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균열이 닫힌 후에 더 바빠진 지윤을 제외하고 다른 두 사람은 늦은 시간에야 단톡방에 올라온 것들을 읽었다. 주로 지호가 혼자 주절거린 이야기들이었다. 이상한 집단과 마주쳤는데 여러 가지로 수상쩍은 것들이 많다고. 혹시 이런 비슷한 문양 본 적 있는지 알려 달라는 그런 이야기들. 숫자가 천천히 사라지고, 올라온 대화를 다 읽은 이들이 하나둘 말을 꺼냈다.
[최소민 : 지호 씨 좀 괜찮아요?]
[이지호 : 맨날 걱정만 듣고 있는 것 같은데. 저 완전 멀쩡해요. 아픈 데도 없고 검사 결과도 별로 이상 없는 것 같고.]
[강하나 : 손은 어때요?]
[이지호 : 볼래요?]
집에 돌아와 제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참이라 사진도 금세 찍을 수 있었다. 눈으로 봐도 카메라 통해 찍힌 이미지로 봐도 영 적응되지 않았다. 지호는 시퍼런 빛에 가까운 손으로 핸드폰 액정을 문질렀다. 좀처럼 기스 나는 일 없는 헌터 전용 핸드폰이었으나 지호 손톱이 워낙 날카로워 자잘한 흠이 잔뜩 나 있었다.
[강하나 : 파충류 피부 같네.]
[최소민 : 주변에 누구 없죠? 우리 임시로 오픈 채팅 하나 파요.]
[강하나 : 갑자기? 멀쩡한 이거 두고?]
소민은 지체하지 않고 오픈 채팅방의 주소를 남겼다. 들어간 사람이 자신을 공개하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방이라 정보 은닉 용도로 많이들 썼다. 새 채팅방에 입장한 지호는 소민이 올린 여러 장의 사진을 보곤 당황했다. 몇몇은 아는 얼굴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이지호 : 이게 다 누구예요?]
[최소민 : 혹시 들은 거 없어요? 협회 내부가 지금 난리예요. 거기서 결정 난 사항들을 모든 헌터들이 따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도나도 영향력 행사하려고들 난린데, 그 와중에 무력 충돌도 없지 않더라니까요.]
[강하나 : 말도 안 돼. 헌터 협회인데?]
[최소민 : 그래서예요. 어지간하면 헌터 협회가 정한 문제니 뭔가 중요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따른다고요. 협회 자금줄 중 하나가 괴물을 혐오하는 사람이고 가족들을 눈앞에서 죽인 괴물들에게 증오심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더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박찬민 팀장님이 이동 능력자들 불러서 사상자 없도록 제시간에 병원에 옮겨야 한다고 이야기까지 하셨는데요. 헌터들 간의 다툼이라 그렇게 싸움 나고 하는 일까진 없을 것 같지만…….]
[장지윤 : 완전 멱살 잡고 때려 패고 싸움. 오늘도 병원 몇 명 실려 왔거등여. 하이하이 내가 늦었네.]
[강하나 : 병원에 몇 명이 실려 오다니?? 균열도 없어졌는데 무슨 소리야.]
[이지호 : 헌터들끼리 싸움이 났어요?]
[장지윤 : 말도 마셈. 난 뭐 괴물한테 당한 줄 알았다니까.]
별것 아닌 문장이었을 텐데, 지호는 괜히 찔려선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괴물에게 당한 줄 아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인 존재들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모양새가 희극적이다.
지호는 뭐라고 말할까 하고 화면 위에서 손가락을 꼬물거리다 말하기를 포기했다. 비밀을 아는 사람 수는 적을수록 좋았다. 그것이 들어서 좋을 일 없는 비밀이라면 더더욱.
[최소민 : 싸움이 더 격해지기 전에 빨리 지침이 나오면 좋겠어요. 솔직히 지호 씨가 있는 구역 전파를 차단하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강하나 : 뭘 해?]
[최소민 : 저도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혹시 뭐가 누락되나 싶어서 하려던 말 길게 안 쓰고 짧게 막 끊어서 보냈었는데. 균열을 닫을 거라는 경고를 다른 헌터들한텐 전부 보냈는데 지호 씨한텐 전송되지 않게 한 거였어요. 골칫거리를 통째로 균열 너머로 날려 버리려는 졸렬한 수작질이었죠.]
단어 선택 때문만은 아니지만, 소민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것 같았다. 평소라면 깐족거리며 끼어들었을 지윤이 점잖은 척 말을 이었다.
[장지윤 : 그래도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네. 헌터들 사이에서도 말이 좀 많긴 했어여. 왜, 손예린 팀 지금 완전 붕 떴잖아.]
[강하나 : 혹시 의견 갈리면 자기들도 버리고 가는 거 아니냐고들 비아냥거리는 거 말이지? 온갖 헌터 웹에 벌써 퍼졌더라. 어떻게들 알아낸 건지 원.]
[장지윤 : 잘못은 지들이 해 놓고 왜 다른 헌터들이 덩달아 고민해야 하나 몰라. 솔직히 수틀리면 나도 버리고 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이번 짓거리 때문에 나온 말이지 지호 씨 때문이 아니잖아여?]
[강하나 : 자기도 그때 왜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 바꾸더라. 웃기지도 않아 진짜. 걍 자기 선택인 건데 책임이나 질 것이지.]
세 사람은 신나게 떠들었다. 지호에게는 일반 균열이어도 빡센 건 마찬가지라며 자기들이 일했던 곳 이야기들을 경쟁적으로 늘어놓는 병아리 친구들만이 유일한 안식처로 느껴졌다.
다시금 화해 아닌 화해를 하며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보현과도 한참 감정의 골 깊을 때보다는 가까워졌으나, 지호는 언젠가 이 집을 떠날 것이며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소민 : 암튼 무사해서 다행이고요. 차나연 헌터님이 그러시는데 혹시 감시당할 수 있으니까 대화 끝나면 방 터뜨리고 뭐 남기고 그러지 말라시더라구요.]
[강하나 : 흠, 오픈 채팅은 괜찮나?]
[최소민 : 적어도 원래 쓰던 곳만큼 추적하기 쉽지는 않을 듯?]
[장지윤 : 그름 이 대화들이 다 휘발되어 사라진단 말이지. 그럼 여기다 욕해야지! 오솔잎 헌터 팀에 있던 새끼가 모라고 했냐면…….]
나연의 걱정은 생각보다 타당한 근거를 가진다. 나연이 어디까지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전양련의 입김이 여기저기 뻗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호는 그들이 헌터 웹을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를 이미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건조하게 두드려 친구들에게 알리며 설명했다.
[이지호 : 지윤 씨가 이주원 각성자랑 친한 거 아는데, 이번에 체포된 거 알죠. 어디까지 들었어요?]
[장지윤 : 정확히는 모르는데. 뭐 빼돌렸대여? 이동 능력자 중에 그런 충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좀 있다드라. 왜, 돈이 나쁜 거지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구 하잖아여. 그니까 걍 헌터 하지. 돈도 많이 벌고 좋잖아.]
[이지호 : 다들 헌터 웹이나 헌터 커뮤 몇 개 드나드는 데 있죠? 어지간하면 거기다 뭐 남기지 마요. 흔적 같은 것들. 비밀번호도 잘 안 쓰는 거로 바꾸고…….]
[최소민 : 협회 자금줄 중에 하나가 IT기업이라 우리 채팅 프로그램하고 관련 있다는 말이 있어요.]
[강하나 : 살벌하고만. 밟으면 지뢰밭이고 넘어지면 걍 뒤질 듯.]
[이지호 : 아직 수사 단계라 정확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혹시 그쪽이나 뭐 전양련을 비롯해서 정체 불분명한 연합 같은 데서 연락 오거나 하면 따라가지 마요. 사탕 준다고 해도 가지 말고 맛있는 거 사준대도 가지 말고.]
[장지윤 : 여기서 지호 씨만 조심하면 될 듯. 잔챙이 노리겠어여, 봉황 하나 헤드샷 날리겠어여?]
소민이 박 팀장과 함께 움직이는 모양인지 생각보다 알짜배기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지호는 각자의 자리에서 친구들이 얻어 낸 것들을 꼼꼼히 살피며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는데, 등록된 사진과 이름은 아주 익숙했다. 오디세이 팀이다.
[팀 오디세이 : 안녕하세요. 헌터 채널 오디세이에서 인사드립니다. 협회 통해서 이지호 헌터 연락처를 받았어요. 이번에 유명 헌터들 대상으로 그들의 일상이 어떤지 촬영해서 방송 예정이거든요. 가뜩이나 요즘 여러 가지로 화젯거리가 되고 있으셔서 저희 팀 내부 투표로도 이지호 헌터가 게스트로 딱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하루 내지 이틀 정도 이지호 헌터의 하루를 촬영해도 될까요? 촬영 후에 필요한 부분만 알아서 잘라 내보낼 수 있어요. 요즘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 삶은 여전히 평범하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를 위해 살아가는 헌터들 역시도 초인이나 영웅 같은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란 걸 보여 주자는 기획이거든요.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서요.]
그 밖에도 구구절절 장문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거절할 이유가 없기는 했다.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훈련으로 바빴던 초기와도 차이가 있으니까. 오히려 훈련 장면을 찍을 수 있다고 하면 좋아하겠지. 지호는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의 답장을 보냈다.
자정이 되기 전 채팅방은 폭파됐다. 한동안은 이렇게 대화하자고. 특히 어떤 중요한 사항 있을 때는 꼭 그렇게 하자며 암호까지 정했다. 웃기면서도 서글펐다. 이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던 때가 너무도 오래전인 것 같아서였다.
아침이 밝자마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도우미 이모님이 벌써 왔나, 하고 별생각 없이 인터폰을 확인한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다은 헌터가 보였다.
“뭐야 아침부터…….”
보현이 하품하며 방을 나왔다. 지호는 그대로 문 열러 나가는 보현을 황급히 붙잡아야 했다.
“아니, 언니! 저기 그게, 어제 오디세이 팀에서 제 하루 이런 거를 촬영한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저는 당연히 이제 어떻게 촬영하고 할지 의견부터 나눌 줄 알았는데 집 앞에 카메라가 있어서, 그니까. 언니 지금 이대로 방송 타면 언니가 엄청 후회할 것 같거든요. 저는 괜찮은데…….”
보현은 현관 옆 거울에서 자기 꼴을 확인하곤 황급히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지호 역시 바깥에 잠시만 기다리라고 외친 다음 세수라도 대충 하려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우당탕 소리 나는 현관부터 촬영 중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문을 연 이후의 일이었다.
“이지호 헌터, 안녕하세요? 간밤에 수락해 주신 거 감사해요. 다들 헌터님의 일상을 궁금해하거든요. 임보현 헌터님도 안녕하세요.”
어느새 위아래로 새 트레이닝복을 맞추어 입은 보현이 여유 있게 고개를 까딱였다. 지호는 언제나와 같은 차림새였다. 협회에서 일괄 지급하는 트레이닝복 중 하나인데, 보현의 것처럼 깔끔하고 몸에 잘 맞는 디자인은 아니다. 다은은 싱긋 웃으며 지호의 옷에 마이크를 붙여 주었다. 영 어색했다. 카메라 팀이 어수선했는데, 지호의 오른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는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전투복을 풀로 갖춘 상태가 아닌지라 손을 가릴 장비는 따로 없었다.
“음, 팔 부분이라도 좀 가려 볼까요? 이게 보이면 일상이란 느낌은 안 들 것 같은데.”
“그걸 끼고 있는 건 좀 더 이상해 보일 것 같은데요. 오른손에 흑염룡이 봉인된 것도 아니고…….”
몇몇이 머리를 모았다가 다친 것처럼 붕대로 둘둘 감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깁스를 한 상태면 팔보다 좀 더 부피가 큰 모양새여도 이상치 않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지호는 그 의견에 동의했고, 그들이 미리 준비한 것처럼 붕대와 반창고를 꺼내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오기 전부터 이렇게 하기로 의견 정하고 오신 거군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아침 훈련 가시나요? 가끔 아파트 단지에서 목격되신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런 소문이 왜 있어요?”
“오늘 이지호 헌터를 따라다니며 확인할 것들은 sns의 이지호 헌터 목격담 계정에 제보 올라오는 것들이거든요.”
다은이 쾌활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촬영 팀은 수가 많지 않았다. 옛날처럼 여러 사람들이 카메라며 마이크며 조명이며 장비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며 촬영하지 않아도 되게끔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기도 했고, 오디세이 팀 자체가 한 사람이 열 명 몫을 거뜬히 들고 다닐 수 있는 헌터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보현의 인사를 받으며 집을 나선 지호는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제 일상 별로 재미없을 텐데요.”
“솔직히 임보현 헌터랑 같이 찍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입소문이 충분히 나긴 했어요. 저희 예고편 띄운 거 보셨어요?”
“아뇨. 어디 올라가요?”
“저희 sns계정에요. 나중에 한번 보세요. 저희 마이크가 성능이 좀 좋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