이나 구리 같은 것보다 특수 금속. 그러니까 우리가 쓰는 전자 기기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놈이에요. 제가 당시에 신형 전투복을 입고 있었는데 여기에 이것저것 들어간 기기가 많거든요. 다른 사람들보다 저를 먼저 먹으려고 덤비는데, 속도도 빠르고 무게도 꽤 나가는 데다 감지계 파장을 인식하기까지 해서 상대하기 까다로웠어요.”
“감지 파장을 인식해요?”
“괴물들 중에 그런 놈들이 몇 있어요. 균열에서 넓은 범위를 감지하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 아니, 이런 것들은 민간인분들에게 필요 없는 정보겠죠?”
다은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지호 쪽으로 기울였다.
“아녜요. 해 주세요. 저도 감지계 능력자인데, 균열에서 사용해 본 적은 그다지 없어서 몰랐는데요? 위험할 뻔했네요.”
지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마땅히 설명할 거리가 없다. 할 수 없이 지호는 근처에 특수 처리되지 않은 벽에 손을 얹어 형태를 변화시켰다. 벽이 물결처럼 둥글게 퍼져 나가자 카메라 든 각성자가 오오, 하고 감탄을 참지 못했다.
“이 둥근 모양을 감지계 능력자가 주변 확인할 때 쓰는 파장이라고 생각해 봐요. 레이더 같은 거 생각하시면 편하겠죠? 보통 레이더가 주변을 훑고 가도 우리 잘 모르잖아요. 전파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까.”
둥근 원형으로 막힘 없이 퍼져 나가던 물결 위로 불쑥 지호가 손을 짚었다. 지호는 어떻게 말해야 비능력자들에게 효율적으로 들릴까 고민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이렇게, 중간에 걸리는 게 있으면 느껴지거든요. 여기에 뭐가 있다, 하는 느낌이요. 그런데 만약 해당 장애물이 같은 감지계 능력자라고 하면, 타인이 주변을 확인하기 위해 쏘아 보낸 파장을 느낄 수 있어요. 주변에 같은 힘 가진 놈이 있구나를 알고, 노련한 능력자는 위치까지 파악할 수 있죠.”
“중심에서부터 퍼지기 때문이군요?”
“맞아요. 그 힘이 어디에서 와서 어느 쪽으로 퍼져 가는지를 알면 방향이야 금방이죠. 거리를 가늠하는 건 또 숙련도의 문제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괴물 중에도 그걸 할 수 있는 놈이 있단 거예요. 이놈도 그랬고요.”
눈이 없는 놈인 것 같기도 했다. 지호는 금속 먹는 괴물이 잦은 빈도로 해당 파장을 퍼트리며 주변을 수색했었다며 진지하게 말했다.
“만약 우연히 이놈을 마주치게 되면 들고 있던 핸드폰이나 전자 기기 비슷한 건 던져 버리고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편이 좋아요. 다행히 이 괴물은 금속에만 관심이 있고 사람엔 별로 관심이 없대요. 하지만 어떤 특수한 금속을 먹기 위해 사람이 입에 같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걸 뱉을 만큼 편식하는 놈도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다은은 질색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호는 놈의 영상을 종료하며 벽을 본래 상태로 되돌렸다. 형질 변이가 이제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한때는 모양 변형시키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때가 있었는데.
균열에 오래 드나들며 한계치까지 힘을 다루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일까. 지호는 어느 순간 다른 헌터들만큼 능숙하게 힘을 다루게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은 기간에 가혹하게 구르며 얻어 낸 결과물이긴 하지만, 결과 자체만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한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내게 된 헌터는 그 사실을 순수하게 기뻐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고생했다는 의미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