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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83화 (184/260)

183화

현장에 제일 먼저 달려온 건 이주리 헌터에게 위협받는 것 같은 모양새로 나타난 박 팀장이었다. 주원을 제외한 다른 전양련 놈들은 헌터들을 보자마자 달아나기 급급했는데, 이동 능력자가 여럿 섞여 있어 놈들을 당장 추적하기는 어려웠다.

주리는 이동해 오자마자 지호가 붙잡고 있는 주원의 옆을 박살 냈다. 그를 박살 내지 않은 건 신체 능력자가 일반인을 때렸을 때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탓이다.

주원을 주리에게 인계한 지호는 박 팀장이 혀를 내두르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보며 그제야 방벽을 거두어들였다. 함께 도착한 헌터들이 현장을 정리하며 일반인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반항하는 자들이 많았으나, 현장 증거가 너무 명확해 무력 진압이 가능한 상황이라 거침없이 사람들을 밀어 낼 수 있었다. 집회에 모여 있던 이들이 모두 쫓겨난 뒤에야 박 팀장은 살펴보던 기기에서 눈을 돌렸다.

“어떻게 먼저 알고 와 있었어요? 여기랑 전양련이 연관된 줄 알아내느라 힘들었는데.”

“저도 몰랐어요. 아는 애랑 같이 이상한 종교 집회에 왔을 뿐인데.”

“아무 데나 다니고 그러지 마요. 가뜩이나 사이비가 범람하는 판국이거든요. 본래 같으면 특수반이 움직여야 했는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당장은 움직일 수가 없거든. 뭐 때문인지는 알죠?”

균열에서 주원에게 협조했던 일이 덜미를 잡힌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렇지 않았다면 김 반장이 지호를 보러 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말은 항상 퉁명스럽고 거친 사람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으니.

“제가 녹화하고 있던 건 보셨죠?”

“협회 서버로 곧장 전송되는 영상입니다. 다들 봤죠. 이쪽에서 움직이고 있던 걸 모르고 있지는 않아서 집회 장소가 여럿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군요. 이런 비슷한 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가 개중 한 곳에 이주원 각성자가 나타나 놈의 능력을 빌려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꽤 많이들 넘어간 것 같거든요.”

“김 반장님은 왜 전양련에 협조했을까요?”

“협회 요직에 있는 자들 중 하나가 실종자 가족이라 집회에서 가족의 목소리를 듣고 전양련으로 넘어간 것 같더군요. 특수반을 이끄는 입장에서 중요한 사항들을 폭로하겠다는 전양련에게 휘둘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박 팀장은 김 반장을 옹호하더니 부끄러운 기색을 숨기려고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 요전에 제가 지호 씨에게 했던 이야기들은…….”

“괜찮아요. 사정 모르면 제일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지.”

“특수반 책임 지시자이자 전양련으로 넘어갔던 해당 헌터는 체포됐습니다. 헌경에서 그를 털던 와중에 이곳 정보들도 알게 됐고요. 방호복을 꽤 많이 빼돌렸더라고요.”

“균열에라도 들어가려고 했나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으나 박 팀장은 마땅찮은 표정으로 지호의 말에 동의했다.

“본래는 시흥 지하 연구실에서 열었던 문으로 다른 각성자들도 차례차례 들어갈 예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선발대로 들어갔던 이들이 전투 계열보다는 연구직 위주인 데다 과학자들뿐이라서 자기 분야 외에는 무지했다는 게 실패 요인이었겠죠.”

멀지 않은 곳에서 주리가 주원의 옆 바닥이나 벽, 천장 같은 것들을 부수며 화를 내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호는 박 팀장이 자신의 오른손을 보고 있단 사실을 알고 팔을 뒤로 숨겼다. 박 팀장은 아차 하며 사과했다.

“아 그, 미안합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이번 균열에서 마주쳤던 메두사의 팔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어서.”

“그거 맞아요.”

“예?”

“저를 한 번 죽였던 것들이 그게 맞다고요. 제 죽음에 기여한 덕분에 균열에서의 이 괴변이 현상으로 놈들의 팔이 생긴 것 같죠.”

지호는 진실과 거짓을 그럴싸하게 섞었다. 금 박사의 말대로라면 헌터들 대부분은 자신이 괴물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박 팀장이야 센터장이고 나름 책임자급이니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호는 어쩐지 그가 그걸 알고 있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현장을 뛰며 임무 다니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눈앞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느라 바빴을 것이다.

다행히 박 팀장은 자기가 지호의 오른손을 너무 대놓고 쳐다봐 그를 불쾌하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눈치를 살피느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제 옛 동료 중에 괴변이 현상 때문에 괴로워하던 친구가 있었거든요.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리기 전에 사람들을 구하다가 죽겠다고, 균열에 계속 들어가다 결국 몸이 약해져서 영영 깨어나지 못하게 됐고요. 그게 생각나서 그런 겁니다.”

“이런 현상이 생각보다 자주 있었나 봐요? 전 몰랐는데 다들 언급하시네.”

“겪지 말아야 할 일로 꼽히는 현상 중 하나라서요.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칠 때가 아니면 마주칠 없는 일이기도 하고, 치유계 능력자가 그런 일을 겪을 상황이라면 보통은 다 죽으니까 목격할 사람도 거의 없긴 합니다. 1세대나 2세대 때야 간간이 보이긴 했었지만, 무리하는 게 일상인 사냥꾼들을 제외하면 최근엔 아무래도 다룰 일이 없었겠죠.”

박 팀장은 쓰게 웃었다. 이미 그 일을 겪어 버린 동료에게 할 말은 아니었으나, 지호가 알아야 할 일이기에 그는 차분히 설명했다.

“신체 괴변이 현상이 일어나면 그에게 주어지는 결과는 둘 중 하납니다. 변하기 시작한 신체가 다른 몸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몸이 점점 더 괴물에 가까워지거나 신체가 불균형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이 고장 나면서 죽어 가는 거요. 어느 쪽이나 별로 좋은 끝은 아니겠군요.”

“신체 계열 능력자여도 버틸 수 없나요?”

“사실, 그건 아직 예시가 없어서 잘 모릅니다. 여태 신체 괴변이 현상은 치료 계열 능력자나 치료계를 서브로 둔 능력자들에게 주로 일어났거든요. 그들 중에는 신체 계열 능력자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큰 상처를 입는 일이 잘 없잖아요. 그 몸에 상처가 날 정도가 되면 벌써 죽음에 이르는 수준일 테고.”

“제가 좋은 예시가 되겠네요.”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 팀장은 주리가 참지 못해 주원을 결국 한 대 치고 만 현장을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전양련은 생각보다 곳곳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요. 참여자가 많고 정보를 얻는 루트도 생각보다 넓죠. 그들이 헌터 웹 관리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지호는 눈을 끔뻑였다. 훈련과 현업에 매진하느라 인터넷 들여다볼 시간이 얼마 없는 헌터였던지라 헌터 웹 이야기를 들어도 반응이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박 팀장은 본인 휘하 센터를 상시 드나들던 성실한 헌터를 떠올리며 첨언했다.

“헌터 커뮤니티나 헌터 웹을 비롯해 각성자들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그리고 일반인들도 각성자들만 볼 수 있는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는 웹사이트가 몇 개 있습니다. 대부분 헛소문이지만, 개중에 일부 수상쩍은 진실이 섞여 있죠. 각성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도 그중 하납니다.”

준영에게 들었던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호는 혀를 찼다.

“이번 균열에서 구조한 각성자한테 들은 적 있어요. 각성하는 방법에 대한 게 무슨 선행의 미덕으로 인한 것처럼 알려져 있던데.”

“그것만 문제가 아니지만, 그게 제일 문제이기는 하죠. 아무리 대형 균열이어도 기본적인 대처 방식은 동일했습니다. 4단계 경보가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유독 나대다 밖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단 말이죠.”

박 팀장은 피로감을 느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호는 그가 언급한 사실들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렇게 가짜 정보를 퍼트려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죠?”

“좀 더 서로에게 호의적이고 좋은 사회가 되겠죠……. 라고 서버 관리자나 웹 관련자들은 입을 털어 대긴 했습니다만, 아마 진짜 이유는 각성자를 늘리기 위함이겠죠. 지금처럼 다들 잘 숨어 있다가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는 각성자 수가 많이 늘어날 수가 없으니까요. 어떻게든 위험에 내몰려서 반쯤 강제적으로 각성하는 수를 늘리려는 수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하게 표현해 각성자의 수를 늘린다는 것이지, 제대로 말하면 사망자의 수를 늘리는 것에 가깝다. 지호는 인상 쓰며 주리에게 얻어맞고 있는 주원을 노려보았다.

“왜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생각을? 자기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되찾겠다고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자기들처럼 만드는 꼴이잖아요.”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선택을 하죠. 그것이 자신에게는 옳은 일이니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면서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지금 눈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는 자들에게는 정상적인 말들이 궤변처럼 들리는 모양이에요. 그런 암적인 자들이 사회 곳곳에 퍼져 있죠. 각성자만 전양련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니 더더욱요.”

머리가 다 아픈 소식이었다. 지호는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일전 마정석 가루들을 긁어모아 균열을 여는 기계를 발견했을 때에도 비슷한 감상을 느꼈었다.

“범인이 사방에 너무 많아서……. 누구를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모두가 범인이라서 뭔가를 찾기 어려웠군요.”

“그나마 집회에 주기적으로 나가는 자들을 중심으로 재수색해서 얻은 결과가 헌터 웹 관리자 검거였습니다. 이제 이주원 각성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자들을 다시 확인해 봐야겠죠. 이쪽 검거는 특수반에서 확인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번에는 협력자다 보니 그렇게 도움받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적극적 동조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호는 김 반장이 지키고 싶어 하던 비밀을 생각하자 씁쓸해졌다. 그 적은 수의 정신계 능력자들로 간신히 유지되는 이 사회가 너무 위태롭고 불안하게 느껴졌다.

헌경이 도착하며 주원은 이동 능력을 제약하는 수갑에 손을 묶인 채 도살장으로 떠나는 짐승처럼 끌려갔다. 그의 애처로운 시선에 지호는 끝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저 사람에게 간섭하는 여왕의 자식이 있어요. 특수반이 아무리 이번 일과 연루되어 오해받고 있다고 해도 정신계 능력에 한해서 그들을 따라올 사람들이 없잖아요. 동조 수사가 필요하다고 봐요.”

“하지만 그들이…….”

“저를 억류하는 데 협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이해해요. 어떤 사정이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김 반장님께 제가 찍은 영상을 보여 주세요. 정신계 능력자시니 저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으실 거예요.”

박 팀장은 길게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에게 연락해 특수반과의 공조를 지시하곤 금방 전화를 끊었다. 잠시 침묵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제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겠군요. 여전히 제게는 임보현 헌터의 피보호자인 햇병아리 헌터로 느껴지지만……. 이지호 헌터는 이제 노련한 헌터가 되었고, 저보다 앞서 현장에서 많은 것들을 접하고 있겠어요. 알고는 있습니다만, 야근에 특근만 반복하는 사이 훌쩍 커 버린 우리 집 꼬맹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지호는 잠자코 웃었다. 박 팀장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몇 달을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던 보현과 달리, 그는 지호가 구조되어 와서 등록하고 교육받으며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유일한 사람에 가까우니까.

본인은 더 이상 어리지 않다며 어린아이들이 응당 하고야 마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꺼내는 대신, 지호는 싱긋 웃었다.

“어떤 일들에는 반드시 필요한 악행들이 있는 법이래요. 그것들을 기꺼이 도맡아 처리해 왔던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수반 사람들에겐 선처를 부탁해요.”

박 팀장은 그런 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정신계 능력자들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지호의 태도는 이해받기 어려운 것이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박 팀장은 금세 수긍했다.

“상부에 전달하죠. 피해자였던 이지호 헌터의 이야기니 정상 참작될 겁니다.”

이주리 헌터가 사방을 부숴 놓은 덕분에 매주 사람들이 모여 집회하던 장소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폐허가 조사 팀을 반겼다. 그래도 중요한 기기 같은 것들은 건드리지 않은 모양이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구멍 숭숭 뚫린 현장에서 조사 작업을 하기란 웬만한 담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민간 조사 팀은 들어오지 못하고 헌터들만 현장에 입장했다.

주리는 복잡한 얼굴로 지호를 응시하다가 곧 자리를 떠났다. 고개를 한 번 꾸벅 숙여 보인 것이 주리가 보인 최대한의 호의였을 것이다. 박 팀장이 언질 주기를, 이주리 헌터는 괴물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이기를 극렬히 거부하는 헌터들 중 하나라고 했다.

혹시 모를 현장 붕괴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방벽을 펼친 채 집회장 중심에 서서, 지호는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시선들을 외면하며 제 할 일에 집중했다.

박 팀장이 그의 일을 위해 곁을 떠난 뒤에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서글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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